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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41) ===6권 시작==== [그는 파멸안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내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그 충격은 더욱 커진다. 지금 소림사 폐허에 모여 있는 이천여 무인들의 표정이 그랬다. 요악한 광채를 뿌리는 붉은 비도를 기준으로 둥글게 포진한 열한 자루의 비도의 모습에 무인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영웅의 자리와 천하제일인의 기연을 안겨 줄 거라 했던 광혈지옥비를 대하는 첫 느낌은 몸서리치는 공포였다. 천붕십일천마의 수장이었던 묵안혈마의 모습이 바로 저랬다고 했다. 피를 마시는 붉은 비도는 묵안혈마의 광기라 했다. 세상을 저주하며 휘둘렀던 광혈지옥비는 묵안혈마의 분노라 했다. 그들은 숨을 죽이며 열두 자루 비도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난 요정, 너희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주변을 둘러보며 백산은 나지막이 말했다. 이럴 가치가 있는 건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정 알 수가 없다. 소림사에는 여전히 승려들이 있다. 장경각 앞 공터에도 승려들이 있고, 나한전 앞 공터에도 승려들이 있다. 지객당 앞 공터에도 승려들이 있고, 천불전 앞 공터에도 승려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숨을 쉬지 않는다. 아니, 제대로 된 시체를 보존한 이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육신은 갈가리 찢긴 채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다. 반역자라 하여 시체조차 거두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막연한 눈으로 소림사를 쳐다보던 백산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소림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인 종루와 고루에 온전히 시체를 보존한 이가 있었다. “제자들은 전부 죽고 없는데 웃고 있구나!” 당두를 붙잡은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인물. 그는 지저사령계에서 처음 만났던 요정이었다. 그리고 종루 옆 고루에는 북채를 쥔 무광이 요정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죽음에 직면한 자의 고통 받는 얼굴이 아니다. 소림사 각 불전에서 보았던 부처님의 얼굴을 보는 듯, 그들은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웃는 건 지금까지야. 이제부터는 인상을 찌푸려야 할 거야. 지옥에서 막 뛰쳐나온 악마를 봐야 하니까.” 낮게 중얼거린 백산은 요정의 시선을 전면을 향해 돌려놓은 다음, 고루의 무광 또한 천불전을 쳐다보도록 해두었다. “하연아!” 백산의 부름에 주하연은 말없이 애명환을 약지에 끼웠다. 사라랑! 사라랑! 숨죽이며 백산을 지켜보는 그들의 귓전으로 나직한 소리가 흘러들었다. 묵안혈마 백산이 출현할 때면 언제나 울었다는 애명환 소리. “나는.......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바보요. 단지 내가 잘하는 건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없애는 거요. 그대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건 문제가 아니라오. 저놈들의 피로 소림을 씻을 것이고, 저놈들의 살을 소림의 거름으로 쓸 것이오. 저놈들을 죽여 제물로 삼을 것이오! 그곳에서 지켜보시오.” 요정과 무광의 시신을 쳐다보던 백산은 고개를 돌려 전면을 주시했다. 온통 무인들로 새카맣다. 중앙에는 개방 무인들이 자리해 있고, 그들의 오른편에는 남궁세가와 하북팽가 무인들이, 왼편에는 남천벌 도부각 무인들과 북황련 신병대가 자리해 있다. 그리고 광혈지옥비를 얻기 위해 거처를 떠나온 무인들은 그들 뒤쪽에 포진한 채 이편을 쳐다보고 있다. “너희들이 원하는 게 이런 것이었더냐?” 천붕회 세 문파를 쳐다보며 백산은 낮게 물었다. 가슴속으로부터 흘러나온 분노는 머릿속을 검게 태우고 있다.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았다. 천붕회가 더욱 커지기를 바랐다. 강호 무림의 하늘이 되기를 원했다. 바라는 게 있어서 했던 일이 아니다. 천붕십일천마를, 묵안혈마 백산을 기억해 주는 게 고마워,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진정 묵안혈마 본인이 맞습니까?” 개방 무인의 오른편에 있던 한 명이 백산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팽가 무인들을 이끌고 온 파랑도(波浪刀) 팽운산(彭雲山)이었다. 지금 팽운산은 혼란스러웠다. 붉은 눈과 비도를 앞세우고 제천맹 무인들을 도륙하던 묵안혈마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가 움직일 때는 언제나 애명환 소리가 울렸다. 팽가 무인들은 그 소리를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노리라 하여 망부가(亡婦歌)라 했다. 그런데 그 애명환 소리가 지금도 흘러나오고 있다. 어쩌면 그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묵안혈마 백산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숭산에 와 있는 대부분 무인들은 궁금한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그들 또한 백산의 정체가 궁금했던 까닭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묵안혈마임을 확인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내가 묵안혈마 백산이라면 돌아갈 테냐?” 팽운산을 흘끔 쳐다보며 백산은 물었다. 막수산에서 남궁상순에게도 물었던 말이다. 소림의 멸문을 방치하고, 광혈지옥비를 가진 자신을 잡겠다고 떠나온 그들이 아닌가. “그럴 수는 없소이다.” 팽운산은 곤혹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던 탓이다. 현 상황에서 그의 신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거 그의 신분이 뭐였든 지금 귀광두는 강호 무림에서 없어져야 할 반역자이자 무림공적일 뿐이다. 하북팽가를 위해, 무림을 위해 없애야 할 자가 바로 귀광두인 것이다. “맞다, 팽운산. 너희들이나 난 선택을 했을 뿐이다. 너희들은 내 목을 선택했고, 나는 너희들의 목을 선택했다.” “이곳에 있는 무인들을 허수아비로 보는 모양이군.” 백산의 말을 받은 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호연작이었다. 백산을 향해 비릿한 조소를 머금고 있던 호연작은 슬쩍 전음을 보냈다. [나는 믿는다, 묵안혈마. 네가 백산이라는 사실을 믿는단 말이다.] 호연작의 전음을 들은 백산의 눈썹이 꿈틀하며 치켜 올랐다. 자신을 묵안혈마 백산으로 믿어 준다는 말을 개방 방주인 호연작으로부터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의아한 눈으로 호연작을 쳐다보던 백산은 짧게 물었다. “누구냐?” [네놈의 동생들이 기다리는 저승으로 가면 알게 된다. 너를 끝으로 천붕십일천마는 전부 사라진다는 사실만 알면 된단 말이다.] “그랬었구나!” 백산의 몸에서 전율적인 살기와 함께 붉은 혈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 작했다. 우려하던 일이 사실로 드러났다. 십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아 이상하다고 여겼었는데 그들의 실종에 개 방이 관련되어 있었다. "고맙다, 호연작.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어서." 혈운 속에 모습을 감춘 백산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파멸안의 마지막 단계인 광혈지안(狂血之眼)의 출현이었다. "한가지만 부탁하자. 제발 도망치지 마라! 부탁이다!" 나직했다. 그러나 내공이 가득 담긴 백산의 목소리를 폐허에 모인 모든 무인들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삼천에 육박한 무인들을 향해 제발 도망치지 말라고 하는 외침이 황 당하고 생각되어야 하건만, 무인들은 그렇질 못했다. 일순간에 대부분 무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호연작만은 달랐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혈운을 노려보던 호연작은 뒤편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놈을 제압하라!" 호연작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뒤에 있던 십여 명 무인들이 몸을 날려 백산 전면으로 내려섰다. 불개를 비롯하여 망탕산에서 살아 남은 절정취혼객이었다. "다시 보게 되었구나, 귀광두!" 백산을 쳐다보는 불개의 몸에서 살을 엘 듯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불개, 이-놈!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백산 뒤편에 있던 파면신개가 불개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있어서 는 안 되는 일이다. 백산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세웠던 단체가 천붕회 아닌가. 그런 천붕회 소속 문파가 백산을 공격하다니. "그는 묵안혈마란 말이다!" 파면신개의 말이 떨어지자 절정취혼객과 백산을 주시하고 있던 무인 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개방에서 파문을 당했다지만 파면신개는 강호무림의 대 선배. 그의 입에서 귀광두가 묵안혈마 본인이라는 말이 흘러나온 것이다. "믿을 수 없습니다!" 고개를 흔들며 불개는 소리쳤다. "믿어야 한다. 내가, 이 파면신개가 보장한다. 그는 이 파면신개의 조카사위인 백산이다. 너희들은 그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설마……!" '저자가.' 불개 뒤쪽에 있던 호연작은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무인들의 웅성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더 이상 두고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호연작은 파면신개를 향해 소리쳤다. "잘못 아셨오, 파면신개. 묵안혈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여기 있는 모 든 무인들이 알고 있소이다. 저 놈은 묵안혈마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이오. 저 놈에게 남궁세가의 육대신마를 비롯한 개방 무인 이백여 명 이 죽었소. 저 놈이 묵안혈마였다만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지 않겠 소. 봉선군주의 남편인 놈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당신 은 좀더 그럴싸한 핑계를 댔어야 했소!" 호연작의 말 효과가 있었는지, 동요하던 무인들이 본래의 모습을 되 찾았다. 개방 방주의 말처럼 묵안혈마는 이미 죽었다. 삼십 년 전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은 어불성설인 것이 다. 중인들이 안정을 되찾자 호연작은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재차 내공을 가득 실어 말을 이었다. "더구나 놈은 반역자요. 설사 묵안혈마 본인이라 해도 그는 이곳에 서 죽어야 하외다. 여기 소림처럼 말이오! 귀광두를 계속 두둔하면 당 신 또한 무사하지 못할 거요." "허!" 파면신개는 나직한 신음을 뱉어냈다. 할말이 없다. 소림이 멸문당한 시점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안타까운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았다. "그만하십시오. 죽이면 그만입니다. 말을 못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면 그만입니다." "나도 돕겠다!" 얼굴을 굳힌 파면신개는 백산 곁으로 나서며 말했다.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그 혼자 전 무림인을 상대하게 둘 수 는 없는 일이다. "아닙니다. 저에게 맡겨 두십시오." "산아!" 부드러운 기운이 자신을 밀어내자 파면신개는 백산을 불렀다. "최선을 다해야 할거다!" 삼 장여 밖으로 파면신개를 밀어낸 백산은 절정취혼객을 향해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흑객들은 준비하라!"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백산을 발견한 불개는 내공을 끌어올리며 소 리쳤다. 일순 그의 몸에서 번쩍이며 뇌기가 일렁였다. 용음십이수(龍音十二手), 차기 방주로 지목된 제자만 익힐 수 있다 고 했던 용음십이수를 불개를 비롯한 절정취혼객 모두가 익히고 있었 다. 이장 거리를 두고 물러나던 열 명의 절정취혼객들은 백산을 향해 일 제히 양손을 밀어냈다. 쿠르릉! 요란한 뇌성소리와 함께 수십 줄기의 푸른 뇌전(雷電)이 백산을 향 해 쭉 뻗어나갔다. 석양을 뚫고 나아가는 스무 개에 달하는 뇌전의 모 습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백산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구나."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백산은 가볍게 지면을 차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천만에! 용음천강수(龍音天 手)!" 기다렸다는 듯 불개가 고함을 지르고, 네 명의 흑개가 허공으로 솟 구친 백산을 향해 양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쿡!" 낮게 웃음을 흘린 백산은 불끈 틀어쥔 양손을 쭉 내밀었다. 소림 무공인 백보신권이었다. 콰과광! 뇌전과 혈강이 부딪치며 거친 폭음을 남겼다. 불개를 비롯한 다섯 명의 몸이 발목까지 지면으로 박혀들었고, 허공에 머물던 백산의 신형 은 일장 가량 뒤로 밀렸다. "용음혈강수(龍音血 手)!" 대기하고 있던 다섯 명의 흑개의 입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지고 뇌전 을 머금은 붉은 강기가 진득한 살기를 동반한 채 허공을 찢었다. "그따위 공격으로는 이 묵안혈마를 잡지 못해!"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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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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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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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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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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