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빈, 하루히 미오와 반달 손님
- 제 27회 전국 청소년 백일장 차상작 -
그러니까, 걔, 제 나이 열넷에 교토에 갔더랬다
삼월에 쏟아지듯 피어나는 개나리보다 가느다란 소녀가 봄을 팔러 갔단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늘어난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그 애는 밤마다 동무들 귓가에 박하 씨앗을 뿌렸단다
하룻밤이 지나면 박하꽃이 심장에 뿌리채 돋아나
한 평 남짓한 공간에도 봄이 올 것만 같았지
너는 삼월의 봄꽃을 사랑하니?
나는...... 삼월에도 함박눈을 보았어
할머니의 두 눈 같은 반달이
양손에도 가득 차올라 있었다
나무를 보며 참 좋겠다......
나, 두 다리를 곧게 뻗어 하늘로 향하면 마치 나무가 된 것 같아서
두 손을 변두리에 뿌리내리면 바다 건너
그리운 곳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뒤집어진 두 다리로 하늘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으니......
나무처럼 입가에 이끼가 돋기 시작한 나는 물새처럼 침묵했단다
할머니의 누런 반달 뒤에는 까만 것들이 뭉쳐져 있었다 살과 손톱 사이를 짓누르듯
...... 물속에서 붉게 피어나는 윤희에게 국화꽃 한 송이 건네줄 수 없었지
앙상한 날개로 까마귀를 쫓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바람은 아이의 목덜미를 물고 마구 흔들고
그 애, 아직 다 벌어진 부리로 뻐끔대며
기어이 살아남으려 잘린 밑동으로 뒤뚱거리고 있으니까
제발 나를 다시 물밖으로 내치지 말아달라고
똑,
똑,
잘려나가는 검고 아린 손톱들
별 무리가 지평선 근처로 검게 쏟아져 대지를 물들일 때면 나는 괜히 죽은 걔가 보고 싶었다
윤희요?
아니, 하루히 미오.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날 것 같았던 일어 외에는
내 혀에선 아무런 달콤한 말도 떠오르지 않는구나
내 손톱 끝자락에는 윤희가 죽어 있다
나무가 되겠다던 걔가...... 걔가
할머니의 마지막 오른쪽 새끼 손톱이 잘려나갔다
그 아이와 함께
첫댓글 제목 보고 홀려서 들어왔다... 글 올려 줘서 고마워 잘 봤어
뭐야너무좋아서 한참을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