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사 불화기행] <6> 완주 불명산 화암사 석가삼존십육나한도
“깨달음 이른 수행자들 인간적으로 표현”
1858년 의상암에 봉안됐다가
암자 소실 후 화암사로 이안
현재는 극락전에 모셔져 있어
석가모니부처님을 본존으로
각양각색 십육나한 묘사돼
환한 웃음, 익살스런 표정서
‘성’ ‘속’ 공존하는 면모 확인
대선사 허주당 덕진스님 감수
화사 성념, 묘전스님 개성 발현
명랑한 화취에 해학성 뛰어나
완주 화암사 석가삼존십육나한도는 본래 조선 1858년 화암사 의상암에 봉안됐던 불화이다. 개성적 화풍을 지닌 성념, 묘전스님이 그렸고 허주당 덕진스님이 최종 감수했다.
전라북도 완주군 불명산(佛明山) 심산유곡에는 고찰 화암사(花巖寺)가 자리하고 있다. ‘산사(山寺)’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깊은 산중의 조용한 절이다. 안도현 시인이 ‘화암사, 내 사랑’이라는 시를 통해 ‘잘 늙은 절’이라고 표현했듯이, 화암사는 화려한 장식이 없고 담박하지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맞는 위엄과 풍격을 지니고 있다.
완주 화암사는 신라 7세기에 창건되었고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머물면서 사격이 갖춰졌다고 전한다. 사중의 유물로는 국보인 극락전과 보물인 우화루를 비롯해 각종 불상과 불화, 범종, 전적류, 그리고 승탑 등이 전해진다. 특히 극락전은 화암사를 대표할 만한 문화재로 잘 알려져 있다. 국보 제316호인 극락전은 조선 선조 38년(1605)에 세운 것인데,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구조의 건물이다.
하앙식 구조란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해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이다. 경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화루(雨花樓)를 거쳐야 하는데 통로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아담한 중정이 나오고 극락전을 마주하게 된다. 좌우로는 적묵당(寂默堂)과 불명당(佛明堂)이 위치한다.
완주 화암사 석가삼존십육나한도 일부분. ‘동심원점문’이 그려진 가사를 걸치고 있다. 이 문양은 조선 후기에 나한의 복식에 자주 활용되었다.
극락전 내부로 들어가면 정면 중앙에 아미타삼존상이 불단 위에 모셔져 있고 그 위로는 아름답게 장엄한 닫집이 가설돼 있다. 불상의 뒤로는 아미타부처님의 극락 설법을 묘사한 ‘아미타설법도’가 봉안되어 있다. 이 불화 외에도 극락전 안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바로 ‘석가삼존십육나한도’이다.
가로와 세로 모두 1m가 조금 넘는 그림으로, 주불도인 ‘아미타설법도’와 비교해 보면 아담한 크기의 불화라 할 수 있다. ‘극락전에 아미타설법도가 주불도로 봉안돼 있는데 왜 좌측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한 그림이 또 봉안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 궁금증은 ‘석가삼존십육나한도’의 아래에 먹으로 쓰여 있는 기록을 보면 해소된다.
이 그림은 원래 1858년 정월 화암사 산내암자인 의상암(義相庵)에 봉안되었던 것이다. <화암사 중창기>에 따르면, 화암사에는 예로부터 원효대(元曉臺)와 의상암(義相庵)이 있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현재는 두 곳 모두 남아 있지 않다.
이 그림은 의상암이 소실되면서 화암사로 이안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극락전 내에는 불교의 호법신들을 그린 ‘신중도’(1858)도 있는데 이 불화 역시 ‘석가삼존십육나한도’와 함께 제작되어 의상암에 봉안되었던 것이다. 두 점이 모두 극락전으로 옮겨진 셈이다.
화암사 의상암 ‘석가삼존십육나한도’는 말 그대로 석가삼존과 십육나한을 한 화면에 그린 그림이다. 화기에 ‘십육성중탱(十六聖衆幀)’이라고 기재되어 있어 제작자들이 십육나한을 부각하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주존’인 석가모니불과 좌우 협시보살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십육나한이 에워싸고 있는 구성의 그림이라는 점에서 필자는 ‘석가삼존십육나한도’가 올바른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석가모니불과 십육나한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한의 개념과 십육나한의 구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한도 일부분. 나한의 친근한 이미지가 부각되어 있다.
나한(羅漢)은 범어 ‘Arhat’의 한자 음역어인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이다. 나한은 초기불교시대에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의미했으며 대승불교시대에 이르러서는 일신의 깨달음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위력으로 중생들을 구제하는 존재로 의미와 역할이 확대되었다.
그 과정에서 단독으로 보다는 무리를 이루며 신앙화 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열여섯 명 불제자로 이루어진 십육나한(十六羅漢)은 나한의 개념과 성격을 파악하는데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구성이다.
십육나한에 대해서는 <불설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佛說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줄여서 ‘법주기’로 칭함)라고 하는 경전에 가장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법주기>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전에 설한 <법주경(法住經)>을 불멸 후 800년경에 현재의 스리랑카에 해당하는 사자국(師子國)의 승려 난제밀다라(難提密多羅)(경우존자(慶友尊者)라고도 불림)가 다시 설법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법주기는 당나라 654년에 장안(長安)의 대자은사(大慈恩寺) 번경원(翻經院)에서 현장스님에 의해 한역되었다.
<법주기>에는 십육나한의 존명과 주처, 그리고 소임이 언급되어 있다. 십육나한의 존명과 주처는 다음 기회에 십육나한도를 다루면서 별도로 언급할 예정이며 이번 회에서는 소임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려 한다.
<법주기>를 보면, ‘이들(십육나한)은 모두 삼명육통, 팔해탈의 무량공덕을 갖춘 자이며 삼계(三界)를 떠나 삼장(三藏)을 외워 지니고 외전(外典)에도 능통한 자들이다. 이들은 석가모니의 칙명을 받은 까닭에, 신통력으로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여 세존의 정법이 응당 머물러야 하는 기간까지 항상 따르며 호지(護持)하고 모든 시주에는 진실한 복전(福田)이 되어 준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시 말해, 십육나한은 석가모니로부터 ‘불법수호(佛法守護)’와 ‘중생요익(衆生饒益)’의 소임을 부여받은 16위의 아라한이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 화암사 의상암 ‘석가삼존십육나한도’를 보면, 그 구성 배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나한전 안을 보면 정면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조각상이 모셔지고 그 좌우로 십육나한상이 위치한다.
그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면에는 석가설법도가 봉안되고 그 좌우로 여러 폭으로 구성된 십육나한도가 걸린다. 화암사본의 경우는, 의상암 불전의 규모가 작고 다른 주제의 그림들을 함께 걸어야 했기에 한 화면에 석가모니와 십육나한을 함께 모신 것 같다.
1858년에 그린 완주 화암사 신중도의 부분. 성념스님과 묘전스님의 개성이 이 불화에도 보인다.
화암사 의상암 ‘석가삼존십육나한도’는 성념(聖念), 묘전(竗典), 그리고 묘화(竗華)까지 총 세 명의 스님이 그렸다. 당시 최고의 선지식 중 한 명으로 명성이 높았던 허주당 덕진(虛舟堂 德眞, 1806-1888)스님이 증명(證明)했다. 증명은 불화가 완성된 후 최종적으로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사와 증사 스님의 역량은 그림 곳곳에서 확인된다.
우선 화면구성과 도상(圖像)이 예사롭지 않다. 석가모니불 좌우로 십육나한이 둘러싸고 있는데, 자세가 각양각색이다. 이는 나한의 도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한은 본래 형상을 규정한 소의 경전이 없다. 그래서 작가들은 나한을 표현할 때 수행 비구의 모습을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자세와 표정으로 그들의 위력을 묘사한다. 이 점이 잘 반영된 것이다.
다음으로 십육나한의 뒤로는 수묵 산수가 그려져 있는 점도 주목된다. 이러한 특징은 화사 혹은 증사가 ‘십육나한도’의 전통적 화면 구성과 표현 방식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십육나한’의 주처는 산중(山中)인 경우가 많아 ‘십육나한도’를 보면 배경으로 산수가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점은 인식,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그리면서도 십육나한의 뒤로는 산수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표현이다. 이 그림은 채색이 맑고 전체적으로 명랑하며 생기 있는 화취를 지닌다. 이는 존상들의 표정에서도 드러난다. 십육나한은 물론 석가모니와 보살들까지 환하게 웃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다른 불화들이 지니는 엄숙함과는 꽤 거리가 있다. 이러한 해학성은 화사들의 개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성념과 묘전스님이 그린 또 다른 그림인 ‘신중도’ 역시 존상들의 표정과 자세가 활달하며 생기 있다.
십육나한을 자세히 보면 이마를 시원하게 긁고 있거나 환하게 웃고 있거나 양손을 벌린 채 익살스런 표정을 한 분들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나한은 수행자에서 출발해 위대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분들이다. 불보살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닌 분들이지만, 인간적인 면모도 지닌 분들이라는 특성, 즉 ‘성’과 ‘속’이 공존하는 나한의 특성을 그림에 절묘하게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신문3572호/2020년4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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