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2 주일설교
본문: 살후 3:4-6
제목: 받은 전통대로 행하라
1. 우리가 명한 것을 행하고 또 행하라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살후3:4)
사도들이 명한 것은 계시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성경이 되었고, 우리가 지켜 순종해야 할 말씀이 되었다.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의 부분이 되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성경에서 훈계와 책망을 받고 바르게 되고 의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과 사도들이 명한 것을 행하고 또 행해야 한다.
그것을 명한 사도는 우리가 행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고 있다.
주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만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어떤 것도 행할 수 없다.
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은 지은 지혜로운 자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 행함이 없는 지식은, 헛것이고, 죽은 것이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먹으로 머리의 돌판에다 쓰는 것으로 끝나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다. 영은 살리는 것이다.
사람은 머리에 있는 것은 행하지 않고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한다.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말씀이 없으면, 사람은 행하지 않는다.
새 언약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행하는 것이다.
사도가 명한 것을 행하고 또 행할려면
그 가르친 전통의 말씀이 마음에 있고 영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생명으로 산다. 주의 말씀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된다.
초대교회와 발도인교회는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며 말씀대로 살고 행하였다. 생명으로 살았다.
먹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도 거기에 영이 없고 생명이 없기에 행함도 변화도 열매도 없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믿음으로 사랑의 행함이 없다면 교회도 기독교도 죽은 것이다.
그 많은 교리책들 신조들이 교회와 기독교를 죽이고 있다.
사도교회처럼 발도인교회처럼 사랑의 행함으로 진리의 실천으로 돌아가자.
제도권을 장악한 종교는 항상 지식쟁이들이지, 새 언약의 일꾼들이 아니다.
가장 큰 이단은 가장 큰 교단이라고도 한다.
세상과 같은 유가 아니고서 어떻게 세상에서 그렇게 클 수 있단 말인가?
큰 문 넓은 길 다수는 항상 멸망으로 인도하는 첩경이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그들의 다수’가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인 것을 어찌하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한사코 큰 문 넓은 길 다수의 길로만 가고 있으니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8:12)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3,24)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지키라 하는데도 그 전통을 찾지도 않는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16세기 종교개혁은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찾지도 않았다.
역사적 뿌리를 찾지도 않았다.
루터와 칼빈은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교리책 만들어
면죄부 팔 듯이 팔아 문서개혁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만 문서로 먹물로 개혁이 성공하는 것 인류역사상 보았는가?
13세기에 발도인들이 천년에 걸쳐 피와 생명 바쳐 이룬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인쇄술의 발달로 그 명예와 영광과 열매를 훔쳐 먹을 것 뿐이었다.
그들은 로마교회 뿌리와 전통에서 로마교회를 개혁한 것 뿐이었다.
로마교회와는 달리 초대교회의 뿌리와 전통은 발도인들을 통해서 면면히 흘러 왔다.
로마교회의 그 잔인한 핍박과 고문과 학살과 화형에도 굽히지 않고
초대교회의 참 교회 전통을 영과 생명으로 지켜 왔다.
우리는 참 교회의 영으로 가르친 전통, 그 전통을 되찾고 그 뿌리와 줄기를 찾아가야 한다.
먹으로 돌판에 쓴 편지가 아니라 영으로 마음판에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 가르침의 단순한 실천과 열매와 변화가 세상과 사람을 개혁하는 것이다.
2.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라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5)
주께서 우리 마음을 인도하셔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는 것은
마음을 다해 일편단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 사랑으로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 둘째 계명이다.
이 두 계명을 지키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다 지키는 것이다.
성경의 계명을 다 지키는 것이고, 이웃 사랑은 율법, 곧 성경의 완성이다.
우리가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사랑에 갇혀 못 느끼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자기 사랑을 비우게 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가 없다.
하나님 사랑 없는 이웃 사랑은 외식이요 일시적이요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께 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인내를 말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인내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운다고 하였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인내의 본을 보이셨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다.’(벧전2:21)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필수 과정이다.
광야의 고난을 통한 연단이 없이는 가나안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엡2:10)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한다.
무거운 금강석 돌에서 소량의 금을 뽑아내는 것이 연단이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하나님이 아시는 나의 인생길에서 하나님은 나를 단련(연단)하셔서 순금을 만드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나님의 상속자이기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고난은 우리가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한다.
요셉도 다윗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긴 광야 생활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모세의 기도가 우리를 위로해 준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시90:15)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것도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된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12)
그리스도인에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법은 없다.
믿음신학, 형통신학, 4차원의 영성은 얼마나 성경과 먼 것인지 알아야 한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여 지켜 행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자가 복이 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시는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고난의 해결법은 오직 하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땅의 계산법이 아니라, 하늘의 계산법으로 사는 것이 복과 형통을 가져 온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그것이 참 교회가 지향하는 것이요 참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마침내 복과 형통과 영광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3.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6)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였는데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야 한다. 그런 사람들과는 멍에를 함께 맬 수 없다.
사도에게서 가르침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요, 다른 교훈 다른 계명을 따른다는 것이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만 분별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된다.
영으로 하지 않고 먹으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아야 한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먹물이다.
지식 위주 지성주의 율법주의 율법 조문(교리,신조)은 하나 같이 먹으로 돌판에 쓰는 것이다.
먹으로 머리의 돌판에 쓰는 모든 것은 죽이는 것이다.
오직 영으로 마음판에 쓰는 것만이 살리는 것이다.
모름지기 사도들로 말미암아 영으로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
사도의 전통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형제에게서 자에게서 떠나라는 것은
분리요, 상종하지 않는 것이요, 멍에를 함께 매거나 교제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 교회요, 유사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무섭고 놀라운 일을 하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어찌할 수 없는 꼴이 되고 만다.
나라의 본 자손들에 속하여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16:17,18)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1:10,11)
분명 전통과 복음이 다른 데도 모든 형제를 떠날 줄 모르고
여전히 교제하고 멍에를 함께 매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은 올바른 지식과 하나님의 의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떠나라는데 떠나질 못하고 관용의 이름으로 계속 어울리다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는 전통과 바른 교훈의 길은 결코 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보다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길에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이다.
5백년 개혁주의 견고한 진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와 발도인교회 역사를 바로 안다면, 그 모든 형제들을
과감하고 담대하게 떠나야 하고 사도들의 전통을 회복하고 살려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