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다니는 미용실이 한 달간 문을 닫는다고 한다. 원장이 아프다고 하는데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다른 미용실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히 아는 곳이 없다. 면사무소 주변 상가에 몇 개가 밀집해 있어서 기웃거려 봤는데 다들 손님이 많았다. 나이가 들자 머리가 길면 힘이 없어져 초라해 보인다. 말을 잘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림이라도 바를라치면 아줌마들 고데 머리처럼 부풀어 오른다. 자르고 나서 2주쯤 지나면 제일 보기좋고 한 달이 넘으면 잘라줘야 한다. 오늘은 나선 김에 꼭 자르고 들어가야 한다.
미용실이 붐비니 자연 이발소 생각이 났다. 젊어서는 당연히 이발소를 다녔지만 언젠가부터 미용실을 다니게 되었다. 이발소는 구식 머리고 미용실이 더 도시스럽고 세련되었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발소는 이제 이용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 이용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불은 켜 있는데 아무도 없다. 주인도 손님도 없다. 사람만 없지 모든 건 다 준비돼 있고 안정된 분위기다. 이용원의 의자는 보다 크고 푹신해 보인다. 옛날에 이발소에선 면도도 해주고 안마도 해주었다. 그 분위기가 발전해서 여자 면도사도 등장하고 칸막이도 생겼다. 지금은 한가했던 옛날 모습으로 돌아갔다. 몇 차례 주인을 불렀으나 아무 응답이 없다. 나는 나와서 근처의 다른 이발관을 찾아 들어갔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없다. 안쪽 살림집까지 들어가서 사람을 찾았으나 인기척이라곤 없다. 군내의 이발소 주인들이 모여서 무슨 궐기대회라도 하나 아니면 무슨 추렴을 하기 위하여 모임을 갖나? 희한하게도 두 집의 상황이 너무 닮았다. 한 블럭의 이쪽 저쪽인데 혹시 살림집끼리 서로 통해 있는 건 아닐까? 조금 기다리다가 빈 가게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왔다.
'잘릴래용'은 남자 전용 미용실이라고 들었다. 간판 글씨는 세련됐는데 솜씨는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할 수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내부의 실내장식이나 조명은 밖보다 훨씬 더 세련돼 보였다. 의자에는 한두 명의 손님인 듯 싶은 남자애들이 앉아 있었다. 젊고 역시 좀 도시스런 여자애가 다가왔다. 나는 이발하러 왔다고 말했다. 이발이라는 단어가 좀 촌스럽게 들렸나? 카운터 뒤에는 원장처럼 보이는 머리가 긴 남자가 웃지도 않은 채 멀뚱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예약하셔야 되는데요. 예약 우선이고요 예약 손님들이 많이 밀려 있거든요. 지금 예약하면 안 되나요? 여자애의 표정이 좀 비웃는 거 같았다. 예약 손님들이 며칠간 밀려 있어요. 적어도 일 주 전에는 예약을 하셔야 돼요. 나는 명함을 한 장 받아들고 나왔다. 이런 촌구석에 며칠씩 예약이 밀려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뭔가 미심쩍었다. 예약이란 건 핑계고 노인 사절이라는 건가? 나 역시 몇주 전에 예약할 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다. 뭔가 고급 손님만 노리는 걸까? 생각해보니 이곳은 한때 노래방 도우미들이 전국에서 몰려왔을 만큼 돈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식당 앞에서 고사리 파는 할머니들도 우습게 보면 안 되는 곳이 이곳이다.
차로 숱하게 왕복했지만 한 번도 미용실 간판을 보지 못 했던 곳에서 미용실 하나를 발견했다. 건물의 비좁은 틈 사이로 이층으로 오르는 옥외 계단이 있었고 손글씨로 쓴 작고 조악한 입간판도 보였다. 문을 열자 왠 늙은 여자 하나가 헤어롤을 감고 보자기를 둘러쓴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곳도 역시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홀 끝까지 걸어 가서 계세요? 하고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안쪽 쪽문이 열리면서 앞에 쟁반을 받쳐든 여자가 나타났다. 플라스틱 통 안에 든 흰밥과 반찬 두세 가지가 보였다. 나와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성형 중독처럼 보이는 굉장히 부자연스런 얼굴이었다. 나는 여사장이 권하는 대로 거울 앞 의자에 앉았다. 아까 입간판에 쓰여 있던 '피부 맛사지', '남자 커트 전문'... 이런 글씨들이 떠 올랐다. 바닥에는 오래된 욕조의 타일 같은 게 깔려 있었고 비품과 도구들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찾을 수 없을 만큼 어수선했다. 보조 일손 없이 원장 혼자 일했다. 다행히 밀린 손님이 없어 바로 시작했다. 어떻게 깎을까요?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대강 이런 식으로 깎으면 되죠? 하고 바로 바리깡을 들이댔다. 내가 봐도 좀 오래된 커트 법 같았다. 귀 옆과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돌려 깎고 나머지는 대강 손가락이나 빗으로 세워서 가위질했다. 금방 깎았고 섬세한 다듬기 따위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귀밑머리를 도루코 면도날로 단정하게 따주었다. 그 사이에 무표정하고 약간 험상궂게 생긴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왔다. 삼춘, 파마하시게요?조금만 가다리세요, 금방 해드릴께요. 할머니는 묵묵부답으로 홀 중앙에 왜 놓여 있는지 모를 의자에 앉았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머리 감겨 드릴께요. 나는 그 할머니를 지나 전혀 가림막 없이 쌩뚱맞게 놓여 있는 세척용 의자에 앉었다. 이 홀의 배열은 서툴은 연극 무대처럼 제멋대로였다. 이 고장에서 어르신, 삼춘, 이런 호칭은 들어봤지만 선생님이란 호칭은 참 오랜만이었다. 여자는 머리를 참 시원하게 잘 감겨주었다. 머리를 말리기 위해 거울 앞 의자에 다시 앉아서 원장의 얼굴을 힐끔 다시 보았다. 체구는 자그마했고 얼굴은 처음보다 덜 늙어 보였다. 언젠가 아내로부터 아는 이의 여동생이 이곳 어딘가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으며 원래는 굉장히 미인이었는데 성형으로 얼굴을 망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후로 그 미용실을 한 번 찾아가보고 싶었다. 아내도 농협 지나서 어디쯤이라고만 말할 뿐 상호나 자세한 위치를 몰랐다. 꼬치꼬치 묻기도 뭐해서 그냥 잊어버렸다. 나는 계산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 여자가 젊은 시절엔 예뻤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머리도 생각 밖으로 맘에 들었다. 여자는 내 등 뒤에서 또 오세요, 라고 인사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당분간 이곳에서 머리를 깎기로 작정했다. 망가진 여자의 얼굴과 수북히 쌓여 있던 내 흰머리가 어쩐지 동병상련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듯싶었다. 그래도 틈틈이 플라스틱 통 속의 점심을 먹으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로써 오늘 하루 내 미용실 순례기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