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영헌(靑榮軒) 다도 인문학 강좌 (1)
왜 우리 차 문화인가
1, 차 문화의 정의
문화를 크게 보면 자연과 구별되는 인간행위의 모든 것이며, 좁게 보면 학문을 비롯한 예술, 종교, 사상 등의 영역을 가리킨다. 문화란 한 사회의 양식과 상징이면서 사상이나 가치관 등의 다양한 관점에 근거하여 여러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생활양식과 그에 따른 산물들을 문화라 본다면 그 문화 앞에 제한적인 용어 한국문화. 민족문화 같은 복합명사를 사용하기도 한다.
차 문화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차 문화는 차를 만들고 마시는 행위와 예절과 법도 그리고 찻자리에서 일어나는 온갖 정신적인 영역을 뜻한다. 그래서 차 문화는 생활문화이면서 정신문화의 영역이다. 또한 차 생활을 하는 세계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차 문화는 특히 우리 민족문화의 원형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차 문화는 고금의 동서양에서 오래 전부터 지금껏 사랑받아온 대중문화이면서 고급문화에 속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차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의 태도와 자세에 달려있다. 단순한 건강 음료로써의 차 한 잔이냐, 다선일여茶禪一如 등의 정신적 매개체로써의 차 한 잔이냐에 달려있다.
차의 교과서 격인 770년경에 쓰인『다경茶經』이전에는 차를 씀바귀‘도荼’라고 썼고, 차의 이칭으로 가檟, 설蔎, 명茗, 천荈 등으로 불리며 사랑받아왔다.『다경茶經』을 지은 중국의 다성茶聖 육우(陸羽733~804)가 『다경』에서 “차를 마실 거리로 삼은 것은 신농씨로부터 비롯되었다 茶之爲飮 發乎神農氏”는 기록을 남겨, 인류 최초로 차를 처음 발견하고 마신 사람은 신농씨神農氏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중국 최고의 지리서地理書인 『산해경山海經』「해내경海內經」머리글에 나오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라畏人愛之’는 정신으로 신농씨는 정치를 그만두고 만백성의 건강을 위하여 약초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본초서本草書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중국 후한後漢에서 삼국시대 사이에 성립된 책인데, 차에 관한 기록은 이렇다.
“차苦菜는 맛이 쓰고 성질은 차다. 오장의 나쁜 기운을 다스리며 위장과 비장을 도와준다. 오래 마시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운에 좋다. 눈과 귀가 밝아지고 잠이 줄어들며 몸이 가벼워지고 노화를 막아준다. 다른 말로 초艸라고 하며 선選이라고도 한다. 시냇가의 골짜기에서 자란다.
금문학金文學에서는 차의 시초가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의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 정설은 아니다. 이렇듯 차의 세계는 인류 역사와 함께하는 인문정신을 품고 있다.
대중들이 공유하고 향유하는 차 생활은 한 사회의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하는 까닭에 중요한 생활문화이면서 정신문화 범주에 든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료인 차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와인을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 흔히들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는 인간이 발견한 최상의 마실 거리요, 술은 인간이 발명한 최상의 마실 거리라 할 수 있겠다. 차 한 잔이 동서양의 역사를 바꾼 일도 간혹 있는 걸 보면 차는 인류의 선물이면서 또한 인간 역사에 빼 놓을 수 없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영국과 중국 명나라가 차로 인해 아편전쟁이 일어났고 미국 독립전쟁도 보스턴 티 사건이 그 계기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등이다.
차는 고요히 나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영물靈物이며 또한 철학, 역사, 종교, 문학 등 인간 사유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인문학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한 잔의 차는 흐트러진 마음을 다스리는 깊은 통찰이며, 우리를 품격 있는 풍류의 세계로 안내한다.
진정한 풍류란 행복한 삶을 향유하기 위한 자세이며 인격을 높이고 인생의 질을 넓히는 정신문화이다. 한 잔의 차에 담긴 문화는 우리 정신세계를 넓고 깊게 해주는 윤기 있고 넉넉한 촉매가 되고 있는 것이다.
2, 한 잔의 차에서 배우는 마음 다스림의 지혜
왜 우리 차 문화인가?
차를 마시는 일은 잃어버린 전통문화의 복원이요, 빼앗긴 민족문화의 부활이다. 이것은 ‘왜 우리 차 문화인가’란 명제에 대한 근원적인 생각이다.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오는‘차례’라는 우리 민족의 고유전통에서도 이미 시사하고 있지 않는가.
‘차례’라는 우리 고유의 민속이, 신라 때는 헌다獻茶의식으로, 고려 때는 진다進茶의식,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다례茶禮로 불려서 다례문화를 형성에 왔다. 오늘날 설날과 한가위에 차례를 지내는 민족이 우리 한민족이다.
사람의 눈과 코와 입을 즐겁게 하는 색·향·미가 차의 품질이라면, 사람의 몸과 마음과 기운을 넉넉하고 활기차게 하는 기질은 차의 품성이다. 차는 사람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어떤 체질이든 조화를 이뤄 몸과 마음의 기운을 북돋아준다.
차는 단순한 마실 거리의 차원을 넘어서 동서양의 정신문화로 꽃피웠고 특히 동아시아의 기층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예부터 선인들은 차를 수신修身의 방편으로 삼았다. 혼자 마실 때는 마음 수양의 방편으로, 함께 마실 때는 마음을 나누는 소통과 화합으로 활용했다. 이렇듯 마시는 이에게 자연과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게 하고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는 조화를 일깨워주는 이유로 차는 정신의 음료로 불린다.
차 문화는 인문학의 향기를 진하게 품고 있다. 역사의 인물들이 추구했던 정신문화의 향유에 차 한 잔은 중요한 매개였던 사실에서 찾을 수 있지 않는가.
차 문화에서 인문학을 찾아내고 차 문화에서 인문정신을 추구하는 일을 ‘다도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지식과 경험의 습득이 아니라 인문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사색을 통해 인격과 품격을 높여주는 차 생활은 중요한 인간 완성의 디딤돌이 되리라.
철학적 성찰 없는 차 생활은 단순한 기호음료에 불과하다.
차를 마시는 것은 사람과 자연에 정감을 나누는 일이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감응하는 것이다. 인간의 착하고 올곧은 심성을 찾아주는 영약이 차이고, 차 마시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정中正을 깨우치며 덕을 기르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해맑은 인격과 고매한 학덕과 예를 고루 갖춘 자를 ‘차인茶人’이라 불렀다. 예부터 차를 통한 만남을 삼생三生의 인연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차회茶會를 할 때 일평생에 단 한 번의 만남처럼 그 순간을 귀중히 여기라는 뜻인 ‘一期一會’는 차실茶室의 좌우명이다. 차의 정신은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멀리하는 守眞仵俗’ 다짐에 있고,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마음가짐에 있다.
한 잔의 차는 나를 다듬고 세상을 깨달아가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한다. 차를 마시되 차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다룰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차인의 자세이리라. 마음을 다스리는 일상의 성찰을 한 잔의 차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어렵지 않다.
차를 마신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