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달력 사랑
2025년이 저문다. 감쪽같은 하루하루, 365일이 거의 다 흘렀다. 매월 그믐날이 되면 달력 한 장을 떼는 나만의 의식을 치룬다. 구석구석 열두어 개의 달력을 넘길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든다. 그 가운데 넘길 수 없는 달력도 있어, 가끔 그 시간 앞에 멈추어 선다. 이젠 달력을 아예 바꾸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같은 달력을 다시 1월로 돌려둘 만큼 십 년쯤 걸어도 반가운 소중한 달력이 있어 좋다.
색동교회는 해마다 시간을 선물한다. 365일 하루하루를 기록한 달력이다. 우리 교회의 자존심을 반영하듯 기존 제품이 아니라, 늘 새로운 작품들이다. 올해는 3종을 나누었다. 가정마다 봉투에 이름을 적어 보물을 전달하듯 새해의 주인을 찾는다. 세 종류는 ‘작은 숲 이야기’(나의 숲, 나의 나무 ‘예송’, 조양여 작가), 고난모임 천달력 ‘참 아름다워라’(이하루 작가) 그리고 ‘날마다 십자가’(세계의 십자가 展)이다.
나는 달력을 참 좋아한다. 1991년, 고난모임 수익사업으로 처음 시작한 것이 교회용 달력 제작이었다. 신생(新生) 고난모임의 생존을 위해 체면불구하고 달력을 팔았다. 그때 180여 교회가 고난 동참의 의미와 함께 달력을 사주었다. 지켜야 할 체면치레도 없을 만큼 고난 재정 사정이 늘 딱했다. 첫 달력은 ‘오늘 읽는 복음서’였다. 겨우 7장짜리인데, 박영 화가의 ‘바보 예수’ 연작이었다.
당시 우리의 경쟁 대상은 진흥카렌다였다. 물론 맘모스와 쥐꼬리의 대결이었다. 몇 해 전, 진흥카렌다 옛 사장 박경진 장로님이 그림 구경하러 오라고 연락해서 회사 창고를 찾아갔다. 그곳에 구입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서 십자가 도자(陶瓷) 작품 여러 점을 안겨주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덤으로 유화 작품 한 점을 구입하였다. 수십 년 동안 진흥카렌다가 그려온 달력 원화(原畫) 중 하나였다.
이젠 더 이상 그림 작업을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해외 작가에게 구입한다고 했다. 아마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오면 화가들의 설 땅이 더 좁아질 것이다. 내 눈에 쏙 든 작품은 ‘예수 피난’이었다. 전속 화가 이요한은 진흥카렌다에서 평생 성화를 그렸다. 이미 본 듯한 대부분 작품은 거룩한 주제로 가득하였다. 화가는 직접 그린 성화 250점을 전시할 성화미술관을 만들고 싶어 하였다. 얼마 후에 작가의 이름을 건 개관 소식을 듣고 싶다.
구입 작품은 요셉이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태운 나귀를 이끌고 가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당연히 성경의 배경은 거친 광야인데, 화가 이요한은 푸른 풀밭을 배경으로 하였다. 이의를 제기했더니, 화가는 그렇게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누구나 그런 신심이 들 듯하다. 뜬금없는 삼나무는 성화 작가 고흐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고 하였다. 믿음의 눈으로 본 그 마음이 따듯하다.
고난모임은 36년 동안 꾸준히 달력을 만들어서 수익사업에 보탰다. 대표적 브랜드는 ‘고난 천달력’ 시리즈이다. 그동안 고마운 작가들과 후원자 덕분에 이어 올 수 있었다. 박영 화가를 시작으로 장인어른 류병희 장로님은 ‘내 마음의 고향교회’ 사진을 찍어 주셨다. 동화 풍의 작품을 그린 백진원 화가는 히트작을 여러 점 남겼다. 지금은 이하루 작가가 든든한 달력 동지이다.
달력 매니아인 나도 개인적으로 제작에 참여한다. ‘2021 날마다 십자가’는 색동교회 예술가들이 합작한 52주 달력이다. 아마 우리나라 최초의 주력(週歷)일 것이다. 오죽하면 도림장로교회에 예빛갤러리를 설치하면서 해마다 달력 제작 협조를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하였다. 누구보다 바이블25의 후원으로 매번 ‘십자가 달력’을 만들고 있으니 달력에도 복(福)이 있는 셈이다. 앞으로 십자가를 넘어 그리스도교 성물 이미지를 풍성하게 담아내고 싶다.
사실 해가 바뀌도록 다음 달로 넘기지도, 교체할 수도 없는, 그런 달력이 있다. 2024년용인데 그만 첫 달에서 멈춰, 더 이상 새달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음 달로 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1월 그림의 주인공이 내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머니와 나란히 선 내 모습을 그린 작품을 선물한 후, 이듬해 달력 소재로 삼았다. 며칠 후면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7년인데, 과연 나는 언제쯤 그 달력을 넘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