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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돌과 비비추
 
 
 
카페 게시글
동산*문학관* 스크랩 열매 외 / 오세영
동산 추천 0 조회 34 09.07.13 11:1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열매오세영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 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릇 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산문(山問)에 기대어 / 오세영

 

 

 

산이 온종일
흰 구름 우러러 사는 것처럼
그렇게 소리 없이 살 일이다
여울이 온종일
산 그늘 드리워 사는 것처럼
그렇게 무심히 살 일이다
꽃이 피면 무엇하리요
꽃이 지면 또 무엇하리요
오늘도 산문山門에 기대어
하염없이
먼 길 바래는 사람아,
산이 온종일
흰 구름 우러르듯이
그렇게 부질없이 살 일이다
물이 온종일
산 그늘 드리우듯이
그렇게 속절없이 살 일이다

 
 
 
 
 

 

 

 

 

 

 

 

 
원시 (遠視) /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것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은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라일락 그늘 아래서 / 오세영
 
 
 
맑은 날,
네 편지를 들면
아프도록 눈이 부시고
흐린 날,
네 편지를 들면
서럽도록 눈이 어둡다.
아무래도 보이질 않는구나.
네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
한 줄,
무슨 말을 썼을까.
 
오늘은
햇빛이 푸르른 날,
라일락 그늘에 앉아
네 편지를 읽는다.
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
무슨 말을 썼을까.
날리는 꽃잎에 가려
끝내
읽지 못한 마지막 그
한 줄.
 
 
 
 
 
 
 
 
 
 
 
 
황홀 / 오세영
 
 
 
아름다움은 시각을 통해서 오고,
황홀은
후각을 통해서 온다.
봄에
뜻없이 황홀에 젖어
스르르 눈꺼풀이 감기는 것은
천자만홍(千紫萬紅)그의 찬란한 색깔보다
향기 때문이다.
10대 소녀의 청순한
─백합,
20대 소녀의 순결한
─라일락,
30대 여인의 달콤한
─아카시아,
40대 숙녀의 요염한
─장미,
체취.
봄에 꽃들은
일제히 입을 벌리고
향기로 말을 쏟는다.
후각으로 오는
 
 
 
 
 
 
 
 
 

 

 

 


강물 / 오세영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紹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이별의 말 / 오세영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기다려달라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다

'안녕'

손을 내미는 그의 눈에

어리는 꽃잎,

한때 격정으로 휘몰아치던 나의 사랑은

이제 꽃잎으로 지고 있다

이별은 봄에도 오는 것

우리의 슬픈 가을은 아직도 멀다

기다려달라고 말해다오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첫사랑 / 오세영

 

 

 

여름 한낮

무더위로 하얗게 굳어가는 햇빛 속을

정적에 짓눌린 개구리 하나

첨벙,

연못으로 뛰어드는 물소리.

 

화들짝

나른한 오수(午睡)에서 깨어나 살포시

눈꺼풀을 치켜뜨고

먼 하는 바라보는 수련(睡蓮)의 파란

눈빛이어.

 
 
 
 
 

 

 

 

 

 

 

 

역두에서 / 오세영


 

 


우리는 단지
잠깐 쉬고 있을 뿐이다.
저무는 플랫폼
길은 영원으로 열려 있고
영원에 종점이란 없다.

쉰다는 것은 이별과 만남의 교차,
달리는 순간엔 모두가
하나다.

떠난 자를 미워마라
참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긴 터널과 외로운 가교
복사꽃 피는 마을도 있었지만
폭풍우 치는 밤이 더
많았다.

이 세상은
승차와 하차로 이루어지는
평행선.

그 끝없는 레일을 달리며
우리의 이별은
만남을
다시 꿈꾼다.

 

 

 

 

 

 

 

 

 


장작을 패며 / 오세영

 

 

 

장작은 나무가 아니다.

잘리고 토막 나서 헛간에 내동댕이친 화목(火木),

영혼이 금간 불목하니.

한 때 굳건히

대지에 뿌리를 박고

가지마다 무성하게 피워 올린 잎새들로

길가에 푸른 그늘을 드리우기도 했다만,

탐스런 과육(果肉)으로

지나던 길손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만

잘려 뽀개진 나무는 더 이상

나무가 아니다.

안으로, 안으호 분노를 되새기며

미구에 닥칠 그 인내의 한계점에 서면

내 무엇이 무서우랴. 확

불 지르리라.

존재의 빈터에 버려져

처절히 복수를 노리는 저

차가운 이성,

잘린 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금간 것들은 이미 어떤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
 
오세영 시인

 

1968년 박목월(朴木月)에 의해 시 《잠깨는 추상》이 《현대문학》에 추천

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첫시집 《반란하는 빛》(1970)에서 알 수 있듯이

모더니즘에 심취해 있던 초기시에서는 감각적인 언어의식과 날카로운 직관

으로 기교적이며 실험정신이 두드러지는 시들을 발표했다.

1972년 《현대시》에 동인으로 참여했다. 첫시집 출간 후 언어의 예술성에

철학을 접목시키는 방법론적 문제로 고민하던 시인은 동양사상 특히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후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지성적인 시어로 현대문명 속

에서 아픔을 느끼는 인간정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적 변모를 모색한다.

이러한 변화는 생에 관한 서정적 인식을 노래한 두 번째 시집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3)와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무명(無名)'이는 동양적 진리를

통해 탐구한 세 번째 시집 《무명연시(無名戀詩)》(1986)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연작시 《그릇》을 들 수 있다.

 

1970년 첫시집을 펴낸 이래 2001년 열한 번째 시집 《적멸의 불빛》을 펴낸

시인은 예순 살을 넘긴 나이에도 언제나 서정의 초심을 잃지 않고 절제와 균형

의 미덕인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형상화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삶의

체취가 느껴지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민족정서와 세계정신의 보편성이 녹아 있는 작품들이 높이 평가되어, 한국시인

협회상(1983), 녹원문학상(평론부문, 1984), 소월시문학상(1986), 정지용문학상(1992), 편운문학상(평론부문, 1992), 공초문학상(1999), 만해문학상(2000)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시집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모순의 흙》(1985) 《무명연시》 《불타는 물》(1988) 《사랑의 저쪽》(1990)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1991) 《꽃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어리석은 헤겔》(1994) 《벼랑의 꿈》(1999) 《적멸의 불빛》(2001) 등이 있다.

이 밖에 평론집 《한국낭만주의 시 연구》(1981) 《20세기 한국시 연구》(1987) 《한국현대시의 해방》(1988) 《상상력과 논리》(1991) 《문학연구방법론》(1993) 등이 있고, 산문집 《꽃잎우표》(2000)와 시론집 《시의 길 시인의 길》(2002)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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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7.13 21:33

    첫댓글 한 편 또 한 편의 매시 마다 전매특허를 내어도 될 해심적인 아이디어의 문구가 들어 있군요...그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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