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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이란 어떤 절기인가? (2)
- 재림의 의미
대림절(待臨節)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이므로 대강절(待降節)이라고도 부른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절기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라 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는 대림절에 대해서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달란트를 맡은 종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결국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안전과 공생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주님의 재림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경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이야기에는 창조와 타락, 그리고 제사와 성전, 그리고 부활과 재림 등 여러가지가 있다.
결국 우리는 성경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간의 존재 목적과 이 세상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한다. 예를 들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그 피조세계를 관리하는 대리인임을 알게 된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며 그 뜻을 순종하느냐 아니냐는 이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인간의 행위와 이 세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읽고 듣는다.
그런데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도 있다. 흔히 창조과학회로 알려진 그런 사람들의 활동은 사실 매우 오래 전부터 경건한 신앙인들이 노력해 오고 있는 일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면 신앙의 집은 그 기초부터 흔들리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그들의 마음에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의 신비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신앙의 집을 계시의 기초에 세워야 한다. 과학의 기초 위에 신앙의 집을 세우려는 시도는 결국 다른 이론에 의하여 배척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 이론은 늘 갱신되어 왔기 때문이다.
과학이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계시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이나 계시 모두 인간의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상상력이 없이는 둘 중에 어느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피아노 연주를 한 사람들은 초보자와 실력자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수준이 높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는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지금 세계인들은 카타르에서 열리는 월드컵축구경기에 눈과 마음을 향하고 있다. 그 경기장에서는 오로지 하나의 실력을 가지고 경쟁이 이루어진다. 실력이 뛰어난 팀들은 경기 운영에 대한 전술과 체력, 그리고 팀워크 등을 잘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음악을 듣고 축구경기를 관람하면서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무엇이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의 방식을 침해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특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과학과 신앙도 이와 유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은 그 나름대로 자연만물을 바라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내면에 감추어진 질서와 비밀을 파헤친다. 그것을 보고 들을 때마다 사람은 다시 한번 자연의 신비 앞에 감탄하게 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신앙인으로서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구할 때 그가 느끼는 감동은 그의 전 존재를 새롭게 하는 전율이며 기쁨이며 감격이다. 그 신비로운 신앙의 체험은 모든 시대와 사회에서 공통적인 현상이며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므로 과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만물을 살필 것이다. 동시에 인간이 하늘을 경외하는 신앙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할 때 누구든지 그 내면에서부터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인간은 더 나은 삶과 미래를 꿈꾸고 동참하려고 노력한다.
신앙의 영역에서는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이 이 세상과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하여 기록을 남긴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친 것처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여 선하고 바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의도로 기록되었다.
성경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의롭고 바르게 세울 수 있을까? 그 방법은 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인간에게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하며 미래를 희망할 수 있게 하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성경 이야기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신앙인이 건강한 인간으로 살고 번영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앞서서 나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존재 목적과 이 세상의 존재 의미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성경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겪게 될 난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인간에게 어떤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인간은 피차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나누고 공유하며 공감함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존재다. 한 가지 생각과 방식으로만 이해하고 해석하라는 주장은 사람을 사상의 감옥에 가두려는 시도다.
나는 30대 때 창조과학회의 주장으로 신앙을 입증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효과는 별로 없었다. 신앙은 다른 방식으로 사람에게 감동과 확신을 주는 것 같다. 그후 세월이 흘러 나는 성경의 이야기들이 사람에게 의미를 주는 방식으로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때보다 그 이야기 안에 담긴 의미들을 잘 살핌으로 이 세상과 자신에 대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될 때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비추어주는 등불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는 과거의 일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 준다. 어떤 이야기는 아예 미래의 일들을 꿈꿀 수 있도록 비유와 판타지로 되어 있다.
나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통하여 이 세상과 나 자신, 그리고 이 세상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며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은총 속에 번성하고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라는 복을 받았으니 이것이 이 세상의 궁극적인 미래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며 경륜이다. 그 경륜에 동참하라고 인간은 그 대리인으로 지음을 받았다. 이것은 인간이 이 세상을 관리하고 생명 충만한 땅으로 가꾸는 임무를 맡았음을 보여준다. 성경 이야기는 이와 같이 다양하고 풍성한 의미를 인간에게 일깨워준다.
그러면, 재림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일깨워줄까? 우선 재림 이야기도 창조의 이야기처럼 문자적으로 접근하면 곤란하게 될 수도 있다. 시한부종말론이 일어나게 되는 근본 원인은 재림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생전에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재림은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마태복음 24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곧 재림의 날이었음을 증거한다. 재림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반드시 ‘때와 기한’에 대하여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이다. 인간이 알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주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증인이 되는 것이다(행 1:8). 이 말은 재림의 이야기를 해석할 때 강조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재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이 말하는 재림 이야기는 때에 대한 암시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 행위가 만들어낼 결과를 생각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전에 주후 999년 12월 말에 유럽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주인들은 노비를 풀어주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12월 31일에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성당에 모여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어떤 사람들은 통곡을 하기도 했단다. 점점 자정이 다가오자 심적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최후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다시 한번의 대혼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 혼란의 내용은 전에 풀어주었던 종들을 다시 잡으러 다니는 일들이었다!
재림의 이야기가 때와 기한에 대한 관심으로 좁혀질 때 그 이야기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상실된다. 창조의 이야기가 우주적 빅뱅이론이나 진화론적 발견을 배제하는 이야기가 아니며,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본분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암시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처럼, 재림의 이야기는 종말의 시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의미가 있다.
창조 이야기를 듣고 믿으면서 우리가 과학적 증거를 필요로 하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듯이, 재림 이야기를 듣고 믿으면서 우리는 지금 나의 삶이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지를 점검할 수 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것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학적 증거를 수집하려고 하지 않듯이 재림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종말의 시간을 알려주는 증거를 수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들은 본래 그런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그 자체로 인간에게 감동을 주며, 축구는 그 고유한 방식으로 인간을 흥분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예언자들이 자기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악행을 보고 그들의 회개를 촉구할 때는 임박한 주님의 강림을 선포했다. 주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선언이었다. 그 날은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며(욜 2:31, 말 4:5), 그 날은 구원의 날이면서 동시에 심판의 날이다(사 2:12, 13:6,9, 겔 13:5, 30:3, 욜 1:15, 2:1,11, 3:14, 암 5:18, 등).
예언자들이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음을 기억하고 그 언약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백성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으실진대 그 백성이 그 언약을 저버린다면 그들에게 찾아오지 않으시겠는가!
여호와의 날은 언약에 충실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현재 삶을 평가할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그런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에 심판의 날을 선포하셨고, 사도들도 주의 강림하시는 날을 고대했다. 그들이 고대한 것은 어떤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어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시기를 고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런 세상을 가리킨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언약에 충실하지 않는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다. 그때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말씀이 바로 여호와께서 오시는 날이다. 그 날은 인자가 오는 날이며, 그 날은 왕이 귀환하는 날이다. 추수 때 타작마당을 정리하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날이다. 양과 염소를 나누는 날이다. 그것이 바로 재림의 날이다.
이렇게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인자가 오는 날’은 곧 ‘여호와의 날’이며, ‘추수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며 촉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재림 메시지의 핵심이다.
그런 연고로 재림의 날이 언제인가 하는 것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언약에 충실한 사람은 그 날에 면류관을 얻을 것이며, 현재 언약을 깨뜨리고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그 날이 심판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런 날은 어떤 방식으로 임하는가?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인자가 임하는 날로 소개했다. 그 날과 그 시는 명확하게 언제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악을 행하는 도시나 나라는 반드시 그 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된 사람들은 그 날에 반드시 상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심판과 상급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받은 상급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도록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신 일이며, 그를 본받아 수많은 밀알들이 일어나 결실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을 못박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로마의 장수 티투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 그 도시를 무너뜨렸다. 그토록 그 도시를 품으려고 예수께서 얼마나 노력하셨던가! 그러나 결국 그 도시는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심판은 더디게 보일지라도 반드시 임하며, 하나님의 보응은 결코 그냥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재림의 언약에 담긴 교훈이다. 주님은 반드시 오시며, 속히 오실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들에게 그들이 옳았음을 만천하에 드러내실 것이다. 이런 신앙정신을 기리는 것이 바로 대림절이다.
<끝>.
참고:
첫번째 메시지
대림절이란 어떤 절기인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