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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5>
<훈독1=평화(平和)메세지>-p51~56> 하나님의 이상가정(理想家庭)과 평화이상세계왕국(平和理想世界王國),
인간(人間)에게는 몸(肉) 위(位)에 마음(心)이 있고, 마음(心) 위(位)에는 영인체(靈人體)가 있으며, 그 영인체(靈人體)가 들어가 살게 되는 영계(靈界) 위(位)에는 하나님이계십니다. 그리고 인간(人間)은 참사랑을 통(通)해 하나님과 완전(完全)히 하나가 될 때 완전(完全)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관점(觀點)에서 완전(完全)한 사람이란 비록 작은 개체(個體)의 모습일지라도 전체역사(全體歷史)를 대표(代表)한 존재(存在)요. 또 미래(未來)의 모든 인연(因緣)을 대신(代身)한 존재(存在)이기 때문에 천주적(天宙的)인 가치(價値)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각도(角度)에서 인간(人間)의 구조(構造)를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본래(本來) 인간(人間)을 이중구조(二重構造)로 창조(創造)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세계(有形世界)인 현상세계(現象世界)의 축소체(縮小體)로서 육신(肉身)을 창조(創造)하시고 무형(無形) 세계(世界)의 대표(代表)요 주인(主人)으로 세우기 위해 영인체(靈人體)를 창조(創造)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人間)은 지상계(地上界)에서 한 백년(百年)쯤 살다가 육신(肉身)의 기능(機能)이 다 하면 자연(自然)스럽게 그리고 자동적(自動的)으로 무형세계(無形世界)인 영계(靈界)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계(靈界)는 육신(肉身)을 터로 하여 살고 있는 우리의 눈(目)으로는 볼 수 없을 뿐이지, 지상생활(地上生活)의 자동적(自動的)이고 필연적(必然的)인 연장(延長)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創造)해 주신 인간(人間)의 영원(永遠)한 본향(本鄕)입니다. 영계(靈界)는 엄연(奄然)히 존재(存在)하는 것입니다. 망상(妄想)의 세계(世界)도 아니요. 상상(想像)의 세계(世界)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人間)의 선택권(選擇權) 밖에 있습니다. 좋다고 해서 가고 싫다고 해서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계(世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원(永遠)하고 불변(不變)하신 분인 것처럼 당신이 창조(創造)하신 영계(靈界)도 영원(永遠)하고 불변(不變)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세계(地上世界)에서 육신(肉身)을 쓰고 현상세계(現狀世界)와 각종관계(各種關係)를 맺어가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靈界)에서도 인간(人間)은 영인체(靈人體)를 갖고 영계(靈界)의 모든 현상과 밀접한 관계(關係)를 유지(維持)하며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宿命的) 노정(路程)입니다.
<천성경(天聖經)p702~703> 우리 생(生)의 일대(一代)라는 것은 잠깐입니다. 이 일대(一代)가 영원(永遠)과 순간(瞬間)을 오르락내리락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장(延長)되면 무한(無限)히 연장(延長)되고, 반면(反面)에 이걸 꺾으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천지(天地)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울과 마찬가지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全部) 선조(先祖)들의 얼굴을 대신(代身)쓰고 나온 역사적(歷史的)인 부활체(復活體)입니다. 그 역사(歷史)가 얼마나 되는냐? 몇 십만년(十萬年)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긴 역사과정(歷史過程)을 결국(結局)은 나 하나 만들기 위해 수고(愁苦)했다는 것입니다. 김씨(金氏)면 김(金) 씨(氏)라는 나 하나를 탄생(誕生)시키기 위해서 수(數)많은 선조(先祖)들이 왔다 갔다고 생각(生角)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우리는 역사적(歷史的)인 결실체(結實體)입니다.
6 천년(六千年) 인류역사(人類歷史)의 결실체(結實體)가 낙과(落果)처럼 익지 못하고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여기에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反面)에 ‘선생님(先生任)이 도끼로 들이치고 가지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가지가 찢어져 나가기 전(前)에는 절대(絶對)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는 무리(武吏)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패(狽)에 속(屬)합니까? 사람의 일생(一生)에서 태어나는 때와 결혼(結婚)하는 때, 그리고 죽는 때가 중요(重要)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 개인(個人)이 태어나서 성장(成長)하여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相對)와 인연(因緣)을 맺어야 되고, 그런 다음에는 최후(最後)의 길을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도 반드시 창건기(創建期)가 있고, 그다음에는 번성기(繁盛期)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저녁때와 같은 기간(期間)을 반드시 거쳐나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체(生命體)가 자체에서 그 생명(生命)이 결실(結實)할 수 있는 내용(內容)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결실(結實)의 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결실(結實)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環境)을 극복(克服)해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결실(結實)될 수 있는 모든 여건(與件)을 이어받고, 그 결실(結實)의 동기(動機)가 될 수 있는 자력(自力)을 지닐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결실(結實)의 과정(過程)을 거쳐가지고 새로운 역사과정(歷史過程)이라든가 인류사회(人類社會)에 필요(必要)로 하는 하나의 결실체(結實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반드시 그 자체(自體)로서 환경(環境)을 극복(克服)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극복(克服)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未來)에 새로운 생명(生命)을 이어받아 결실(結實)의 내용(內容)을 지닐 수 있는 과정(過程)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이 과정(過程)을 거친 후(後)에는 올바르게 실효(實效)를 나타낼 수 있는 한 자리를 차지(遮止) 해야되는 것입니다.
예(例)를 들면, 곡식(穀食)은 씨(氏)가 뿌려져 싹이 트고 자라 열매를 맺은 다음에야 주인(主人)의 손길에 의(依)해 거두어져 창고(倉庫)에 저장(貯藏)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어떠한 목적(目的)에 필요(必要)해서 거두어지는 과정(過程)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체(自體)에 그런 소망(所望)을 인계(引繼)받을 수 있는 내적요인(內的要因)을 마련하고, 그 내적요인(內的要因)을 중심삼고 외적(外的)인 환경(環境)에 다시 적응(適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立場)임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수세적(守勢的) 입장(立場)이 아니라 반드시 공세적(攻勢的)인 입장(立場)에서 드러내야 됩니다.
<천성경(天聖經)p766> 여러분 모두 다 영계(靈界)에 가야 됩니다. 그것이 한 나라예요. 두 나라예요? 하나의 세계(世界)입니다. 그러면 그 세계(世界)에서 생활(生活)하는 내용(內容)이 무엇이겠느냐? 물(水) 세계(世界)의 고기는 물(水)의 세계(世界)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물이 절대적(絶對的)인 생명(生命)입니다. 강(江)물에 사는 고기가 강(江)물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닷물에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담수(淡水)의 고기는 해수(海水)와 접(接)하는 그 물을 맛보지 않고는 새끼를 못칩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사는 것은 반드시 담수(淡水)에 와서 맛을 보아야 새끼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두 세계(世界)를 통(通)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몸(肉) 마음(心)도 그렇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通)해야 됩니다.
(말선210-128,1990,12,17,)
<천성경p767> 이 땅(地) 위(位)에 살고있는 인간(人間)들은 이 지상(地上)에 살게 될 때, 제3 세계(第三世界)인 본연(本然)의 세계(世界)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랑의 세계(世界)에 가서 살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세계(世界)에 있어서 호흡기관(呼吸氣關)과 같은 것을 준비(準備)해야 됩니다. 이 육신(肉身)을 터뜨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기가 아기집을 터뜨리고 파괴(破壞)시키고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산고(産苦)의 고통(苦痛)을 받지요? 마찬가지로 제2 산고(第二 産苦)의 고통(苦痛)이 죽음입니다.
육신(肉身)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엇을 준비(準備)해야 되느냐? 물(水) 안에서 공기(空氣)와 모든 것을 맞출 수 있는 숨의 기관(氣關)을 준비(準備)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육신세상(肉身世上)에서 준비(準備)할 것은 영계(靈界)에 가 가지고 사랑 기관(氣關)을 중심(中心)삼고 호흡(呼吸)할 수 있는 준비(準備)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몸뚱이를 터뜨리고 나가게 된다면 사랑 기관(氣關)을 중심(中心)삼고 호흡(呼吸)해 가지고 제한적환경(制限的環境)에 살던 것을 넘어 무제한(無制限)으로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인간(人間)으로서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말선274-104, 1995,10,29,)
<말선518-132> 죽을 때 긴장(緊張)하는 것도 있고 태어날 때 긴장(緊張)하는 그것도 있고 다 있다는 거예요. 한번 다 땅(地) 위에서 자기(自己)가 역사(歷史)를 드러내고 가야 돼요. 가기 전(前)에는 그걸 다 몇 년(年) 동안에 드러 내야 된다 이거예요. 옛날에 하지 못한 일들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오래 안 가서 갈 수 있는 때가 된다 이거에요. 그러니 병(病)난 환자(患者)도 죽는다고 해서 이렇게 모였는데 한 3일(三日) 전(前)부터는 정상적(正常的)으로 일어나서 앉아가지고 밥 먹고 다 그런다는 거예요. 밥숟갈을 놓자마자 쿠르륵 하게 되면 쿠르륵 하는 것이 숨소리까지 쿠르륵하고 가버린다는 거예요.
죽을 고생(苦生)을 다 하다가 갈 때 그런 무엇이 없으면 저 나라에서 정상적(正常的)인 것이 안 되기 때문에 그모든 자세(姿勢)는 정상적(正常的)인 형태(形態)의 잠깐을 통(通)해 가지고 기울어진 것이 떨어지지 않게끔 받들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 현상(現象)이 벌어지는 거예요. 사람이 죽으려고 임종(臨終)하려고 손자(孫子) 손녀(孫女)들이 와가지고 다시 눕혀서 자라고 할 때, 그 잘 때 하는 말이 귀(貴)하다는 거예요. 꿈(夢)같이 입(口)으로 그 내용(內容)을 다 들어 주라는 거예요. 떠나고 싶을 때 일생(一生)의 바라던 소원성취(所願成就)의 말을 그 후손(後孫)들 아들딸에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임종식(臨終式)을 지켜보는 사람이 그 말을 들어 가지고 그 말대로 하는 사람은 그 가문(家門)에 있어서 상속자(相續者)의 대(代)를 잇는다는 거예요.
<천성경p691> 영계(靈界)에서 문제(問題)되는 것은 이 땅(地)에서도 문제(問題)가 되고 또 그것을 이 땅(地)에서 해결(解決)하면 영계(靈界)에서도 해결(解決)됩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탕감(蕩減)이 필요(必要)합니다. 성경(聖經)에는 땅(地)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습니다. 땅(地)에서 풀기 위해서는 탕감(蕩減)이 필요(必要)합니다.
<천성경(天聖經)p765> 사람의 운(運)은 고무줄과 같아서 늘거나 줄거나 합니다. 자기(自己)가 운(運)을 100만큼 타고났는데 120만큼 살고 가는 사람은 후손(後孫)이 망(亡)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80(八十)만큼 살고 간다면 20(二十)만큼의 복(福)을 남겨가지고, 그 운세(運勢)를 후손(後孫) 앞에 상속(相續)해 주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한 70(七十), 80년(八十年) 살았으면 됐지, 죽어버리면 그만이다.’라고 하면서 죽는 것을 끝장으로 생각(生角)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역사노정(歷史路程)을 통(通)해 생각(生角)을 깊게 생각(生角)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永生)할 수 있을 것인가, 더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生角)을 했습니다. 뜻을 품은 사람일수록 ‘인생(人生)이 무엇이냐? 인간(人間)은 왜 왔다가 나그네같이 가느냐?’ 하며, ‘인생(人生) )은 고해(苦海)’니 ‘초로(草露)의 인생(人生)’이니 하는 말을 하였지만, 영생(永生)할 수만 있다면 그런 고민(苦悶)을 할 필요(必要)가 없는 것입니다. (말선39-229, 1971,1,15,)
이 육신세계(肉身世界)는 짧은 기간(期間)입니다. 길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잠자는 시간(時間)이 아깝고, 밥 먹는 시간(時間)도 아깝습니다. 밥 먹는 것도 가면서 먹는 것입니다. 자는 것도 가면서 자고, 노는 것도 가면서 놀고..., 그 얼마나 비참(悲慘)해요? 그럴수록 세계(世界)의 그 누구도 받지 못하는 복(福)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歷史的)인 내용(內容)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됩니다. (말선80-226,1975,10,23,)
<말선371-282> 우리가 절대(絶對) 위(爲)하고 투입(投入)하고 잊어버리는 자리에 있으면 먹고 취(醉)하더라도 죄(罪)가 아니에요. 타체자각(他體自覺)을 하고 있는 모든 만물(萬物)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받았으면 돌려야 할 책임(責任)이 있기 때문에 큰놈이 작은놈을 더 큰 것을 살리기 위(爲)해서 잡아먹는 거예요. 잡아먹는 것이 흡수(吸收)하는 거예요. 보관(保管)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일체권(一體權) 사랑의 뿌리에 도달(到達)시키는 길이 가깝기 때문에 자체(自體)가 흡수(吸收)되는 것을 원(願)하기 때문에 죽음의 길을 환영(歡迎)해야 된다구요. 우리가 영계(靈界)에 가는 것을 환영(歡迎)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천성경(天聖經) p764~765> 일생(一生)이라는 것은 정말 빠릅니다. 철들어 가지고 세상물정(世上物情)을 알고 이렇고 저렇고 하다 보면 사십(四十)이고 오십(五十)이고 뭐 10년(十年)은 잠깐입니다. 10년(十年)이면 육십(六十)이 잠깐이고, 육십(六十)이 되면 칠십(七十) 잠깐이고, 나도 가만히 생각(生角)하니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말이 실감(實感) 납니다.
<말선209-160> 통일교회(統一敎會)에서는 죽음을 성화(聖和)라고 하고, 그 식(式)을 성화식(聖和式)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統一敎人)들은 영계(靈界)에 가 있는 아내와 얘기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世界)를 지금 이 세상(世上)이 모르고 있으니 기(氣)가 찰 노릇입니다. 그것을 돈 주고 살 수 있습니까?
(천성경776)
<말선199-130> 죽은 사람을 붙들고 우는 것을 보면 죽은 영(靈)이 탄식(歎息)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지(無知)해 가지고 내 갈 길을 밧줄로 당겨서 못 가게 만들어 놓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統一敎會)에서는 성화(聖和)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히 비상천(飛上天)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力)을 가지고 밀어주어야 됩니다. 잡아당기지 말고 밀어주어야 됩니다. 성화식(聖和式)이 뭐예요? 변화(變化)해서 한 단계(段階)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삶과 사랑 그리고 영혼의 세계P,178)> 영계(靈界)에서는 사랑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면서 인연(因緣)되었던 모든 것을 현실화(現實化)시킬 수 있는 이상세계(理想世界)가 영계(靈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취(醉)해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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