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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도 산이 좋았네 할아버지 잠들어 계신 뒷산에 올라가 하늘을 보면 나도 몰래 신바람났네 젊어서도 산이 좋아라
시냇물에 발을 적시고 앞산에 훨훨 단풍이 타면 산이 좋아 떠날수 없네 보면 볼수록 정 깊은 산이 좋아서 하루 또 하루 지나도 산에서 사네
늙어서도 산이 좋아라 말없이 정다운 친구 온산에 하얗게 눈이 내린날 나는 나는 산이 될테야 나는 나는 산이 될테야
사랑이나 이별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한 잔 술, 한 구절의 가사에 그 아픔을 달래본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정선의 일곱번째 앨범 ‘30대’는 30대에 접어들어 사랑 때문에 짙은 한숨을 한 번쯤 내뱉었을 법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음반이다. 때로는 정열적으로, 때로는 쓸쓸하고 덤덤한 화법들의 주옥 같은 10곡의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다. 혼성포크 그룹 해바라기 1집에 있는 ‘님의 편지’로 서서히 진행되어 온 블루스 음악에 대한 탐구는 1979년 발표한 4집 앨범 ‘이정선 4’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돼 6년 뒤 발표하는 7집 앨범 ‘30대’에서 그 결실을 꽃 피운다. 서른여섯의 이정선은 이 앨범에서 최정상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로서 절정의 재능을 과시하고 있다. 다양한 주법과 변칙 튜닝으로 기타 장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우연히’의 가사는 귀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나며, 당시 가요들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던 크로스오버적 요소가 가미된 ‘곁에 없어도 당신은’과 김광석이 훗날 리메이크한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은 쓸쓸한 가사들과는 반대로 경쾌한 연주로 진행되는 덤덤함을 보여준다. 이런 덤덤함은 이 앨범의 미덕이자 7집 이후 이정선 음악의 매력 포인트다. 4집에서 은근함을 주는 ‘보컬 음악’의 블루스 곡으로 수록됐던 ‘건널 수 없는 강’의 경우, 이 음반에서는 거친 톤의 어쿠스틱 기타가 전면에 나서는 ‘기타 음악’ 버전으로 선보였다. 이렇게 격정적이고 폭발적인 어쿠스틱 기타 솔로는 흔치 않다. 이와 함께 이 앨범에서 ‘격정 솔로’ 3부작인 ‘바닷가에 선들’ ‘울지 않는 소녀’에서의 이정선의 기타 연주는 당시 필수 기타 교재였던 ‘이정선 기타교실’을 펼쳐놓고 기타 연마를 하던 기타 학도들을 질리게 했으며, 내리는 비를 보며 흘러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이 노래를 들으며 술 한 잔에 한숨을 내뱉었을 사람들이 제법 있었을 ‘우울한 여인’에서의 보컬과 기타 연주는 그리움과 쓸쓸함의 본질을 알려준다. 울보가 되어버린 요즘 발라드 가수들에게 청승을 떨고 싶으면 진심으로 쓸쓸하게 노래하는 법을 익히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앨범은 주류 가수가 ‘명반’을 발표하기도 하던 시절의 앨범들 가운데 최정점에 서 있는 80년대 대중음악계가 남겨준 유산이다. 6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 그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인기가수이기도 했다. 주말 TV쇼 프로에 나와 하모니카를 둘러맨 어쿠스틱 기타 연주의 ‘산사람’을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발매하는 앨범의 타이틀곡은 라디오 음악 차트 상위권에 랭크됐다. 당시만 해도 주류에 속해 있는 인기가수의 앨범에서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반’을 지금보다는 비교적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좋은 뮤지션들을 성원해주는 팬층이 지금보다는 훨씬 두꺼웠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지금은 이게 뭐냐, 라고 아쉬워하는 것도 부질없고 옳지 않은 일이지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사실이고)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더욱 더 절망스러운 것은 이러했던 시절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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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이 좋아라!!! 원문보기 글쓴이: 솔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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