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白馬山(715.5m)은 금오지맥의 산이다.
수도산에서 갈라진 금오지맥 산줄기는 삼방산(864.2m), 염속산(869.9m), 염속봉산(679m,), 빌무산(783.6m) 등 굵직굵직한 산을 올려 세우고는 백마산을 거쳐
구미 금오산으로 이어간다.
도상거리 81.4km인 이 지맥은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수도지맥이 낳은 산줄기다.
가뭄이 들면 백마산 정상에서 기우제를 지낼 정도로 예부터 신성시한 산이라 무덤도 함부로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에 백마산(白馬山)이 여러곳 있지만 김천 백마산은 그렇게 알려진 산은 아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로서 처음엔 물이 귀해 갈수산(渴水山)으로 불렀다가 다시 걸수산(乞水山)이 되었다고 하니 물을 구걸(乞)이라도 해야 했나보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산의 형상이나 풍수지리적으로나 흰말(白馬)의 모습을 닮아 백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고보니 고방사 일주문엔 백마산이라는 현판이 걸렸으나 범종각엔 걸수산이라는 편액이 걸렸다.
그러거나말거나 백마산은 금오지맥을 따라 낙동강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자세다.
우리는 단체산행의 여러 사정을 감안 고방사부터 먼저 오르기로 한다.
A,B팀이 함께 출발하여 고방사를 거쳐 기존 가이드의 역(逆)으로 진행하였다.
이는 별미령에서 A B팀을 구분짓기 위해서다.
B팀은 별미령에서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을 접고, 준족인 A팀은 다시 고당산(603.5m)으로 오른다.
고당산(姑堂山)은 ‘할미당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이 산 아래에 할미당(姑堂)이 있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별미령(別味嶺)은 김천시 농소면과 성주군 벽진면을 연결하는 도로가 지난다.
옛날 성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고갯길로 힘겹게 고개를 넘던 길손들이 숨을 돌리며 마시는 막걸리의 맛이 일품이라 하여 붙은 지명이란다.
고갯마루의 벽진(碧珍)이라는 빗돌은 이 고장이 하늘의 별이라는 뜻의 성주군 벽진면 지명이다.
백마산 고방사(高方寺)는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418년(신라 눌지왕 2)에 창건했다고 하며 창건당시엔 고방사(古芳寺)라 했단다.
물이 귀한 백마산 자락 고방사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듯 돌샘이 있었다.
산행코스: 봉곡2리-고방사-금오지맥갈림길-백마산-(금오지맥)-별미령-잣나무숲-갈림길-고당산(U턴)-김해김씨묘-(*독도주의)-농로-백련사-봉곡2리(원점)
산행궤적
알바를 조금했으니 12km정도의 거리지만 산길이 유순한 육산이라 4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도표
참고 개념도
네비는 '고방사'를 입력하여 고방사 입구에 차를 멈춘다.
고방사 표석이 있는 곳에서 대형버스는 진입이 불가한 길을 따라...
오르다 뒤돌아본 모습.
여름날이면 좀 그렇겠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이고 포장도로를 걷기란?
철 지난 송이채취금지 현수막에 '고방사 절산'이란 말은 백마산은 고방사 꺼란 말이가?
일주문 앞을 지나 차량은 위로 올라가고...
우리는 일주문을 통과하다...
'백마산고방사' 편액을 살펴본다.
갑오년 여름 심산 윤종식(甲午夏 深山 尹鍾植)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 갑오년이면 2014년이니 최근이다. 심산 선생은 문인화(文人畵)의 대가이자 서예가.
세 기의 부도를 지나 낙엽길을 오르면 절 마당에 선다.
사중에 전래하는 현판기문(縣板記文, 1698)에 따르면 고방사(高方寺)는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 화상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한다.
옹호문(擁護門) 편액과 안엔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있다. 따라서 옹호문은 곧 사천왕문이다.
보광명전(普光明殿)은 1990년 주지 법전 화상에 의하여 해체 .복원되었으며, 이때 발견된 상량문에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말미에 이 건물은 성종 19년(1488) 에 초창되었고, 만력 연간(萬曆年間, 1573~1615) 에 중창, 광해군 14년(1622) 에 3창(三創), 현종 6년(1665) 에 4창(四創),
영조 44년 (1768) 에 5창(五創)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이로 미루어 보면 1986년의 해체 . 복원은 제6창이 되는 셈이다. 현 건물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다포 맞배지붕이며, 크기는 총 20평이다.
삼층석탑과 석등은 새로 만들었다.
보광명전 편액. '세을유서자명금헌(歲乙酉書子鳴琴軒)'이라 낙관이 되어있지만 어느 자료에도 기록이 없으니 답답할 뿐.
을유년(乙酉年)이면 2005년, 1945년, 1885년, 1825년, 1765년, 1705년, 1645년, 1585년, 1525년,1465년 ~
초창(初創)부터 지금까지 6창(6創)이나 되었으니...
문화재자료 제467호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70)을 주존으로 목조관음보살좌상(1670년), 목조대세지보살좌상(1670년)을 봉안하였다.
필자는 일행 중 한 분이 보살님과 고성언쟁(高聲言爭)을 하는 바람에 이렇게 멀찌감찌 줌으로 접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범종각은 각각 정면 2간과 측면 1간의 두 건물이 있어 범종과 홍고(弘鼓)를 소장하고 있다. 범종은 높이 190cm에 지름 120cm이며, 1670년에 조성되었다.
범종각의 편액엔 '걸수산고방사(乞水山高方寺)'라고 적혀 있으니 백마산이 옛적에 걸수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낙관엔 대한민국 대한명인으로 추대된 '청악 이홍화(靑岳 李弘和)'선생.
산길 진입로는 고방사 좌측 낮은 능선이지만 사찰 뒷편으로 오르지 말고, 사찰 좌측 비탈을 비스듬히 돌아 낮은 능선으로 붙어야 된다.
고방사 입구의 부처님 입상 뒷편으로 비스듬히 돌아...
능선으로 붙는다.
능선의 반듯한 산길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고방사 경내를 내려다 본다.
산길은 내내 소나무 숲길.
첫 바위전망대에 서서 멀리 첩첩의 산들을 바라본다. 가야할 고당산과 금오지맥의 빌무산인가? 더 뒤로 지맥은 모맥(母脈)인 수도지맥을 흠모하며 달리는 듯.
먼 데 산을 당겨본다.
다시 전망바위에 서서 멀리 어디쯤 수도지맥과 가야산을 가늠해 본다.
봉곡리 갈림길이 있는 지점의 이정표이다. 이정표에 임의로 붙인 판떼기에 천정봉은 뭔가?
다시 살펴보는 고당산과 빌무산 그리고 멀리 수도지맥.
좌측으로 노곡리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면...
금방 백마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 주위엔 나무가 없어 조망이 시원하다.
깃발 게양대와 삼각점이 있고...
이정표가 있다. 올라올 때 우측으로 데크전망대가 보였는데, 이를 두고 백마산전망대라고 부르나 보다.
잘 닦여진 전망대 방향으로 100여m 나아가 보았더니...
아주 도드라진 바위가 있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뻥 뚫렸다. 나아갈 고당산과 금오지맥 그리고 멀리 수도지맥까지...
아까 올라올 때 본 데크전망대를 찾아보지만 그건 조금 더 내려가야 하나보다.
다시 100여m를 정상으로 되올라와 이젠 금오산과 사드기지를 살펴본다. 금오산 들머리였던 부상고개에서도 돌아본 바가 있는데...
좌측에 있는 산이 금오산이고, 그 우측으로 영암산과 선석산이 마치 한 능선인 양 일직선을 그리고 있다.
그 어디쯤일 텐데하며 살짝 당겨보다...
더 당겨 보았다.
영암산과 선석산도 당겨 보았다.
계속 진행하면서 그쪽으로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어...
또다시 당겨 본다. 물러설 수 없는 국가안보의 최소한의 방어적 선택이지만 그로 인한 인접한 국가들과의 민감한 사안까지 절체절명의 이슈가 되고있기 때문.
무심코 내려서다 산길이 거칠어지면서 GPS를 확인해 본다. 100여m 알바를 했다. 다시 되올라와서...
갈림길에 섰다. 거꾸로 올라오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
별미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빨간 화살표 방향.
내림길은 솔향이 향긋한 솔숲 길.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백마산 전망대의 모습이 들어온다.
살짝 당겨 보았더니 데크전망대가 보이고, 필자가 멈췄던 바위전망대는 그 위로 보인다.
지형도상의 513.8m봉에 별미봉 코팅지가 붙어있다. 별미령 위에 있는 봉우리라 붙인 이름이겠지만 유감이다.
요즘 유달리 산이름을 아무런 근거없이 마구 지어 코팅지를 덕지덕지 붙인 것을 많이 보는데,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이곳 바람막이에서 밥상을 폈다.
그리고 도착한 별미령고개.
고당산은 2차선 아스팔트도로를 건너 바로 올라 붙는다. 14시 10분이 넘으면 고당산으로 오르지 말라고 당부한 바 있지만 우리는 1시간을 당겼다.
이곳에서 산행을 접을 B팀은 아직 후미에서 느긋하게 오고 있을 것이다.
별미령 고개의 이정표. 바라보는 방향은 성주쪽.
현위치 별미령.
등로는 별미령 절개지를 비스듬히 오르도록 원목계단으로 정비를 해놓았다.
뒤돌아본 모습.
이거 무슨 나무요? 우리 박고문님이 고개를 치켜들고 나무를 살핀다.
잣나무 수림지다.
고당산으로 향하는 유순한 등로에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소나무의 각피가 유난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봉곡리 갈림길(흰색 화살표)이다. 빨간색 화살표는 고당산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이 지점으로 와야만 한다(왕복 35분 소요).
(금오지맥 갈림길) 금오지맥은 빌무산으로 향하고...
평이한 솔숲 능선을 따라...
헬기장에 닿아 조금 내려섰다가 굵은 밧줄의 안내를 받아 올라서면...
고당산이다. 고당산에선 새로 세운 반듯한 정상석이 반긴다.
예전에 이 자리를 지켜준 고당산 정상 표목. 이 정상목은 대구 산꾼 김문암 님이 단 것.
고당산의 이정표.
다시 7~8분 만에 금오지맥 갈림길.
솔향을 맡으며...
정확히 35분 만에 갈림길에 닿았다. 아무런 표식이 없으니 사실은 상당히 중요한 지점이다.
바로 직진하면 별미령이고, 좌측으로 꺾어내려가야만 하산길이지만 지맥에서 벗어나면서 산길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김해김씨무덤을 지나고...
김해김씨무덤.
솔나무 숲길 희미한 발길을 좇아 능선을 고수하다...
누가 여기에 뻥튀기 세 개를 갖다 놓았노?
이제 제법 산길다운 산길이지만 봉곡리로 내려가는 능선길은 제법 가파르기도하고 선명하지 않아 주의를 요한다.
우측으로 농로가 보이는 지점에서 탈출이다.
부산일보 가이드는 이 능선 끝자락에서 올라왔지만 우측으로 비켜 내려가면 길이 있다.
우측으로 내려오는 길 끝자락에...
포장 농로의 끝자락이다.
포장농로를 따라 내려가다...
좌측 과수원 너머로 올려다보니 낮은 산자락 잘록한 고개가 보인다. 저 지점은 부산일보의 들머리.
작은 이름없는 다리를 건너...
돌아본 모습. 앞자락으로 보이는 낮은 능선이지만 우리는 고도가 내려앉는 지점에서 농로 끝으로 내려섰다.
개천과 나란히 2차선 아스팔트를 따르면 쉼터인 사각정자가 있고...
금방 백련사가 나온다.
백련사 2층 누각은 범종각으로 누각안 정면으로 대웅보전 전각이 섰다.
백련사는 백마산 기도도량으로 연꽃잎을 포개놓은 듯 백마산 봉우리를 포근히 감싸안은 아름다운 연화도량이란다.
연화교 앞에서 바라보는 주전각 대웅보전.
팔각정자 쉼터가 있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 버스.
백마슈퍼가 있고...
버스 정류소 이름은 '봉곡2리(주막)' 고방사 입구는 바라보이는 우측 100여m 지점.
2017년 마지막 산행이라 덕천동 팀이 의기투합하였다. 파안(破顔)~
올 한 해 오십여 차례의 산행을 무탈하게 하였으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자축(自祝)~
'코다리찜'
-새해 새날은-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눈송이를 털고/ 침묵으로 일어나
햇빛 앞에 선 나무,
나무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긴 동면의 부리를 털고/ 그 완전한 정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새
새들은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아득히 들리는 함성
그것은 빛과 빛이/ 부딪혀 내는 소리,
고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소리,
가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얼어붙은 계곡에/ 실낱같은 물이 흐르고
숲은 일제히 빛을 향해
나뭇잎을 곧추세운다.
<오 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