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 각 수
안 종 문(2022.5.28)
15년을 같이 살고 싶었는데 ...
지난 주말 오전 시골 들어가는 길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의 어리석은 판단과 극심한 가뭄에
목 말라할 농작물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물을 주고픈 객기성 대응으로
10년을 함께한 애마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고, 급기야는 숨통을 끊게 만들었다.
진갱빈 고향 집을 일곱 형제 별장으로 꾸며서 관리하고 있는 나는
올 봄에도 예년처럼 앞마당 돌담 넘어 꽤 너른 텃밭에 여름 피서 철에 먹을 여러 가지 농작물들을 심어놓았다. 어린 새싹들에게는 물주기가 아주 중요한데 이백 리가 넘는 경주에 지내면서 주말에나 들어가서 해결해 주고 있다.
매주 들어가기도 부담스러워 격주로 들어가곤 한다.
올 가뭄은 유별해서 보름 전에 벌써 붉은바위 소에 물이 바닥을 드러낸 판이었다.
보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을 작물들에게 미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벽에 들어가려다가 1박 2일 동반자가 무료할까? 해서 포항 처형과 함께 들어가기로 했기에 이른 아침 7시에 경주를 출발했다.
별다른 이상 없이 7시 반에 도착했고, 7시 40분에 포항에서 출발했다. 송라 네거리쯤에 왔을 때 차에서 무슨 타는 냄새가 난다며 조수석에 탄 내자가 이상 징후를 말했다.
바로 적당한 갓길에 멈추어서 살필 것을 도로 가에 위치한 어느 카센터에 들리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그냥 내달렸다.
7번국도 오른 편 해안도로에 카센터는 삼사해상공원 입구 언덕을 넘어서 까지도 보이지 않았고, 옥계 계곡 갈림길 신호등에 도착해서야 반대편 저쪽에 무슨 카센터 안내의 막대형 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2차선에서 잽싸게 좌회전 깜빡이 신호를 넣고는 주차를 해서 사장님을 찾았더니 주차장 너른 카센터가 조용하기만 했고, 간판에 적힌 폰 번호로 전화를 하는 나에게 얕은 담 넘어 밭에서 고구마를 심고 있던 세 명의 이웃 사람들 중 한 분이 "주인이 어디 멀리 가버리고 없다"고 알려주었고, 동반자도 가게 출입문에 무슨 사정으로 출타 중 이라는 안내 쪽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카센터로 찾아 갈 것이지 보닛을 열어서 응급조치를 하였다. 내자가 후포 시장을 보는 동안에 차를 수리하면 될 듯해서 냉각수를 살펴보았다.
보조 물탱크 뚜껑이 꼭 닫혀 있지 않아 물이 자연 증발한 줄 알아채고는 이웃 가정집 수돗물을 이용해서 물을 가득 채웠다.
엔진실 위에도 물을 뿌려주었더니 흰 수증기를 내뿜으며 차량 오버헤드 현상이 어떠한지를 새삼 생생히 체험시켜 준다.
함부로 열면 화상을 입는다는 주의 경고 안내문이 있는 냉각수 뚜껑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내 스스로 당황했었는가 보다.
반 푼 의사가 사람을 잡는다는 격언 그대로였다. 계속해서 엔진실 위에다가 물만 뿌려서 식혔지 그 뚜껑을 열어서 물을 채워주지 않는 실수를 기어이 하고 말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만 했으면 되었다 싶어서 한 십 분 후쯤에 시동을 걸어 무사히 출발했다.
두 번째 실수는 강구 항 입구 오른 편 길에도 카센터가 있었고, 그곳에 들어가서 제대로 조치되었는지 들어가 보자는 내자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후포까지는 내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가기로 한 것이 기어코 큰 문제를 만들었다.
병곡 휴게소를 코앞에 두고 차량 계기판에 체크 경고 불이 들어오면서 가속 폐달 동력 전달 느낌이 없어지자 갓길에 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 후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다음에 마저 남겨두련다.
낭패 그 자체였다. 하는 수 없이 S 보험사에 '견인 신고'를 요청했다. 오전 아홉 시였다.
이내 위치를 묻는 전화가 왔고, 20분을 기다려 달라는 말이 들렸다. 한 시간인 들 못 기다릴 소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막상 30분이 경과되니 참기가 어려웠다. “어디 쯤 오시고 계시냐?” 고 물었더니, “다 와갑니다”는 대답과 함께 또 견인차가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그러고도 한 참을 지나서 야무지게 생긴 견인차가 도착했다.
냉각수를 채워 넣고도 시동이 걸리지 않자 후포에는 정비공장이 없으니, 영덕으로 견인해야 된다는 권유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차 속에서 더위와 씨름하며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다려 주었던 처형과 내자는 영해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평해 까지 들어가고, 거기에서는 택시를 이용해서 고향집에 올라가기로 하였고, 나는 견인차 조수석에 앉아서 영덕정비공장 도착, 정비를 받는 대로 시골 들어가기로 했다.
영덕 기아정비공장에 견인해주고는 10km 무상인데 22km라 별도로 2만원을 달라기에 얼른 계산해주었다.
엔진 정비가 주특기인 사장님이 친히 차를 점검하더니, 차량 가격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들겠다면서, 폐차할 것인지, 200~300만원 들어서라도 고쳐 탈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당혹해하면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더니,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경주 정비공장으로 일단 견인해 놓고, 내자가 타는 승용차를 몰고 시골 들어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재빠른 판단에 공감이 가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견인 요청을 가입한 보험사에 다시 다급하게 했다.
관할 지역 견인 서비스 대행 업자의 전화가 이내 걸려왔다. 자신은 차를 싣고 견인해주는 제법 큰 차라면서, 지금 흥해에 있는데, 영덕에 도착하려면 40~50분 소요된단다. 기꺼이 기다리겠노라며 이런 저런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차라리 오전에 경주 서천 파크골프장에서 동반자와 함께 운동을 하고 시골 들어왔더라면, 경주에서 차량 엔진 이상을 알아내었을 것이고, 그곳 단골 카센터나 정비공장에서 조치를 받은 후 움직였으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것 아니더라도 아내가 카센터에 들러보자고 권했을 때 좀 늦게 후포시장 도착되더라도 그렇게 하지 왜 내 판단에만 집착했을까?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 먹을 일이 생긴다고 한 옛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12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큰 차는 적재함을 뒤로 미끄러져 내리게 하고는 내 차를 끌어당겨서 실었다. 실을 때 핸들 조작은 내가 올라타서 시키는 대로 했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조금 전만 해도 씽씽 잘도 내달렸던 애마였다.
다시 견인차 조수석에 옮겨 타서는 한 시간 가량을 젊은 운전자와 함께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한 시간을 잘 넘겼다. 경주 기아자동차서비스센터에 차를 내려놓고, 그 차가 돌아가는 편으로 집까지 가서 아내의 차를 타고 시골로 들어왔다. 오후 4시였다.
(영덕에서 경주까지 견인 거리는 77km 였는데, 10km 무상, 나머지 67km 요금 정산하니 134,000원이지만 13만원만 계산해달라고 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현금 정산해드렸다. 영해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2명의 평해 차비와 택시비를 합치면 20만원)
여러 고비의 상황에 결정적으로 두세 번 판단을 잘못한 나머지 생돈을 날려버린 지난 주말의 시골 나들이였고, 문제는 월요일 기아자동차서비스센터 사장이 차를 점검해보고는 아무래도 폐차하는 것이 옳겠다는 권유의 전화를 받고, 단김에 현장을 찾아가 대면해서 의논해본 결과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울진군청 환경과에 전화를 해서 노후 경유 차량 폐차 보상금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았는데, 7~8월에 하반기 적용 대상자 선정 때 신청하면, 11인승 승합차는 보험 적용 가격의 70%를 받을 수 있고, 나머지 30%는 차량 구입 확인 후 지급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당분간은 집사람의 승용차를 같이 이용하면 될 듯하다. 자가용차가 2대가 되니까 효빈이네 가족이 경주를 찾을 때 서로 불편을 주지 않고 각자 이용할 수 있어서 아주 좋더니만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기름 값도 오르고, 보험료도 이중으로 부담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감안하면 차량 1대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차량 한 대일 때의 여러 장점도 엄연히 있었음을 상기하면 다소 위로가 된다.
동반자의 웃는 모습이 많았다는 경험이다. 서로 상의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일 게다.
2013년 7월 어느 날 너와의 만남부터 내 인생의 일부가 된 가지가지 일들이 눈앞을 가린다.
그렇다. 내 인생의 냉각수는 또 언제일지 모르니 귀한 타산지석으로 삼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