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괴불주머니, 멍석딸기, 배풍등, 가막살나무, 박태기나무, 지칭개, 선개불알풀. 4월 서울 남산에서 만난 40여종의 식물 중 일부이다. 3월 숲해설사와 함께 하는 숲 산책 첫 시간에 나는 어린아이가 된 듯했다. 쏟아지는 새로운 단어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무지에서 앎으로 가는 작은 빛이 경이로웠다. 숲 산책을 거듭하며 뭉뚱그린 잡초가 아닌 엄연히 이름을 가진 풀의 개별성을 인식하게 된다. 이름을 안다는 것에서 나아가 작은 식물들의 생존 전략을 이해하게 되면 가슴이 뭉클하다. 오! 이렇게 신비롭고 대견할 수가!
아동옹호단체인 아동연합에서 <테크토닉>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통의 미국인은 1,000여 개 이상의 브랜드명을 인지하는 반면, 토착식물이나 동물은 채 10여종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p.11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메리 파이퍼)
심리치료사이자 작가인 저자는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에서 “좋은 글은 심리치료처럼 마음의 풍경을 바꾸고, 마침내 세상의 풍경을 바꾼다”고 한다. 이 책은 우리가 글을 써야 할 이유와 좋은 글이 갖춰야 할 요건을 알려준다. 그중 저자는 글을 통한 연결을 강조하는데,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와 연결되고 나아가 타인과 연결됨으로써 서로가 연결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나는 요즘 자연과 연결되려고 애쓰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내가 자연을 향유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요즘은 허리를 구부리고 루페(휴대용 돋보기)로 작은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그전과는 다른 성찰, 머릿속의 성찰이 아닌 몸으로의 성찰, 내 몸을 가두는 풍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몸으로 일구는 성찰의 시간”(정찬 <길 속의 길>)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하필 왜 지금일까? 왜 이 시점에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싶어졌을까? 아마도 나와 함께 글을 쓰는 친구들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주 작고 미묘한 것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다. 남들은 무시하기 쉬운 차이도 인지하고 언어로 명확히 드러내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면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자신을 둘러싼 바깥 세상의 부조리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을 잡아끄는 이야기에 천천히 머물며 그 자리를 관찰한다.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하는 나의 글 친구들은 자연과도 친하다. 산책길을 시로 쓰고 새를 관찰하고 탐색하고 자연에서 위로받는 마음을 글로 표현한다. 그런 글을 읽다 보니 나도 느껴보고 싶었다. 광고에 계속 노출되면 그 물건을 욕망하듯이 친구들의 글을 읽으며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욕망하게 되었다.
남편과 다툰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걸 알게 된 적이 있다. 남편에게 토해낸 말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억울하게 묵혀두었던, 사실은 엄마에게 하고 싶던 말이었다. 도리어 만만한 남편에게 퍼부었다는 걸 글을 쓰며 알아차렸다. (그래도 남편에게 사과는 안 했음) 지난 주말에는 딸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다 써놓고 보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설득하려는 내 저의가 드러났다. 편지를 받고는 비웃을 아이 표정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이에게 보내지 않음) 속상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을 때도 글을 쓴다. 두려움에 가려진 것을 거두어 내 안을 들여다보니 상대에 대한 원망이 아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린 내가 보인다. 생각이 문장으로 옮겨져 표현되면 비로소 내 생각과 거리를 두고 바라볼 틈이 생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 덕에 나는 멈출 수도 있고 더 나아갈 수도 있다.
브랜드는 구분하면서 정작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구분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싶진 않다. 백화점이 아닌 자연 속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을 살고 싶다. 글쓰기는 내가 사는 세상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글쓰기는 원하는 삶의 안내자이고 그것에 가까워지는 법을 찾아가는 아주 훌륭한 도구이다.
그러니 여러분,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계속해서 씁시다. :-)
첫댓글 자연과 친하다는건 여러모로 참 좋을 것 같아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연 속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사는 삶은 멋진 삶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