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국가 살상무기 제공은 현 시행령, 고시 위반
윤석열 정부 폭주 제동 걸 국회 동의 의무화 필요
사안 중대성, 시급성 감안해 연내 입법 서둘러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평양을 방문해 2002년에 맺은 「조-러 우호·선린·협조 조약」을 대신하는 「조-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이하 북-러 조약)을 체결했다. 이번 북-러 조약은 북-중 동맹조약이나 북대서양 집단방위조약과 달리 자동개입조항이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유사시에 러시아의 군사원조를 포함해 준군사동맹 수준의 강화된 군사협력이 합의되었다.
이에 대해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우려와 규탄의 뜻을 밝히며 대러 보복조치로 독자제재 추가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경우 “(러시아도)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것은 아마 한국 현 지도부가 달가워하지 않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제재국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제공 가능성
현재 50여 개 국가의 협의체인 ‘우크라이나 방위 연락 그룹’(UDCG)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각종 경제제재와 함께 무기 지원을 해오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모든 연합국이 (방공)체계든 요격 미사일이든, (우크라이나의) 대공 방어에 가능한 모든 것을 제공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고 있는 나라들은 자국의 안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나토 회원국들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4월 19일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전제로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적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 뒤 한국 정부는 지뢰제거 장비, 긴급 후송차량, 전투식량, 방탄복, 방독면, 의무장비 등의 군수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2023.12.4)는 “(2023년 기준) 한국이 유럽 국가들보다 더 많은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것으로 볼 때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지원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제공하고, 한국이 미국의 비어있는 창고에 탄약을 채워준 간접 지원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 북-러 조약이 체결되자,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를 겨냥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줄곧 요청해 왔고, 최근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6.11)에서도 살상무기의 직접 지원을 재차 요청했다는 점에서 실제로 성사될지 우려되는 바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7월 양평고속도로 김건희 일가 특혜시비와 유럽순방 중 김건희 여사의 명품매장 방문 논란 속에 순방 기간을 연장해 가며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언론에서는 무리한 우크라이나 방문이 김건희 스캔들에 대한 비난 여론을 덮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행보로 볼 때, 각종 국정농단 사건들을 덮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을 전격 발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분쟁지역 살상무기 이전금지의 입법 필요성
일찍이 일본정부는 평화헌법에 기초해 1967년 ‘무기수출 3원칙’을 제정해 살상무기의 수출을 제한했다가 1976년에는 사실상 전면적으로 금지시켰다. 1986년 나카소네 내각이 들어서면서 미국에 한해 예외적으로 무기기술 공여를 인정하였다. 2011년 일본민주당 노다 내각은 44년 만에 ‘무기 수출 3원칙’을 대폭 수정해 구미와의 첨단무기 공동개발, 인도적 목적의 일부 장비비품의 수출이 가능하도록 완화했다.
2014년 아베 내각은 ‘무기수출 3원칙’을 아예 폐지하고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제정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자, 2022년 3월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을 개정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위물자 제공을 허용하였지만 살상무기는 제외하였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무기수출의 길을 열어놓으면서도 분쟁 중인 국가들에 대한 살상무기 수출에는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내법으로 분쟁 중인 국가에 대한 살상무기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대외무역법」에 근거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중 ‘허가의 일반원칙’에는 “전략물자 등에 대한 허가는 해당 물품이 평화적 목적에 사용되는 경우에 한하여 허가한다’며 분쟁국가에 대한 살상무기의 수출을 허가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한 「방위사업법」 시행령에는 △국제평화·안전유지와 국가안보에 필요하거나 전쟁·테러 등 긴급한 국제정세의 변화 △방산물자 및 국방과학기술의 수출로 인해 예상되는 외교적 마찰 △외국과의 기술도입 협정 또는 전략물자의 수출통제와 관련한 협정 준수 팔요성 등의 경우에 방위사업청장이 방산물자(무기)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
주 북한 러시아 대사관이 지난 9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한국산 155㎜ 포탄 사진. 우크라이나 전황을 전하면서 게재한 23장의 사진 중 한 장이다. 2023.6.9. 주북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
그 밖에도 △바세나르체제(WA) △무기거래조약(ATT) 등 「대통령령」으로 정해놓은 국제수출통제 체제에 따른 제한이 있다. WA는 ‘국제평화와 지역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모든 국가’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입 통제, ATT는 학살, 반인도주의 범죄, 전쟁범죄에 쓰이거나 부추길 수 있는 국가에 재래식 무기 공급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은 정부가 방산물자(무기) 또는 전략물자를 수출하지 않으려고 할 때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정부가 작심하고 수출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시행령이나 고시, 국제수출통제 체제의 규정만으로 막기에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무원칙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제공을 막기 위해 거대 야당이 입법조치를 통해 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초당파적 협력으로 입법 마무리해야
일반적으로 외교안보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행정부의 고유권한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조차도 행정부가 의회의 견제 없이 수많은 국제분쟁에 개입한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재 대상인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판매한 뒤 그 판매대금을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정부군에게 지원했다가 발각된 이란-콘트라 사건이다.
미 행정부의 이란-콘트라 사건을 계기로, 미 의회가 전쟁 권한과 개시 절차를 규정한「전쟁권한법」(1973)을 제정해 행정부의 독단과 불법에 의한 전쟁을 막고자 하였다. 2000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임박한 테러 위협이 있다고 판단될 때 미 대통령에게 ‘선 공격, 후 통보'의 권한을 부여하는 「무력사용권한법」(2001)이 제정됐고, 미 행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에 군사 개입했다.
미국에서는 행정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 의회가 적극 나서고 있지만, 행정부의 견제를 받아 좌절된 경우도 있다. 2020년 1월 미국의 드론 공습으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사망하면서 미-이란 간 긴장이 높아지자, 미 의회는 의회의 선전포고나 승인을 받지 않는 이란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중단하도록 상·하 양원 합동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국내법적인 제한과 국제수출통제 체제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직접 제공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만약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한다면, 이는 역대 한국 정부가 견지해 왔던 ‘분쟁국가에는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노골적으로 파기하는 게 된다.
대한민국의 국격이 훼손되고 한‧러 관계 악화로 지정학 리스크가 증대되어 장기적인 국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이제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해외파병의 경우처럼 분쟁국가에 대한 살상무기 제공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대외무역법」 일부법률 개정안을 마련하거나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국회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입법이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막기 위해서라도 초당파적인 협력을 얻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 국방수권법」처럼 예산과 연계해 매년 갱신하거나 「이란핵합의 검토법」의 경우처럼 국제안보 상황의 기준을 분기별로 평가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사안의 중대성과 시급성을 감안해 금년 국회에서 입법을 마무리하도록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