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섰습니다. 좌측으로 가면 선암사의 백미라고 일컫는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 일주문이 나옵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선택하는 평탄한 길입니다. 우측 길 역시 일주문으로 향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비탈길이라 더 고된 만큼 한적하고 여유롭습니다. 도중에 순천전통차체험관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은 덤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느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삼나무 숲길
난 우측 비탈길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처음엔 힘들지라도 나중에 편안해질 수 있다면 힘든 일을 먼저 해치우는 편입니다.
“이쪽(우측 비탈길)으로 갈래?”
“응”
“??????!”
웬일이니? 아니 웬일일까요? 아내가 순순히 비탈길로 따라 오겠다니 말입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입니다. 아내를 지난 21년간 곁에서 관찰한바 평탄한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99.99%(순금의 순도)였었습니다.
“이리로 가면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도 있나봐.”
“그럼 차 마시고 가자.”
힘들어 할 아내를 격려하느라 괜히 말이 많아집니다. 어쩌고저쩌고 조잘조잘...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이하 ‘야생차체험관’) 사주문을 들어서니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너른 마당이 나옵니다. 둘레의 한옥은 전시관, 강당, 제다 체험실, 시음 및 판매실, 사무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음 및 판매실에선 구절초차, 국화차, 발효목련꽃차, 꾸지뽕잎차, 보리순차 등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향기가 좋은 발효꽃잎차를, 난 성인병에 유익하다는 꾸지뽕잎차를 시음했습니다.
꾸지뽕잎차
“다례 체험(유료)도 할 수 있다는데...차는 더 안 마실 거지?”
“마셔야지. 암, 아내가 마시고 싶다는데 당연히 마셔야지. 가자!”
만일 선암사에 갈 계획이라면 꼭, 필히, 반드시 야생차체험관도 들려보기를 권합니다. 다리품이 헛되지 않을 겁니다. 무료시음도 좋지만 기왕이면 사랑채에서의 다례 체험도 무조건 해보라 권하겠습니다.
다례 체험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2017년 10월 기준 3천원)
그간은 남양주 운길산에 자리 잡은 수종사 삼정헌의 다향을 으뜸으로 쳤었습니다. 2003년 1월에 그곳을 처음 방문했었는데 그 당시의 심정을 ‘산사에서 음미하는 차는 번뇌를 씻겨주는 듯 향기롭고, 담담하며, 후련했습니다.’라고 남겼었습니다. 또 하동 쌍계사에 갔었을 때 우연히 들리게 된 쌍계산장의 차맛에 대해선 ‘담 밖에서 서성이던 불청객을 살갑게 맞아주셨던 쥔장은 하얀 나무창살이 인상적인 다실에서 잠시 쉬어 가라며 차를 내놓으시곤 자리를 비켜주셨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서정적이다.’라고 기록해놨습니다. 이제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에서의 기억도 함께 남겨질 것입니다. 이러고 보니 어제 들렸던 화엄사 구층암에서 덕제스님께 차 한 잔 대접받지 못한 게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세작(細雀 가늘세 참새작)
제일 먼저 나온 어린잎으로 만든 녹차
사랑채의 명당은 전망 좋은 툇마루입니다만 아쉽지만 앞서 차지한 분들이 있어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잠시 후 개량한복을 착장한 여사님이 우리 자리로 와서 직접 시연하며 일러줍니다. 체험자는 가만히 앉아 차를 받아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직접 해보고 싶다면 그리 할 수도 있습니다. 다구 일체와 여분의 찻잎을 남겨 두니 말입니다. 미숫가루 다식은 덤으로 내주니 아이를 동반하지 않았다면 굳이 다식 체험(2017년 10월 기준 5천원)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내와 꽃과 차
그 중에 제일은 아내이니라(#이것이#남편의길)
“@%&*#집값이@#%$#%딸아이&*^재개발#$&@혼자#$%^”
잠시 쉬었다 가자더니만 아내는 잠시도 전화통을 안 내려놓습니다. 한석규 씨가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점잖게 읊조렸던 말이 여전히 귓가에 선한데 말입니다. 아직은 붙들고 싶은 게 많은가 봅니다. 살림을 다 정리하면 아내가 얽매임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질까요? 법정스님이 이르길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세상만사 어떻게 돌아가든지 간에 지금 이 순간은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구절초 향기로 충만합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고맙습니다#순천시#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다례#체험#꼭#필히#반드시
첫댓글 "그중에 제일은 아내이니라"
막상 실천하려면 쉽지 않다는게 함정이지...(Feat.어제)
그러게. 애물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