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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울 밖 낮은 기침소리☆]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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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밖 낮은 기침 소리]
강영환 시집 / 책펴냄열린시(2010.10.20)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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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밖 낮은 기침 소리
강영환
빈 손으로는 건널 수가 없다
하늘을 질러 높이 걸린 육교 위에서
맹인 부녀가 옆구리를 붙이고 켜는
소리 없는 하모니카 소리가
지나는 누구 가슴 하나 없이 밀어낸다
칼날이 된 눈 먼 소리가
먼 발바닥까지 흘러가는 아픔이여
하늘소리에 닿을 수 없는 가슴이
아픔을 끌고 가는 강물 속으로
목숨 줄 한 끝을 메고 가는 사랑 한쪽
그 넓은 깊이를 느낄 수 없어
병든 귀를 물거품에 버린 뒤 깊은 밤
소리없이 몰려 와 가슴에 젖어오는
울 밖 낮은 기침소리들
역사驛舍 앞에서
강영환
새로 쏟아지기 시작한 분수처럼
낡은 문을 밀치고 승객들이 나선다
한랭전선이 지나가는 길 위에서 누구인가
발밑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눈부시다
흩어진 잎은 부서져 티끌이 되고
한 때 미친 회오리바람에 쓸려
분수대를 말없이 떠난 물방울이
광장 바닥에 납작 엎드려 말라 간다
기차가 떠나지 안ㅎ은 역사 밖에는
술에 취한 노숙인들이 떨어져
돌이킬 수 없는 낙엽처럼 쭈구러든다
이제, 집이 없어도 집으로 돌아갈
예정된 시간이 돌아 온 것일까
숨비소리
강영환
어둠이 무서운 아이가 운다
배가 고파 울고 잠이 와서 울고
낮은 골목길에 넘어져 울고
눈물은 그것들 속에서 커간다
낭패한 아비가 촛불을 밝혀 들지만
목 쉰 아우성은 밀려나지 않고
문 밖에서 독한 눈물이 떨어진다
숨 넘어가는 눈물을 누가 부르는가
적막을 베어 먹는 아이와 함께
아비, 어미 부둥켜안고 우는 밤
구설이 남긴 불티마저 사그라진 골목
하얗게 탄 눈썹이 진다 불면속으로
아픈 창을 열어젖힌 이웃이
아비가 토하는 숨비소리를 삼킨다
겨울行 모과나무
강영환
좁은 뜰이었지 아마, 밝은 그늘에 서서
한 움큼 흔들리는 빛을 셈하던 때가
한 십년 쯤 멀미를 목에 두르고
담 너머에 가지를 뻗어 출렁거렸다
숲 깊이 숨어간 후투티를 손짓해 내고
스며 땅 밑에 흐르는 물소리를 불러 내고
신명난 가위소리에 어깨 움츠리며
샛바람 풀어 구조신호를 보내기도 했건
다시 가로 막힌 세종로에 새삼스러운
거친 발자국 소리가 지나간다
낙동강 뿌리를 흔드는 삽질소리 들린다
온 몸에 가시를 돋우고
가로나무끼리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
길거리에는 다시 겨울이 온 것이다
눈雪은 꿈쩍하지 않았다 바람이 쓰러져도
마비된 수족에 그늘이 쌓이면
발등에 떨어지는 잎들, 소리내 울었다
앙상한 뼈마디가 꺾이고 잘려져도
반쯤 남은 수족으로는 어디로 갈 수 없어
떨구어진 습한 자리, 눈 부릅뜨고
뿌리에 남은 온기 하나로
눈부신 겨울행을 지탱하고 섰다
가릉빈가
강영환
몰래 내 가슴에 들어 살고 있는 새
어느 누구나 한 마리쯤 몰래 기르는 새
문득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아침에보다 저물무렵에 더 절실하게 날고 싶은
그 새가 몇 생을 건너 가슴에 왔다
천년을 넘어 파란 하늘 끝에 이르러
문득 돌아서 이승을 내려다보고 싶은
그러나 끝내 가슴 밖을 나서지 못하는 새
푸른 살점을 뜯어 눈 먼 돌 위에 새겨 넣은 새
내 여린 날개가 하필이면 돌이 되었을까
가슴을 열어 놓아도 떠나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새
낯선 곳에서 더욱 아프게 눈물 쪼아대고
그래서 어디로 가지 못하고 조롱 속에다
눈물만 넣어주던 천년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내 가슴 안쪽을 콕콕 쪼아먹는 새
말라가는 사막
강영환
바늘이 낙타를 키웠다
귀가 기억하고 있는 사막을 불렀다
낙타는 바늘귀를 지나가고 싶었지만
길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바늘귀를 들여다보았다
구멍 밖은 바람 부는 사막이고 낙타는
침대 위에서 아침 우유를 씹었다
모래바람이 바늘귀를 지나가고
모래 물결이 언덕을 덮어 강이 죽었다
강물에 선인장 꽃이 피었다
날 선 풀잎이 바늘 끝에서 흔들렸다
낙타는 강물을 먹지 않았고 어둔 땅에서
사막은 가시풀을 키우지 않았다
어머니 반짇고리에서 허리굽은 바늘
귀에서 목마른 별이 떠돌았다
낙타는 속눈썹을 길러
제 눈을 찔러 바늘 귀를 보았다
일출 앞에서
강영환
기다리는 가슴에 불을 끈다
당돌하게 떠나는 등이 밝아서
낡은 이부자리를 숨길 수 없다
초경처럼 터지는 일출은
붉은 옷을 열어 젖꼭지를 물린다
잠 들지 못하는 물을 흔들리게 하고
한 뼘 솟구친 노래를 가슴에 건다
온전히 몸 던져 넣지 못하고 돌아서던
우울한 거리에서 젊은 날은
강물로 바람으로 혹은 투명한 안개로
출렁거렸다 오, 내 지나온 길
나서지 못한 그림자들이 터져
일출 밖으로 마구 달아난다
새들이 높은 음계 휘파람을 불고가고
돌아다보면 어느새 열려 있는 문
누군가 애 터지게 기다리고 섰다
빈 들판에서
강영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고
요염하게 누운 벌판이
지나는 겨울새를 유혹한다
내 줄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빈털터리에
떠나지 못하고 지켜선 허수아비가
두 팔을 벌리며 몸을 가누고
시려운 외발로 선 땅은 아직
서릿발 속에서도 굳어지지 않았다
한번쯤은 하늘을 삐딱하게 쓰고 싶었을까
산자락은 모자 끝에서 펄럭여 준다
구름 향해 손짓하는 어눌한 춤사위가
살아 잇는 날에 마지막 몸짓이 되어도
귀한 새 울음소리를 가져다 주었고
노을은 잠 든 벌판 위로 다시 돌아 왔다
온 가슴을 다 퍼내어 지켜주어도
벌판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지킬 것은 무엇인가 비워버린 벌판에
참을 수 없는 노을이 물들거든
멀리 가는 강물에 발목을 씻어
빈 가슴에 불을 비펴 떠나, 떠나서
어둠을 태우는 연기로 다시 오라
언제나 예약이 가능한 넓은 빈터다
초승달
강영환
할머니가 쓰던 밥그릇을 버린다
모서리에 이가 다 빠진 하얀 사발
걸레쪽처럼 쓰다 남은 하늘 한 귀퉁이를
남은 이들 가슴 위에 던져 넣는다
할머니가 버린 그릇은
말없이도 소용없게 된 헌 사발이어서
상여 지난 다리 위에서 쉽게 부서진다
깨어지는 것에는 소리가 있다지만
할머니 사발은 영 소리하지 않는느다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져도 속까지 삭아서
푸석푸석 그러나 애써 침묵하지 않는다
아-, 하는 슬픔 뒤에 남은 사발 하나
젖은 노을빛으로 저물어 금새
서녘 낮은 하늘에서 배가 고프다
난장에 서다
강영환
눈이 깊은 오후가 창유리에서 혼자 깊어가는
저물녘에도 눈물 날 지경이 되거든 그대
자갈치 시장 난장에 들러
스치는 사람들 어깨 툭 치며 지나가 보라
어깨에 전해지는 통증도 장난이 아니지만
눈 부라리고 잡아 죽일 듯 윽박지르는 인상에
눈물대신 분노가 치밀어 오를 터이니
약값 치르는 셈 치고 한번 붙어보라
뜨건 몸 얼싸안고 치열하게
비린내 질펀한 바닥을 뒹굴어도 좋으니
살 냄새에 젖어 비릿한 구역이 솟구쳐도
그대 몸속에 절절이 배어 있는 눈물쯤이야
배신하듯 구만리나 달아나고 말 터이니
난장 좌판 위에 배 깔고 누운
도다리 툭눈이 멀거니 바라보는 그대 저물녘
눈물이 되기에는 이르다 하지 않은가
끊어진 세상 인연도 잊혀지긴 글렀고
몸에 두른 푸른 물빛이 출렁거리며 남아 있으니
난장 아니라도 그대 돌아가는 모퉁이
짠물 튕겨 젖은 바닥 갈라진 틈에
뿌리내린 민들레여리디 여린 꽃
그 환한 웃음 알기나 하는 건가 철없이
노을 같은 것에 빠져 눈물 흘릴 생각이라니
자갈치 시장 난장에 서서 .
안개라고 하는 적들
강영환
안개를 가두었다
숨겨가진 멀미 때문에 더 단단하게 눌렀다
보지 않아도 안다 몸부림치는 적들
그 사이 번뜩이는 비수, 그리고 아우성
더 이상 바람피우지 못하도록
세상을 덮고 안개는 태연하다
엄청난 전과를 숨기기 위해
쉽게 물러나지 않는 투명한 위선이여
그 저항을 위해 안개는 존재한다
끈끈하게 결집되어 있는 추종자들과
뒷짐을 쥐고 외면한 듯 그렇게
산이나 강 그리고 들판을 압박한다
아파트와 독립가옥, 길 위의 자동차들
심지어 자유롭게 나는 새들까지
반성하지 않는 습격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살육의 현장을 망각하는 적들
안개를 가두었다 그가 그랬듯
꾹꾹 눌러 굴신도 못하도록
그래서 안개는 미쳤다
안개 속에서 질식하게 만든다
근육이 파열되도록 투명하게
눈과 코와 입을 틀어막는다
안개를 눌러 죽인다
밤 벚꽃잎을 손에 받으며
강영환
죽은 벚나무 가지에도 서녘물이 든다
물들지 못한 나무는 스스로 어두워지고
검은 산이 떠받드는 등 뒤 하늘에서
총총한 별들도 꽃이 되는 시간이다
두견새 우는 밤늦은 4월을 몰랐다
그 피울음에 핀 꽃이 흔들리고
바람소리 속속 자지러지는 굽은 가지에서
불순한 일기는 뼈 속까지 아프게 한다
떨어진 별을 줍는 눈물겨운 불빛들
몸부림에 젖은 낙화는 눈물이 아니든가
이승에 남은 무엇을 속죄하고 싶은가
몰랐다 새벽이 가까워오는 아직도
몸이 떨리고 있는 내 나무여
죽은 가지를 물들이고 가는 서녘 핏빛이여
우리는 어둠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닫히지 않는 가슴에 남은 말이
꽃이 지는 밤에 네 기침소리를 보낸다
사랑을 잃은 후
강영환
나는 점점 돌아 되어간다
아랫도리부터 움직일 수 없이
물속으로 갈아 앉는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땅에서 다시 추락한다
은행나무 꼭대기에서 마음을 일으키던
뜨거운 심장이 떨어져
마지막 강가에 와 얼음이 된다
감은 눈 속에서 흔들리는 그대
마지막 키스는 불을 남가고
풀밭 위에 스러진 바람이 된다
맨몸으로
흔들리는 물끝에서 눈물로
노을을 지키고 앉아
빈 잔에 가득 슬픔이 채이면
바람이 흘러 마시게 한다
쓰리고 쓰린 붉은 입술을 지닌 그대에게
나를 끌고 불이 간다
한잔 술이 강을 이루던 저물녘
노을 강을 흘러가는 그대 뒷모습
그냥 하릴없이 풀밭에 앉아
제 흥에 겨워 불 타 버리고
이윽고 바람에 불리어 간다
가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냉정별리
강영환
내 다니던 익숙한 길을 지운다
함께 가던 찻집도 들어내고
찻잔에 남은 따스한 입술도 닦아내고
유리창에 깊숙이 젖은 눈도 입김으로 덮는다
발바닥 굳은 티눈도 뽑아내고
오로지 마음 가던 항토길마저 덮는다
얼음 곁에서 그대 있어주지 않아
풀잎 붙들고 혼다자서 떨었다
살갗에 내리는 따스한 햇살도 버리고
코에 남은 맑은 숨결도 비우고
가슴에 남은 눈물 마른자국도 지우고
싸늘한 담벽 모퉁이를 돌아왔다
나무토막
강영환
내 손 아래 손등이 파르르 감전을 전한다
어떻게 전류를 만들어 내보내는지
그대 없이는 있을 수 도 없는 일
그대 손을 잡고 나서야 내 가슴은
새로 발전을시작하나 보다
머리끝에 불이 들어오나 보다
사랑 앞에서 나는
그대 손등을 헤엄쳐 건너는 전기뱀장어
외면한 오만을 끌어올 수 있을까
그러나 그대 앞에서 내 몸은 나무토막
눈 하나 꿈적 못하게 만들지 못하는
손바닥 알 수 없는 부도체다
이팝나무꽃 질 때
강영환
자투리공원 반쯤 주저앉은 나무의자에서
삼교대 일을 끝낸 박 모양이 남친을 만났다
눈에 담아놓은 그리운 눈을 하나씩 꺼내
맑게 닦아 논 검은 하늘에 두었다
자주 바뀌는 근무조에 발이 빠지기에
보고 싶은 눈을 챙겨 저장해 두었다
반짝거리며 내려다보는 눈이 눈에 들어
가시를 뽑아 붉은 색이 많이도 가셨다
손바닥이 살포시 손등을 덮어올 때
가늠할 수 없는 전류가 나무의자에 흘렀다
부를 떨리는 의자 곁에 서있던 나무에서
별 같은 하얀 꽃이 피고지고 지고피고
가까운 산 두견새가 목이 쉬어 불렀다
빈 의자에 하얀 밥이 펄펄 쌓였다
저장해 둔 숱한 눈이 눈과 만났을 때
배고픈 입술은 단맛으로 깊어졌다
보리수나무 생각
강영환
가끔은 새가 되고 싶은 나무였다
창밖을 내다보며 구름이 되고 싶은 그대
하늘 그리는 눈을 싣고
구름 끝에 닿았다 돌아 온 뒤에는
그대 깊은 눈에 안기고픈 새, 아직은
공허한 여백 한 모서리를 채우고 있지만
빈 마음을 채우고 싶은 그댈 위해
아무도 몰래 날개를 접도 만든
지친 그대 쉴 작은 자리 목
흔들리는 창 밖에 잎 떨구고 서서
그대를 기다리는 나무
처음엔 나무가 되고 싶은 새였다
지독한 사랑
강영환
잠에서 깨어나면 그대여
가슴 찔리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가
밤 깊은 곳 그대 보이는 창가에서
모르는 사이 그대 심장을 도려와
눈물로 갈아낸 바늘로 콕콕 찔러
독한 저주에 밤새 담갔다 보내느니
아침, 그대 가슴이 쓰라리지 않은가
유리창 바깥 풍경 속으로
비에 온 몸을 맡기고 선 은행나무처럼
그대 생각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노랗게 젖어가는 나는 아직도
태양 이글거리는 네거리에 서서
그대를 등불로 켜든 마음이
떨고 있다, 지독히도 떨고 있다
하얀 찔레꽃
강영환
내게는 날 그리워해 줄 가슴이 잇다
풀밭 위에 내리는 첫 가랑비처럼
강물 위에 무작정 투신하는 첫눈처럼
지평선 먼 그리움 솔솔 피워 낸
지워져 가는 산길 모퉁이에 서서
내가 걸어와 주길 바라는 꽃눈꽃송이
길 안에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집 밖에 눈이 내리지 않는 날에도
창을 열고 내 가슴을 바라보는 나를
마음에 심어둔 꽃나무처럼
푸르게 그리워하는 얼굴
내가 그리워해 줄 빛더미가 있다
저물녘에 내리는 눈
강영환
따뜻함이 그리운 저물녘에 눈이 내린다
맨 먼저 첫눈 속을 걸어 그대에게 간다
지상에 살고 싶은 구름 그림자와 함께
그대 마음 끝에도 내린다면 얼마나 좋으랴
등 뒤 바다 위에 선 하늘은 차갑고
언덕은 하얀 눈으로 구름을 탄다
세 둥지 속 포근함으로 맞아줄 그대는
다시 찾아주는 함박눈처럼 문간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대 창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좋으랴
안심하고 내 어깨를 덮는 눈처럼
그대 손등이 따뜻하면 얼마나 좋으랴
다리 위에 그 여자
강영환
언덕 위에 다리가 걸어간다
늘씬하거나 그렇지 않아도 좋다
다리 의에 엉덩이를 얹은 그 여자
엉덩이 위에 몸통을 얹고 간다
몸통 위에 가슴을 얹고
볼록한 가슴 위에 머리를 얹고
머리 위에 구름을 얹고
구름 위에 하늘을 얹고 다시
하늘 위에 땅을 얹고
땅 위 남은 둥그런 묘지 속으로
그 여자 다리가 걸어간다
그 여자는 언덕 아래
어디론가 사라질 모양이다
지금은 가던 길 위에서 웃는
얼굴만 남는다
죽은 뒤에 웃는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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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세월이 더 지나도 사랑노래는 가능할는지 알 수 없다. 어둠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는 건 핑계가 되겠지만 딱히 말한다면 구강구조가 거리가 먼 탓일 게다. 사랑이 결핍된 이 땅에서 이웃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발효가 덜 된 말들로 목에 걸린 가시처럼 쓰리고 아프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저물녘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나는 다시 한 구비를 돌아가야 할 길목에 섰다. 이곳에 남은 시들은 눈이 아파 더 오래 붙들지 못하고 그만 놓아 버릴 수밖에 없는 조건 없는 아픔과 사랑의 편린들이다.
새로 가정을 꾸리는 딸의 행복을 빌고, 발문으로 재수록을 허락해 준 최영철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0 경인년.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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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詩集 [※울 밖 낮은 기침소리※]
[ 발문 ] -
낮게 구부러진 길들을 돌아보다
최영철
〔1〕
시인의 집은 부산 초량동 산복도로 가파른 골목 안이었다. 삼십년 가까이 보아온 선배시인의 집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그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기도 할 것이다. 동무들과 어울려 밤늦게 술을 마시고 새벽녘이면 삼삼오오 무작정 동년배 시인들의 집으로 쳐들어가던 호기롭던 시절이 있었다. 구십년대 초반쯤의 상황일 것인데 그때에도 시인의 집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인은 70년대 말에 등단한 까마득한 선배였던 것이고 이 ‘까마득한’ 거리는 단순한 나이 차나 등단 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물적 나이로 치면 시인과 나는 여섯 살의 격차가 있고 등단 년도 또한 대략 그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이지만 내가 느낀 까마득함은 견고한 산 하나를 대하는 경외감에 다름 아니었다. 군대에 비긴다면 내가 갓 훈련소를 나온 신참이라면 시인은 근접하기 힘든 중대장쯤 된다고 할까. 소대장이 바로 위의 형님 같다면 대대장은 삼촌이나 큰 아버지 같을 것이다. 대대장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릴 수도, 소대장 앞에서는 때에 따라 맞짱을 뜰 수도 있겠으나 중대장도 이도저도 여의치 않은 집안의 큰형님 같은 자리다. 우리 세대에게 시인은 그런 존재였다. 부산 문단의 위와 아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힘겨운 자리에 시인은 오래 서 있었다.
1.
초점 부서진 볼록렌즈를 끼우고
선명한 것은 위험하다 위험하다
는 논리를 필름에 담고
애당초 어그러진 핀트의 셔터를
누른다 날아가는 갈매기
갈매기는 산에까지 오지 않는다
현상되는 투명한 사건
빛이 들어갔을까요
물이 들어갔을까요 눈에
티끌이 묻어 나온다 렌즈에
투명한 것은 선명한 것이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망쳐 놓는다
빛이 들어갔어
그늘이 졌어 그것은
해일이 분명해 해일을 본 적이 있어
애당초 어그러진 핀트가 망가진다
2.
초점 부서진 볼록렌즈가 찍은
불투명한 것은 위험하다 위험하다
는 논리를 필름에 담고
갈매기는 산에서도 산다
현상되는 불투명한 사건
초점이 맞지 않군
흔들려서 그래 다리에
쥐가 서너 마리 달려나온다
불투명한 것은 선명한 것이다
자존심 많은 사람들이
주관적인 판단을 망쳐 놓는다
좋은 카메라군
좋은 실력자야 그것은
산사태가 분명해 산사태를 보았어
애당초 정직한 핀트가 망가진다
3.
촛점이 맞아 흔들리지 않은
수만 장의 사진이거나 현상되지 않은
수만 장의 버린 필름이거나
사진기는 위험하다 위험하다
는 논리를 담고
날아가는 갈매기
- 「황씨의 카메라」전문
시인이 일러준 길을 따라 초량동 옛 침례병원 앞에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성분도병원을 지나고 구봉성당을 지나고 초등학교를 지났다. 오른쪽으로 갈 길을 왼쪽으로 잘못 접어들어 차를 돌렸다. 그렇게 점차 길의 상부로 올라서며 뒤를 돌아보니 바다와 산의 중간 지점쯤에 우리가 서 있었다. 그 지점은 시 「황씨의 카메라」가 설정한 ‘갈매기는 산에까지 오지 않는’ 지점이었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바다는 황씨의 카메라가 포착하고 싶으나 잘 포착되지 않는, 아직은 희망이 멀게 느껴지는 지점일 것이다. 현실과 꿈이 쉽게 조우하지 못하는 우울한 상황은 ‘빛이 들어갔을까요/물이 들어갔을까요 눈에/ 티끌이 묻어 나온다’와 같은 문제 상황으로 표출되고 ‘그늘이 졌어 그것은/ 해일이 분명해 해일을 본 적이 있어/ 애당초 어그러진 핀트가 망가진다’와 같은 절망으로 심화된다. 그렇다고 이 고지대의 삶에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사람들은 ‘촛점 부서진 볼록렌즈’로 산에 사는 갈매기를 렌즈에 담아내지만 그 불투명한 희망은 불확실한 근거로 하여 위험한 것으로 그려진다. ‘촛점이 맞지 않군/ 흔들려서 그래 다리에/ 쥐가 서너 마리 달려나온다’와 같은 자의식이 이어지고, 그 상실감의 책임은 ‘산사태가 분명해 산사태를 보았어/ 애당초 정직한 핀트가 망가진다’ 처럼 대사회적인 문제로 확장된다. ‘현상되지 않은/ 수만 장의 버린 필름’이지만 그 위험한 희망을 안고 갈매기는 날아오른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부두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가 보였다.
〔2〕
나는 부산문단에서도 몇 남지 않은 비면허 희귀종인지라 차는 소설가 조명숙이 운전하고 있었다. 그녀도 시인의 집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다랑이 논처럼 산의 복부를 갈라놓은 산복도로를 지나 또 다른 산복도로에 이르기 전의 막다른 공터에 시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더러 새로 올린 말쑥한 집들이 있었으나 예전 그대로의 집들이 정감 있게 다가오는 골목이었다. 계단이 많은, 구부러지고 휘어진 좁은 길이었다.
시인은 헐떡이며 따라오는 우리를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그 뒤를 돌아봄,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일 것이다. 높은 산복도로에 살고 있으나 사실은 낮은 자리로 내몰린 것에 다름 아닌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 낮은 자리에 피어났으나 사실은 가장 높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 꽃을 피운 산의 생명들을 돌아보는 것. 시인의 시는 이렇게 앞서고 높고 찬란한 것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낮고 뒤쳐진 것을 돌아보는 시선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날 추락시키지 않고 산복도로
높은 지위를 유지해 준 것 고맙다
아침저녁 걸었어도 물리지 않던 길, 늘
부산항을 툭 터서 가슴 높이로 보여 주었고
멧비둘기 머리 위로 가끔 지나
까치 노래에 배시시 웃음 띠던 출근길
두 다리를 떠받들어 너를 걸었다
비 오는 날 젖은 발로 새겨 넣던 몸 생각에
쿵쾅거리는 소리로 너를 불렀지만
그때도 너는 흔들리지 않고 새 신부
처음 얼굴로 날 받아 주었다
고맙다 내려다보며 목이 메던 길
- 「자주 걷는 길 - 산복도로· 100」전문
좌판 위에서 종일토록
가랑비를 맞고 있다
내장에까지 젖는 비소리
맨살에 닿는다
매서운 눈 꼬리를 치켜뜨고
산을 넘고 넘어서
이웃은 그냥 지나가 버리고
일어설 수 없는 비늘
터지면서 부러지면서
끝끝내 까무라친다
껍질 벗긴 꼼장어가 맨살로 엉겨
꼬무작거리고 있다
좌판 위에서 최후까지
목이 쉬어 남아 있는 바다
천천히 토해 내면서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
여름 햇살
붉은 팔뚝으로 남정네들은 떠나간 바다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바다를
큰물로 앉아 꿈틀거린다
- 「생선장수 - 산복도로· 10」전문
낮고 가난하고 외진 상황을 드러내는 방식은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다. 앞의 시가 가리워진 희망을 찾아내 그 외진 길에 따스한 햇살 한 다발을 뿌려주고 있다면 뒤의 시는 그것이 처한 혼곤한 상황을 드러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두 전략은 각각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적히 구사되고 혼재되어 쓰여진다. 희망이 없다면 희망을 건져 올려 보여줄 일이고 방만하고 나태해졌다면 지금 잠시 망각하고 있는 본연의 야성을 드러내 보여줄 일이다. 시인이 지금 걷고 있는 「자주 걷는 길」은 산복도로 사람들을 자주 한탄과 절망에 이르게 하는 길일 것인데 시인은 그 길의 의미를 뒤집어서 보여준다. 숨을 몰아쉬며 오르내려야 하는 비탈길은 고단한 하층민의 길이 아니라 날 추락시키지 않고 높은 지위를 유지해 준 길이며, 아침저녁 걸었어도 물리지 않는 길, 부산항을 툭 터서 가슴 높이로 보여 준 길, 멧비둘기 까치 노래가 두 다리를 떠받들었던 길, 흔들리지 않고 새 신부 처음 얼굴로 날 받아 주었던 길이다. 산복도로의 의미가 거기서 그쳤다면 그것은 지나친 위안일 뻔 했다. 시인이 드러내는 산복도로의 희망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 아래 이어진 시 「생선장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산복도로가 쟁취한 희망이 그냥 얻어진 게 아니라 오랜 줄다리기 끝에 얻은 성과임을 보여준다. 이 시의 최종 도달점인 꼼장어의 꿈틀거림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의 발산이다. 꼼장어로 대변된 산복도로 사람들의 삶은 난장에서 종일토록 가랑비를 맞았으며, 매서운 눈 꼬리를 치켜뜨고 험난한 고개를 안간힘으로 넘었으며, 터지고 부러지고 까무라치며 온 길이다. 그리고 뜨거운 불판 위에서 껍질 벗겨져 맨살로 엉겨 꼬무작거리고 있다.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바다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3〕
시인의 집으로 가는 길이 시를 읽으며 짐작했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나는 안심했다. 이 답답한 시간을 뛰어넘는 현실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시가 필요한 지점이 여기가 아닌가. 아직 여전히 현실로부터 소외된 낮고 외진 자리의 세계를 드러내는 일은 중요하다. 단순한 재현이 아닌, 거기에 없는 희망의 옷을 입히고 거기에 없는 절망의 날개를 달아주는 일은 문학이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대로를 걷는 시인도 있어야 하지만 이런 골목을 걷는 시인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로만이 희망이 아니라 이 구부러진 골목에도 여전히 희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구부러진 골목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
눈 선한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 살았다
바다도 더 많이 찾아와 주고
진하게 놀다가는 별이 있는 하늘동네
갈라섰다 다시 만나는 사람 일처럼
만났다 갈라지는 것이 골목이 할 일이다
-- 「구부러진 골목 - 산복도로· 76」일부
좁은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 2층 마루에 둘러앉았다. 시인의 아내는 작은 탁자에 술과 과일을 차려주었다. 집의 전체적인 외장보다 2층 내부가 유독 깔끔해 의아해하다가 지난 해 얼핏 들었던 화재사건이 생각났다. 세탁기를 틀어놓고 외출했다가 세탁기 과열로 불이 나 세간을 다 태웠다는 이야기. 그 바람에 세탁기 회사에서 2층 전체를 깔끔하게 리모델링해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불이 날 정도의 세탁기를 쓰고 있었으니 알뜰한 살림살이는 짐작하고도 남겠다. 우리 역시 30년 결혼생활에 길에서 얻은 세간이 수두룩하다. 고정 수입이 없는 우리야 그렇다손 쳐도 삼십년 넘게 교직에 몸담은 시인의 살림이 이렇게 소박한 것에 놀랐다. 그 소박함은 이를테면 자녀들의 이름을 지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첫째 따님의 이름을 유앤으로 둘째 아드님의 이름을 리우로 지은 것인데 이름만 들어서는 단박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연인즉 이렇다. 유앤은 유엔데이에 태어났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고, 리우는 이국적으로 들리겠지만 성이 붙은 강리우를 거꾸로 읽었을 때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강,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마침 두 자녀분이 휴일이라 집에 쉬고 있던 터여서 이름 때문에 어릴 적 놀림을 받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놀림을 받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의 이름을 우리는 너무 거창하고 무겁게 지어 주었다. 자신들이 못다한 꿈과 이상을 주렁주렁 달아주었다. 그런 면에서도 시인은 소박하다. 권위적이지 않다.
가정의 운용도 그러하지만 부산 문화계의 이런저런 중책을 맡아 일할 때도 시인은 한번도 권위적이지 않았다. 후배들과 함께 자리 정돈을 하고 현수막을 걸고 발송 작업을 하고, 술잔을 나누었다. 술값은 또 번번이 혼자 다 뒤집어썼다. 뻔한 교원 봉급으로 그렇게 후한 살림을 살았으니 시인의 집이 이렇게 단출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낡은 세탁기가 불이 날 정도로 살림을 알뜰하게 산 시인의 집은 그래서 더욱 단란하고 따스한 기운이 넘쳤다.
열으로 누워 드는 잠은
무너지기 쉽다
엎어져 버리거나 뒤집어져 버리거나
잠이 끝날 때까지는
자주 자주 목이 마른다
이웃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이웃들의
엎어지지 않고 뒤집어지지 않고
용케 드는 잠
마루바닥에 날을 세워
차가움은 뼈 속 깊이 사무쳐도
이웃과 이웃의 어깨에 부딪혀
끈끈한 체온 속으로 실어 나른다
호명 당하여 떠나 간 이웃
돌아오지 못할 때
오, 옆으로 누워 드는 잠은
자주 자주 목이 마른다
-- 「칼잠」전문
시인의 잠은 편안할 수 없다. 위풍당당 활개를 펴고 잠드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 엎어지거나 뒤집어져 버릴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집 떠난 이웃, 거처를 찾지 못한 이웃, 시리고 주린 이웃들의 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덕목은 자신의 주변 공간,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일종의 부채감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 부채감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파장을, 그 세계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것으로 했을 때 형성된다. 산복도로에 40년 넘게 깃들어 살면서 시인은 산복도로의 이웃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자신 산복도로가 되었다. 시인의 산복도로 연작시는 산복도로를 향한 무한한 사랑 고백인 것이며 그것이 준 선물을 조금이라도 되돌려주고자 한 부채감의 표현이다. 지난 해 봄 새시집 『산복도로』를 냈을 때 시인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0년 묵은 빚에서 이제야 벗어난 듯 홀가분하다. 그동안 부채감이 깊었나 보다. 이제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산복도로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시인의 속내란 게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타자의 아픔과 고통이 모두 자기 때문인 것만 같은 것, 그것을 모두 끌어안고 자기화하려는 존재가 시인이 아닌가. 최근 개봉했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윤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4〕
시인은 1950년 사변동이다. 그것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절박한 전쟁 상황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에서 여타의 전후세대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1957년 경찰공무원이었던 부친을 따라 전남으로 갔고 함평과 여수의 초등학교를 옮겨 다녔다. 시인이 부산으로 온 것은 1963년, 우리 나이로 열네살이었고 예순에 이른 지금까지 살고 있다. 교사 생활을 시작하며 잠깐 경남 의령에 살았던 것을 빼면 시인은 47년 동안 부산에 살고 있다. 지금의 초량동 산복도로 집은 1967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고, 1981년 결혼해 딸 유앤이 태어나고 1983년 아들 리우가 태어났다. 시인의 산복도로에 대한 애정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한다. 십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생의 대부분을 깃들어 살았으니 시인의 몸과 정신은 산복도로와 삼위일체일 것이다.
시인의 시적 이력은 1974년 동아대 재학 중 동아문학상 시부 입선, <자정> 문학동인 활동, 시화전 개최 등으로 불꽃이 점화되고.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입선과 1979년 <현대문학> 시 천료,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등으로 본격화된다. 그리고 1980년 이윤택 엄국현 박태일 강유정과 함께 <열린시> 동인지를 내고, 1984년 무쿠지『지평』편집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뜨겁게 달구어진다. 그 이후 시인의 지역문학운동과 문화운동은 조금도 쉬지 않고 최근까지 이어졌다. 좋은 세상을 향한 끝없는 희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스름 안개 속으로 다리를 절며
강물이 가고 있다
점점 죽어가고 있다
버리고 버린 물들이 모여
파랗게 죽어 가는 강물 속에서
산이 버린 물 내(川)가 버린 물
서로 서로 얼굴을 부빈다
얽히고 뒤섞여 깨지고 부서져
알아 볼 수 없이 일그러진다
바다에 이르면 소금에 절이어
숨을 죽이고
강물은 형체도 없이 바다가 되어
산이 그리워 내가 그리워
밤낮으로 해안에 와 부딪힌다
부서지고 끝없이 죽어 간다
- 「江물」전문
시인은 이처럼 버려지고 부서지고 일그러지고 깨지고 썩어가고 죽어가는 것들을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산이 그리워 내가 그리워/ 밤낮으로 해안에 와 부딪’히는 것들, ‘부서지고 끝없이 죽어’가는 것들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활화산처럼 쉬지 않고 끓어 넘쳤던 시는 그래서 쓰여졌고, 다급한 상황에 대한 응전이었던 사회문화운동 역시 그래서 가능했다. 특히 시인이 여러 문학 사회단체의 초대 대표를 맡았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시인은 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 문화운동의 산파역을 맡으며 궂은일을 도맡아왔다. 그러면서도 어른 흉내를 도통내지 않았으니 그 원천은 낮은 곳을 향해 열려있던 시인 정신이었다. 그렇게 여러 일에 동부서주 하면서도 시인의 시는 조금도 지치거나 늙지 않았다. 여전히 푸르고 싱싱하다. 지금까지 열여덟권의 시집을 냈고 이주홍문학상과 부산작가상을 받았다. 작품 활동 삼십년에 이만하면 부지런한 소출이다. 그동안 후배 시인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바로 옆의 큰 시인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다. 창작의 고통은 지난하고 그 보상은 늦고 미미한 법이지만 시인은 애초에 그런 보상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2008년에는 혼탁하고 무기력한 지역 시단을 살려보려고 영호남과 제주를 아우르는 엔솔로지 <남부詩>를 창간해 발행을 맡았다. 시인들의 주머니를 조금씩 털었지만 올해 낸 2호는 제작비의 절반이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출판사 <책펴냄열린시>의 부채가 되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 시인의 아내는 하하 웃고 만다. 산과 같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시인도 시인의 아내도 구름보다 높은 산과 같다.
이 땅에도
구름보다 더 높은 산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산에 오르는 것이 구름 위에 오르는 것보다 더 환하게
그리고 날개 단 듯 가볍게 산에 올라
발아래 지나는 구름 바라보면
산새도 부럽지 않은 마음을 열게 이 땅에도
산새보다 더 높이 오를 산이 있어
물은 나를 낮추고 산은 너를 높여 주었으면
좋겠다 그 산에 매일 들어
휘파람으로 새를 불렀으면 좋겠다
아니 그것은 구름보다 더 포근한 산이 하나 있어
높이보다 부피가 더 큰 산이 내 마음에도
하나쯤 꼭 있었으면 좋겠다
- 「구름보다 높은 산 - 연하봉」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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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시인∥
∙ 경남 산천에서 태어나
∙ 1977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공중의 꽃」1979년『현대문학』시 천료(필명 강산청).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조「남해」당선.
∙ 시집으로『칼잠』『불순한 일기 속에서 개나리가 피었다』『쓸쓸한 책상』『이웃 속으로』『황인종의 시내버스』『길 안의 사랑』『놈-철들무렵』『눈물』『뒷강물』『푸른 짝사랑에 들다』『집을 버리다』『산복도로』가 있고,「현대시」씨디롬 시집『블랙커피』. 시조집으로『북창을 열고』『남해』가 있으며, 지리산 연작시집『불무장등』『벽소령』『그리운 치밭목』이 있다.
∙ 월간『열린시』주간, (사)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초대회장을 역임하였고
∙ 현재〈남부시〉편집위원.〈한국작가회의〉,〈얼토시〉회원이며,
∙ <이주홍문학상〉,〈부산작가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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