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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22일 금요일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카시아의 성녀 리타 수도자
말씀의 초대
페스투스 총독은 아그리파스 임금에게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며, 바오로가 임금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다고 이야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으시고는 당신 양들을 돌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예수는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5,13ㄴ-21
그 무렵 13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에게 인사하였다.
14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릭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16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17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다음 날로 재판정에 앉아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18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9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20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21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15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당신을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경상도 남편을 둔 아내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아내가 평소에 사랑 표현에 인색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사랑해’와 ‘안 사랑해’가 살았대. 그런데 ‘안 사랑해’가 죽고 말았대. 그럼 누가 남았게?” 아내는 “사랑해.”라는 말을 기대하였지만, 남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니 뭐 잘못 무긋나?”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요. 사랑의 말은 상처를 낫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 물으시며 베드로에게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것을 세 번의 사랑 고백으로 덮어 주시며 사랑의 실패를 치유하시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시는 것을 넘어, 사랑을 표현하시는 것을 넘어, 사랑을 확장시키는 데로 나아가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 뒤에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사명이 따라옵니다(21,16-17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베드로 사이의 사랑이 그 안에만 갇히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를 넘고, 나의 공동체를 넘어서 심지어 나의 원수에게도 이르러야 합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양들임을 발견하고 돌보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21,15)라고 고백합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데만 머물지 말고, 주님께서 저마다에게 주신 사명을 실천합시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다른 사람 인생은 그 사람에게 맡겨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열두 사도 가운데 오늘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도가 있으니, 바로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왠지 모를 편안함과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는 수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좌충우돌,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으로부터 혹독한 질타도 많이 받았습니다.
네 복음서에는 베드로 사도와 관련된 기사가 상당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끝난 이후부터 베드로 사도의 행적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전해 주지 않습니다. 나머지 행적을 밝혀 줄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없기에, 전승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추정컨데 베드로 사도는 안티오키아, 코린토 등 여러 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다녔을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생애 마지막 시기를 로마에서 보내셨습니다. 네로 황제에 의해 자행된 대박해 때 체포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셨다고 전해집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 사도는 엉뚱하게도 사도단 안에서 언제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경쟁자이자 절친이었던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다시 말해서 요한 복음 사가의 운명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게 몹시 궁금했던가 봅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요한 21,21)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미래에 대해서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하셨던 것처럼, 요한 사도의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호기심을 반기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의 종착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그 사람 운명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잘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 인간 각자는 저마다 지닌 역량이 다르고, 부여받은 사명이 다릅니다. 궁극적인 도착점은 동일하지만, 목적지로 나아가는 길은 조금씩 다릅니다. 요한에게는 요한의 길이 있고,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의 길이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하거나 눈치 보지 말고 당당히 우리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돌아보니 주변 사람들 의식하느라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피곤하게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보고, 다른 사람들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며 살다 보니, 내 삶에 나도 사라지고, 주님도 사라져버린 어색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 인생은 그 사람에게 맡겨야겠습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 인생도 주관하시고 안배하시니 대폭 신경을 꺼야겠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분산되는 에너지들을 대폭 줄여야겠습니다. 대신 내 삶을 좀 더 주도적으로, 좀 더 충만히 살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물’ 이야기를 두 번 하셨습니다. 하나는 루가복음 5장,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하신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복음 21장, 부활하신 예수님이 티베리오 바다에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신 장면입니다. 먼저 루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와 동료들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물은 이미 씻고 있었고, 마음은 지쳐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사실 이 말씀은 어부의 상식과는 맞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해봤고, 자기 전문 분야인데, 지금은 낮이고, 상황도 안 맞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나는 이미 다 해봤다. 더 이상 할 게 없다. 소용없다.” 기도도, 섬김도, 관계 회복도, 이미 노력해 봤지만, 안 된다고 느끼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깊이’보다 ‘의지’입니다. 깊은 데로 가는 것은 방향의 변화이고, 말씀에 의지하는 것은 중심의 변화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얕은 곳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네 믿음의 깊은 데로 나아가라. 상식과 경험만 의지하지 말고, 내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그물을 내려 보라.” 우리가 두려워해서 가지 않던 ‘깊은 곳’은 어쩌면 정직하게 회개하는 자리일 수 있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는 자리일 수 있고, 말씀 앞에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주님이 준비하신 풍성한 ‘어획’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옛 일상, 옛 직업인 고기잡이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황은 예전과 똑같습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한” 자리입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오른편’은 단순히 방향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를 상징합니다. 같은 바다, 같은 배, 같은 그물, 같은 밤이었지만, 말씀 한마디에 순종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됩니다.
우리도 종종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들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직장, 가정, 교회 상황이 좋아져야 뭔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내가 말하는 ‘오른편’으로 그물을 옮겨 보지 않겠니?” ‘오른편’으로 옮긴다는 것은 조금 더 편한 쪽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선택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고집을 고집하는 쪽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같은 가정, 같은 직장, 같은 교회, 같은 일상이지만, 조금만 방향을 돌려 “오른편에” 그물을 던질 때, 그때부터 우리는 “내가 아는 바다, 내가 아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마련하신 은총의 자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예,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3번 하십니다. 베드로는 3번 대답하면서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충분히 아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3번 질문하신 이유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3번 모른다고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반을 충분히 용서하셨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과거의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길은 부귀, 명예, 권력에 있지 않습니다. 희로애락의 세상사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미래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빛으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이 큰 선물을 받은 저희가 굳은 믿음으로 더욱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주님은 오늘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너의 상식과 경험을 넘어, 내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해 보아라.”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머뭇거리던 깊은 데로 나아가게 하시고, 제 중심의 방향을 ‘오른편’, 곧 주님의 뜻 쪽으로 돌리게 하소서. 같은 현실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그물을 내리게 하시고, 그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열매와 기쁨을 보게 하소서. 저의 삶 전체가 주님의 말씀에 걸린 그물이 되게 하소서.”
<나 또한 당신처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
저를
믿으시기에
당신의 믿음을
저의 믿음에
건네시니
당신을
믿기에
저의 믿음으로
당신의 믿음을
품습니다
저를
희망하시기에
당신의 희망을
저의 희망에
건네시니
당신을
희망하기에
저의 희망으로
당신의 희망을
품습니다
저를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사랑을
저의 사랑에
건네시니
당신을
사랑하기에
저의 사랑으로
당신의 사랑을
품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리타(Rita)
신분 : 과부, 수녀
활동지역 : 카시아(Cascia)
활동연도 : 1380경-1457년
같은이름 : 리다, 리따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고원 남단에 위치한 스폴레토(Spoleto) 부근 로카포레나(Roccaporena)에서 태어난 성녀 리타는 어려서부터 수도성소에 관심을 가졌지만 부모의 반대로 말미암아 12세의 어린 나이로 원하지 않았던 결혼을 하여 두 아이를 두었지만 18년간의 결혼생활은 불행하였다.
남편은 어린 아내를 학대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어떤 사람과의 싸움 끝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 후 두 아들마저 죽게 되자 성녀 리타는 카시아의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세 번이나 입회 신청서를 냈지만 미혼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강한 믿음과 인내는 결국 예외를 만들어 1413년 카시아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의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 허락을 받아내었다.
그녀는 지난날의 생활을 반성하며 자신처럼 불우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철저한 고행과 기도생활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녀는 수차례나 환시를 체험하였고, 1441년에는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과 꼭 같은 상처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카시아의 수도원에서 선종한 후 그녀의 성덕과 기적에 대한 평판이 높아져 성녀의 유해를 중심으로 새 성당이 건축되었다. 성녀 리타는 1626년 7월 16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00년 5월 2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봉사한 리타 성녀는 좌절하고 실망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율리아 (Julia)
활동년도 : +5세기경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코르시카(Corsica)
같은 이름 : 줄리아, 쥴리아
전설에 의하면 카르타고(Carthago)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녀 율리아는 불행하게도 에우세비우스라는 시리아 상인에게 노예로 팔렸다. 그녀의 주인은 그녀를 데리고 프랑스 지방으로 가다가 코르시카 섬 북쪽의 케이프 코르소(Cape Corso)에서 하선하였다. 마침 이교도의 축제 기간 중으로 그 섬의 통치자인 펠릭스는 그녀의 주인과 그녀로 하여금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권하였다. 희생제물을 바치면 그녀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제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를 거부하자 펠릭스는 성녀 율리아를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으로 심한 고문을 한 후 십자가형에 처하였다. 그녀는 코르시카의 수호성인이다. 일부 학자들은 성녀 율리아가 한 세기 또는 두 세기 후에 살았던 인물로 사라센족의 침입 때 살해된 것으로 믿고 있다.
성녀 퀴테리아 (Quiteria)
활동년도 : +5세기경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귀테리아, 뀌떼리아
프랑스 남부와 에스파냐 북부의 많은 성당들이 성녀 퀴테리아에게 봉헌되었고, 프랑스 칼뱅파 개신교도인 위그노(Huguenot)들에 의해 그녀의 유해가 뿔뿔이 흩어지기 전까지 잘 보존되어 있던 가스코뉴(Gascogne, 프랑스 혁명 이전 프랑스 남서부의 지방명)의 에르(Aire)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아왔다. 로마 순교록에 그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만 고대 전례력 어디에도 따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성녀에 대한 공경과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었다. 그녀는 에스파냐 갈리시아(Galicia)의 어떤 왕자의 딸로 아버지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결혼할 것을 강요당하자 왕궁을 뛰쳐나와 가스코뉴 교외 에르에 수도원을 짓고 숨어 살았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보낸 수색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그곳에서 참수되었다고 전해진다.
성 보보 (Bobus)
활동년도 : +985년
신분 : 은수자
지역 : 프로방스(Provence)
같은 이름 : 보부스
프로방스(프랑스 남동부의 옛 지방) 지방의 기사였던 성 보부스(또는 보보)는 사라센족이 에스파냐와 아프리카로부터 침략해 왔을 때 용감하게 그들에게 대항하여 싸웠다. 그 후 그는 오랫동안 참회와 속죄의 생활을 하며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는 로마(Roma)를 순례하러 가던 중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파비아(Pavia) 인근 보게라(Voghera)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프로방스와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공경을 받고 있으며 보보(Bobo)로도 불린다.
성녀 후밀리타 (Humility)
활동년도 : 1226-1310년
신분 : 과부,수녀
지역 : 파엔차(Paenza)
같은 이름 : 로산나, 후밀리따, 후밀리따스, 후밀리타스, 휴밀러티
이탈리아의 파엔차에서 어느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난 성녀 후밀리타(Humilitas)는 15세 되던 해에 우골레토(Ugoletto)라는 어느 귀족과 결혼하였다. 결혼 후 두 자녀를 두었으나, 어린 나이에 모두 죽고 또 남편마저 병고에 시달리는 등 많은 고난을 받았다. 이윽고 두 부부는 서로 의논하여 고향 근방의 페르페투아(Perpetua) 수도원에 들어갔다. 남편은 평수사로, 그녀는 평수녀로 입회하면서 후밀리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성당에 딸린 방에서 12년 동안이나 은수자로서 생활하였는데, 발롬브로사(Vallombrosa) 수녀회의 지도하에 극도의 엄격한 생활을 하여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다. 발롬브로사 총장의 제안에 따라 그녀는 몰타(Malta) 섬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수도원을 세웠고, 또 얼마 뒤에는 피렌체(Firenze)에 제2의 수녀원을 세웠다. 그녀는 1310년 5월 22일 피렌체에서 운명하였으며, 로산나(Rosanna)로도 불린다. 그녀에 대한 시성은 1720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이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