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오전 찾아간 현대건설의 싱가포르 주롱섬 석유비축기지(Jurong Rock Cavern 1: ‘JRC1’) 현장. 수직갱도를 내려가는 작업용 승강기에 몸을 싣고 “웅~”하는 굉음과 함께 10여m쯤 내려갔을까.
후텁지근한 바람이 승강기 바닥으로부터 밀려 올라왔다. 섭씨 30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 무릎까지 오는 고무장화와 껴입은 안전조끼 탓에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1분쯤 더 내려가 승강기가 멈추자 해수면 기준 지하 126m 깊이의 땅속 공간에는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현대건설이 짓고 있는 싱가포르 주롱섬 지하석유비축기지의 입구에 해당하는 수직갱도 모습. 지하 126미터 아래까지 이어져 있으며 이곳에 설치된 승강기는 한꺼번에 340명(45톤)을 지하로 내려보낼 수 있다. ◆바다 밑 거대한 지하터널
4차선 도로 너비(20m)에 10층 아파트 높이(27m), 총 길이 11㎞의 거대한 지하 터널이 눈앞에 나타났다. 발파 작업이 끝난 지 얼마 지나서 않아서인지 터널 안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신내음이 진동했다. 폭약이 불완전하게 연소할때 발생하는 암모니아 가스 때문이었다.
벽과 터널 천장은 매끈하게 마무리돼 있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물이 흘러나와 바닥이 질퍽거렸다. 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도 바닷물처럼 짠맛이 났다. 김영 현장소장은 “터널 내부 기온이 30도가 넘는다”며 “바다 밑이라 습도까지 높아 공사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롱섬 석유비축기지는 총 130만㎥(950만 배럴)의 기름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총 1800만 배럴 규모의 ‘JRC1’ 프로젝트 중 일부에 해당한다. 사업비만 6억2700만 달러(약 7200억원)에 달한다. ‘JRC1’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단일 저장고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한국 여수 석유추가비축기지(1700만 배럴)를 뛰어넘게 된다.
현재 300여명이 공사에 참여하고 있고 공정은 11%쯤 진행됐다. 터널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석유를 비축하는 저장공간까지 이어지는 터널과 각종 운영시설이 들어서는 곳까지 갈 수 있는 터널 1.5㎞가 뚫려 있다. 앞으로 지하로 23m쯤 더 뚫고 내려가 석유저장동굴을 만들고 송유관과 운영실 등 내·외부 시설도 건설하게 된다. 지상에는 12만t급 유조선 접안 부두가 들어선다. 공사는 오는 2014년 준공될 예정이다.
▲ 주롱섬 지하석유비축기지 내 현장에서 발파에 필요한 폭약을 설치하기 위한 구멍을 뚫는 '천공(穿孔)작업'이 진행 중이다. ◆물을 이용해 새는 기름 막아
주롱섬 석유비축기지는 바닷속 지하 공간에 건설되기 때문에 기름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름이 유출되면 대형 재난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현대건설은 무엇보다 안전성에 초점을 맞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름 누출을 막기 위해 현대건설이 고안한 공법이 ‘워터커튼(Water Curtain)’이다. 물과 기름은 비중이 달라 서로 섞이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감안해 저장고 주위에 동굴을 파서 물로 채워 넣고 저장고 외부에 압력을 지속적으로 주게 되면 석유가 저장고 밖으로 새지 않는다.
현재 물을 채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저장고 바로 옆에도 터널을 뚫고 있다. 저장고 양옆의 터널이 완성되면 이 터널에서 다시 저장고 위쪽으로 공간을 만들고서 출입구를 막고 물을 채워넣으면 된다. 이 공법을 통해 저장된 석유는 오직 입·출 파이프만을 통해 외부로 드나들 수 있다.
대부분의 지하석유비축기지는 저장고 이외의 시설은 지상에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지하에 운영실 등 관련 시설을 설치한다. 저장고의 대부분이 바다 밑에 있어 지상에 드러난 면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하공간이 직원들이 일터가 되기 때문에 환기시스템, 상·하수도와 전기시설 등 사람이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하에 운영실이 있는 석유비축기지는 거제1차석유비축기지 뿐이다.
김 소장은 “단순하게 석유만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 모자람이 없는 지하공간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 주롱섬 지하석유비축기지 내부 모습. 이 공사는 너비 20미터, 높이 27미터의 지하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현재까지 11%가량 공사가 진행됐다. ◆동남아 최초의 지하 석유비축기지
주롱섬 석유비축기지는 동남아시아에서 최초로 지하에 석유를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 내에서도 관심이 대단하다. 최근엔 셀라판 라마 나단(Nathan) 싱가포르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석유는 대부분 국가에서 전략물자로 취급되기때문에 석유비축기지는 지하에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지하에 비축기지를 만든 이유는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좁은 국토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그동안 매립을 통해 국토를 조금씩 넓혀왔다. 석유비축기지가 있는 주롱섬도 원래 7개의 섬으로 돼 있었지만, 주변 바다를 매립해 하나의 섬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최근 이웃 나라들이 싱가포르를 견제하기 위해 매립용 모래를 수출하지 않아 국토 확장이 난관에 부닥친 것. 이 때문에 지하 공간 개발이 최근 싱가포르의 화두가 되고 있다. 1990년대 말 주롱섬 매립 공사에도 참여했던 현대건설은 이번 ‘JRC1’ 프로젝트를 향후 싱가포르 지하 공간 개발의 교두보로 삼을 계획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번 공사가 끝나면 향후 싱가포르 건설 시장에서 다른 업체보다 한발 앞선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봤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