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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장군봉 주변의 주목,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
고개를 돌아가니 위태로운 길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축 늘어진 회나무와 우뚝 솟은 떡갈나무
가 마치 귀신처럼 서 있었다. 비바람과 벼락을 맞아 꺼꾸러진 나무들이 언덕에 가로놓여 길
을 끊어 놓았고, 그 위에는 눈이 쌓여 길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서 있는 나무들도 억센 바람
과 맞아 싸우느라 그 소리가 허공에 가득 찼는데, 동쪽에서 뒤흔들리면 그것이 마구 일어나
서쪽에서 메아리쳤다. 어두컴컴해졌다가 갑자기 번쩍하며 환해지는 것이 그치지 않았다.
(嶺轉危路轉微。鬅鬙之檜。偃蹇之槲。植立如鬼。其顚倒於風火者。橫岡截路。而雪積糢
糊。植者方闘勁風。其聲滿空。振動于東。勃鬱而西應。陰晦倐閃。無有窮已)
―― 전송열, 허경진 엮고 옮김, 『조선선비의 산수기행』중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의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에서
▶ 산행일시 : 2016년 9월 3일(토), 종일 비, 안개
▶ 참석인원 : 14명
▶ 산행거리 : GPS 도상거리 24.8km
▶ 산행시간 : 11시간 23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28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44 ~ 04 : 53 - 도래기재, 계속 취침, 산행시작
05 : 34 - 임도, 이정표(구룡산 3.92km, 도래기재 1.62km)
06 : 00 - 헬기장, 1,070m봉
06 : 20 - 임도, 아침요기, 이정표(구룡산 1.56km, 도래기재 3.98km)
07 : 00 - 1,240m봉 우회
07 : 26 - 구룡산(九龍山, 1,344.1m), 헬기장
08 : 00 - 고직령(高直嶺)
08 : 37 - 곰넘이재(熊峴), 임도
09 : 15 - 임도 종점
09 : 30 - 신선봉(1,294m)
10 : 50 - 차돌배기
11 : 00 - 각화산, 각화사 갈림길
11 : 45 ~ 12 : 20 - 1,160m봉, 점심
12 : 44 - 깃대배기봉(1,368m)
14 : 00 - 부쇠봉(△1,546.5m)
14 : 20 - 태백산 천제단(△1,560.5m)
15 : 08 - ╋자 갈림길 안부, 이정표(유일사 100m)
15 : 55 - 사길령(四吉嶺) 산령각
16 : 16 - 화방재(花房-), 정거리, 산행종료
16 : 50 ~ 19 : 15 - 태백, 목욕, 저녁
22 : 28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태백산(천제단)에서
2. 사길령 가는 길, 주변의 노거수들이 볼만했다
▶ 구룡산(九龍山, 1,344.1m)
한밤 동서울터미널에서부터 비가 온다. 어차피 올 비라면 어서 오시라 반긴다. 비몽사몽 중
치악휴게소를 들리고 다시 잠깐 달리다 차 엔진소리 멈추니 도래기재다. 새벽 3시 44분. 자
리보전하고 더 잔다. 기상! 그 소리가 박정하게 들린다. 04시 30분이다. 차문 열고 밖에 나서
자 하늘은 시꺼멓고 비는 오락가락한다. 하루 종일 비를 맞을 각오로 스패츠 매고 비옷 입고
배낭 싸고, 비치레 단단히 한다.
도래기재는 옛날에 이곳에 역이 있어서 도역마을이라 불리다가 도래기재로 변음됐다고 한
다. 다른 이름으로는 도력현(道力峴)이라고 한다. 예언서 정감록 비결에 “계룡시대가 열리면
(…) 태백과 소백 사이에 예전에 행세하던 양반들이 다시 일어날 것이니, 후세사람으로 조금
이라도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자손을 태백 소백 사이에 깊이 숨어 살게 함이 좋으리라. (鷄龍
開國 (…) 大小白之間 舊班復古 後人稍知覺者 深藏子孫 於大小白之間可也)”고 하였다.
즉, 정감록에서 일컫는 태백산과 소백산의 사이는 이 도래기재와 그 부근을 말한다. 도래기
재는 경북 동해안과 내륙을 거쳐 경기도와 서울 등지를 잇는 보부상들의 이동통로이기도 했
고 주변의 금광 개발로 타지 사람들이 몰려들어 융성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도래기재가
이제는 겨우 백두대간 종주하는 이들의 들머리 날머리 구실할 뿐이다.
도래기재에서 서쪽은 옥돌봉으로, 동쪽은 구룡산으로 간다. 맨눈에 이정표가 없으면 헷갈리
기 쉽다. 풀숲에 젖은 빗물을 누가 앞장서서 털며 나아갈 것인가? 내가 나서면 주책이라고
할 것. 여럿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당연히(?) 메아리 대장님이 나선다. 숲길 돌아 데크계단을
오른다. 내 눈이 침침한 것은 안개가 끼어서다.
안개 속 비추는 손전등이 영락없이 영화 ‘스타워즈’ 제다이의 광선검이다. 광선검 휘둘러 나
무숲 헤치며 간다. 날이 맑다면 따분하기 짝이 없을 백두대간 탄탄대로를 그나마 날이 궂으
니 낯선 산길처럼 간다. 구룡산이 도래기재에서 옥돌봉 오르듯 잠깐 힘쓰면 될 줄 알았는데
봉봉을 오르고 내리는 상당히 먼 능선 길이다.
사방 둘러 아무 볼 것이 없어 막 간다. 임도가 나온다. 휴식. 비 오는 것이 영 시원치 않아 우
장을 거둔다. 임도에서 한 피치 오르면 960m봉, 다시 한 피치 오르면 △985.5m봉이다. 미처
삼각점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넘는다. 바람이 불면 안개는 골짜기로 피했다가 바람이
그치면 다시 몰려들곤 한다. 숲속은 어둡지만 공제선이 환한 것은 여명이 밝아서다.
1,070m봉은 헬기장이다. 완만하고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줄달음한다. 구룡산 전위봉인
1,240m봉이 점차 장대한 거벽으로 다가오고 뚝 떨어져 바닥 친 안부는 임도가 지난다.
임도에 파고라 설치한 쉼터가 있다. 아침 요기한다. 목 추기려 아침 반주한 탁주 한잔이 어지
럽다. 저질러 힘들게 산을 간다. 등로는 절개지 석축 왼쪽 옆으로 풀숲 헤치면 데크계단이
나온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땀난다. 등로는 1,240m봉 오른쪽 어깨를 넘는다. 많이 약해졌다. 1,240
m봉 정상을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가다니 …. 1,240m봉을 넘으면 바로 구룡산이려니 했는데
멀었다. 공제선이 세 차례나 뒤로 물러난다. 그러고 구룡산 정상. 너른 헬기장이다. 사방 나
무숲 빙 둘러 맑은 날이라도 조망은 트이지 않는다.
구룡산의 유래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여 구룡산이라 하는데,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
고 오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 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흥미로운 얘기가 나온다. 명나라 사람 용수
(用修) 양신(楊愼)의 『단연록(丹鉛錄)』이라는 책에,
“용은 용이 되지 못할 새끼를 아홉 마리 낳는다. 첫째, 비희(贔屭)라고 불리는 놈은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으며 무거운 것을 잘 짊어진다. 지금 비석의 바탕돌로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것이 이놈이다. 둘째, 치문(鴟吻)이라고 불리는 놈은 그 성질이 멀리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지금 지붕의 용마루에 올려놓은 놈이 그놈이다. 셋째, 포뇌(蒲牢)라고 불리는 놈은 성질이
울기를 잘한다. 지금 종을 매다는 꼭지 부분에 새기는 놈이 그놈이다.
넷째, 폐안(狴犴)이라 불리는 놈은 모양이 범처럼 생겼다. 이놈은 감옥의 문에 세운다. 다섯
째, 도철(饕餮)이라고 불리는 놈은 성질이 먹는 것을 탐낸다. 그놈은 솥뚜껑에 새긴다. 여섯
째, 팔하라고 불리는 놈은 성질이 물을 좋아해서 다리 기둥에 세운다. 일곱째, 애자(睚眦)라
불리는 놈은 죽이기를 좋아하므로 칼자루에 새긴다.
여덟째, 금세(金蛻)라 불리는 놈은 모양이 사자처럼 생겼고 성질이 연기와 불을 좋아한다.
향로에 새기는 놈이 그놈이다. 아홉째, 초도(椒圖)라 불리는 놈은 모양이 소라․조개처럼 생
겼고 성질이 닫기를 좋아해서 문고리에 세운다.”
라고 하였다.
3. 구룡산에서 고직령으로 내리는 길,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4. 구룡산에서 고직령으로 내리는 길
▶ 신선봉(1,294m), 깃대배기봉(1,368m)
구룡산에서 내려가려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시원하다. 얼굴 들어 맞는다. 고직령 가
는 길. 완만한 내리막에 울창한 숲길이다. 안개 속 풍경이 농담의 대폭 산수화다. 지난겨울에
보던 설경과는 또 다른 운치다. 1,308m봉을 의식하지 못하고 넘는다. “비바람과 벼락을 맞아
꺼꾸러진 나무들이 언덕에 가로놓여” 넘고 넘는다.
고직령은 ‘매우 높고 가파르다’는데 능선에서는 야트막한 안부로 넙데데하다. 1,200m대 봉
우리들을 넘는다. 등로는 능선 마루금 왼쪽 사면으로 임도처럼 났다. 마치 둘레길을 트레킹
하는 기분이다. 길섶 투구꽃의 다부진 모습에서 힘 받는다. 안부는 임도가 지나는 곰넘이재
다. 예전에는 웅현(熊峴)이라고 했다. 이 고갯길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를 들어가는 중요한 길
목이었으며, 특히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가는 관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임도는 당분간 나지막한 봉우리들을 넘으며 능선 마루금을 간다. 그렇게 20분쯤 잰걸음 하
면 임도 종점이고 가파른 소로가 이어진다. 무덤이 나오고 산죽지대를 지난다. 비는 잠시 그
쳤지만 산죽 잎에 고인 빗물을 털며 가야 하니 아까 온 비를 고스란히 소급해서 맞는 셈이다.
신선봉이 첨봉이다. 목재계단을 밧줄 잡고 오른다.
신선봉. 산정에 처사 무덤 한 기가 자리 잡았다. 신선봉에는 으레 암봉에 노송이 있기 마련인
데 여기는 참나무 울창한 육산이다. 춥도록 오래 휴식한다. 30분. 백두대간 길은 수많은 표지
기들이 안내한다. 남동진하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골골에
는 안개의 유희가 한창이다. 1,154m봉 살짝 내렸다가 펑퍼짐한 능선을 숨 가쁘게 오르면 석
문동 갈림길인 차돌배기 쉼터다.
이곳에 차돌이 박혀있었다고 하여 차돌배기라 한다. 지금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차돌은 보이
지 않는다. 여기가 점심 먹기에는 명당인데 시간이 너무 이르다. 조금 더 간 각화산 갈림길쯤
에서 먹자고 한다. 메아리 대장님, 영희언니와 모닥불 님이 앞장서고 마초, 소백 님과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어련히 마땅한 장소가 나오면 자리 잡고 기다리겠지 하고 부지런히 뒤쫓아
갔다.
환청인가? 분명 앞에서 수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리는데 가도 가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
쳐서 선두를 더는 쫓아가기 힘들어 1,160m봉에서 주춤하다가 일단의 반가운 등산객들을 만
난다. 메아리 대장님의 친형인 ‘덕칠이’ 산악회 허공 대장님과 그 일행이다. 기이하게 그들과
우리의 산행코스가 똑 같다. 그들은 도래기재에서 우리보다 1시간 먼저 출발했다. 앞으로 화
방재까지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갈 것이다.
허공 대장님은 우리 선두가 지나가는 걸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앞서간 줄로만 알았던 선두는
각화산 갈림길에서 예전의 향긋한 더덕 손맛을 또 느끼려 풀숲에 들었다. 1,160m봉에서 등
로 차지하여 점심 먹는다. 타프 치기에는 어정쩡하게 오는 비다. 그래도 춥다. 뜨뜻한 라면
국물로 한속 덥힌다. 식후 상마담이 내는 커피가 냄새 먼저 구수하다.
이곳 등로 옆의 (구룡산과 부쇠봉간) 숫자 이정표(5-11 등)는 300m 간격이다. 줄어드는
숫자에 300m를 곱하여 남은 거리를 계산한다. 오르막길에서는 어쩐지 그 간격이 더 벌어지
는 것 같다. 오르막이 멈칫하여 경상도와 강원도의 도계인 깃대배기봉이다. 경상도에서 세운
정상 표지석이 있다. 원래는 안개가 연기처럼 보여서 백연봉(白煙峰)인데 일제시대 측량하
느라 깃대를 꽂아서 깃대배기봉이라 한다.
5. 곰넘이재에서 잠시 휴식
6. 투구꽃, 산행 내내 투구꽃과 동무했다
7. 차돌배기, 점심 먹기에는 명당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일렀다
8. 차돌배기
9. 농담의 동양화 속을 걷는다
10. 농담의 동양화 속을 걷는다
11. 깃대배기봉에서
12. 깃대배기봉 주변의 수풀도 걷기 좋다. 가을 냄새가 난다
13. 깃대배기봉 주변의 수풀도 걷기 좋다. 풀숲은 물구덩이라 헤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부쇠봉(△1,546.5m), 태백산 천제단(△1,560.5m)
강원도 땅에 들어가면 강원도에 세운 깃대배기봉 정상 표지석이 있다. 깃대배기봉에서
1,354m봉까지 울창한 숲길은 특히 아름답다. 숲을 감상하시라 했음인가 데크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빗속 안개 또한 정취다. 가을 냄새가 물씬 난다. 평탄한 등로에 이어 부쇠봉 오름길
이다. 부쇠봉을 우회하는 ┫자 갈림길에서 아무렴 직등한다.
등로에 거목의 산돌배나무가 있어 그 주위로 산돌배가 무수히 떨어졌다.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 그 담금주를 의심해서인지 아무도 줍지 않았다(지나치고 보니 아깝기 짝이 없다). 이러
한데 가지 축축 늘어지게 다발로 달린 마가목 열매도 건드리지 않는다. 너덜 길 오른다. 데크
전망대가 나온다. 만천만지한 안개로 막막하다.
부쇠봉 정상 표지석 옆에 삼각점이 있다. 2등 삼각점이다. 태백 24, 2004 복구. 부쇠봉은 단
군의 아들인 부소(扶蘇)에서 따왔다고 하고, 이 산에 불을 지필 때 쓰는 부싯돌(부쇠)이 많
아서 ‘부쇠봉’이라는 설도 있다. 태백산 천제단에 붉은 글씨로 쓰여 있는 ‘한배검’은 단군의
다른 말인 점에 비추어 보면 전자일 공산이 크다.
부쇠봉 정상 내려 너른 헬기장 주변은 산상화원이다. 과남풀, 쑥부쟁이, 투구꽃이 경염한다.
원로(園路)를 마냥 걷다보니 문수봉을 가고 있다. 뒤에서 외쳐 불러 뒤돈다. 등로는 수로다.
첨벙첨벙 걷는다. 부쇠봉 우회길과 만나고 잠깐 평탄하다가 제단 지나 한 피치 바짝 오르면
태백산 천제단이다. 태백산 정상 표지석은 언제 보아도 단아하다. 태백산의 위상에 썩 잘 어
울리는 글씨이고 표지석이다.
김장호의 『韓國名山記』‘태백산’의 서두이다.
“아, 지금쯤 태백산(1,566.7m) 정수리에 올라서서 내다보면 눈에 덮인 아아(峨峨)한 산줄
기, 그 너머로 시퍼렇게 출렁대는 동해바다, 그리고 거기 보란 듯이 새해는 솟아오르고 있겠
지. 그 태백산 그렇다. 추가령 지구대를 목으로 하여 금강 ‧ 설악 ‧ 오대 ‧ 태백 ‧ 일월로 이어지
는 척량산맥(脊梁山脈)이 한반도 등줄기라면, 태백산은 그 앉음새부터 한반도가 그 허리를
쓰도록 육중하게 박혀있는 꼴이 된다.”
고려 후기 문신인 근재 안축(謹齋 安軸, 1282∼1348)의 「등태백산(登太白山)」의 일부다.
태백산 하면 세인의 입에 회자되는 시다.
긴 허공 곧게 지나 붉은 안개 속 들어가니 直過長空入紫烟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네 始知登了最高顚
둥그렇고 밝은 해가 머리 위에 나직하고 一丸白日低頭上
사면의 뭇 산들이 눈앞에 내려앉았네 四面群山落眼前
14. 휴식, 서성일 뿐이다.
15. 등로 주변의 마가목 열매
16. 등로 주변의 마가목 열매, 비가 오는 덕분으로 살았다
17. 투구꽃
19. 태백산 정상 표지석, 글씨가 단아하다. 이렇게 멋진 글씨를 보면 기분이 좋다.
21. 태백산 천제단
22. 2012년 1월 4일의 천제단
오늘은 안개에 가려 이도 저도 아니다. 여기서 옛 악우인 주유천하 님을 만난다. ‘덕칠이’ 일
원으로 왔다고 한다. 제주도 불로초를 드셨음인가 신수가 예전보다 훤하다. 화방재까지 반갑
고 즐거운 동행한다. 장군봉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인 주목을 자세히 살피고 너덜 대로를
쭉쭉 내린다.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유일사(100m)로 내린다. 우리는 직진한다.
조망 좋을 암봉은 다 무망이다. 노거수 울창한 숲길을 지난다. 잠깐 햇살이 숲속을 파고든다.
나뭇가지에 맺힌 빗방울이 보석처럼 빛난다. 1,182m봉 내리면 사길령이다. 고갯마루에 산령
각과 안내판이 있다.
“이곳 태백산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높고 험하기로 유명하였지
만 가장 가깝게 강원도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기에 길손의 왕래가 많았고, 특히 보부상들이
수십 혹은 수백 명씩 대열을 이루어 계수(稧首)의 인솔 하에 넘어 다녔다.(…)”
오른쪽 임도 따라 내린다. 사길령매표소가 나오고 우람한 자연석의 사길령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뒤면에 사길령의 유래를 새겼다. 사길령은 ‘새로 낸 고개’, 즉 새길령의 향찰식 표기
가 아닐까? “신라시대에 태백산 꼭대기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어 천령(天嶺)이라 했는데 높
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새로이 길을 낸 것이 사길령이다.”
여기서 풀숲 길 직진하면 화방재이고, 오른쪽 브로콜리 재배단지 농로 따라 내리면 화방재
바로 아래 정거리다. 거리는 비슷하다. 몇몇은 화방재로 내리고 다수는 정거리로 내린다. 산
행종료. 아직 한낮이다.
(부기) ‘덕칠이’ 산악회 허공 대장님을 만난 것도 기연이지만 제주도에 있을 주유천하 님을
만난 것은 뜻밖이다. 반가움을 이대로 끝낼 수야 없지 않느냐 하고 저녁 음식점을 함께 잡았
다. 오늘은 작황이 좋지 않아 더덕 4수뿐이었으나 가두리 더덕의 비린내를 없애기에는 충분
했다. 우리가 대접할 것이 생더덕주 말고 달리 있을까? 오랜만에 대취했다. 그런데 술값이며
음식 값을 주유천하 님이 계산해버렸다. 몸싸움이 능하지 못했다. 감사하고 이러하매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23. 장군봉 주변의 주목
24. 2012년 1월 4일 같은 장소, 함백산을 넣으려고 각도만 약간 달랐다
26. 노루궁뎅이버섯, 저녁에 삼겹살 불판에 구워 먹었다
27. 사길령 가는 길, 햇살이 잠깐 들어 나뭇가지에 맺힌 빗방울이 보석처럼 빛났다
28. 사길령 산령각
29. 화방재, 정거리 가는 등로 주변
30. 사길령 표지석, 사길령은 예전에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