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방학/윤은성
침대 밑에 들어간 고양이는 한참을 나오지 않고. 옆집에서는 방언 기도 소리가 들려.
나는 아직 네가 꾸는 잠에서 나오지 못한 것 같아.
여기서 들여다보았어. 커다란 솥 같은 얼굴의 여자가 있었어. 우편물이 놓이는 소리
없이. 국물이 졸아드는 냄새 아직 없이.
자동차 시동이 꺼지고, 상점들이 닫히고.
내가 모르는 날개의.
솥을 휘젓는 여자들의.
긴 겨울, 눈이 내리고 녹아 발이 어는 광장의.
풀렸던 바닥이 다시 얼고
뜨거운 물에 담근 손을
들여다보는 저녁의.
물을 틀어둔 채
고양이를 부르다가 만 채
전화기 놓은 곳을 떠올리려는 사이.
한번 다녀가세요. 이번 겨울에는 나의 도시에 한 번 다녀가세요. 끓던 솥이 다 식고, 이
제는 그 안에서 얼굴을 감싸 쥐고 숨은 작고 어린 나의 신. 이번 마지막 추위 때는 창문을
모두 닫게 될 테니까. 나 역시 영원한 우리의 잠 속에서 깨지 못할지 모르니까. 서로를 부
르면서 얼굴을 닦아주고 이불을 덮어주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나보다 오래 산 사람들이 고양이보다 빠르게 영원보다 오래오래 움직임을 멈추었다는
생각.
옆집
방언이 오늘은 잘 들려오지 않고.
내 방 전등 빛 명도가
조금 달라졌고.
*
홍차와 과자를 샀네. 단 하나의 잔이 깨질까 봐
일곱 개의 잔도 샀네.
널어둔 이불을 걷고
신을 부르다가 거리를 보면 배가 고파지네.
나는 아직 모르지.
솥에서 나와서 솥을 들고 골목으로 나가
내리는 눈을 미래처럼 담아두는 방법을.
귀 기울여
7월의 아기 옹알이하는 소리에
집중하는 방법을.
서늘한 옷자락 무늬의 숨소리들 없이
잠이 드는 방법과
스스로 빛이 된다거나
빛을 찾아 손가락을 움직이는 방법을.
멀리
난간 위의 아이들이
서로를 원망하는 마음 없이
고양이를 따라서 함께 뛰어내리는
저녁.
부르지.
질문하는 방법을 잊었다가
입 없는 모양 대신
벌어진 살갗의 모양들을 보면서.
내가 갖고 태어난 게 날 선 칼이 아닌
부드러운 살이었구나 하면서.
소리 없이 부르지.
부드러운 살갗의 무늬들로 부르지.
부르고 있는 나와
이제 막 발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헝클어진 머리의
그저 얼굴을 덮고 있는 네가 있지.
얼굴이 자신의 손에 덮여 있는.
작고 지저분하고
한때 내가 서랍에서 꺼내준 적 있는
살굿빛 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나와 어디든 같이 숨고
뛰어내릴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