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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음주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균형을 잃고 운전학원 사무실로 돌진해서 사무실 앞에 앉아 있던 다섯 살 난 소녀를 덮쳤지만 다행히 소녀는 큰 부상없이 기적적으로 멀쩡하게 일어나는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2023년 1월 29일 브라질 서부 마투그로수두술주의 보니토의 운전학원 사무실 앞에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던 다섯 살 소녀 마리아 루이자는 갑자기 돌진한 검은색 승용차에 부딪쳐 몸이 날아갔지만 무사했다고 데일리메일 등 브라질 언론매체가 1월 30일 보도했습니다.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니 술 취한 운전자가 타고 있던 승용차가 주행 중 갑자기 균형을 잃고 왼쪽으로 급회전하면서 달려오던 오토바이와 충돌했고 육십 세 오토바이 운전자는 바닥에 고꾸라졌습니다. 이어서 승용차가 운전학원 사무실을 덮쳤고 유리창이 박살났습니다. 커다란 화분뒤에 앉아 놀고 있던 소녀는 화분과 함께 몇 미터를 날아갔습니다. 사망이나 치명상을 입을 만한 사고였지만 마리아는 곧바로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품에 안겨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운전학원 사무실 바로 옆에서 냉장고 사업을 하는 마리아의 아버지는 “방금 일을 끝내고 잠깐 앉아 쉬고 있는데 순식간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딸이 X레이와 CT 촬영을 했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며 “마리아는 깨진 유리조각에 긁혀 약간의 외상만 입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라는 소녀가 구사일생 살아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석 달 전 타고 있던 차가 음주 운전차에 들이 받쳐 머리를 26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현장에 급파된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해 음주 테스트를 한 결과 음주운전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경찰 대변인은 운전자가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운전했다고 시인하면서 사고 순간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사고 순간 운전자가 졸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승용차와 충돌한 오토바이 운전자는 가슴 통증과 대퇴골 골절 의심 증상으로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정말 죽음의 위기속에서 살아나게 된 이 시간을 보면서 언론에서는 구사일생의 기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속에서 이렇게 당연히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속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기적같은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이 계속 이어지면서 죽을 상황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죽음의 영혼, 죽음의 육체..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떨어질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오늘 본문에서 선지자 아모스가 선포하는 살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제대로 발견하여 정말 영혼이 살고 육체가 살아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살아나는 인생이 되기 위해 첫째, 능력의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아모스 5장 8절입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아모스 5장 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라고 부르십니다.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께서 수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셨고 요구하셨고 명령하셨던 하나님의 중요한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준행하는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께 있어 백성의 거룩한 삶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고 공의를 땅에 던졌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시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향해 품은 뜻에 대해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은 내팽개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개역개정판 성경은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판 성경에는 “공의를 쑥으로 바꾸며, 의를 땅에 버리는 자들아”라고 번역합니다. 여기 나오는 “정의”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입니다. 의미는 ‘공의, 공도, 공평, 정의’ 등인데 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곧 모세 율법이 지향하는 윤리적 실제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즉 율법을 주시고 율법의 모든 요소를 편견없이 공정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쓴 쑥으로 바꾸며’라고 할 때 ‘쓴 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아’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쓰던 개역한글판성경에서는 이 쓴 쑥을 ‘인진쑥’으로 보고 ‘인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쓴 쑥”이라는 단어는 “쓰디쓴 고통, 고난, 환란”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또한 “공의를 땅에 전지는 자들”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나흐”는 “던지다, 버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세상은 공의와 정의가 바로 지켜질 때에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는데 이런 것이 없어지면 지켜지지 아니하면 인간에게는 고통과 슬픔뿐입니다.
8절에서는 우리가 분명히 발견하고 살기 위해 찾아야 할 존재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하나님의 능력을 한 번 보십시오. 8절에서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묘성”은 히브리어로 “카마”라는 단어인데 “무더기, 송이, 한 덩어리, 무리 묘성, 북두칠성”등의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플레이아데스”라고 쓴 것으로 보아서 이 묘성은 많은 별무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에 널리 퍼져있는 큰 별과 작은 별을 묶음으로 만들 때 이 “묘성”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히브리어 “케씰”이라는 단어가 쓰여진 것을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삼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아마 “삼성”은 히브리어로“케씰”인데 “살지다, 뚱뚱하다, 비대하다”을 뜻하는 “카쌀”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어 별자리의 이름으로 쓰이며 “삼성”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만드시며”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 히브리어는 “아사”입니다. “노동하다, 생산하다, 만드시다”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전체의 별들까지 질서와 조화를 이루도록 자리를 지정하시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오늘 본문 아모스 5장 8절에서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뒷부분을 보시면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며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나 날씨 자연환경을 주장하시고 모두를 다 일순간에 다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아모스 5장 8절에 기록된 이 능력의 하나님을 보시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말 능력의 하나님, 우리의 모든 삶을 한 순간에 바꿔놓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인생역전”이라는 단어를 쓰며 진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고 뭔가 특별한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뭔가 특별한 능력을 힘입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 하나님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통해 우리가 변화되어지고 우리의 삶에 은혜가 임하는 것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이런 능력을 말씀하시면서 오늘 본문 아모스 5장 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5장 8절 끝부분만 큰 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오늘 본문보다 앞부분인 아모스 5장 4절과 5절에서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 나아가지 말라’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거나, 나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나의 동의도 받지않고 함부로 일을 처리하면 기분이 나빠질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 사람을 불러서 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너 내가 우스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나 본데 너 나한테 한 번 혼나 볼래?”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도 이러한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교만하게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을 완전히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사람도 같은 사람에게서 이렇게 기분 나쁠 때가 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하고 죄악된 인간을 대하실 때에는 얼마나 더 기분이 안 좋으시겠습니까? 믿음이 없거나 얕으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자들이 세상을 자기 맘대로 주관하며 사는 것으로 보며 권력자들을 두려워하며 권력자들에게 아첨하겠지만 믿음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역사와 시간을 주관해가신다는 것을 믿고 깨달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존재앞에서 바른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창조의 역사를 믿습니다. 창조신앙은 단지 세상이 만들어지고 형성된 것에 대한 정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은 결코 인간들이 소유할 수도 없고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시고 이루실 것임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창조신앙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고 오늘의 찬송처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고백하며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앞에 하나님의 뜻앞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힘들어지고 복잡해지고 어두워질수록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 속에 자꾸 침체되어 살아가기보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주님 창조의 능력을 더욱 더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움의 현실을 이겨내는 믿음의 힘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살기 위해서 찾고 경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역사라는 것을 께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며 살아나는 위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살아나는 인생이 되기 위해 둘째,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아모스 5장 13절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사회가 혼란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든 시기에 우리는 종종 “때가 악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보통 그 시기의 사회현상을 보면 부정직하고 정의는 무너지고 희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이 이런 시기를 경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지금 읽은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입니다.
히브리어 ‘사칼’이라고 쓰여지고 우리 개역 개정판 한글성경에는 “지혜자”로 번역된 단어는 “분별력이 있는 자, 신중하게 행동하는 자, 지혜롭게 행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능숙한, 숙련된, 재간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잠잠하나니”라고 번역된 말의 히브리어는 “다맘”입니다. “침묵하다, 고요하다, 조용히 하다, 멈추다, 중단하다, 잠잠하다”입니다. 또한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입니다. “학대하다, 징벌하다, 악행하다”을 뜻하는 “라아”에서 유래되었는데 “나쁜, 사악한, 해로운, 유해한, 불의한, 잘못된”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악한 때’라고 아모스서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사회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세상에 악이 만연하고 온갖 불법이 자행되는데도 ‘지혜자는 잠잠하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니 세상은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게 따져보자면 이 세상이 다시 살아나고 좋은 세상으로 변화되고 우리의 인생에 희망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지혜자가 일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여집니다. 세상이 좋게 변화되기 위해서는 현자와 지혜자, 권력자들이 세상에 대한 책임있는 행동을 하고 활동해야한다는 뜻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자는 단순히 어떤 감각을 가진 현자, 어떤 세상을 꿰뚫어보는 지혜를 가진 육신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11장 2절입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아모스가 사역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압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며 세상을 살아갈 때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아모스에 기록된 내용대로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는 내용을 보면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정직을 싫어하고 의인을 학대하며 돈만 생기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불의에도 무감각하고 사회구조적인 불의에 대해서도 그것이 관습, 관례라고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행하였습니다. 최근 인도에서 일어나는 여러 성폭행사건을 보십시오. 백주대낮에 시내버스에서 일어나는 여성강간등의 일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인도라는 사회에서는 계급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면서 이런 일에 대해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회구조적 범죄들을 보게 됩니다.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회구조적 통념속에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변화시킬 존재는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며 적용해야 할 것은 그래 지혜있는 사람을 모으고 법을 바꾸고 구조를 바꾸고 행정을 바꿔서 사회를 변화시켜 보자라는 식으로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는 그런 시도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결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난 주 저와 사모, 저희 부부는 베트남 호치민시로 노회에서 개최한 교역자 부부수양회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저희 부부가 탑승한 버스에서 우리를 가이드해주신 선교사님과 참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 분이 들려주시는 베트남 역사와 베트남 사회구조, 베트남의 선교정책에 대해 들으면서 참 많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베트남은 월남전으로 인해 공산화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월남전 이전에 오래전부터 1차 인도차이나 전쟁, 2차 인도차이나 전쟁등으로 불리는 독립전쟁과 남북전쟁등 수십년간 전쟁으로 고생했던 역사를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의 시도를 하고 온갖 사회구조를 바꿔보려는 노력을 했던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뭐냐면 인간이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던 지상낙원은 절대 만들어질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민주주의가 좋다고 해도 최고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강해지면 돈이 최고가 되고 물질만능주의가 되고 돈이면 다 된다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속에서 그런 이상적 사회는 인간 본성으로는 완전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이사야 28장 29절입니다.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경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하나님의 신비로움입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이 세상이 암담하고 세상이 불안하고 세상에서 희망이 없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인생이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지혜자가 일하셔야 합니다. 세상의 유일한 지혜자, 세상의 완벽한 지혜자,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의 삶가운데 역사하셔서 모두 살아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살아나는 인생이 되기 위해 셋째, 하나님의 선대로 행해야 합니다.
아모스 5장 14절입니다.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살려면”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하야”입니다. “생명, 생존, 보존”등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선”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토브”입니다. “좋다, 선하다, 훌륭하다, 올바르다, 즐겁다”라는 뜻입니다. “구하다”라는 동사의 히브리어는 “다라쉬”입니다. “문지르다, 치다, 밟다”라는 뜻인데 하나님을 뜻을 쫓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라는 말에서 “악”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라”인데 “학대하다, 징벌하다, 악행하다”을 뜻하는 “라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쁜, 사악한, 해로운, 유해한, 불의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하지 말라”는 히브리어로 “알”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없음, 헛된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아모스 5장 4절과 6절에서는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라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악한 것을 버리고 살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선을 구하라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오늘 본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5장 1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여기에서 “만군”이라는 표현의 히브리어 단어는 “차바”입니다. “군대, 무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무리, 세상의 모든 군대의 지휘관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 듯이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엘로힘”이고 이것을 헬라어로 바꾸면 “데오스”입니다. 영어로는 대문자 G를 쓰는 “God”입니다. 번역하면 “신, 참된 하나님, 절대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여호와”는 그 하나님의 고유 명칭입니다. 히브리어로 “예호바” 영어로는“LORD”라고 표현되는데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히브리어로는 네 개의 자음 “요드 헤 바브 헤”로 이뤄져있지만 정확한 발음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교회와 교단마다 “야훼” “여호와” 등 다르게 부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유대인들이 십계명 중 제 3계명을 엄격히 지키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전 300년경부터 모음을 붙인 이름을 발음하지 않기로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어쩔 수 없어 불러야 할 경우는 “주님”을 뜻하는 “아도나이”로 부르고 그 의미를 ‘전능하신 통치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에서 선지자 아모스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모든 군대를 창조하신 분으로 모든 군대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며 모든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우라고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가 선지자로 이런 선포를 했습니다.
미가 6장 8절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살기 위해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선이 어떤 선인지 분명히 알고 우리의 정의가 어떤 정의인지 분명히 알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선한 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선할 수 없습니다. 내가 정의로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선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자기가 정직하고 자기가 공정하고 자기가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봤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인생,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모스와 미가 선지자는 분명히 선포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정의를 행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경험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이 내 속에서 주인되어 주셔서 우리가 선한 인생, 정의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우리가 생명있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생명있는 인생은 즐거운 인생, 희망있는 인생, 행복한 인생, 기쁨이 넘치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내 감정이 즐겁고 내 삶이 어느 정도 희망이 있고 하루하루 살아가며 내 느낌으로 행복을 느끼니 내가 기쁜 일이 많으니 생명이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생명의 전제, 참 복된 인생의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삶이요,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삶입니다.
살아있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발견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속에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구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살아있는 삶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기쁨이 넘치는 생명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정말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속에 임하셔서 우리의 인생 기준이 바뀌고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우리의 말투가 바뀌고 우리의 행동이 바뀌고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 정말 생명의 인생, 살아있는 인간으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