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삼성역에서 막걸리 잔 앞에 놓고 이유식 선배님과 구자운 박사 만났다. 그 자리에서 허유 선배님과 박용수 선배님 타계 소식을 들었다. 남강문학회는 조직은 있되 사이트에 소식 전하는 분이 없어 허전하다.
진주고가 낳은 천재시인 허유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공인회계사.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삼일회계법인 고문을 역임했다. 허유 시인은 1958년 서울상대 재학 중에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낙재기중(樂在其中)'이 당선되고, 시집으로『우리 김형에게』,『자본주의 하늘 밑에서』가 있다.
詩碑는 고성 남산공원에 있으니, 고성예총은 고성 남산공원에 문학동산을 꾸며 시비를 세우고 2011년 4월 그 제막식을 가졌다. 작고 시인으로 최계락, 최재호, 서벌, 이문형 시조시인이 있고, 생존 시인으로는 김열규, 허유, 김춘랑, 선정주, 정완영 이렇게 모두 아홉 분 시비를 세웠다.
살아생전 몇 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2009년 11월 남강문학 창간호 출판기념회에 참석키 위해 서울팀 일행이 진주에 내려가서 중앙로터리 옆 오복식당에서 건배할 때다. 모두가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남강물로 만든 막걸리에 감회가 깊었을 것이다. 이때 허유시인이 녹이 새카맣게 낀 골동품 라이터 하나 꺼내더니 모두 보란 듯이 담배를 한대 척 붙인다. 그리고는 이 지포라이타는 1968년부터 쓰던 것이니 오십년 접어든 물건이라며, 라이타에 영어로 자작시가 새겨진 이 놈을 본인의 관에 함께 묻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소리 듣고 몇 사람은 그걸 진주 문인문학관(아직 미 착공)에 보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 지포라이터 어디 묻혔을지 궁금하다.
자칭 이유식 평론가와 거사와 구자운 박사를 남강문학회 3 총사라 부른다. 그날 인사동 '제비가 물고 온 박 씨'에 허유 박용수 두 시인을 초대 손님으로 모시고, 강남구, 안병남 두 작가도 모셨다. 이날 허선배님은 감회가 새로운지, 옛날 김진홍 행장 부인 소설가 한무숙 집 안방에 무단침입하여 양주 마신 이야기, 친구 정공채 시인, 하동의 작사가 정두수 이야길 털어놓았다. 또 58년도에 문학상으로 회사원 월급에 해당하는 상금 3천 원을 받아 고급 라디오 산 이야기, 한무숙의 집에 기숙하고 있던 천상병 시인에게 술 얻어먹은 이야길 되풀이 되풀이로 몇 번씩 읊었다. 천상병이 원래 가난해 자주 돈 빌려준 허유 선배님이 문단에서 술 얻어먹은 유일한 존재였다고 한다.
지금 진주는 형평운동 농민궐기의 발상지로 이야기 된다. 그들은 허유 시인의 시, '진주'에 나오는 싯귀,
‘새벽잠 끝에 정수리에 퍼붓는 냉수 한 바가지/ 우리나라 정수리에 퍼붓는 냉수 한 바가지/ 진주에 와보면/
그렇게 퍼뜩 정신이 들고 마는 것을 안다’라는 구절을 잘 인용한다.
허유 시인은 남강문학 인사동 모임에 개근했다. 문인답게 막걸리를 즐기어, 매번 모임 장소에 가면 허선배님이 먼저 오시어 잔 기울이고 계셨다. 아마 문우 만나길 기대하며 일찍 나오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우회 안방 마담 안 모 씨 맘에 안 들던 모양이다. 먼저 와서 술 시키지 말라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랬더니 그게 맘에 걸렸던 모양, 다음번 모임에 가니, 선배님이 먼저 나와 잔을 기울이고 있더니, 날 보자 반갑게 불렀다. '이 술은 내가 별도로 산 것이니 한 잔 하게' 잔을 권하셨다.
남강문학 창간호 초대작가 석에 소개된 그분의 시 한 편 싣는다.
<가을에 내가 할 일은>
가을에 내가 할 일은
내 인생에 풀을 먹여서
잘 개어놓는 일이다.
아이 놈들은
그 아비가 헝클어 놓은 실꾸러미를 간추리게 하고
나는 가난한 시로써 그들을 쓰다듬는 일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어스름에 떠나 새벽에 돌아오는 여행.
歸路에는 가벼운 哲學 한 바구니를 사들고
시장한 所望을 채우며,
찬 비에 소름 치는
내 한 갓 울먹이는 貨物이 되어
다시 悲哀에로 悲哀에로
託送되어 가는 일이다.
첫댓글 가벼운 철학 한바구니 사들고 시장끼를 채우다...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