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에스라서 특강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말씀 / 에스라 1,2장
요절 / 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에스라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1-6장은 스룹바벨 총독을 비롯한 1차 포로 귀환과 성전 건축 역사입니다. 7-10장은 에스라를 비롯한 2차 포로 귀환과 신앙 개혁 운동입니다. BC 586년, 남 유다가 대제국 바벨론에 의해 망해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70년이 지났을 때, 하나님은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총 3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1차는 스룹바벨 총독이 중심이 되어 돌아와 성전을 건축합니다. 2차 때는 에스라가 중심이 되어 돌아와 신앙 갱신 운동을 벌입니다. 3차 때는 느헤미야가 중심이 되어 돌아와 성벽 재건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에스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영적 회복과 각성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조서로부터 시작합니다. 조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1절을 보십시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로 번역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요?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고대 페르시아 동부의 작은 나라 안샨(Anshan) 왕국의 왕 캄비세스 1세의 아들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민족의 통합에 착수해 메대, 리디아를 통합합니다. 그리고 BC 539년, 바벨론을 정복해 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합니다. 이전에 앗수르나 바벨론은 주변 국가를 정복하면 그들 나라의 종교와 문화를 말살시켰습니다. 그러나 고레스 왕은 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이후, 거주와 종교, 문화의 자유를 보장하는 칙령을 선포합니다. 한마디로 포용 정책입니다.
다시 1절을 보면, 때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5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 29장 10절에도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고레스 왕이 이 예언의 말씀을 마치 알고 있기나 한 듯, 온 나라에 공포하고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그 조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고레스 왕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령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라고 고백합니다. 고레스 왕은 하나님의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합니다. 또 유다 백성이 어느 곳에 살든지 그들이 돌아갈 때는 그 이웃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은과 금과 그 밖에 필요한 물건과 짐승들을 도와주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예루살렘의 성전을 위해 예물을 기쁘게 드리라고 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고레스 왕에 대한 이야기가 이사야서에도 나옵니다. 고레스 왕이 페르시아 역사에 등장하기 180년 전입니다. 이사야 44장 28절, 45장 1절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고레스를 ‘내 목자’, 더 나아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가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고레스가 하나님을 믿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역사하셔서 고레스 왕을 그렇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비평학자들은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왕들은 정치적으로 약아빠진 자들이라 포로 백성을 놓아주고, 종교적 자유를 선언했다는 것은 우스운 소리라고 하면서 에스라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1897년, 아랍인 고고학자 ‘호르무즈 라삼’이 바벨론 지역에서 ‘고레스 원통 비문’(Cyrus cylinder)을 발굴합니다. 고레스 왕의 조서가 적힌 가로 10cm, 세로 23cm 크기의 원통 모양의 진흙토기로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비문 내용 일부가 오늘 말씀의 내용과 같습니다. “나는 고레스, 세계의 왕, 위대한 왕, 정정당당한 왕, 사방의 왕이며, 위대한 왕 안샨의 왕이신 캄비세스의 아들이며 ... 나는 오랫동안 황폐되어 온 성소들과 그 안에 있던 신상들을 티그리스강 저편에 신성한 도성들로 귀환시켰으며, 그들을 위해 영구적인 성소들을 지어주었다. 이곳의 주민들을 모두 모아 저들의 거주지로 귀환시켰다.” 이 발굴은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경 말씀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을 더욱 견고하게 해주었습니다. 고레스는 죽으면서 무덤에 이런 글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아, 나는 한줌 흙으로 돌아간다. 나 고레스는 한 때 세계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 점령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점령자여, 그대도 언젠가는 누구에겐가 점령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몸을 덮고 있는 흙에 손대지 마라.”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고레스의 무덤 앞에 당도했을 때 자신의 망토를 벗어 무덤에 덮어주며 머리 숙여 경배했다고 합니다. 그리스 역사가인 ‘크세노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레스는 비길 자가 없는 가장 위대한 세계 정복자이다.” 지금도 이란 사람들은 고레스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레스가 아주 훌륭했기 때문에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도록 한 것일까요?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아닙니다. 1절을 다시 보십시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주어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고레스 왕은 하나님이 쓰신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감동시키다’는 것은 영어성경에 보면 ‘move the heart’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다’는 의미인데, 히브리어 원어로는 ‘우르’, ‘휘젖다’, ‘부추기다’, ‘흔들어 깨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고레스 왕의 마음을 흔들어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도록 조서를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아,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여라.” 그는 마치 하나님의 나라 대변인 같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면 그대로 하는 하나님의 나라 비서실장 같습니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도 통쾌한 일입니까? 잠언 21장 1절은 말씀합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천하의 대 페르시아 제국의 왕도 그 마음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세상 왕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며 다스리는 것 같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뜨리시기도 하시며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고레스 왕은 29년 동안 계속해서 영토를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지만 결국 그의 영화는 사라지고 맙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무 살에 왕이 되었지만 33살에 죽고 맙니다. 영웅이 세계를 지배하고 위인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피조물 위에, 모든 권력자 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보면서도 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을 따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게 됩니다. 로마 황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핵 위협과 러시아, 중국, 미국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 우리나라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세계적으로 전쟁과 재해의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또 나의 현실과 장래를 생각할 때 불안합니다. 이때 우리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세상의 역사, 그리고 나의 삶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실 정도로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시시콜콜한 나의 삶의 문제까지도 주관하시고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힘을 낼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포로 귀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작품이 아닙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유다 백성을 70년 후,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5절 원시복음, 그리고 모세오경, 선지서 등 성경 곳곳에 약속하신 대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모든 죄와 비참함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재림하셔서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고 악인들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긍휼하심이 풍성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멸시 천대 받고 무시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조국 이스라엘을 그리워하다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다 그들의 죄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되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면 고레스 왕의 조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고레스 왕이 포로민의 귀향을 위해 아무리 파격적이고 좋은 여건을 만들어준다 할지라도 백성들의 반응이 냉랭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백성들의 마음도 감동시키십니다. 고레스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감동되어 올라가서 성전을 짓고자 하는 자들이 다 일어납니다. 바벨론에서 살아온 지 70년이 되어 이제 안정되게 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조국 유다의 예루살렘은 성전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왕궁도 집들도 다 불타고 없습니다. 그곳은 이제 여우가 뛰어다니는 황폐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곳으로 되돌아가 다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2세대들입니다. 또 돌아가는 길도 1,500km가 넘어 수개월이 걸립니다. 도무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엄두가 현실적으로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되돌아가서 성전을 세워 온 세상의 주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거룩한 영적 소원을 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삶의 편리와 안정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도전과 모험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형편이 어떠하든 성전 재건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다 일어났습니다. 그들만 감동된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주위 이방인들의 마음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들도 기쁨으로 유다 백성을 도와주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자기 몸만 되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이 도와준 은금 보물들과 짐승들까지 다 가지고 와 성전을 짓기 위해 드렸습니다.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시편 126편 1-3절을 보면 그 기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그들 마음에는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당장 좀 고생할지라도 내 나라에 돌아가 성전을 짓고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리라. 이를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입에는 찬양이 가득 차서 기쁨으로 되돌아와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돌아온 42,360명(64절)의 명단이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감동받고 성전 건축에 자신을 헌신하고자 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삶의 터전을 뒤로 하고 이렇게 먼 길을 나섰습니다. 그들은 성전 막노동꾼이 된다 해도 오직 성전 재건에 동참하고자 돌아온 것입니다. 성전은 그들 삶과 신앙의 정체성과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 에스라는 이들을 귀하게 여겨 이들 명단을 하나하나 다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처럼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의 글을 읽고 하나님께 범죄한 자기 백성의 죄악을 자기의 죄로 여기고 하나님께 나아가 애통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의 기도는 고레스가 페르시아 왕이 된 이후까지도 계속됩니다.
예레미야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 가운데 자기 백성의 죄악을 들고 나아가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 외에도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도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로 그 시대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자신의 삶을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 하나님께 붙들린바된 사람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권세자들, 부유한 사람들, 좋은 학벌이나 뛰어난 미모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의 뛰어난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2장 17,18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간절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한 제자들에게 불과 같은 성령이 임하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들은 밖에 나가 담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동된 자들이 되어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내 삶의 모든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적 회복과 각성을 위해 분연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고레스 왕은 창고지기 미르드닷을 시켜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던 성전 기구들을 다 꺼내어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도록 합니다. 옛날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왕이 성전을 무너뜨리고 그 안에 있던 보물들을 다 가져다 자기 신의 신전에 넣어두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으로 큰 수치심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되돌려주심으로 그들 마음의 수치심을 다 없애주셨습니다. 그들은 이제야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신앙적 자긍심을 회복시켜주시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이제 하나님이 그들에게 돌아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상징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처소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사56:7).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요, 죄 사함을 받는 곳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성전이 이방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 없어졌을 때 이제는 하나님도 안 계시고 하나님의 백성도 사라진듯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세우시고 다시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이 성전 재건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출애굽했을 때 시내산에서 언약했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소망과 비전을 회복시켜 주는 아주 뜻깊은 일입니다. 이것이 원래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도 그들을 향한 이 비전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포기될 수도, 잊혀질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어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비전이고, 정체성입니다. 우리에게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말씀대로 우리를 예수님의 선전부장 삼으시고, 생명 구원 사역에 동역자로 쓰시는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방 왕 고레스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의 마음도 움직이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고 거룩한 나라이며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우리의 영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