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 송창우
모처럼 휴일다운 휴일을 보냈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여유인지 까마득하다. 최근 몇 주 동안 여기저기 발품팔고 다니느라 나는 혹사를 당했다. 예전과 다른 행보에 탈이 날까 걱정도 들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었는지 느닷없는 봉사활동에 나날이 부산스럽다. 그런 주인의 행동에 거부할 그럴싸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 누적된 피로를 풀어야 할 주말이 바빴다. ‘별것이 있겠어.’라는 각오로 문을 나서던 위풍당당한 기개는 장시간 이어진 노동 앞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컴컴한 동굴이 내 집이다. 열 명의 식솔이 사이좋게 단칸방 두 개에 반씩 나누어 산다. 누우면 틈 하나 없는 공간이지만 자리다툼 한번 하지 않을 정도로 남다른 우애를 가졌다. 시리고 저려 한 발자국 내딛기조차 힘든 겨울에는 좁아도 서로 온기를 나눌 수 있어 한집살림이 좋다. 하지만 무덥고 습한 날은 사방이 막혀 토해낸 땀에 흥건히 젖는 일이 다반사다. 겉은 멀쩡해 보이나 속은 추깃물처럼 끈적끈적 달라붙는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언짢아지는 기분을 견뎌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찝찝함은 심기일전할 기운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걷기 좋아하는 주인을 만나 고생이 심하다. 최근 들어 그가 건강을 이유로 해반천 걷기를 시작했다. 앓아누우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초조함에 짓눌려 걷고 또 걷는다. 팔뚝에 새겨진 숫자가 목표치를 채워도 멈추지 않아 화병이 날 지경이다. 욕심내지 않고 주변도살피면서 내려놓는 것이 필요한데 도통 여유라고는 없다. 그런 주인을 위해 돌부리를 피하고 지름길로 가는 기지를 발휘하지만, 냉혹하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어쩌다 선심 쓰듯 두툼한 옷 한 벌이 주어지는 날은 단단히 각오를 다져야 한다. 파김치가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험해도 이렇게 험한 팔자가 어디에 또 있을까.
반면 손을 대하는 주인의 태도는 완연히 다르다. 열 개의 몸뚱이를 가진 외모는 서로 별반 다를 게 없다. 기껏해야 길이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나와 달리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는다. 더우면 찬물로 자주 씻겨 주고 추우면 온수로 언 살갗을 데워준다. 길어진 손톱은 단정하게 깎아주고 얄밉도록 긴 손이 도드라지게 물들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행여 거칠해질까 봐 로션도 바르고 피부 탄력을 살리려 덤으로 마사지까지 해준다. 같은 더부살이지만 대우는 극한 대조를 이룬다. 한날한시에 같은 몸 아래위에 태어난 것이 차이라면 차이인데 푸대접에 어디에 대놓고 하소연도 못 한다.
얼굴을 들 수 없는 날도 있다. 비 오는 날 저벅저벅 곡소리를 내며 걸었을 때다. 쾌적한 기분으로 나선 길이 스며든 빗물과 흘린 땀이 범벅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온종일 악취를 맡다 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과 두통이 동반된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양말에 구멍이라도 나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나서지도 못하고 숨을 곳도 없어 몰래 내려다보는 따가운 시선을 고스란히 받는다. 애써 외면하지만, 들불처럼 일어나는 열등감을 감출 수 없다.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불평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낮의 햇살이 그리울 때가 있다. 따뜻한 물에 찜질이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공을 올려다보며 볕도 쏘이고 멍도 때리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텐데. 밤이 되어서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서러운 처지가 분명하다. 조였던 가슴을 풀어 헤치면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하나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에 몸살을 앓는다. 고달파도 밀어낸 시간만큼 남은 시간도 묵묵히 걸어야 하기에 칠흑 같은 밤이 준 자유가 탐탁지 않다.
오래 신어 길들여진 신발이 좋다. 새로 산 구두 뒤축은 견고한 벽 같아 상처 나기 쉽다. 정장에 깔맞춤하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까지고 저려서 절뚝거리며 걷는 수모를 겪는다. 잠시 든 겉멋이 일상을 무참히 깨트리고 만다. 무두질이라도 해주는 성의가 있다면 날선 마음보다 살가움을 가졌을 텐데. 가시지 않는 통증보다 헤아려주는 배려가 없어 가슴이 아리고 섧다.
요즘 들어 지면을 받치는 무게도 늘었다. 불어난 뱃살 때문이 아니라 행선지를 잡아주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그렇다. 돌발 변수로 달라진 삶의 이정표가 한몫했겠지만, 한번 방향을 잃으면 사념은 사방으로 촉수를 뻗친다. 잘 짜인 각본대로 살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어지럽게 널브러진 생각을 정리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난장판된 상황을 타계할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입 닫고 이끄는 대로 따라주는 것이 도리이기 때문에 달리 방안이 없다. 나보다 더한 아픔을 견디는 동지도 있지 않은가. 허옇게 세어 듬성듬성 빠져버린 머리와 다초점 안경을 껴야 한 줄의 글이나마 읽을 수 있는 눈도 있다. 풍치를 앓고 있는 치아도 근심덩어리다. 그나마 나는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하니 복 받은 일 아닌가. 숨 막히는 토굴 생활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급등하는 전월세 부담도 없으니 이만한 횡재가 어디에 또 있을까.
심란하게 달아오른 마음을 식힌다. 한동안 삭히지 못한 응어리가 나를 못나게 만들었나 보다. 생채기 한번 겪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옹졸하게 환경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눈멀고 귀먹고 소리마저 못 낸다면 두 발이 무슨 소용 있을까. 희생도 따라야 세상도 변하는 법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너그럽지 못한 손톱만 한 자존을 내려놓아 본다. 과거에 얽매여 허우적거려본들 달라질 것도 없지 않나. 한 몸으로 태어났으니 균형 잡고 나아가도록 힘찬 응원을 보내야겠다. 세상살이가 모두 다름을 안고 사는 이들과 동행하는 일이 아닌가.
슬그머니 양발을 꼼지락거려본다. 다시 팽팽해진 발가락 혈관에 호스처럼 뜨거운 기운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