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한가로운 고향 들판의 풍경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고향집 저녁 방안의 풍경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꿈많던 유년 시절의 회상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어린 누이와 아내에 대한 회상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단란한 농가의 정겨운 모습
*
지줄대는 : 지절대는의 사투리 연달아 수다스럽게 지껄이다. * 해설피 :
느리고 어설프게. 시원치 않게 * 함추름 : '함초롬'의 사투리. 가지런하고
고운 모양. * 성근 별 : 드문드문 돋아난 별.
*
서리 까마귀 : 가을까마귀.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 모여드는 까마귀
key point
★ 고향을
나타내는 시어의 이미지 배열, 후렴구의 반복의 의미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시어-지줄대는, 얼룩빼기, 해설피, 질화로, 짚배게, 성근 등
▶ 갈래 : 자유시,서정시
▶ 성격 : 감각적,
묘사적, 향토적 ▶ 특징 : ① 감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짐. ② 후렴구의 반복→이미지의
통일성 확보 ▶ 어조 : 애틋한 어조 ▶ 제재 : 고향의 정경 ▶ 주제
: 고향에 대한 그리움
1.각
연들 사이에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는 무엇인가?
▶반복적 표현을 통하여 시 전체의 이미지의 통일성을 확보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불러 일으켜 자신의 고향을 부르는 듯한 힘을
갖게 한다.
2. 각 단계의 장면들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시적화자의 시각과 거리가 먼 것은?
멀리서
바라본 농촌의 들판을 그리되, 평화롭고 향토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한다.
시골집
방안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그리되, 노년의 서글픔이 느껴지도록 한다.
풀숲을
달리는 소년을 그리되, 동심이 꾸밈없이 드러나도록 한다.
들판에서
이삭 줍는 여인네들을 그리되, 소박한 삶의 모습이 나타나도록 한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초가집을 그리되,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도록 한다.
3. 각 연과 연 사이에
동일한 시행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과를 50자 내외로 설명해 보라. ▶
이미지의 통일성(형태상의 균형)을 가져 오고, 음악성(리듬의 규칙성)을 살리며,
그리움의 정서를 강조한다.
2. 이 시의 각 연들은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장면 전환을 시나리오의
장면 전환 기법에 견주어 보면 무엇과 유사한가? ▶ O.L(Over Lap) 수법
3. 이 시가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를 80자 정도로 쓰라. ▶ 평이하고 감각적인 시어를 사용, 그리운
고향의 정경을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향수'라는 인간의 근원적 정서를 표출하였기
때문이다.
4. 이 시에서 (1)공감각적
이미지가 제시된 시행을 찾아 쓰고, (2)어떻게 감각이 전이되고 있는지 밝히라.
▶ (1) 해설피 금빛 게으름 울음을 우는 곳 (2) 청각을 시각화함.
이 시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실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넓은 벌', '실개천', '얼룩빼기 황소', '질화로',
'짚베게', '화살', '어린 누이', '발 벗은 아내', '성근 별', '서리 까마귀' 등 토속적이고
원초적인 심상에 의해 고향의 정경이 재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병렬적으로
구성된 이 시의 다섯 개의 연들은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시행을 매개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집중되는데, 제1,2,5연이 현재 시제임에
대해 제3,4연은 과거 시제로 되어 있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형이 지금도
지속되는 고향의 모습이라면, 과거형은 이미 추억으로나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일
것이다. 한편, 이 시는 공감각(共感覺) 내지 감각의 전이(轉移)를 통해 참신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빚어낸다.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 '금빛 게으른 울음',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와 같은 표현은 청각적 이미지를 색채화하고 조형화 한 고도의
기교를 엿보게 하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 시는 시인이 태어난 충북 옥천(沃川)
읍내의 한가로운 농가를 생생히 재현한 하나의 풍경화이다.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면서
시인은 실향민(失鄕民)으로서의 비애를 내면화한 것으로 보이며, 매 연 마지막 행에서
반복되는 영탄의 목소리는 귀향 의지를 표현한 것인 동시에 과거로의 귀환, 즉 유년기의
'꿈'에 대한 강한 애착을 의미한다. 이 시가 모두에게 생생한 감동을 주는 것은 '고향'이라는
보편적 회상의 대상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며, 그 형상화의 방법에 있어서 독특한 감각과
향토적 서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김태형,정희성 엮음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문원각>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우선 토속적인 이미지들의 활용을 들 수 있다. '실개천','얼룩백이
황소', '질화로','짚배개' 등의 토속적인 소재들은 고향의 모습을 정겹고 아늑한
것으로 재구성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물론 토속적 소재의 단순한 제시만으로
고향이 그리움의 대상으로 이미지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는 소재 자체보다도 그와
같은 소재를 참신한 비유를 통해 감각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예컨대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라든지,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에서처럼
이 시의 소재는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시적 자아의 감정이 이입된 구체적인 심상이다.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는 '성근 별'이나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초라한 지붕'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시에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적인 표현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지줄대는''회돌아''해설피''함초롬''-ㄹ리야'와
같은 세련된 시어들의 구사다. 즉 이들 시어는 그 자체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시의 감각적 이미지가 지닌
서정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한편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구절을 되풀이하여 제시함으로써,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적으로 표현한 것 또한 이 시의 특징이다.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적으로 표현한 것 또한 이 시의 특징이다. 그로 인해 고향 정경의 단순한 나열에
떨어지지 않고 균형 잡힌 의미 구조를 형성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절실하게
나타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