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인 계시 1(계6:1-8)
갈등
1. 요한계시록 내러티브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계시록-묵시는 신앙 박해시대의 문학입니다. 계시록은 로마 제국의 박해와 유대교와 타종교로부터 삼중으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계시록이 박해시대에 쓰였던 것을 강조하는 것은 성서해석에서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박해시대에 글을 쓸 때는 평소와 달리 조심을 합니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상징 언어를 사용해요. 지금도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또는 이슬람교나 힌두교 종교권에서 선교하는 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1로 표시하거나, 기도를 ㄱㄷ으로 하는 등 표현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12장은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심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일곱 인이 하나씩 떼어지면서, 또 일곱 나팔이 한 번씩 불면서 선포되는 말씀이에요. 여기에는 더욱 상징적 표현-symbolism이 많이 나옵니다. 계시록 해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상징들을 어떻게 풀어서 설명하느냐입니다. 문자적인 해석은 용납되지 않아요. 이단들은 무식하게 문자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자기들 입장에 유리하도록 적용합니다.
2. 오늘 본문은 일곱인 중에서 첫 번째 인부터 네 번째 인까지 개봉되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시간, 사도 요한이 일곱 인이 봉해진 두루마리를 열어볼 수 있기를 바라고 울었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가 이것을 간절히 바란 것은 지금 박해 가운데 고통당하는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격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요한이 그의 간절한 마음을 눈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세요.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면요.(약4:3)
1절,“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일곱 인의 비밀을 떼서 공표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셨어요. 지난 시간 나눈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요한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일곱 인을 떼시기 전, 요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생물 중 하나는 우렛소리와 같이 모든 피조물이 들을 수 있게 말하는 천사입니다. 이때 요한의 마음이 어떠했는가요? 그가 기대하던 일곱 인의 비밀이 하나씩 열리며, 요한이 말씀을 듣고 앞에 일어나는 현상을 볼 때 심정이 어땠을까요?
갈등 심화
3. 일곱인 중에 네 번째 인이 떼질 때까지 나타난 것은 네 번 다 말이 등장하고, 네 말의 색깔이 각각 달라졌습니다. 첫째 인을 뗄 때에는 흰 말-백마, 둘째 인을 뗄 때에는 붉은 말, 셋째 인을 뗄 때에는 검은 말, 넷째 인을 뗄 때에는 청황색 말이 나왔어요. 백마는 이기고 이기려 하는 모습이고. 적마는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흑마는 저울을 가지고 식품값을 말했어요. 청황마는 땅 사분의 일 지역에 검과 흉년과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이 네 가지 인이 떼어지면서 선포된 것은 먼 미래적인 예언이었나요? 요한계시록의 수신자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 시대를 향한 말씀이었나요? 아니면 종말론적인 메시지이었을까요? 성서해석의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까? 또 네 가지 말의 상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궁극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실마리
4. 사도 요한은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젊었습니다. 요한의 친형 야고보는 열두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어요. 행12:1-2에, 헤롯 아그립바 1세(헤롯대왕의 손자)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사도들 가운데 먼저 야고보를 죽이고, 이어서 베드로를 체포해서 죽이려고 감옥에 가둔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그들이 유대인이 아니고 에돔 사람들)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올인했습니다. 손자는 사도들을 죽이며 환심을 얻으려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아그립바가 베드로까지 죽이고자 하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가 탈옥하도록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야고보를 시작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대부분 순교로 인생을 마쳤어요. 베드로와 바울도 끝내 순교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요한만이 밧모 섬에 유배되어, 편지로 교회를 돌보는 목양을 끝까지 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루터기처럼 그가 장수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요한은 주후 90년 요한복음을 시작으로, 요한 서신과 계시록까지 기록을 하며 당시 교회를 위로하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유익을 주고 있습니다.
5. 사도 요한이 하늘로 올려져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뵙고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주님이 그를 하늘로 올라오게 한 것은 교회를 위해서였습니다. 개인적인 신비체험(환타지, 황홀경)을 위해서가 아니라요. 대개 이렇게 깊은 체험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주시지 않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증거하고 격려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어요. 화요 말씀치유 집회 시간에 증거하고, 선교지 순회사역을 하며 증거하라고 귀한 체험들을 주셨습니다. 요한은 일곱 인의 비밀이 열려서 알면, 교회에 큰 유익이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이 비밀을 열어달라고 울었습니다. 이런 요한의 모습에 목회자의 마음-목양자의 마음이 보입니다. 목회-목양은 은사입니다. 교사나 전도자와 같이요. 목회는 아무나 하지 못해요.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목회를 못합니다. 이 마음이 없는 사람이 목회를 하면 큰일입니다. 100% 목회에 실패해요. 직업을 잘못 선택했어요. 요한의 이 마음을 주님이 보시고 일곱 인의 비밀을 열어주셨습니다. 네 가지 말이 각기 다른 색깔로 나타나는데, 이 상징이 의미하는 바가 어렵지 않아요.
6. 첫 번째 말은 2절,“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백마는 흔히 승리자가 타는 것입니다. 로마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 로마 황제나 총사령관 장군이 백마를 타고 등장했어요. 백마에 탄 자가 활을 가졌다고 이 사람을 파르티아인이라고도 봅니다. 이들은 오늘날 이란 북동부 지역에 거주하며 활을 잘 사용했던 민족입니다. 로마는 칼을 잘 썼던 반면에요. 로마가 한때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백마를 탄 자를 적그리스도로 보기도 합니다.
또 최종 승리자가 그리스도이시기에 그리스도로 보기도 합니다. 19:11에서는 이 모습이 나오지만, 여기에 백마를 탄 자를 그리스도로 보는 것은 맞지 않아요.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1차 해석은 계시록의 수신자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말씀하는 것이기에 그때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건강한 해석입니다. 첫째 인을 떼는 때부터 적그리스도나 다른 특별한 대상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당시 정세에 따라 전쟁에서 승리할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승리자는 수시로 바뀝니다. 당시 교회가 세계정세를 살피며 대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7. 둘째,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화평이 없습니다. 서로 죽이는 것이 전쟁이에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을 보면서 우리가 간접적으로 오늘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에 러시아 전투기 일곱 대가 격추되었다고 해요. 미국이 보낸 F16 전투기가 투입된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가자 지역은 아수라장이에요. 언제 어느 건물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고, 총탄이 언제 각 사람에게 임할지 모릅니다. 뭇 생명들이 죽어가지 않으려면 전쟁이 멈추는 것밖에 없어요. 전쟁이 있을 것을 대비하고 살라는 경고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말고.
셋째, 검은 말은 저울을 들고 나타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또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고 선언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한 남자의 하루 임금입니다. 오늘날 10-20만 원입니다. 만일 밀가루 한 되 값이나 보리 석 되 값이 10-20만 원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가족들 식품비에도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물가가 급등할 것을 말해요. 전쟁이 있고 박해가 있는 당시 교회가 겪고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예나 지금이나 생활 필수품입니다. 지금과 달리 그때에는 귀했습니다. 이것을 해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미해요. 넷째 청황색 말은 사망과 음부-지하 세계, 죽음 또는 지옥-를 의미합니다. 박해 시대에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 나아가 박해가 있을 것을 예고해주었습니다.
복음 제시
8. 세상은 우리 생각이나 기대와 달리 악화되고, 더욱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나 이스라엘-가자지구에 사는 이들의 삶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남북대치 속에서, 또 4대 강대국이 둘러싸서 터무니없는 요구들을 하고 있어요. 미국은 경제적인 면에서 우리에게 불리하게 하고, 일본은 영원히 사죄할 줄 모르며 독도 분쟁과 원자력 폐기물로 오염된 바다에서 생산한 생선을 사라고 압박합니다. 중국은 한미동맹을 핑계로 또 우리를 전방위로 압박하고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기들 편에 서도록 요구하고.
이런 세상 정세에다 신앙 박해까지 따르면, 교회와 성도들은 참 고통스러운 때를 보내야만 합니다. 천상에 예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하여 당시에 말씀하시며 대처하도록 미리 지식을 주시고 대비하도록 하셨어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처한 상황을 미리 알고 대비하도록 가르쳐주십니다. 요한계시록을 더 읽고 해석하고 나누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고, 또 혹 고난의 길을 피할 수 없는 경우 스데반처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복음을 알고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적 상황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기대
9. 요한계시록은 어렵고 난해합니다. 오늘부터 읽는 6장부터 12장까지가 특히 어렵습니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너무 신비적으로 또는 문자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이해하며 읽으면 불가해한 말씀은 아닙니다. 이 말씀들을 읽고 나누며 우리가 사는 세상 정세에 무관심하지 않고 잘 관찰하며 살피면 됩니다. 너무 현실만 보지 않고, 범사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족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