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원 변호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한때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그런 끔찍한 일을 범했을까? 이걸 알고 싶어요.
찾아가서 면담도 하고 조사도 했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선하게 생긴 아이들이 어쩌다가 그런 끔찍한 일을 범했을까?
그 원인이 뭘까 조사하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욱하다 순간적으로 그랬다.”
나쁜 아이는 없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속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첫 번 째 생각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첫 번 째 욱하고 올라온 생각을 다스리고 고쳐서 두 번 째 생각을 만들어야 했어요.
“내가 참아야지, 그러려니 해야지. 욱해서 홧김에 일을 저지르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나? 그러면 내 인생은 망쳐, 그러니까 참아야지.”
그랬어야 하는데 첫 번 째 욱하고 올라온 생각대로 행동하고 말았어요. 첫 번 째 올라온 욱하는 생각을 고치지 못했어요. 아니 고칠 힘이 없었어요. 이걸 훈련하지 못했어요.
링컨은 믿음의 사람이고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상원 의원들 앞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원의원들은 속이 부글 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귀족 출신이고 명문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인데, 링컨은 구두 제조공에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사람이니, 그 사람의 강연을 듣는다는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지요.
링컨이 강단에 올랐을 때 어느 상원 의원이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링컨, 잘 들으시오.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제조공이었소. 지금 내가 신고 있는 신발도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이걸 잊지 마시오.”
그러나 여기저기서 킥킥 거리며 비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링컨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눈에 눈물이 고인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의원님, 고맙습니다.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생각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구두 제조공이었습니다. 혹시 구두의 수선이 필요하시면 저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아버지 만큼은 아니지만 제가 대신 수선해 드릴 수 있습니다.”
링컨의 이 말에 의원들은 잠잠해지고 말았고, 그 이튿날 이런 사실을 신문에서 읽은 국민들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만약 링컨이 그 상원의원의 소리를 듣고 화가나서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은 내가 대통령이요.’했다면, 일은 꼬일 수밖에 없지요. 정치를 하자면 상원 의원들의 협조를 받아야 하니까요.
아마도 첫 번 째 올라온 생각은 분노였을 것입니다만 그 분노를 말씀으로, 믿음으로 잘 다스리고 너그러움으로 고쳐 버렸던 거지요.
어느 아버지가 아들 문제로 예수님께 왔습니다.
“할 수 있거든, 아들 좀 고쳐 주세요.”
그러나 주님은 그 아버지의 말부터 고쳐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 아버지는 당장 자신의 말을 고치지요.
다윗은 사울왕의 위협 속에 살았습니다.
절호의 기회가 왔지요. 칼을 들어 찍기만 하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게 첫 번 째 올라온 생각이었지만 다윗의 위대함은 그 첫 번 째 생각을 고치고 두 번 째 생각으로 넘어간 거지요.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내가 손대면 안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뒤에 가룟 유다가 나타났을 때, 베드로는 욱해서 칼을 휘둘렀지요. 말고의 귀를 떨어뜨렸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첫 번 째 생각이 칼이었다면 믿음으로 고친 두 번 째 생각은 ‘이것까지 참으라.’였습니다.
한 주간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에, 첫 번 째 욱하고 올라오는 생각을 말씀으로 다스려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생각으로 고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고치는 실력이니까요.
“이것까지 참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