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꿈에서 일상으로
“꿈이 뭐니?”
별로 좋아하는 상황이 아니다. 가볍게 넘기자.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음~.그럴 수 있지…“
아마 다들 한번쯤은 경험해 본 질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당차게, 누군가는 당황스럽게, 누군가는 신나게 대답했을 질문일 것이다. 나는 그 중 당황스러워하던 사람이었다. 꿈이 없어서였다.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이, 가진게 없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서 그랬다. 확고한 꿈과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진 사람이 조금 더 괜찮아 보였다. 더 가진것이 많아 보였고, 조금 고될지라도 항상 성취감과 만족감이 가득할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진짜 그러려나? 매일 반복되는 일어나기 싫은 아침이, 무료한 대중교통이, 하루 3번 식사시간이 열정과 성취감으로 채워져 있으려나? 그런 사람을 현실에서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영화 소울은 몇 개월 전부터 보고싶던 픽사 애니메이션이었다. 작은 솜뭉치같은 캐릭터들과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먼저 나의 구미를 당겼다. ‘나를 나답게 하는것’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다. 처음에는 꿈, 삶의 목적 등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만 가지고 영화를 보았지만 그 후반에는 그저 꿈이야기가 아닌 더 깊이있는 메세지가 큰 감동을 준다.
조 가드너. 중학교 음악 선생님인 한편 무명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음악과 재즈를 사랑하고 자신의 길과 목적을 오직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직업을 넘어 삶의 의미로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껏 이리저리 거절받으며 자신의 꿈을 피지 못하고 뮤지션이 아닌 그저 중학 교사로 머물던 중이었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삶을 볼품없다 라고 느낀다. 그러던 그에게 시내 최고 재즈 클럽에서 공연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정신을 잃고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그곳에서 한 영혼의 불꽃을 찾아주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고 그것이 바로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영화 후반부에 조 가드너는 끝내 무사히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마친다. 박수도 받고 인정도 받았으며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순간에 달하게 되는데 그 순간에 그는 알 수 없는 허망함을 느낀다. 모든 것이 반짝거리며 빛나야 할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였다. 그냥 그렇게 내일 저녁도 공연, 그 다음날 저녁도 공연, 그 다음날도 계속 그렇게. 여전히 지하철은 무료하고 짜증나고, 돌아온 집의 풍경은 왜인지 더 쓸쓸하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불꽃이, 목적이 음악만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삶의 의미와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바로 그저 그런 일상이었다. 오늘먹은 음식, 오늘 사람들과 나눈 대화, 오늘 내가 즐거웠던 그 모든 것,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 모든 것이 그의 삶의 의미였다. 그렇게 돌아본 자신의 삶은 볼품없는 삶이 아닌 끝내주게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작년 이맘때 쯤이었나? 나름 큰 선택같은 것을 내려본 적이 있다. 작년 1월부터 나는 나의 진로를 음악으로 생각해 보았었다. 하지만 그런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선택한 것이었다 한달이라는 괴로운 선택의 시간 끝에 별 확신없이 결정했다. 꽤 빠른 포기였다.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다. 굳이 거창한 이유를 꾸며내고 싶지도 않다. 힘들었고, 부담됐고, 싫어졌고, 내 생각과는 음악이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그만두던 날, 빌렸던 악기를 아무도 없는 레슨실에 덜렁 두고 매주 덜덜 떨며 갔던 그 레슨실에서 빈손으로 나왔다. 그 순간 아빠가 물었다. “끝났네? 어때?” “음.. 글쎄” 생각보다 그렇게 후련하지 않았다. 조금의 해방감을 누렸지만 아쉬움도 남았고 혹시 잘못 결정한 것일까 걱정이 컸던 것 같다. 정말 놀라운 건 바로 그 다음날부터 악기가 좋아지고 음악이 아주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8년동안 정은 많이 들었었나 보다. 그 전에는 그리도 듣기 싫었던 클래식이 그리워지고, 쳐다보기도 싫었던 악기가 아주 반짝거렸다. 그때 딱 생각했다. ‘삶의 목적같은 거랑 직업은 관련이 별로 없구나!’ 직업이 바뀌면 내 정체성 또한 바뀔 것만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론 좋아하는 꿈, 목적, 진로, 직업 모두 중요하다. 한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역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기서 끝이다. 그것들은 그저 살아감을 조금 더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일 뿐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것은 되지는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 라는 질문 보단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라는 질문이 더욱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