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 / 정여민
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본 줄 알았지만 봄을 쫓아가던 길목에서 내가 보아 주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 건 줄 알았지만 바람과 인사하고 햇살과 인사하며 날마다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내가 먼저 웃어 준 줄 알았지만 떨어질 꽃잎도 지켜 내며 나를 향해 더 많이 활짝 웃고 있었다
2 돌 / 정여민
어디에서든지 깨지지 말아라. 아무 곳에서나 구르지 말아라.
다시 만날 조각돌 햇살을 위해 비를 참아내며 누웠다 다시 일어나는 억새보다 바람을 참아내어
그냥 작은 꽃 옆에서 같이 비를 맞아주고 같이 바람을 맞이하는 돌이 되어라.
3 여름 숲의 하루 / 정여민
어둠이 올라가고 햇살이 뿌려지면 빛이 나무사이로 비치는 것인지 나무 사이로 빛이 비치는 것인지 온 숲으로 빛이 가득 들어찬다 숲은 간밤에 목말랐던 꿈을 이슬로 적시고 밤새 꾸었던 꿈은 숲에 펼쳐 놓는다
어둠이 내려오면, 햇살은 더 놀다 가겠다 칭얼대고, 숲은 무엇이 내것인지 내것이 무언인지 생각도 마음도 흐릿해지는 시간이 된다 나무도 풀도 꽃도 놓아야 숲의 꿈을 꾸기에 잡고 있던 낮의 행복을 놓고 깊은 꿈속으로 빠져든다
어둠도 숲의 꿈을 기다린다.
4 할머니/ 정여민 빛을 눈에 담을 수 없었던 할머니 밝음과 어둠의 무게는 같았고 손끝이 유일한 눈이 되셨다 밝은 다리를 건널 때에는 자식들 사랑에 허리가 휘셨고 어두운 다리를 건널 때에는 자식들 걱정에 손끝이 닳았다 내가 할머니를 볼 수도 할머니가 나를 볼 수도 없지만 엄마를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계신 곳은 빛들로 가득하지요 그 사랑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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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세 소년의 천재적인 글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다 2003년 여름에 태어났으며 경상북도 영양에서 살고 있다. 2015년 제 23회 우체국 예금·보험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전국 초등학생 8,0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될 정도로 권위 있는 글짓기 대회이다. 여민이는 자신이 쓴 수필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로 ‘우체국 집배원이 마을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우수한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심사 위원들에게 대단한 ‘문학 영재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여민이는 이전부터 글짓기 전국 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할 만큼 글쓰기에 빼어난 재능을 드러냈다. SBS 프로그램 〈영재 발굴단〉에서 ‘문학 영재’로 소개되어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적셨다. 여민이네 가족은 어머니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도시에서 오지 산골로 옮겨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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