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 羅生門 ; In The Woods
감독 : 쿠로사와 아키라
출연 : 미후네 토시로, 모리 마사유키, 쿄우 마치코, 시무라 타카시, 치아키 미노루
일본이 배출한 세계적인 거장인 쿠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으로, [7인의 사무라이 The Seven Samurai](1954년)와 함께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1950년 제작)이다. 이 작품은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와 제24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쿠로사와 아키라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라쇼몽]이란 타이틀은 일본 문학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동명의 소설에서 따왔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동명의 소설이 아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또 다른 작품인 [야부노나카 藪の中]이다.
즉, 쿠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들인 [라쇼몽]과 [야부노나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의 주된 내용은 [야부노나카]이고, 제목과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으로서 [라쇼몽]을 이용하고 있다. 덧붙이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야부노나카]는 콘쟈쿠모노가다리 今昔物語에 나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라쇼몽이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콘쟈쿠모노가다리 등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들이어서, 더욱 더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일단 그 설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젊은 도둑에게 활과 말 등 모든 것을 빼앗긴 한심스러운 무사의 이야기로, 숲 속에서 나무에 묶인 채 자신의 아내가 강간을 당하는 것을 그냥 지켜본다. 아내의 당참과 도둑의 용기를 칭찬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설화의 내용에 한심한 무사가 살해당하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 [야부노나카]이다. 숲 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3명의 당사자가 증언하고 고백하지만, 어느 것이나 진상과는 거리가 있어서, 숲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와 진범은 누구인지가 오리무중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에 쿠로사와 아키라는 원작에는 없는 라스트 신을 추가해서,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
영화는 세차게 비가 내리는 라쇼몽 아래에 나무꾼과 떠돌이 승려가 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이 비를 피하려고 온 지나가던 사람에게 이 마을에서 일어난 기묘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3일 전에 숲 속에 갔다가, 살해당한 사무라이를 발견한 나뭇꾼이 관청에 신고를 하였고, 산적과 사무라이인 아내가 잡혀와서 심문을 당한다. 산적과 죽은 사무라이의 부인, 죽은 사무라이(무녀의 입을 빌려서), 나뭇꾼이 차례로 살해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 ...
산적의 증언
숲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지나가던 남녀가 있었다. 그 때 바람에 얼굴을 가린 차양이 날리면서,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음탕한 마음이 동하였다. 재빨리 뒤를 쫓아가서, 사무라이에게 칼을 싸게 팔겠다고 속여서,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는 나무에 포박하였다. 그리고, 기다리던 여자를 그곳으로 데리고 오자,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한 여자가 단도로 나를 공격하였다.
나는 이렇게 강인한 여성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힘에서 앞선 나는 손쉽게 제압했고, 사무라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강간했다.
내가 자리를 뜰려고 할 때에, 그 전까지 엎드려서 울고 있던 그가 얼굴을 들었다. "정정당당하게 둘이서 진검승부를 펼쳐서, 살아남은 쪽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나무에 결박당한 사무라이를 풀어주고서, 승부를 겨뤘다. 사무라이도 훌륭하게 싸웠다. 하지만, 이긴 쪽은 나였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한창 싸우고 있을 때에 도망친듯 했다.
사무라이 부인의 증언
산적은 나를 강간한 후에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는 그대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운 후에 남편을 바라봤는데 ... 나는 그 때의 남편의 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도 온 몸의 피가 얼어 붙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 눈은 나를 완전히 벌레라도 보는 듯이 차가웠습니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달라면서, 나를 죽여달라."고 남편에게 단도를 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저는 공포와 절망감이 순식간에 밀려와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남편의 가슴에는 꽂힌 단도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산속을 헤매다가, 연못에 투신하려고 했지만, 죽지 못했습니다. 어리석고 나약한 저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사무라이의 증언
산적은 아내를 겁탈하였다. 그리고, 아내 곁에 앉아서, "자기의 처가 되지 않을래?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뭐던지 할 수 있다."고 구슬렸다. 그 때, 눈물 범벅의 얼굴을 든 아내, 나는 그 때만큼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내는 그 아름다운 얼굴로, "어디라도 데리고 가 달라."고 말했다.
산적은 아내의 말을 듣자 마자, 발로 아내를 차버렸다. 그리고서는, 나에게 "이봐, 이 여자를 어떻게 할까? 죽일까? 아니면, 그냥 둘까?"라고 물었다. 나는 이 말로 산적의 죄를 용서할 수 있었다. 아내는 산적의 말을 듣고서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그 뒤를 산적이 쫓아갔지만, 놓쳐버렸다면서, 혼자 돌아왔다. 그는 나의 칼을 가지고 그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겨진 나는 아내의 단도로, 가슴을 찔렀다. 숲 속은 조용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누군가 와서 나의 가슴에 박힌 단도를 빼냈다.
나뭇꾼의 증언
산적이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서 잘못을 빌고 있었다. "나의 아내가 되어줘! 내 처가 되겠다고 말해줘!"라고 산적이 여자에게 계속 말했다. 여자는 "불가능합니다. 여자인 제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산적은 "결국, 남자들 끼리 승부를 펼쳐서, 그 승자를 따르겠다는 말이군."이라고 주절거리면서, 사무라이의 결박을 풀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결박이 풀린 사무라이는 "잠깐만! 나는 이따위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다. 게다가, "외간 남자와 몸을 섞은 주제에 왜 자살을 하지 않나! 이런 여자가 좋다면, 너 좋을대로 가져라!"고 말을 내뱉었다.
사무라이의 말로, 여자를 아내로 삼겠다는 마음이 싹 가신 산적은 그냥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였다. 그 때,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그런 여자를 보고, 사무라이가 귀찮다는 듯이 울음을 그치라고 다그쳤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산적이 "원래 여자는 이처럼 하찮은 존재다."고 말했다.
울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실성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찮은 것은 너희들이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왜 이 남자를 죽이지 않는가! 도적을 죽이는 것이 남자가 아닌가! ... 너도 남자가 아니다! ... 너희들은 잔머리나 굴리는 소인배일 뿐이다."고 말했다.
완전히 체면이 구겨진 두 남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 이윽고, 서로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칼을 마주쳤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라, 완전히 애들 장난이었다. 산적이 가까스로 사무라이를 죽였을 때에, 여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산적은 이미 여자를 쫓아갈 기분이 아닌듯 했다.
사건과 관계된 4사람의 증언이 제각각이다. 어떤 이야기가 진실인지 애매모호하지만, 왠지 나뭇꾼의 이야기가 진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쿠로사와 아키라는 뜻밖의 반전을 연출한다. 진짜 사무라이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범인은 있기는 한 것일까? 그리고, 쿠로사와 아키라가 시도한 반전은 무엇일까?
이 영화는 사무라이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도 대충 소개했듯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세사람(산적, 사무라이와 그 아내)과 목격자라고 하는 나뭇꾼의 진술이 서로 엇갈린다. 아니 엇갈린다기 보다는 목격자인 나뭇꾼을 제외하고서는 서로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기는 [바람 때문에](산적), [남편의 차가운 눈 때문에](사무라이의 아내), [그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사무라이)이다.
한가지 사건에 강간한 남자와 강간당한 여자, 살해당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그것을 말없이 지켜본 목격자까지 4인4색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각색되어있다. 각색되어있다고 해서,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일반적인 거짓 진술과는 명백하게 다르다. 도대체 왜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그들 나름대로 거짓말을 한 이유가 있다. 산적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지껄였고, 사무라이의 아내는 두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기 보다는 자신을 경멸하는 남편을 살해한 범인이 되기를 선택하였다. 또한, 사무라이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숨기기 위해서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죽은 자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떠돌이 중이 말했지만, 오히려 진실과 가장 거리가 먼 증인이 사무라이였다. 그만큼 숨기고 싶고, 숨겨야만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숨기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진면목이다. 위선으로 가득찬 자신들의 모습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이 목숨과 바꾸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허영이다. 사회적 명예나 체면이라는 이름의 허영이다.
남자다움에 목숨을 거는 산적,
자신의 가련하고 나약함을 강조하는 여자,
죽어서도 무사로서의 명예에 집착하는 사무라이 등,
쿠로사와 아키라는 [허세] → [배신] → [보신] → [경멸] → [체면]을 표현하고 있다. 사건의 진상은 원작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야부노나카]라는 타이틀처럼 [숲 속]에 있을 뿐..
이 영화의 핵심은 어떤 같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 각각의 사람만큼이나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어떤 사건, 혹은 사물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세계가 라쇼몽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라쇼몽적인 세계는 영화라는 가상의 공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이다.
누구 말이 진실일까?
진실은 단지 숲속에서 서성대고 이을 뿐이겠지..
(발췌문)
첫댓글 아 소설이군요 ...
현실은 틀리겠죠 ..
쪽발이들도 소설이나 영화를 잘아나요?? 저는 계들포르노 밖에 못만드는줄알았는데..
멋지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