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로부터 이별하기
늘푸른언덕
1시간 전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한때 초등학생들의 기발하고 엽기적인 시험 답안지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내 자식이 작성한 답이라면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일단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남의 이야기라 그런지 가슴 아파하기 보다는 오히려 청량제 같은 기발한 생각이라며 기상천외하게 응답한 초등학생들의 시험 답안이 재미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령, 자연 교과과목에서 <곤충의 몸을 삼등분하면 ( ), ( ), ( ).> 라는 문제에서 출제자가 기대한 정답은 (머리), (가슴), (배) 였습니다. 그런데 한 초등학생이 제시한 기상천외한 답안은 (디), (진), (다) 였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호랑이가 무엇인가 마시고 있는 사진을 제시하며 <호랑이가 ( ) 마십니다.> 라는 문제에서 출제자가 ( ) 안에 기대하는 정답은 (물을) 또는 (음료수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TV 광고 매체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느 초등학생은 “(젊음을)” 이라고 기발하게 답하여 선생님을 무척이나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밖에 여러 시험문제의 엽기적이었던 답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하나를 골라 소개합니다.
역시 보기 그림을 보고 괄호 안을 채우는 문제입니다. 사슴이 거울을 보고 있는 사진을 제시하며 <사슴이 ( ) 봅니다>라는 문제에서 엽기적이고 기발한 학생이 제시한 답안지에는 (거울을)이라는 정답 대신에 <사슴이 (미쳤나) 봅니다>라고 적혀 있어 채점하는 선생님을 졸도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누리꾼들의 의견이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정규교육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과 또 다른 하나는 기존의 사고의 틀을 깨는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와 발상의 전환이라는 면에서 초등학생들의 엽기적인 시험 답안 사례는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경험한 어린 시절의 학교교육 평가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사지선다형 또는 오지선다형으로 평가하는 시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정규학습에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학습했느냐에 따라서 배운 대로 정답을 선택함으로써 좋은 성적을 받게 되고 그 성적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 능력의 우열이 나누어지는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교육 방식은 학교교육과 훈련에 누가 더 성실하고 익숙하게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평가되는 교육시스템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지선다형이나 오지선다형이라는 시험문제의 유형이 생각과 상상력을 한창 자유롭게 펼쳐야 하는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사고의 틀과 폭을 제한하는 역작용도 있을 수 있었음을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새해 아침부터 뜬금없이 초등학교 시험지의 기상천외한 엉뚱한 답안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제도권 교육이나 규제된 환경 속에서 살아오며서 형식과 틀이라는 고정관념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음을 반성해 보고자 함입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신년 다이어리와 함께 새로운 마음과 포부로 한 해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렇게 세워진 계획은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한동안 잘 진행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의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습관의 관성의 법칙을 경험하면서 좌절하곤 합니다.
이른 바 작심삼일로 끝나는 계획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경험하는 것은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이런 작심삼일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새롭게 나온 흥미로운 극약처방이 있는데 그것은 매 삼일마다 일 년 동안을 결심하는 방법이라는 기발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기막힌 방법이긴 한데 이 역시 매 삼일마다 결심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습관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라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실패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새로운 계획들이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생각해 보니 새로운 계획이 습관으로 형성되어 매번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의 삶에 그것을 수용할 만한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매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것으로 좋은 습관을 형성하려고 할 때, 기존의 생활방식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그 새로운 계획들을 시도하려는 과욕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시행착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은 이미 한정되어 있는데 그 안에 새로움을 더 넣으려니 전혀 들어갈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움을 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들 중에서 과감히 버리거나 포기해야 할 대체재를 찾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해의 계획을 세울 때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는 해야 할 일들만 세운다는 데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세움과 동시에 하지 말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함께 정해야 합니다.
익숙하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선별하여 비워야 그곳에 새로운 것을 채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습관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적절한 시간이 필요한데 나쁜 습관은 흥미와 편안함이라는 환경에서 익숙해지는 것이라 쉽게 형성되는 반면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나쁜 습관이나 타성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 일이라 힘이 들고 별도의 시간과 인내의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좋은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익숙한 것으로부터 이별을 해야 삶의 태도는 우리의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영적 패러다임이 펼쳐질 뉴노멀의 환경하에서 시대를 리드할 영적 거인으로 거듭남을 올해의 목표로 삼은 바 있습니다. 여기서 영적 거인이란 성령 충만함으로 때마다 일마다 성령이 부어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영적 거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 속에 담긴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묵상의 습관과 주님과의 영적 소통의 채널인 기도의 습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 안에 형성된 삶의 타성이나 영적인 성숙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익숙한 것들을 과감히 포기 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기도 습관의 형성과 말씀을 늘 가까이 하는 일에 실패하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다른 일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매번 영적 당위성처럼 기도와 말씀 읽기 시간을 삶의 한 부분으로 습관적으로 끼워놓는 형식적인 삶의 태도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일에 기도나 말씀으로 완전 무장한 영적인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 가운데서 이미 익숙해진 습관 중에서 버려야 할 것을 선별하고 과감히 버리는 용기가 우선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도와 말씀을 가까이하는 영적인 태도를 삶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거기에 가장 큰 가치를 둘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주님의 마음에 합한 영적인 사람으로 제대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선 내가 이별해야 할 익숙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한 주간이 되기 원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누가복음 5장 38절
첫댓글 새해 새로움을 담기 위해서는
내 안에 익숙해진 것들 중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선별해
아쉽지만 과감히 비워야겠습니다.^^
<늘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