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이라는 클럽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무대에서 지니고 있는 위상은 상당히 독특하다. 자국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는 물론이거니와 언제나 그렇듯 별들이 즐비한 유럽무대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불꽃 같은 공격력을 보여주는 팀은 아마 아스날이 유일할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화려한 공격을 팀의 모토로 삼는 클럽은 이미 여럿 존재한다. 일례로 거함 레알 마드리드도 화력에 투자하는 예산으로 보나, 공격진들의 명성으로 보나 아스날보다 훨씬 공격적인 팀 컬러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레알의 공격력이 화려함으로 설명된다면 아스날의 공격력은 다이내믹함으로 설명되는 그것이다. 레알의 선수들은 적어도 언제나 한방으로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월드클래스의 선수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들은 스타들의 개인 기량에 힘입어 경기의 흐름과 상관없이 한순간의 폭발력으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아스날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빠르고 조직적인 축구가 돋보인다. 스페인의 클럽들처럼 화려하고 예상을 뒤엎는 패스, 움직임 보다는 필드 위의 11명이 서로 자리를 번갈아 맡고 조율하는 축구. 이는 분명 조직력과 빠르기의 프리미어리그에 스페인의 섬세함을 접목시킨 아스날만의 축구철학에 의해서이다.
이는 그리 녹록치 않은 재정에도 끊임없이 팀을 갈고 닦아 최상의 상태로 세공하는 감독 아르센 벵거의 역할이 크다. 경제학 박사인 그의 명함 때문인지, 혹은 정말 빡빡한 클럽의 재정 상태에 기인 한지 몰라도, 벵거는 유망주-혹은 포지션 전환이 필요한 아직 덜 성숙한 선수들을 성장시키는데 상당한 재능을 보인다. 그리고 그 선수가 향후 그리고 있는 아스날의 조직력에 녹아들 수 있는 선수인지, 아닌지에 따라 클럽의 핵심선수, 혹은 클럽의 머니 박스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간단하지만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러한 벵거의 성향에 따라 비에이라, 에두는 최고의 선수들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앙리-투레-로랑은 자기에게 맞는 포지션을 새로 찾을 수 있었고, 아넬카-오베르마스는 팀의 재정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그러한 벵거의 엄격한 쇼핑리스트와 셀링리스트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스날 팬들의 가슴 한쪽을 시리게 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프랜시스 제퍼스이다. 프랜시스 제퍼스는 루니 이전, 에버튼이 배출한 최고의 유망주였다. 든든한 체격과 피지컬을 바탕으로 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순식간에 에버튼 공격진을 이끌며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었고, 이는 그를 시어러의 대를 이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대형 스트라이커를 차지할 유망 순위의 맨 위에 위치시켰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벵거 감독 이후 끊임없는 상승세를 유지하던 아스날로 자리를 옮겼다. 그 이후는 우리 아스날 팬들이 아는 바와 같다. 팀에서의 부적응과 에버튼으로의 임대. 한 시즌 노 골. 그리고 결국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던 800만 파운드의 스트라이커는 250만파운드의 할인정리(?)된 가격에 찰튼 어슬레틱으로 팔려가며 그의 아스날 생활을 마감한다.
잠시 화제를 돌려보자. 요 2~3년간 아스날은 리그에서 거의 무적이라 할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준다. 벵거의 축구가 점점 완성되어가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03~04 시즌의 무패 우승. 일년여의 시간 동안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클럽에 있어서 쉽게 달성하지 못하는 레벨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아스날도 유달리 유럽 무대에서는 리그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분명 아스날의 전력은 그 어떤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유럽 최정상권의 그것이고, 언제나 그들은 우승 예상 순위 맨 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유럽 무대가 8강 이상의 클럽들의 승부는 당일의 컨디션과 수많은 변수가 자리 잡은 위험한 곳이라고 해도, 유달리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스날의 유럽 무대 도전기를 단지 '징크스'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격력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나 얇은 선수층을 문제로 지적하고 필자도 이에 동감하지만, '전술상의 문제점도 없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심을 해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위의 두 가지 항목을 분명 포함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공격력에 대한 과신과 얇은 선수층. 아스날의 공격력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조직력과 빠르기가 생명이다. 이는 미드필드를 휘젓는 공격진과 깊숙이 침투하여 공격 찬스를 만들어내는 미드필드, 그리고 활발한 오버래핑을 보여주는 풀백들이 전부 강력한 공격 성향과 전술이해도를 지녔기에 가능한 것이다. 전원공격과 전원수비. 하지만, 이러한 전술은 승점 1점과 점수 1점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는 분명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분명 이탈리아의 강자들은 웅크리고 앉아 역습 찬스를 노릴 것이고, 스페인의 클럽들은 미드필더진의 섬세한 터치들로 속도를 죽이며 압박을 해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스날의 장점인 '다이내믹함'과 '빠르기'를 상당부분 감소시키며 팀 전력의 약화를 가져온다. 가정해보자. 『상대는 밀란이나 발렌시아. 경기는 0 - 0이고 저번 홈 경기에서 1 - 1로 비겼기에 한 점을 얻어야지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 미드필드는 이미 철저한 압박으로 공격가담이 어렵고, 밀집수비는 앙리의 빠르기를 활용할 뒷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만들어가는 플레이가 아니더라도, 동료의 지원이 없이도 어떻게든 공격력을 짜내어 결과를 만들어야하는 그런 선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아스날에는 없는 제공권과 득점력이 탁월한 전문 공격수의 존재이다. 그렇다면 왜 현재 아스날에는 이러한 선수가 없는 것일까?
문제는 간단하다. 아르센 벵거가 원하는 스타일의 포스트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존재해도 클럽의 재정상 영입은 어렵다. 또한 이미 제퍼스의 실패에서도 경험했듯이, 팀의 조직력에 융화되지 못하는 선수는 효용가치가 떨어진다. 일단 그 선수는 빠르기를 지니고 있어야한다. 역습이 장기인 아스날의 포워드가 헐레벌떡 뒤늦게 따라온다면 그것은 팀 전체 컬러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 비록 기동성이 뛰어나 필드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선수는 아닐지라도 (그건 이미 앙리나 다른 선수들도 충분하다.) 순간적으로 제치거나 빠르기를 내세울 때는 속도감이 있어야한다. 또한, 그는 미드필드와의 연계성이 뛰어나야한다. 앙리가 빠르기와 볼 컨트롤, 개인기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이긴 해도, 전형적인 세컨드 어태커라고 하기는 어렵다. 세컨드 어태커 스트라이커나 세컨드 스트라이커가 없는 타겟맨은 적진 한가운데에 고립되기 쉽다. 따라서 아스날의 타겟맨은 어느 정도 미드필드와의 패스 플레이와 연계 플레이에 능해야한다. 마지막으로 개인기. 베르캄프가 중앙에서 중심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아스날의 중앙공격은 측면지원에 비해 부실하다. 따라서 아스날의 타겟맨은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타겟맨-포스트 플레이어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강한 피지컬. 제공권. 파워. 슈팅 능력. 공간 창출 능력에 저러한 특성까지 지닌 타겟맨. 물론 방제 감독은 위의 세 덕목을 더 우선시하기에 아무나 영입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필자는 아스날에는 저 세 가지의 장점의 소유자라면 포스트 플레이어 특유의 장점들은 조금 떨어져도 충분한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르센 벵거의 생각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아스날과 연계되었던 모리엔테스와 클라위베르트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모리엔테스는 타겟맨이긴해도, 비에리나 셰브첸코, 반 니스텔로이와 같이 월등한 피지컬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호나우두 같은 개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자기나 아넬카처럼 약삭빠른 공간 창출 스타일도 아니다. 분명 그는 굳이 말하자면 비에리-반 니스텔로이와 같은 스타일의 선수이지만 그는 떨어지는 피지컬을 기동성과 폭넓은 커버 공간, 미드필드와의 연계 플레이로 극복해냈다. 포워드와 미드필드의 중간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라울과의 연계 플레이도 훌륭하다. 앙리나 피레, 융베리와도 조직력 있게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난 챔피언스리그에서 증명했듯이 화력 또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클라위베르트는 모리엔테스보다 더욱 아스날에 맞는 선수라 할 수 있다. 아약스에서부터 다져진 훌륭한 기본기는 슈팅, 개인기, 공간 창출 능력등에서 그를 최상위로 올려놓았다. 그의 특기인 제공권과 패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골 결정력은 아스날에 부족한 2%일 것이다. 게다가 기본적 피지컬과 빠르기도 훌륭하고 베르캄프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세컨드 어태커의 역할도 어느 정도 수행해낼 수 있다. 다만, 요 몇 년 동안 실력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조금 맘에 걸리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불안했던 지난 시즌의 거취와 달리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찾았다. 모리엔테스는 AS 모나코에서 임대의 설움을 날려버리고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했고, 클라위베르트는 뉴캐슬에 안착했다. 따라서 지난 시즌 틈틈이 이들에게 관심을 보였던 아스날로서는 이들의 영입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서 지워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타겟맨이 있어야지만 아스날이 유럽 챔피언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단점과 약점들의 지적도 결과론적인 것이지, 실제 예상을 깨고 챔스리그를 정복했던 포르투나 AS 모나코 등을 본다면 절대 저런 사소한(?) 약점이 아스날의 챔스 정복을 막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저러한 약점의 보완은 분명 아스날이 유럽무대에서의 영광을 차지할 가능성을 더 높여주는 것이다.
이번 시즌을 시작하는 아스날은 분명 자신감에 차 있고, 공격력은 어느 때보다 월등하다. 이번 오프 시즌에도 팬들이 막연하게 기대하는 대형 선수의의 영입은 없었다. 모리엔테스나 클라위베르트의 영입은 분명 아스날의 공격자원과 옵션을 좀 더 풍요하게 해 주었을 것이나, 벵거는 한층 더 조직력을 갈고 닦고 유망주를 양성하는 쪽을 택했다. 부족한 약점은 장점으로 커버 되는 것이 축구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 아스날의 행보 역시 주목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