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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옇게 서려있는 우리들의 마음에
헷갈리는 듯 이리저리 다른 곳으로 출구가 나 있고
00
영원하다는 말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하지만 녹슬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조금 믿는다
마음을 정돈하고 모난 부분을 다독이며 둥글게 둥글게.
틈새에 곰팡이와 눅눅함이 자리잡지 못하게 매일 들여다보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한 자리에 깃드는 한 줌의 온기를 식지 않게 오래도록 품는 것
언제부턴가 그런 마음을 가진 이를 동경하게 되었다.
01
대화도 없이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머리를 쓸어넘길 뿐인데 두 사람은 지극히 안온해.
온 신경을 벌어지는 입술에 집중하지 않으면
사랑해, 란 진부한 문장이 이 무성영화의 엔딩을 끝맺어버릴 것만 같아.
바닷물이 구두 앞코를 적셔 놀란 A가 다급히 B의 양팔을 붙잡아.
입안 가득 달콤한 향기가 밀려들어오고
결국 B는 상영한 지 십 분도 되지 않은 영화에 멋대로 클라이맥스 신을 던져버리지.
NG- NG-
노을빛에 생기를 빼앗기며 등장인물1,등장인물2로 저물어 버리는 두 사람.
짜증 섞인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음성이 들리며
고요한 밤바다를 배경으로 A가 다시 나타나지
A의 곁엔 B가 아닌 새로운 배우 P가 있어.
몸의 윤곽만 보일 뿐인데도 누구나 탐날만한 배역, 장면이 연출되어가지
엔딩크레딧에 B의 이름은 보이지 않아.
그 필름은 무명배우의 실수를 봐주기도 전에 폐기되었으니까.
02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잘 지내리라 믿었던 지인의 부고를 들었다.
말도 안될 정도로 밝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그의 모습이 허망했다.
그 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쓰일 줄 알았다면 그는 생을 가늠하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을까?
나는 문득 사람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죽음에 대해서 회고했다.
타인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것. 급성 장기 손상으로 죽지 않는 것
고독사 하지 않는 것. 자살하지 않는 것...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구성원들이 바라는 일반적인 죽음은 어떤 것일까.
저녁 약속을 잡으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주말에 건강검진 접수를 했다.
우선 내 몸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알고 나서도 이미 망가진 건 돌이키기 힘들지만 어떻게든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제 와서 아끼는 척이라니. 드레싱에 버무려진 샐러드를 뒤적거리며 자조적인 웃음이 났다.
저녁 8시부터 공복 상태를 유지하며 허기짐이 느껴질 때 자리에 누웠다.
혼몽한 정신이 조금씩 잠에 젖어들 때쯤
내일 눈을 뜨지 못한다면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려나.
가닥 없는 잡생각에 눌려 밤새 뒤척였다.
03
짝사랑이란 건 결국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일방적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노력하지 않은 채 편리하게 사랑하는 마음
그러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또 다른 것을 사랑해버리면 그만인.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프지 않아
또 새로이 관심 가는 다른 것들을 맘 놓고 사랑할 거야
이런 나를 상처주기는 쉽지 않을걸.
너는 날 사랑해 준적이 없잖아
04
너와 나는 인디 음악을 좋아해
노래방에 갔는데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인디 음악은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우린 보통의 사람들처럼
인기 곡을 애써 훑어 내려가며 맞지도 않는 음정 키를 눌러 대며 노래를 불렀지
보통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저 평범하게 사랑하고 노래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작 1평도 안되는 노래방에 마주 앉아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게
좋아하는데 좋아한다고 부를 수 없는 비주류 음악이
꺼내 보일 수 없는 마음 같아서 괜스레 다 목이 매여
W. 우주 연합
첫댓글 ㄱㅆ) 흐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노래방에 거의 없잖아.나는 인디음악 좋아하네'
생각의 파생으로 글이 써졌습니다.역시 문학을 애정하지만,제일 와닿는 건 마음에서 도출된 무의식적인 생각과 감정 같아요
잘 읽고 잘 들었습니다
다 좋은데 00 04 글 너무 좋아요ㅜㅜㅜ
감사해요 저도 04번 글이 제일 와닿아요.흐르는 음악조차도 노래방에서 부를수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