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오, 그러니까…… 여기가 ‘에라시에’ 란 말이지?”
“아마 그럴걸요?”
“으잉? ‘아마 그럴걸요’ 는 뭐야, 대체?”
“아니…… 저도 용병단 출신이라 ‘에라시에’ 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요.”
“우쒸. 뭐 길 안내자가 이래.”
“없는 것 보단 낫잖아요! 그보다 대체 왜 ‘유랑자’ 가 여기있는 겁니까, 대체!!!”
“그거야 지 맘이지, 뭐…… 별 수 있나.”
“닥쳐요, 카인!”
“뭐! 너 지금 뭐랬어!! 이게 정말……!!”
“둘 다 동작 그만─!! 당장 그만 둬─!!”
순간 류엘의 외침에 샤론과 카인의 불똥 튀기는(;;) 싸움이 일단 멎기는 했으나, 둘은 아직도 씩씩대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둘 다 똑같아!!
“근데, 정확하게 에라시에란게 뭐……”
“……빈민…….”
“아, 빈민…… 빈민…… 뭐?”
‘빈민’ 이라는 렐리의 대답을 중얼거리던 류엘이 ‘뭐?’ 하며 다시 물었다. 쿠웅, 하고 고개를 팍 숙인 렐리가 다시 답했다.
“사전적 의미는 다리에서 사는 사람. 그러나 해석되기는 ‘빈민’ 또는 직업을 가지지 못해 정상적인 가정과 집을 갖지 못한 ‘천민’ 을 이르는 단어…….”
“호오. 그런거야? 그럼…… 그 말은…… 잠깐? 그럼, 이번 유랑자가 ‘에라시에에서 산다’ 는 뜻은……?!”
“쉽게 말해, 이번 유랑자가 바로 ‘빈민’ 이라는 뜻이지.”
“사전에서 말하는 바로 그 빈민?”
“물론 그 빈민.”
“아니면?”
“ ‘맞다’ 에 라크루아리 가(家) 의 전재산을 건다.”
헬렌이 무기질한 목소리로 류엘의 질문에 답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빈민가의 아이들을 훑고 있었다. 천천히 그 들을 응시하던 헬렌이 시선을 돌려 어느 한 곳을 가리켰고,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 것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에라시에의 천막─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한─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그러나 가장 허름한 천막이었다. 헬렌이 천천히 말했다.
“저기, 인 것 같군.”
“에?? 어떻게 알았어요?”
“…….”
“이봐 샤론, ‘어떻게 알았는냐’ 가 중요한게 아냐. 중요한건 저기 사는 사람이 정말 ‘유랑자이냐’ 는 거지. 하지만…… 난 농담이라도 우주의 자식이 저기 산다는 말은 할 수 없겠는데.”
“난 제멋대로에 대책없는 성격의 발랑까진 파탄 소녀가 유랑자라는게 더 농담 아닌 농담 같군.”
“……너 그거 무슨 말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녀는 나의 사촌이기도 하지.”
“……그거 나지──!!!!!!!!”
“…알면 됐어. 가지.”
분개하는 류엘을 아주 예술적으로 무시하며 헬렌은 묵묵히 자신이 가리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류엘의 천적은 헬렌이다’ 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2
“……들어 갈 수 있을까요.”
“몰라. 우리의 천재 원더(wonder=천재. 베르베르(Verver) 행성에서는 보통 사람의 4배의 두뇌를 가진 이를 이른다.) 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쳇쳇쳇!”
……삐지셨수?
헬렌의 단 몇 마디에 완전 초토화 된 줄 알았던 류엘은 그새 부활해 주위의 모든 일에 태클이었다. ……그 것도 입술을 삐죽 내민채, 삐졌다는 사인을 온몸으로 나타내며. 그러나 헬렌 대신 류엘의 태클을 받아버린 카인과 렐리는 지금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고, 샤론도 ‘내가 대체 뭘 잘못한거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모든 것의 원흉인 헬렌과 류엘만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천막의 안을 둘러보기에 바빴다.
“……최소 한달 동안 들어오지 않은 것 같군. 흔적이 아예 없어.”
“우리가 들어왔잖아.”
“…….”
헬렌이 말없이 류엘을 째려보았지만, 고개를 홱 돌려 그 째림의 시선 밖으로 도피한 류엘은 발을 쿵쿵 구르며 2층 (천막에도 2층이 있다는건 심히 언밸런스하고 아이러니이며 서프라이즈였지만)으로 올라갔다(어찌나 발을 세게 굴렀는지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먼지 떨어진다.”
쿵쿵쿵─!!!
참다 못한 헬렌이 머리 위에 소복히 쌓이는 먼지들을 털어내며 그렇게 말했지만, 류엘은 듣지 못했다는 듯(그러나 반응으로 미루어보아 확실히 들었다.)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바로 헬렌의 머리 위에 위치한 곳에서) 발을 더 세게 구를 뿐이었다. 결국 미동 없는 헬렌의 표정에 금이 갔고, 급기야 눈썹을 꿈틀대던 헬렌이 휙 돌아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핵폭탄을 방불케 하는 폭발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3
“……황가의 일원들은 모두 이런가.”
“그럴리가 없지 않나. 류엘이 문제아인거다.”
“헬렌이 더 문제아야.”
“그럴리가 없지 않나!”
“난 어째서 문제아인 건데!”
카인의 멍한 질문. 그 질문 아닌 질문에 헬렌이 답했고, 류엘이 쏘아 붙였다. 결국 머리 끝까지 폭발한 헬렌이 류엘에게 외쳤고, 류엘 또한 맞받아침으로 인해─ 공중에서 엄청난 강도의 스파크가 터졌다.
“저, 저기, 두 분 다 진정하시고…….”
“한 판 해보자는거지!”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샤론이 급히 말리려 했지만, 이미 둘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었다. 서로의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를 무렵. 헬렌의 손이 왼쪽 허리에 달린 검집에 꽂힌 검의 도두(倒頭)로 향할 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싸우냐. 애새끼처럼…….”
“그만 해 둬, 류엘.”
“……이 분위기는 대체. 기껏 데리고 왔더니만…….”
“……요셉!”
“로엘!”
“……샤렌이다!!”
모여있던 사람들이 모두 벌떡, 일어났다. 희소식 아닌 희소식─ 출발이 늦어진 로엘을 데리러간 샤렌이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 붙어있는 저 남자는……. 카인과 샤론, 렐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즈음, 나지막히 한숨을 내쉰 헬렌이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소개하지. 내 약혼자. 반인반마 요셉 크루지아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