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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죽음—그 이유는?
사람들이 건강을 돌보기 위해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들은 늙고 병들어 마침내
죽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 없읍니다. 하나님께 굳은 믿음을 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피할 수 없었읍니다. (열왕 상 1:1; 2:1, 10; 디모데 전 5:23)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우리의 신체 세포들은 쇠퇴한 세포들을
대치시키는 잠재력이 현재보다 훨씬 더
지속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두뇌의 용량은 우리가 수명의 몇배를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큽니다. 우리가 원래
이러한 용량을 다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면, 그렇게 큰 용량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상, 과학자들은 우리가 늙고
병들어 죽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설명해 줍니다.
병과 죽음의 원인
3 사도 바울은 정확한 각도로 우리에게
이렇게 지적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느니라.]” (고린도 전 15:21, 22) 바울은 여기서 아담과 하와에 관한 성서
기록을 언급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 기록의 정확성을 확증하셨읍니다. (마가 10:6-8) 창조주께서도 첫 부부를 동산
집에 두시고 그분의 뜻과 일치하게 끝없는 생명의 행복한 전망을 갖게 하셨읍니다.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나무들과 다른
식물에서 나는 건강에 좋은 식품이 풍부하게 있었읍니다. 더우기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인간들이었읍니다. 그들의 정신과 몸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으므로, 이들이 현재의
인간들처럼 쇠퇴할 이유가 없었읍니다.—
신명 32:4; 창세 1:31.
4 그 첫 인간 부부에게는 단 한 가지의 제한 사항이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 2:17) 이러한 제한에 순응함으로써, 그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이
선과 악인지를 결정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었읍니다. 얼마 후 그들은 선악에 대한 그들 자신의 표준을
세웠읍니다. (창세 3:6, 7) 하나님께서
명백히 밝히신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그들은 성서가 말하는 “죄”를 범하였읍니다. 히브리어로나 희랍어로나 “죄짓다”라는 말은 “[과녁]을 빗나가다”를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순종의 과녁을 빗나갔읍니다. 혹은 미치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더는
여호와의 완전성을 반영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공의의 판결을 자초하였읍니다.—누가 16:10.
5 아담과 하와의 죄는 그들 자신과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읍니다. 왜 우리에게까지 영향이 미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즉시 처형하지 않으셨읍니다. 관련된 모든 일을 고려하셔서 여호와께서는 첫 부부가 자녀를 낳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더는
완전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은 몸과 정신이 쇠퇴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전한 자녀들을
낳을 수 없었읍니다. (욥 14:4) 그러한
상태는, 마치 오늘날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가진 부부가 자녀에게 그것을 물려주는 것에 비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죄라는 결함을
물려받았읍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첫 부부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 5:12; 시 51:5.
6 상태는 절망적이었읍니까? 역사와 성서
모두가 확증하듯이, 문제 해결이 인간에게
맡겨져 있었다면,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죄, 얼룩을 깨끗이 씻거나 하나님의 단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벗어나려면,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셔야 합니다. 그분의 법을 범하는 일이 있다면, 그분만이 완전한 공의와 일치하게 단죄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분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함한 아담과 하와의 자손에게 구출의 마련을 해주심으로써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셨읍니다. 성서는 그 마련이 무엇이고 우리가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7 다음 귀절은 그 문제를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 3:16.
“인자[예수]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 10:45.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치르신 대속물로, 신세]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죄를 덮어 주는] 제물로 세우셨[느니라.]”—로마 3:23-25.
“대속물”이란 무엇인가?
8 위의 성귀들 가운데 두 군데서 “대속물”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포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치르는 대가를 말합니다. (이사야 43:3) 종종 그 말은 유괴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한 돈과 관련해서도 사용됩니다.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 그 포로는 인류입니다. 아담이 우리를 죄의 속박으로 판 것입니다. 그 결과 병과 죽음이 왔읍니다. (로마 7:14) 어떤 귀중한 것이 인류를 도로 사서
죄의 영향을 벗어난 생명의 전망을 열어줄 수 있겠읍니까?
9 예수께서 ‘대속물로 자기 생명을 주’셨다는 성서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마가 10:45) 이 말씀으로 보아 필요한 것은 인간 생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죄를 지음으로써, 아담은 완전한 인간 생명을 상실했습니다. 인류가 완전한 인간 생명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서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즉, 아담이 잃어버렸던 것을 도로 사기 위해 또 하나의 완전한 인간 생명이 필요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불완전한 후손 중에는 대속물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를 강조합니다. 시편 49:7, 8이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아무도 결코 자신을 구하거나 하느님께 자기를 위한 대속물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자기 생명을 구하는 값이 너무나 비싸 그로서는 미치지 못함이라.”—예루살렘 성서.
10 대속의 값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완전한 영자(靈子)를 하늘로부터 보내셔서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셨읍니다.
한 천사는 순결한 처녀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어떻게 완전하게 태어나도록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가를 설명하였읍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누가 1:35; 갈라디아 4:4) 불완전한 인간 아버지를 갖지 않은
예수에게는 전혀 유전죄가 없었읍니다.—
베드로 전 2:22; 히브리 7:26.
11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온전히 일치한 생애를 보내시고 나서
자기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바치셨읍니다. 그것은 아담이 창조될 때 소유하였던 것과 같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상응하는 대속물”이 되셨읍니다. (디모데 전 2:5, 6, 신세; 고린도 전 15:45) 그렇습니다. 그분이 대가를 치르고 전 인간 가족을 사셨다는 점에서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읍니다. 따라서
성서는 우리가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전 6:20)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에게 죄, 병 그리고 죽음을 초래한
아담의 행위를 상쇄하기 위한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우리의 생활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읍니다.
우리는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가?
12 성서로부터 예수께서 대속의 값을 치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의 승인과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죄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주
‘과녁을 빗’나갑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느니라.]” (로마 3:23) 이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께 가납될 수 있습니까?
13 확실히, 우리가 그분의 뜻과 상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행로를 계속 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인하실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나쁜 욕망,
나쁜 말 및 나쁜 행실에 대해 진실로 회개하고 성서에 설명되어 있는 그분의 표준에
순응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17:30) 우리에게는 아직도 사함을 받아야 할—
현재와 과거의—죄들이 있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의 대속 희생이 우리를 위해
작용합니다. 바울은 이 점을 지적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의 피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덮어 주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기술하였습니다.—로마 3:24, 25.
14 이 사도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마련하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전영 혹은 미리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백성의 죄를 위하여 동물 희생 제사를 정기적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각자는 특별한 경우의 죄를
위하여 속건제(贖愆祭)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레위 16:1-34; 5:1-6, 17-19)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피의 제사를 속죄해 주는 것 즉 인간의 죄를 없애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구적인 구원을 가져오지는 못하였읍니다. 성서의 말씀대로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0:3, 4)
그러나 제사장, 성전, 제단 및 제사를 포함한 숭배의 이러한 특징들은 “상징” 즉, 예수의 희생을 포함한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였습니다.—히브리 9:6-9(새번역 참조), 11, 12; 10:1.
15 성서는 우리가 용서를 받는 데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그(예수)의 피로 말미암은
대속을 통하여, 신세] 곧 죄 사함을 받[느니라.]” (에베소 1:7; 베드로 전 2:24; 사체로는 본서에서.)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은
대속물을 마련해 주는 것에 더하여 우리의 죄를 덮어줄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예수를 우리의 주 즉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분께 복종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 6:11, 20; 히브리 5:9) 따라서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여기에 더하여 우리의 주이신 예수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6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병과 죽음을 끝나게 하심으로써 죄의 결과로부터 모든 인류를
구하실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죄 사함은 우리가 바로 지금 즐길 수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한 양심을 갖게 한다고 알려 줍니다.—
요한 1서 2:12.
17 그러므로 예수의 희생은 매일매일 우리 자신에게 매우 깊은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하는 잘못들을 용서해 주실 수 있읍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 1서 2:1; 누가 11:2-4) 이것은 성서의 주된
가르침이며, 우리의 항구적인 행복에 대단히 중요합니다.—고린도 전 15:3.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18 당신은 병과 죽음의 원인, 대속물 및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의 마련에 대한
성서의 말씀에 어떠한 반응을 나타냅니까? 어떤 사람은 이러한 점들을 정신에는 주입하지만, 마음과 생활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19 우리는 대속물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까? 사도 요한은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느니라.]” (요한 3:16; 사체로는 본서에서.) 관련된 인간들은
죄인들로서 하나님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로마 5:10; 골로새 1:21) 당신은 대부분, 당신에게 거의 혹은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순결하고 충실한 아들, 사랑하는 장자로
하여금 인류를 구출하기 위해 이 땅에 와서 모욕과 수치와 죽음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에 감동을 받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 5:8.
20 아들 역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때가 되자, 그분은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불완전한 인간들을 위해서 노예처럼 고되게 일하시고, 그들을 가르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결백하셨지만, 조롱, 고문 및 진리의 적들의 손에 의해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 점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시간을 내어서 누가 복음 22:47부터 23:47까지 기록되어 있는 예수께서 당하신 배반, 시련, 욕설 및 처형에 관한 내용을 읽어 보십시오.
21 당신은 이 모든 일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분명히, 인자하신 대속의
마련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쁜 행실에 대한 핑계거리로 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 목적을 빗나가는 것이 될 것이며 그 결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10:26, 29; 민수 15:30)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는 창조주께 영예를 돌리게 할 방식의 생활을 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을
통한 그 웅대한 마련에 대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마련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그리고 그들도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를 인식하게 돕도록 우리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사도 4:12; 로마 10:9, 10; 야고보 2:26; 고린도 후 5:14, 15.
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의 죄 사함을 베풀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적들은 그분의 그러한 말씀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써 그 점을
입증하셨습니다. (누가 5:17-26) 이처럼,
죄가 인류에게 신체적 영향을 미친 것 같이, 죄 사함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지상에서 행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병과 죽음을 끝내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주신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과 일치합니다. (요한 3:16) 그러나 어떻게? 언제? 그리고 이미 사망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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