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 아름이가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침에 학교 간다고 나섰다는데 사라졌고
집에서 버스정류장 사이의 맨홀에서 아이의 핸드폰만 꺼진채 발견되었다구요.
10살이라는 그 아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어떤 다음 소식을 듣게 될지 두려운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몇년 전에 조XX이란 넘에게 강간을 당해 장기까지 손상되었던
8살짜리 여자아이 나영이도 떠오릅니다.
이런 일들은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에게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치명적인 충격과 상처를 남기게되지요.
그러면서 최근에 다시 읽고 있었던 '실비아 브라운'의 책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영혼 혹은 마음>에서 본 한 대목을 새삼 뒤적였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영매인 '실비아 브라운'은 고객을 대상으로
최면을 통한 전생퇴행을 수천 번도 넘게 실행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그 당시 당신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
깨어있을 때 이렇게 "당신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우리가 당황하거나 우물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을까요?
(아는체 많이하는 저도 오리무중...ㅠㅠ)
그런데 최면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적이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한답니다.
예를 들면 "나는 훌륭한 참모자가 되는 법을 배울 목적으로 이곳에 태어났습니다."와 같이.
그래서 신기하게 생각했던 그녀는 동료 최면술사들에게도 제의를 해서
전생퇴행을 할 때마다 고객에게 전생에서의 삶의 목적을 물어보고
그 대답을 활자와 녹음으로 기록했는데
그녀의 고객이나 다른 최면술사의 고객에게서나
그들의 망설임 없이 나오는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게다가 그 대답에서 주목할 만한 유사성을 발견했답니다.
44개의 똑같은 삶의 목적, 삶의 주제가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것...
그래서 연구를 계속한 그녀가 발견한 것이 이것이랍니다.
저편의 세계에서 우리가 인생청사진을 설계할 때에
이 44개의 주제들 중에서
'두 가지를 앞으로 경험할 생의 주제로 선택한다'는 것.
그 첫 번째 주제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 주제는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수정할 부분',
즉 '극복해야 할 가장 커다란 장애물'들이라는 것.
그녀는 우리 각자가 이 두 개씩의 주제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하면서
책에서 44개의 주제를 나열하며 설명을 붙여 놓았습니다.
다소 지루하기도 한 그 부분을 처음 읽으면서 제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바로 '희생자'라는 주제였습니다.
본문을 옮겨보면
희생자:
삶의 희생양으로서 이들은
불의를 밝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고 변화를 꾀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학대받거나 살해당하는 아이들,
증오로 인한 범죄의 대상자들,
중죄인의 누명을 썼다가 결국엔 무고로 풀려난 사람들이 바로
숭고한 목적을 위해 그들의 삶을 희생하는 경우다.
그런 주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지요.
그리고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물론 그들의 '카르마'도 고려되긴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렇게 무고하게 희생을 당하는 아이들, 사람들이
결코 우연히, 불운해서 그런 일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충격이었구요.
스스로의 계획, 선택에 의한 것이다...맨정신으로는 받아들이기 불가능하지요...
불의를 밝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고 변화를 꾀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정말 그렇긴 합니다.
우리가 두렵기까지 한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면 우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에 충격을 받게되고,
그렇게 희생당한 사람, 특히 어린아이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미어지며,
그런 일이 다시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떤 지원을 하고,
어떤 법이나 규제를 만들어야하는가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결정하게 된다는 것...
그렇게 사람들을 깨우치고 변하도록,
그래서 세상까지도 보다 나은 곳으로 바뀔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한다...스스로를 희생하여...
너무나 숭고한 마음, 숭고한 영혼을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그런 숭고한 영혼들이 많았지요?
비극적인 사건, 폭력 희생자들,
무고한 고문 희생자들,
무고히 감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도 많았던 역사이니...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 사는 곳이 점점 나은 곳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네요.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고...
다시 생각이 통영 실종 소녀 아름이와 나영이 사건으로 돌아가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도 서양처럼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혼자 학교에 등하교하거나 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 없도록,
돌보는 사람 없이 혼자 집에 있지 않도록
규제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모가 각자 못하면 이웃하고 조를 짜서라도 말입니다.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지요.
어디에 가든지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 오고...
하지만 그것 말고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할까요.
선진국들이 오죽하면 그런 규제를 만들었을까요.
그들도 이런 비극적일을 많이 경험했기에 만들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우리도 하는 수없이 그들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오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하지만 무사히 돌아오더라도
이번 기회에 아이들을 위한 '보호법'을 만들 수있기를
그래서 이런 기사로 가슴이 아픈 일들이 사라질 수 있기를...
첫댓글 우리가 현안에 눈때지 말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느 듯 그게 나의 일이 되기 때문이지요.
통영여아사건은 비극적 결말로 들어났지만 그 일이 어찌 내 아이의 일이 아니라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너무나 쉽게 외면하고,망각하고 그리하여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며 살죠.
그저께 있었던 미 총기난사사건도 같은 맥락인데 재발방지에,또는 범죄발생의 최소화에 눈 부릅뜨고 살펴야겠어요.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방금 아름이 실종사건의 전말을 읽었네요.
역시...
정말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하는데...
그래야 그 희생을 무의미하지 않게 할텐데...
안타까운 마음 가득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