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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46)
고자 고치는 약을 주면 살려 줄지도 모른다.]
살인(殺人).
강호무림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다. 귀광두 손에 수천 명이 죽어간 상황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 되었다. 강호상에서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살인을 일상적인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는 한 곳이 있다.
그곳은 북경(北京)이다.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 북경에서만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 살인이다.
그런데 살인이 일어났다. 그것도 떼거리로.
“도대체 어떤 놈이냐!”
시체들로 가득한 실내를 보며 천태진은 나직한 신음을 발했다. 그가 살인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건 아침상을 물린 다음이었다.
하얗게 쌓인 눈 때문에 일순 흥이 동한 천태진이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방문을 나서는 순간 부하 몇 명이 다급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라니.
처음엔 아래 선에서 처리할 사항을 보고했다고 질책의 시선을 보냈던 천태진은 이어지는 말에 대문을 박차고 뛰쳐나가야 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수양루, 천향루, 광양루, 정설루, 백화루 등 동창에서 운영하는 객잔이었던 탓이다. 더구나 손님들 간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객잔 운영자들이 떼거리로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수양루를 거쳐 백화루까지 오는 동안 천태진은 몇 번이고 신음을 흘려야 했다.
죽어 있는 모습이 누구랄 것 없이 대동소이했다.
객잔 주인과 요리사, 그리고 점소이들로 위장하고 있던 동창무인들의 사망 원인은 독(毒)이었다.
더욱 황당한 노릇은 독에 당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단서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살인자들을 보았다는 목격자도, 눈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객잔 밖에는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살인자들은 독공을 익힌 무인이란 말이 된다.
아니, 무인이 아니라면 동창무인 백여 명을 하룻밤 만에 없앨 수가 없다.
“장철웅, 네 생각은 어떠냐?”
한참 동안 현장을 쳐다보던 천태진은 장철웅을 향해 물었다. 살인자는 동창에서 운영하는 객잔임을 알고 있는 자다.
즉,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배장을 가진 자들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천태진은 아니라고 자신할 것이다. 이미 세상은 동창제독 하후장설의 수중에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있으면 남경왕 주홍과 연관 있는 자로 몰아 처단하고 있지 않은가. 무림 또한 마찬가지다.
소림이 멸문당한 상황에서 동창을 향해 감히 칼을 들이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황실을 향해 원한을 드러낼 만한 곳은 소리이나 귀광두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장철웅은 말끝을 흐렸다. 그 또한 천태진처럼 눈앞의 현실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소림사는 멸문당했고 귀광두는 바다로 도망쳤다.
동창을, 아니 하후장설에게 대항할 세력은 어디에도 없다.
“가서 독공을 ㅆ는 자들에 대한 모든 자료를 찾아와라!”
현 상황에서 천태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존명!”
천태진을 향해 고개를 숙인 장철웅은 객잔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암울했다.
그가 알고 있는 독공 고수는 많다. 북황련에는 만독천씨세가가, 남천벌에는 독각이, 그리고 사천에는 사천당문이 현 강호에서 독을 다루는 대표적인 가문이다.
“제길!”
장철웅은 낮게 욕설을 뱉어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들은 결코 아니다.
“조사한다고 나올는지.”
고개를 흔들던 장철웅은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장철웅은 삼 장 높이의 담이 길게 이어진 장소에 도착하여 걸음을 멈췄다.
금영숙(錦營宿).
이천에 달하는 금의위 위사들이 기거하고 있는 이곳은 남성의 동반숙(東반숙)과 더불어 북경 이대 권력기구로 통한다.
어린 시절 이곳에 들어오기를 얼마나 열망했던가.
출중한 무공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한직에 머물렀던 아버지를 보며 권력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해서 선택한 곳이 금의위였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줄기차게 앞으로 달려왔고 금의위로서는 최고 자리라 할 수 있는 진무사가 되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자리다.
영반 자리가 욕심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곳은 실력이 아닌 연줄로 가는 자리. 꿈꿀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지금이 최선이야.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이것들이?”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던 장철웅은 한 곳을 쳐다보며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가 있는 곳은 금영숙 정문이었다.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위사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한 명은 한쪽 구석에 박혀 졸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담에 기대어 구토를 하고 있었다.
“저런 죽일 놈들을 봤나! 뭐 하는 짓이냐!”
눈을 치뜬 장철웅은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며 정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들짝 놀란 눈으로 이편을 쳐다보는 위사를 향해 오른손을 사정없이 뿌렸다. 그가 자랑하는 거령권 일 초인 거령난마(巨靈亂馬)였다.
“아아악!”
꽈앙!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위사는 커다란 비명과 함께 정문을 부수며 안쪽으로 날아갔다.
“이놈들이!”
장철웅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보았다. 방금 시전했던 거령난마는 삼 성의 공력을 사용했다. 그런데 부하의 몸이 반 장이나 날아간 것이다.
일반 양민이라면 몰라도 무공을 익힌 위사라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장철웅은 몸을 날려 안으로 들어갔다.
“이럴 수가!”
안으로 들어선 장철웅은 경악한 얼굴로 전면을 쳐다보았다. 수십 채의 건물이 들어앉은 금영숙 안쪽은 엉망이었다. 각 건물 앞에는 조금 전 정문 앞에서 보았던 자들과 같은 행색으로 쓰러져 있는 위사들 천지였다.
아니, 그들보다 더 심했다. 대들보에 기대어 토악질을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아무도 없느냐?”
불안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천여 명의 금의위 위사들이 있던 금영숙은 정적만이 흘렀다. 다만 내공을 끌어올린 귓전으로 위사들의 미약한 신음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일순 장철웅은 나아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덜컥 겁이 났다. 위사들 또한 독에 당한 게 분명했다. 독이 아니라면 하룻밤 만에 천여 명에 달하는 위사들을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전 내공을 귀로 집중하여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안에 흉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귓전으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남아 있을 리가 없겠지.”
일순 고개를 끄덕인 장철웅은 쓰러져 있는 위사 곁으로 다가갔다.
“말할 수 있겠느냐?”
“으으!”
그러나 위사는 장철웅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입은 하얀 거품으로 가득했다.
“빌어먹을.”
나직한 욕설을 뱉어낸 장철웅은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의전이었다. 금의위 위사들에게 지급되는 해독제를 찾기 위함이었다.
벌컥!
거칠게 의전의 문을 열어젖힌 장철웅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과는 상반된 말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네놈들은?”
호피를 입은 두 명과 덥수룩한 수염에 남루한 옷을 걸칠 인물을 향한 장철웅의 첫마디였다.
“꼴에 진무사라고 처음부터 반말이네. 이름이 뭐냐?”
장철웅을 향해 말을 건 이는 모사였다.
“장철웅이란 녀석일세. 우직한 성격을 가진 녀석인데 상관을 잘못 만난 거네.”
“회유할 수 있겠소?”
주홍의 말에 살피듯 장철웅을 쳐다보며 모사는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주홍 역시 장철웅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금의위 위사들의 목숨을 살려준 건 주홍의 부탁이었다.
세력 규합을 위해서였다. 하후장설에 의해 자신의 편에 섰던 자들은 대부분 처형당한 상태였고, 지금 상황에서 동창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북경을 장악할 힘이 없다.
최대한 회유할 수 있는 자들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 말대로 황제의 목을 따 버리자니까 그러네.”
답답한 듯 섯다가 소리쳤다.
“그럴 수 없다는 건 그대들도 알지 않소.”
주홍은 고개를 저었다. 황제가 친형님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민심이 등을 돌린 현 시국에서 황제의 죽음은 명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고, 명나라 전역은 전쟁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고 싶어 황제가 되려 했지 명나라 멸망을 바라는 건 결코 아니다.
“허!”
자신의 처지도 잊고 장철웅은 신음을 뱉어냈다. 어이가 없었다. 금의위 수석 진무사인 자신을 앞에 두고 하는 말들이라니.
정신병자들이 아니라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황제는 손바닥 위에 놓인 장난감에 불과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황제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화는 분명 그랬다.
“장철웅, 넌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장철웅이 내뱉는 신음 소리를 들었을까. 주홍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분인데 나를 알고........”
일순 장철웅은 격하게 몸을 떨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검게 탄 얼굴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중년인은 분명 그였다.
얼마 전 동창무인들에게 쫓겨 북경을 떠났던 사람.
“남경왕?”
부르르 떨던 장철웅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로소 동창 무인들의 죽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주홍 곁에 있는 두 사람. 입고 있는 옷은 호피 가죽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몸에서는 하늘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조금 전 천리지청술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던 자들이 분명하리라. 어디서 저런 자들이 나타났는지 그건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수양루에서 보았던 동창무인들이 떠오르며 눈앞에 죽음이 그려졌다.
망연한 눈으로 세 사람을 쳐다보는 장철웅의 귓전으로 뜻밖의 소리가 흘러들었다.
“맞다, 장철웅! 난 남경왕 주홍이다. 너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바로....... 삶과 죽음이다.”
“따르면 살 수 있습니까?”
조금 전 세 사람이 나누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분명 회유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주홍은 세력이 전무한 사람. 그가 황제가 될 확룔은 일 할도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들에게 죽는다면 충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주홍을 따르다 실패하여 죽는다면 역적으로 낙인찍힘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역적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건 나도 약속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하후장설과 천태진이 죽은 다음 금의위와 동창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럼?”
일순 장철웅의 눈이 빛났다.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했다. 동창과 금의위를 장악할 수 있는 기회. 권력의 최정점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
성공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말이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르겠다고 말해 놓고 이곳에서 나가는 순간 영반께 보고할 수도 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된다면 난 황제가 될 자질도 없는 놈이 공연한 욕심을 부린 거겠지.”
장철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홍은 말했다. 사실 장철웅을 회유해 보겠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내린 시험이었다.
장철웅의 회유에 성공한다면 시운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길 터이고, 실패한다면 미련 없이 황제 자리를 포기할 것이다.
“따르겠습니다.”
자세를 바로 한 장철웅은 주홍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하지만 주홍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네가 나를 따를 시기는 하후장설과 천태진이 죽고 난 다음이다. 그 전에는 지금처럼 모른 척하고 있으면 된다.”
“친왕 전하!”
장철웅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주홍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후장설과 천태진이 죽은 다음부터 활동을 시작하라는 말은, 그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지금처럼 살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구원의 빛이었다. 아울러 마음을 묶어 버린 족쇄가 되었다.
급기야 장철웅은 감격한 얼굴로 머리를 찍었다.
“쿡!”
장철웅의 모습에 모사는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주홍이라는 사람. 자신과는 그릇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 같으면 팔다리 한두 개를 자르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몇 마디 말로 금의위 수석 진무사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두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하후장설이나 천태진을 없앨 자신이 없었다면 감히 시도하지 못했겠지요.”
주홍은 어색하게 웃었다. 단 두 명에 불과했지만 십만 정병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 그들을 만났다는 것부터가 하늘의 뜻이라 여겼다.
“어떻게 하겠소?”
“뭐 별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오늘 밤 천태진을 없애고 내일은 하후장설을 사냥하도록 하지요. 참, 십여 일 정도 있으면 쓰러진 놈들은 멀쩡하니 일어날 거다.”
“세상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철웅은 놀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조금 전 황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랬지만 금의위 영반인 천태지는 없앤다는 말조차 장난치듯 말하다니.
두 사람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누구기에 저런 엄청난 무공을.......’
휘리릭!
내심 중얼거리던 장철웅은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헉!”
전면을 쳐다보던 장철웅은 나직한 신음을 뱉어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장철웅은 고개를 돌려 의전 밖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없었다.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세 사람은 처음부터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흔적조차 없었다.
단지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만 들렸을 뿐.
“그렇게 강자였던가?”
감탄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우선 천태진에게 이곳 상황을 보고해야지.”
망연한 얼굴로 문밖을 주시하던 장철웅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쿡! 녀석, 바로 천태진이라고 부르네.”
장철웅이 떠난 한참 뒤, 나직한 웃음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렁이더니 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장철웅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기 위해 환영미로진으로 몸을 숨긴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할 텐가?”
주홍은 심각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물었다. 조금 전 모사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오늘 밤 천태진을 없애고 내일 밤 하후장설을 없애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무모한 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은 방법이외다. 자신을 강자라고 생각하는 놈들의 특성은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는 거지요.”
모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처럼?”
“맞소이다. 어째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 같네.”
모사는 제 얼굴을 슬슬 문지르며 주홍을 쳐다보았다.
“어째 경고하는 것 같구먼.”
모사의 시선을 접한 주홍은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껏 두 사람이 했던 말이 이제야 피부로 와 닿았다. 구백 칸이 넘는 방에서 황제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렵다고 했건만 두 사람은 줄곧 황제를 없애 버리자고 했다.
황제를 찾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그런데 두 사람이 했던 말은 현 황제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황제를 암살할 수 있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별말씀을 다 하시오.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지.”
모사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황제를 없애 버리겠다고 노래하듯 반복했던 이유는 주홍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였다.
“일단 여기서 나갑시다. 약 냄새가 나서 더 이상은 못 견디겠구먼.”
“어디로 갈 텐가?
환영미로진의 흔적을 지우는 모사를 보며 주홍은 물었다.
“어딜 가겠소. 뒈질 놈 집에 가서 쉬어야지. 그나저나 약속은 꼭 지켜야 하오.”
“약속?”
“이런!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절대 잊으면 안 되는데........”
제법 심각한 얼굴로 주홍을 쳐다보며 모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약! 쿡!”
그제야 의미를 알아차린 주홍은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황당한 사람들이다. 황제의 죽음을 논하고 동창제독과 금의위 영반을 죽일 계획을 세우는 이 순간 고자를 고치는 약이라니.
“거시가가 정상 작동하는 왕야야 웃음이 나오겠지만 우린 절대 아니오. 우리에게는 왕야를 황제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란 말이오.”
“모사 말이 맞소이다, 왕야. 우린 반드시,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더라도 장가를 가야 하오. 그리고 자식을 낳아야 한단 말입니다. 일만 아니었다면 기방에 가 있을 텐데.”
모사의 말에 맞장구를 친 섯다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춘약을 먹고 기방에 가는 것을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해 두었다. 하지만 시도를 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동창 정보원 노릇을 하던 객잔을 없애기 전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 한 가지 정도는 남겨 두고 싶어서였다.
만일 그 방법마저 효과가 없다면 영원히 고자로 살아야 하는데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만일 말이오. 북경에서도 치료하지 못한다면 나는........ 자살하게 될지도 모르오.”
“허!”
“‘허!’가 아니오, 왕야. 가진 놈들은 없이 사는 사람들의 설움을 모르오. 마음만 먹으면 작동하는 그런 물건을 가졌다는 걸 하늘에 감사하고 살아야 하오.”
“황실 어의를 전부 조져서라도 그대들을 치료해 주도록 하겠네.”
“열여덟 살!”
“물론 열여덟 살 먹은 처녀에게 장가도 보내 주고.”
“역시 왕야는 시원시원해서 좋소. 북경에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단 말이오.”
섯다는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하여간 그대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주홍은 쓴웃음을 지었다.
흑룡강성을 떠나 북경으로 오는 도중 두 사람은 대가를 요구했다. 황제가 되면 반드시 들어주어야 한다며 신신당부하기에 대단한 자리라도 원하는 줄 알았다.
하긴 그들이 원한다면 어떤 자리라도 줄 용의가 있었다.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그 모든 공은 오직 그들 덕분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주홍은 기절할 뻔했다.
먼저 고자가 된 몸을 고쳐 준 다음에 장가를 보내 달란다. 그것도 열여덟 먹은 처녀에게.
입을 떡 벌리며 쳐다보자 자신들은 장가 한 번 가보지 못한 총각이라며, 유일한 꿈이 장가가는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약관의 청년도 아니고 팔십 넘은 노인들이 아닌가.
“원래 그런 겁니다. 가치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게 아니니까요. 왕야에게는 황제가 최고의 가치겠지만 우리 같은 녀석들에게는 발가락에 낀 때 이상의 의미도 없소이다. 약속을 들어준다고 했으니까....... 갑시다.”
싱긋 미소를 머금은 섯다는 주홍의 팔을 잡아끌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의 신형은 꺼지듯 금영숙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금의위 영반 천태진의 집이었다.
“제길!”
부하들을 바라보는 천태진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느긋하게 시작했던 하루가 지금처럼 망가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더구나 첫눈 오는 날.
아침 수양루에 들렀을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못했다. 동창무인들은 사인을 조사하고 있던 참에 장철웅이 가져온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사망자가 없어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그런 일을 저질렀던 흉수의 흔적조차 잡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걸렸다.
더구나 동창제독 관저에서 당한 걸 생각하면.
“개자식!”
입술을 비집고 욕설이 흘러나왔다. 수많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무능한 놈이라고 욕을 먹었다. 삼 일의 시간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흉수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면 각오하라는 말을 들었다.
“나온 건 없느냐?”
부하들을 둘러보며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공연히 해본 말이다. 낮에만 해도 동창무인 천 명과 금의위 천 명이 나서서 북경 전역을 샅샅이 수색했다.
하지만 흉수로 짐작되는 자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북경 전역이 비상을 걸었습니다. 금의위나 동창에서 발행한 허가증을 소지하지 않은 자들은 전부 잡아들이라 했습니다.”
장철웅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가시 방석이 앉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천태진의 시선을 접하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몇 번이고 마음을 다독였으나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 놈들을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고.”
천태진은 짓씹듯 중얼거렸다.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의심할 만한 자는 없었다. 있다면 십 년 전, 자신의 부탁으로 강호를 떠났던 독천쌍마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아니, 그들이 돌아왔다면 하후장설이 먼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낮에 만났던 그는 아무런 언질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독천쌍마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동창무인 백여 명을 독살하고 금의위 무인 일천 명을 중독시켜 버리는 가공할 독공을 가진 자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쪽은 알아보았느냐?”
결국 하후장설에게까지 혐의를 두었다. 상전이지만 그가 아니라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자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장철웅은 고개를 저었다.
“동창 또한 나온 게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만 나가 봐라!”
관자놀이를 주무르던 천태진은 부하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말을 잘 듣는 개를 하후장설이 없앨 리가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잠은 다 잤군.”
창 쪽으로 자리를 옮긴 천태진은 낮게 투덜댔다.
자신을 비롯한 금의위 위사 모두는 범인이 잡힐 때까지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더하여 언제 하후장설의 호출이 떨어질지 모르기에 항상 대기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
깊게 한숨을 내쉰 천태진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느닷없이 차가 생각났다.
“응?”
찻물을 바라보던 천태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가 평소 즐기는 연녹색 산뜻한 색의 차가 아닌 검은 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갑작스러 소름이 돋은 천태진이 밖을 향해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크아악!”
후원으로부터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웬 놈이냐!”
콰당!
날카롭게 고함을 지른 천태진은 부수듯 방문을 열어젖히며 방금 소리가 들려왔던 후원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후원에 도착한 천태진은 부하들이 포위하고 있는 인물을 발견했다.
“저자란 말인가?”
천태진은 눈을 가늘게 모았다. 맨발에 호피를 걸친 점을 제외하면 그다지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는 자였다. 더구나 그의 몸에서는 별다른 기세조차 풍기지 않는다.
천태진은 혼란스러웠다. 백여 명에 달하는 동창무인을 살해하고 금영숙에 독을 뿌린 자치곤 너무 평범했던 탓이었다.
“영반 합하!”
천태진이 다가가자 금의위 위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길을 열었다.
“대담하구나, 감히 금의위 영반의 집에 침입을 하다니.”
주변을 슬쩍 둘러본 천태진은 느긋한 얼굴로 물었다. 뒤늦게 합류한 위사들을 합치면 삼백여 명의 부하들이 포위하고 있다. 흉수가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놈 혼자더냐?”
“그럼 혼자지, 네까짓 녀석 하나 없애는데 떼거리로 왔을까? 잘 기억해 둬라, 내 이름은 장대근이다.”
천태진을 쳐다보며 섯다는 짜증난 얼굴로 말했다. 그가 이런 지랄 같은 역할을 맡게 된 건 순전히 투자에 졌기 때문이다. 투자에 이겼더라면 지금 금의위 위사 뒤편에 있는 환영미로진 안에 있을 거였다.
“지금부터 이 장대근이 말하겠다. 고자를 고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놈은 죽기 전에 말해라. 그럼 살아날지도 모른다. 고자를 고치는 방법이다!”
낮게 소리친 섯다는 전면을 포위하고 있는 금의위 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일순 그의 몸에서 붉은 광채가 폭발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쳐라!”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천태진은 급하게 몸을 빼며 소리를 질렀다.
“와아! 잡아라!”
커다란 고함을 지르며 위사들은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굳이 찌르겠다고 몸을 날릴 필요도 없었다. 무기만 들어 올리면 되었다. 상대의 동작이 그만큼 빨랐던 탓이었다.
챙! 챙챙챙!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대여섯 자루의 검이 일제히 부러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붉은 광채를 머금은 팔이 파고들었다.
“끄아악!”
금의위 영반 천태진의 집에서 두 번째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붉은 광채를 머금은 주먹이 위사 네 명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일순 네 개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 사이로 붉은 기운을 머금은 발이 스며들었다. 번갈아 차올리는 발은 허공에 수많은 자국을 남겼다.
더욱 놀라운 일은 다음이었다.
이십여 개의 발자국을 허공에 만든 섯다가 그것들을 쳐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악!”
“으악!”
“내눈!”
목을, 이마를, 눈을 부여잡고 지면으로 쓰러지는 자들, 그들은 호기 있게 달려들었던 위사들이었다.
“저런 무공이........!”
맨 뒤에 있던 천태진은 경악한 얼굴로 전면을 주시했다. 예상과는 달리 상대는 독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독공보다 더욱 기이했다.
강기를 허공에 남겨 그것으로 상대를 격살하다니.
“설마, 이기어검술?”
천태진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섯다는 주변에 널린 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두 자루의 도가 빨려 들 듯 손 안으로 들어오자 섯다는 양손을 전후좌우로 천천히 휘둘렀다.
파리를 쫓는 행동이 저리할까.
도를 감싼 붉은 기운을 제외하면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공격이었다.
생각보다 공격이 약하다고 판단했는지 주춤하던 위사들이 전면으로 내달리며 일제히 각자의 무기를 뿌렸다.
일순 섯다의 몸 주변은 수많은 광채로 들어찼다.
그가 쏟아낸 붉은 광채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휘이익!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미약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엄청난 기운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쿠웅!
“크아악!”
과앙!
“아아아악!”
퍼엉!
“으아악!”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그것은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했다.
붉은 광채가 폭죽처럼 터질 때마다 금의위 무사들의 몸은 파편처럼 흩어졌다. 팔이, 다리가, 허리가, 목이 떠오르며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광살소풍(狂殺笑風)!
천붕십일천마 다섯 명이 머리를 맞대고 창안했던 무공. 백산의 손에서 펼치진 것보다 더한 위력으로 위사들을 도륙했다.
무공을 창안했던 본인이 직접 펼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비단 움직이는 건 양손의 도만이 아니었다.
도(刀)가 기다란 궤적을 그리고 나면 붉은 광채를 머금은 발이 따른다. 섯다는 온몸을 이용하여 금의위 위사들을 격살하고 있었다.
쿠구궁!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가던 섯다의 양손에서 피보다 붉은 광채가 솟구치며 그의 몸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피하라!”
기저랄 듯 놀란 천태진은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십 장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기운은 금의위 위사 수준으로 막아 낼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천태진의 고함소리가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위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 해야 옳았다.
무엇인가에 걸린 듯, 그들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미줄처럼 온몸을 친친 묶고 있는 그것이 살기(殺氣)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몸을 뽑아내려고 발버둥치는 그들을 붉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광혈강풍(狂血强風), 광풍도법의 이 초였다.
“어찌 저럴 수가........!”
폭풍이 휩쓸고 간 듯 처참하게 변해 버린 전면을 보며 천태진은 앓는 소리를 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손으로 펼친 무공이라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었다. 단 일 수에 오십 명에 달하는 부하들이 어육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멈추지 않고 있다.
아니, 더욱 강한 힘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다.
“누구냐? 도대체 누군데.......”
“그걸 다 알면 머리가 터져, 임마.”
“허억! 놈!”
강기를 터득한 무인답게 나직한 비명을 내지르는 상황에도 천태진은 오른손을 뒤를 향해 찔러 넣었다. 동시에 부하들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척!
“어찌!”
천태진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분명 상대의 목을 가격했다. 강기가 가득 서려 있으니 목이 잘리든지 아니면 부러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척’이라니. 마치 자석에 철이 붙어 버린 것처럼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더욱 경악할 일은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더하여 내공조차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환영미로진으로 모습을 감춘 모사였다.
“아까 저 녀석이 했던 말 있잖아, 아직 유효하거든?”
환영미로진 안으로 천태진을 끌어들인 모사는 속삭이듯 말했다.
“무슨?”
“고자를 고치는 약 말이다. 혹시 좋은 약 가진 것 없어? 그런 약을 가진 게 있다면 살려 준다고 했잖아.”
“고자?”
무슨 말인지 몰라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왜 고자라는 말이 나왔는지.
하지만 그 한마디 때문에 부하들보다 더 빨리 저승으로 가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래 나 고자다. 물건이 서지 않는 고자 말이다. 너 때문에 고자가 되었던 사람이란 말이다. 꼭 그걸 일깨워 줘야겠냐? 이 개자식아!”
우두둑!
“꺼억!”
직각으로 꺾여 버린 천태진은 나직한 비명을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금의위 영반이자 실세였던 천태진. 그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섯다야, 소림을 불태운 장본인이 이놈이라 하더라!”
무차별하게 금의위를 도륙하고 있는 섯다를 향해 모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먼저 가오!”
“어딜?”
“어딜 가겠소, 하후장설인가 하는 놈 집으로 가야지.”
“정말 가겠단 말이오?”
주홍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천태진 다음으로 하후장설을 잡겠다고 했을 때 그냥 하는 말로 여겼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이틀 만에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다.
“하후장설의 집은 이곳과는 다르네. 그가 데리고 있는 자들은.......”
“그래서 지금 가려는 거요. 들어갈 기회를 잡기 위해.”
“그럼 이곳을 요란하게 공격한 것이?”
주홍은 기절할 지경이었다. 천태진의 집을 공격한다기에 무모하다 싶었다. 그런데 이들은 하후장설의 집에 들어갈 기회를 잡기 위해 일을 벌인 것이다.
천태진의 집에서 탈출한 자는 하후장설에게 보고를 하러 갈 터이고, 이들이 노리는 건 그때다.
강한 무공만 믿고 아무런 계획 없이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 여겼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저놈을 따라다니면 될 거요.”
일순 모사의 모습이 주홍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밖으로 도망치는 금의위 위사의 뒤를 쫓아간 것이었다.
“일부러 독을 쓰지 않았어.”
끝까지 도를 고집하는 섯다의 모습을 보며 주홍은 침음성을 흘렸다. 단순한 듯 보였지만 모사와 섯다는 고도의 전술을 쓰고 있다. 동창무인들을 없앨 때는 독을 사용하고, 천태진을 비롯한 금의위 위사들을 없앨 때는 철저하게 도법을 고집하고 있다.
단둘이지만 상대가 느끼기에는 많은 세력들이 들어와 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수양루에서 육십 인분의 음식과 술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지금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음에 분명하다.
“등하불명(燈下不明)!”
몇 명 남지 않은 위사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주홍은 중얼거렸다. 천태진의 죽음을 알게 되면 하후장설의 제독가는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는 철옹성으로 변할 것이다.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곧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된다는 말과 통한다.
집주인의 눈만 피할 수 있다면.
“갑시다!”
“이제 혼란스럽게 할 시간인가?”
“그럼 재미가 없는데.”
작전의 전말을 알아차린 듯한 주홍의 말에 섯다는 싱긋 웃었다.
주홍의 말 그대로였다. 이제부터는 북경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아울러 북경을 지옥으로 만들어야할 것이다.
하후장설이 했던 것보다 더욱 잔인하게.
이 또한 투자에 졌기 때문에 자신이 하게 되었다.
“투자 연습 좀 해야겠어!”
사방을 돌며 불을 놓은 두 사람의 신형은 어느 순간 북경 도심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떠난 일각 후, 보고를 접한 금의위 무사들이 득달같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건 밤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벌건 불길이었다.
그리고 정문에 매달린 천태진의 목을 수거해야 했다.
“무슨 말이냐? 천태진이 어떻게 되었다고?”
자다가 일어난 듯 부스스한 얼굴로 하후장설은 수하를 향해 물었다. 천태진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비몽사몽간에 들었던 말이라 정리가 되지 않았다.
“천태진을 비롯한 금의위 위사 삼백여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보고를 하는 금사진의 이마에서 주르르 땀이 흘러내렸다. 천태진의 집에서 탈출한 위사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북경은 온통 금의위와 동창무인들 천지다. 그 와중에 금의위의 영반을 살해하다니.
달고 다니는 목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재빨리 천태진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정리한 후 보고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하는 곧 돌아왔다. 천태진의 시신을 수습한 위사들이 백야거로 왔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독이라도 하더냐?”
“아닙니다. 이번에는 도(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도(刀)?”
하후장설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예상대로라면 흉수는 독을 사용해야 맞다. 그런데 도라니.
“도를 사용하는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한 명이라고? 기절하겠군. 독을 사용하는 놈에 이어 이번에는 도(刀)라........”
혼란스럽다는 듯 하후장설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온 놈인지, 몇 명이나 되는지, 살겁을 저지르는 목적이 뭔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창과 금의위 무인 수백이 당하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혹시........”
일순 하후장설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단 일 인으로 수백의 무인을 살해할 능력을 갖춘 곳은 두 곳 밖에 없다.
자신이 속해 있는 무극계와 지저사령계가 그곳이다. 물론 귀광두가 있기는 하지만 바다로 도망친 그가 북경에 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았다. 아직 실체조자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지저사령계가 아닌가. 만일 지저사령계에서 북경을 노렸다면 그들의 흔적을 드러났을 것이고, 지저사령계의 출현을 감시하고 있던 무극계에서는 벌써 연락을 보내왔을 것이다.
“잡아 보면 알겠지.”
표정을 푼 하후장설은 전면에 납작 엎드린 금사진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북경에 있는 것들을 전부 없애는 한이 있더라도 흉수를 잡아내라!”
“존명!”
낮게 소리친 금사진은 재빨리 하후장설의 면전에서 물러났다. 짧은 독대였지만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그만큼 긴장된 순간이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어디서 흉수를 잡는단 말이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흉수의 정확한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미 흉수가 숨을 만한 곳은 대충 둘러본 상태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그러나 수하들을 대동하고 백야거를 나섰던 금사진은 그날 돌아와 보고를 올리지 못했다.
북경 외각에서 흉수로 보이는 자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그곳으로 출동했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 버린 것이었다.
콰앙!
하후장설의 양손이 거칠게 탁자 위로 떨어졌다.
금사진을 포함한 다섯 명의 첩형과 이백 명의 동창무인. 금일 살해당한 사망자였다.
“죽일 놈!”
하후장설의 눈자위가 파르르 떨렸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황제가 있는 북경에서 수백 명이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다니.
숨 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고 살겁을 저지르고 다니는 흉수의 정체조차 밝히지 못한 채 놈들에게 당한 금의위와 동창무인 수가 벌써 육백 명에 달했다.
“지금 놈은 어디 있느냐?”
“신무문 쪽으로 도주 중입니다.”
죽은 금사진 대신 보고를 올리고 있는 자는 어린도(魚鱗刀)라는 별호를 가진 이준철(李俊哲)이었다. 이준철 역시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상관들이 죽어 나가는 바람에 진급은 빨랐다.
금사진을 비롯한 첩형들이 죽지 않았다면 동창 서열 십오위인 자신이 백야거에 들어올 일이 없다.
다른 때 같았다면 진급했다며 동료들에게 술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직급이 높을수록 빨리 죽게 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살인자는 첩형을 비롯한 당두들을 먼저 없애고 있다.
그가 첩형이나 당두를 파악한 상황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망자들을 면면히 살피면, 지휘자들은 구 할 이상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공 정도는 알아보았느냐?”
“이기어도술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기어도술이라고 했느냐?”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이기어도술, 무기를 든 무인들이 마지막으로 성취하는 단계다. 강호 무림에 이기어도술을 성취한 무인이 몇이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가 알기론 자신의 사문인 무극계조차 열 명 안팎의 무인들이 얻었을 뿐이다.
이기어도술보다 한 단계 아래인 강기를 얻은 무인 다섯 명이 합공을 해야 간신히 평수를 이루는 무인을 동창이나 금의위 위사들이 잡는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알았다. 그만 나가 봐라! 지금부터는 놈을 쫓기만 해라.”
“존명!”
고개를 숙인 이준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더 이상 죽을 염려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가, 대주?”
이준철의 기척이 완전하게 사라지자, 하후장설은 한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그그그!
순간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하후장설이 앉아 있던 뒤쪽 벽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곳으로부터 사람이 걸어 나온 것이었다.
귀마령(鬼魔靈) 육한수(陸漢首). 검붉은 철갑으로 온몸을 감싼 이자는 운몽하후세가(雲夢夏候世家)의 주력인 운몽마혼대(雲夢魔魂隊)의 대주였다.
“재미있는 자가 나타난 모양이군요.”
투구 안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떤 색채도 띠지 않은 묘한 음색. 고저는 물론이고 장단조차 없는 소리였다.
“그래 재미있는 일이지. 강호 무림이란 곳은 정말 재미있어. 가서 잡아오게, 산 채로.”
“알겠습니다, 가주!”
하후장설에게 고개를 숙인 육한수의 신형이 처음 나왔던 곳으로 다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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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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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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