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5일 토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증인이 되어 주신다.
지금은 보증보험이나 보증보험증권 제도가 아주 발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지불하면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신용이나 기타의 것을 보증해 줍니다. 그러나 내가 젊었을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도 재정보증이나 신원보증을 받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재정보증을 서 달라고 할 때에는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증을 잘못서면 재산을 전부 날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법원에 불려가 재산을 압류당하여 집달리가 들이닥쳐 모든 재산에 차압 딱지를 붙이고, 봉인하였기 때문에 보증을 서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어렵게 공무원에 합격하였는데 보증을 서 줄 사람이 없어서 그 직장을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보증을 서 달라고 하면 무조건 경계부터 하는 것이 우리네들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신용사회가 나빠지고 불신이 팽배하기 시작하면서 보증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 사내가 즉시 궁으로 들어오라는 왕의 전갈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런 왕의 부름을 받자 그는 자기가 혹시 큰 잘못을 저질러서 벌이라도 받는 것은 아닌지 겁이 덜컥 났지요. 그래서 그는 동행할 친구를 찾았습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친구, 그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가깝다고 여기는 친구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친구 세 명이 있었는데 사내는 세 친구 모두에게 함께 궁으로 들어가자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스스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첫 번째의 친구는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자신이 상당히 가깝다고 여기는 두 번째 친구는 "궁궐 문 앞까지는 가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네."
하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친구는 선뜻 승낙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함께 가겠네. 자네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어. 내가 왕께 말씀드릴 테니 염려 말게.">
탈무드의 이 가르침은 왕이 부르심은 우리의 생명이 다함을 말합니다.
첫 번째 가장 소중히 여기는 친구란 재산이었기 때문이랍니다. 재산은 아무리 많더라도 죽을 때는 가져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왕의 부름에 동행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가깝다고 여기는 친구란 친척이나 세상의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무덤까지는 따라오지만, 곧바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아픔은 클지 모르지만 결국 동행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세 번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친구란 선행(善行)입니다. 평소에는 별로 눈을 끌지 못하지만, 죽은 뒤에는 나와 함께 동행 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최고의 기도라고 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고, 신앙생활의 꽃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봅니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그렇게 쉬운 것만은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어느 날 교리를 하다가 “천국에 가면 베드로 사도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정문의 한 가운데 이런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 단독 입장 절대 불가! ※”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정말 그런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증을 서야 입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주님께서 보증을 서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보시고 보증을 서 주실까?
오늘 율법교사가 말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니 그 방법밖에 없을 듯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주님을 안다고 증언하고, 내가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주님과 같이 친구였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리봉사나 레지오에서 선교활동을 한다든지, 성모의 집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든지 봉사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정말 주님 앞에서 자랑할 수는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봉사한 순간순간에 주님께서는 일일이 기록 해두고 계실 것이며, 보증의 자료를 확보하고 계실 것입니다. 내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주님께는 엄청난 보증이고 증인이며, 보험이고, 영원한 생명의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그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29-31.33; 50,15-26ㄱ
그 무렵 29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30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31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50,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18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19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22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23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25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그러고 나서 26 요셉은 죽었다.
축일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Bonaventure)
신분 :추기경, 신학자, 교회학자
활동 연도 :1217?-1274년
같은 이름 :보나벤뚜라, 보나벤처
조반니 디 피단차(Giovanni di Fidanza)라는 이름의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는 아버지 조반니 디 피단차와 어머니 마리아 디 리텔로(리텔라)의 아들로 바뇨레조에서 태어났다. 불확실한 전설이긴 하지만 보나벤투라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받은 이름이라 한다.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어렸을 때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 중재 기도를 바쳐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1238년에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되어 영국의 유명한 헤일스의 알렉산데르 문하에서 공부하려고 파리(Paris)로 갔으며, 그로부터 총애를 받는 제자가 되었다. 그는 1248-1255년까지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가르쳤는데, 그의 강의는 새로운 탁발 수도자를 반대하던 교수들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생 아무르의 빌리암을 비롯한 반대자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 논쟁에 뛰어들어서,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그리스도의 가난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남겼다. 마침내 1256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가 생-아무르를 단죄하고 탁발 수도회에 대한 공격을 중단시켰다. 탁발 수도회가 파리에서 다시 부흥될 때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와 함께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와 비슷한 초창기에 성 보나벤투라는 작은 형제회의 총장으로 피선되었고, 수도회의 내부 분쟁자들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였으며, 온건한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극단주의 그룹을 단죄하였다. 1260년 나르본(Narbonne)에서 열린 수도회의 총회에서 그는 오랫동안 수도회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는 회칙에 대한 회헌을 선포하였다. 그는 1265년 요크의 대주교좌를 거절하였고, 1271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의 선출을 적극 지지하였다. 1273년 그는 알바노(Albano)의 교구장 추기경이 되었으며, 다음 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로마(Roma)와 동방 교회의 일치를 토의하려는 리옹(Lyon) 공의회의 의사일정을 짜도록 그를 위촉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회기 중인 7월 15일에 리옹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보나벤투라는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사상가 중의 한 분이다. ‘세라핌 박사’로 알려진 그는 수많은 글을 썼고 또 남겼는데, “베드로 롬바르드의 금언에 대한 주석”,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세 갈래 길”, “완덕 생활” 등의 영성 서적을 비롯하여 성서 주석, 약 5백 편의 설교 등이 유명하다. 그는 1482년 4월 14일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시성되었고, 1588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체와 성합 그리고 추기경 모자가 그의 상징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보나벤투라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