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씻는 늙은 애비 마음을 자식들은 모르리--
하루에도 몇 번씩 음식을 먹기전 먹고 난 후 그릇을 씻는다.
자식 며느리들은 늙은 애비가 그릇 씻는 것이 안쓰러운 지 식기세척 건조기를
강력히 권하지만 필자가 거절한다.
그릇 씻는 운동이라도 하여 좀 더 오래 살려는 늙은 애비의 삶의 애착을--
젊은 자식들이 늙은 애비의 깊은 속뜻을 어이 헤아리리-
빨래도 세탁기를 안 쓰고 손빨래를 한다.
큰옷 이불이야 세탁기를 사용하지만 양말 런닝 팬티 수건 등은 하이타이에 하루쯤
담가두었다가 빨래방방이로 두들겨 패어 손으로 빤다.
세탁기보다 훨씬 땟물이 많이 나온 것을 보면 그야말로 손빨래의 일거양득(一擧兩得)은
이를 두고 나온 말이다.
언젠가 친구와 손빨래 “빨래방망이”이야기를 하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늙은 청승이라도 떨어야 웃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릇 씻기 손빨래의 목적은
전기와 물을 아끼고 운동과 더불어 “부지런함”을 훈련하기 위함이다.
하루에도 손을 몇 번을 씻는다.
손을 씻을 때마다 얼굴도 같이 씻는다.
자주 씻으니까 얼굴 껍질이 닳아서 마치 고급 화장품을 바른 것처럼 빤질빤질하다.
그릇을 씻을 때마다 의문이 난다.
-씻은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고 병이 안 걸릴까?-
-잡균이 묻어 있는 손으로 먹는 사람도 있는데-
그릇만 깨끗이 씻는다고 오염이 안 될까
사실 썩은 물질이 나오는 곳은 똥구멍과 오줌구멍인데
손과 얼굴보다 이 두구멍을 자주 씻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몸은 그 어느 곳보다 마음을 씻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속담에 “게 등에 소금 치기”란 말이 있다.
마음을 씻지 않고 다른 곳 아무리 씻어 봤자 말짱 꽝이다.
불교 화엄경(華嚴經)에서도 중심사상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하여
인간의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는가.
일찍이 역사속의 선인(先人)들 특히 동양의 현인(賢人)들은 마음 씻을 것을
강조했다.
아래 마음을 씻는 몇 가지를 정리하여 본다.
▲척제현감(滌除玄鑒)이라는 말이 있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10장에 나오는 말이다.
검은 거울을 깨끗이 씻듯이 마음의 거울을 깨끗이 닦아서 묶은 때를
깨끗이 씻어 내면 일체(一切)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다고 했다.
▲불교의 대승불교(大乘佛敎)는 소승불교(小乘佛敎)에 대한 개혁불교다.
현장(玄奘)은 산스크리스트어 불교경전을 한문(漢文)번역을 체계화 시켰다.
지금 한문으로 된 팔만대장경은 현장(玄奘)의 번역체계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또 한 사람 범어(梵語)와 중국어에 능통한 구마라집(鳩摩羅什)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을 빼고는 대승불교가 성립 안 된다.
▲구마라집전(鳩摩羅什傳)의 14권 출삼장기집(出三蔵記集)에
“더러운 냄새가 나는 진흙탕(臭泥) 속에서 연꽃이 피어 있으니
다만 연꽃을 취하고 더러운 진흙탕은 취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취니(臭泥)-더러운 냄새
▲신약성경 마태복음 15장 11절~20절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다고 더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논어(論語) 제9편 자한(子罕) 13장
子 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공자께서 모국(母國)인 노(魯)나라를 떠나 동방(東方)의 다른 나라에서
살고자 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누추한데서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가 자리 잡고 사는데 무엇이 누추하단 말이오?”
▲세아회(洗兒會)란 것이 있다.
중국 최고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詩)에 나오는 글이다.
세아회(洗兒會)는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혹은 한 달째 되는 날 아이의 몸을 깨끗이 씻어주고
잔치를 벌여 축복해주는 일이다.
장성(長成)하여 깨끗하고 출세(出世)하는 인물이 되라는 뜻이다.
▲2013.03.31. 조선일보 기사다
새로 취임한 교황 프란치스코가 소년원 재소자의 발을 씻겨주고 그 발에다가
입 맞추는 세족식(洗足式)을 하였다.
기독교에서 발을 씻는 세족식(洗足式)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신약성경 몇 곳에 마리아란 여성이 예수의 발을 비싼 향료로 씻어
사람들의 빈축을 산 내용이 있다.
발은 더럽고 냄새 나는 부위다.
“발가락의 때처럼 여긴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그런데 여기에다가 가장 예민한 부위인 입을 갖다 댄다는 것은 발과 입술의
교환일 뿐 아니라, 교황이라는 성(聖)과 죄수라는 속(俗)의 교환이기도 하다.
▲“씻는 일”에 대하여 진도(珍島) 씻김굿을 빼놓을 수 없다.
씻김굿이야말로 한국 무속신앙의 핵심이다.
씻김굿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심지어는 정규방송과 유튜브 보기가 망서릴때가 있다.
여야 정치인들의 표현 할 수도 없는 얼굴과 악에 바친 목소리에 전율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 정치 악감정(惡感情)이 한계치에 도달했다.
법(法)은 감정에 밀려 구석 쓰레기통에 쳐 박혀 있다.
분노(憤怒) 증오(憎惡)의 극치(極致)다.
법(法)도 필요 없다.
억지가 법(法)위에 있다.
떼거리가 많은 게 정의(正義)며 법(法)이다.
아무리 입과 손 얼굴을 씻어봤자 소용없다.
마음을 씻어야 하는데---
마음을 씻으라는 기독교나 불교마져 편 가르기와 돈모으기에 정신이 없어
“마음”에는 전혀 “마음”을 주지 않는다.
어떤 스님은
명상(瞑想)자체가 잡념(雜念)이니 “멍상”이라 명칭 해야 한다고--
퐁퐁을 몇 방울 떨어뜨려 사기그릇이 뽀드득 뽀드득 촉감이 있도록 씻고
하이타이를 풀어 한나절 담가놓은 팬티나 양말을 빨래방망이로 두드려
땟물 빠지는 것을 그 순간 만족감에 다른 생각이 없다.
이것이 번뇌(煩惱)를 씻는 순간 아닐까
씻는 명상 !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