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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 (농민주일)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1995년 추계 정기 총회의 결정에 따라,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 교회는 농민들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며 도시와 농촌이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갖게 살도록 이끈다. 각 교구에서는 농민 주일에 여러 가지 행사를 마련하여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과 창조 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23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18 그러니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제28회 농민 주일 담화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가장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항).
기후 재난 시기에 유기농을 다시 생각하여 봅시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기후 위기가 점점 심각해지고, 지구촌 곳곳이 기후 재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금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땅을 가꾸고 작물을 키우는 농부들을 생각하여 봅니다. 생명을 가꾸고 길러 내어 소출을 얻는 농사는 지속 가능하여야 합니다. 곧 우리가 먹을 것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땅이 훼손되지 않고 계속해서 작물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농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합성 비료와 살충제는 토양의 미생물을 죽이고 토양 구조를 파괴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토양을 황폐시킵니다. 이렇게 황폐해진 땅에서는 작물을 키울 수 없게 됩니다. 현대 농업은 사실상 ‘산업농’에 가깝습니다. 화학 비료와 살충제, 고엽제 등 유독 물질의 사용을 전제로 하는 농업은, 다시 말해서 생명과 돌봄이 아니라 ‘죽음’을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사는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일인데, 공산품과 같은 규격화된 농산물을 얻으려고 생명에 반대되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죽음과 파괴는 우리가 자연에 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찬미받으소서」, 3-6항 참조)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폭력입니다. 산업농의 폭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물을 오염시킨다는 점입니다. 농촌에서는 지하수를 마셔 왔는데, 이제 그 지하수가 많은 제초제와 살충제 등의 유해 화학 물질로 오염되었습니다. 이런 물을 마시는 것은 우리 몸을 해칠 뿐만 아니라, 이 오염된 물이 작물 재배에도 사용됨으로써, 그것을 먹는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 갖가지 위험을 낳습니다.
이 모든 것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유기농입니다. 유기농에서는 합성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작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토양 미생물에서 얻습니다. 이 미생물들은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생명체는 사람들이 ‘해충’이나 ‘잡초’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산업농이 해충과 잡초를 박멸하려는 접근 방식을 가진다면, 유기농은 모든 생명체의 중요성과 상호 연결성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유기농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체의 대량 학살을 가져올 수 있는 산업 농업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 농업을 선택함으로써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을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찬미받으소서」, 217항).
생태 사도
우리는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하느님께 바칠 예물을 준비하며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교회는 성체성사의 거행 안에서 우리의 노동으로 마련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신비를 체험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새로운 힘을 얻고 교회의 신원과 사명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화학 농약으로 말미암아 황폐해진 땅과 그곳에서 같이 죽어 가는 생명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땅과 생명을 보호하려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회개로 이끄는 대표적인 ‘생태 사도’입니다. 대규모 산업 농업을 지향하는 정부 정책과, 단일한 규격의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형태 때문에 유기 농업을 실천하는 농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땅은 애정을 주면 풍성한 결실로 보답하여 줍니다. 그러나 유기 농업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 사회가 그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땅을 보호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나야 합니다. 특별히 가톨릭 농민 회원들은 현재의 어려움에도 ‘땅을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이라는 것을 깨달아 ‘생태 사도’로서 굳건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생명이 자신들의 손을 통해서 자라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지는 것을 기뻐하며, 꿋꿋이 어려움을 견디어냅니다. 또한 이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외형이나 가격을 따지지 않고 꾸준히 선택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농 생활 공동체의 식구들로, 같은 ‘생태 사도’로서 서 있습니다.
이익과 물질 만능의 세상에 살면서도 희생과 투신을 통하여 복음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생태 사도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기후 변화로 말미암아 잦아진 이상 기후는 우리의 삶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당부에 따라 지금이라도 생태적인 삶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생태 사도’가 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농민 회원들과 우리농 생활 공동체 회원들과, 하느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질서에 따라 생명을 씨 뿌리고 가꾸며 키워 내는 모든 분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서 생태 위기 시대임이 일깨워지고 모든 생명에 구원의 희망이 전하여질 것입니다.
2023년 7월 16일 제28회 농민 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30301?gb=K1200 ]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8-23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축일7월 16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 (Mary Magdalen Postel)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 연도 : 1756-1846년
같은 이름 : 마들렌, 막딸레나, 메리, 미리암, 포스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Maria Magdalena Postel)은 1756년 11월 28일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의 바르플뢰르(Barfleur)에서 요한 포스텔(Jean Postel)과 테레사 르발루아(Therese Levallois) 사이에서 태어나 율리아 프란치스카 카타리나 포스텔(Julie Francoise-Catherine Postel)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보다 4년이나 빠른 8살 때 첫영성체를 했다. 그 후 지방 학교를 나온 후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생활을 소망하였으나 결국 사적인 서원만 발하였다. 바르플뢰르로 돌아온 뒤에 그녀는 여학교를 개교했는데, 이 학교는 프랑스 혁명 동안에 성직자법을 거부하는 교회 인사들의 지하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혁명의 와중에서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와 보속을 실천하던 그녀는 1798년에 작은 형제회 3회원으로 입회하였다.
마침내 프랑스 혁명이 끝나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혁명의 후유증, 특히 신자들의 종교적 무관심을 치유하고 교육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래서 여성 교우들을 모집하고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이 계기가 되어 1807년 61세의 늦은 나이에 ‘자비의 그리스도인 학교 수녀회’(The Sisters of Christian Schools of Mercy)를 설립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새로운 이름을 수도명으로 선택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수녀회 설립 초기에 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절대로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하였다. 결국 1832년 생-소뵈르-러-비콩트(Saint-Sauveur-le-Vicoste)에 본원을 개설하였고, 1837년에 작은 형제회 제3회의 규칙을 기초로 해서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그 후 수녀회는 날로 발전해 나갔고, 설립자는 거의 40여 년 동안 수녀회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다가 1846년 7월 16일 본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1859년 교황 비오 9세(Pius IX)로부터 일부 승인을 거쳐 1901년에 완전한 승인을 받았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1908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5년 5월 24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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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