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네멋대로해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그 매력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일일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에 열광적으로 빠진 사람들은 서로 그 드라마가 매력적인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들은 그 드라마가 왜 자신과 주파수가 맞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혹은 그전날 방영된 내용중 약간의 장면이나 대사만 말해도 그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금새 이 작품을 다시 보듯 감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작품이 왜 그렇게 매력적인 작품인지 '말'만 들어서는 이해하기 쉽지않다.
과연 어떤 장면과 어떤 대사를 통해 이 작품의 매력을 설명할 것인가, '네 멋대로 해라'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아해도 되요?" "네"라는 대사가 왜 그렇게 감동적인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에 앞서서 설명하려는 쪽에서 과연 무엇으로 이 드라마가 주는 감동을 표현할 수 있을지 말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수많은 멋진 요소들중에 어떤 캐릭터, 혹은 어떤 대사나 장면을 이야기해야 될 것인가, 또 그런 선택속에서 빠져버린 것들은 아까워서 어떻게 하는가. '네멋대로해라'는 어쩌면 좋아하는 사람만 즐기거나, 아니면 아예 녹화한 테이프를 몽땅 안겨주면서 보라고 해야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네멋대로해라'라는 이름의 세계
이것은 이 드라마가 단지 좋은 대사와 좋은 캐릭터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그런 대사와 캐릭터를 모두 '좋은' 것으로 느껴지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관, 즉 '네멋대로해라'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일관적인 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어떤 한 배우의 매력이나 스토리의 흡인력이 이끌어나가는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속의 모든 캐릭터와 하나하나의 대사, 장면들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룰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 하나씩 짚어나가볼 필요가 있다. 다른 드라마들은 일단 스토리를 만들고, 그 스토리에 필요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다음,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조연들을 캐스팅해서 그 스토리에 살을 붙이면 드라마가 완성되고, 하나의 분위기가 만들어지지만 이 드라마는 각각의 요소가 빠진다면 작품에서 만들어내는 그 전체적인 분위기가 빈약해지거나, 혹은 시청자들의 감정을 이입시키기 힘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네멋대로해라' 특유의 세계관은 드라마의 주인공인 복수(양동근)와 전경(이나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이 두 인물이 단지 주인공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있던 각각의 '세계'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조연들, 정확하게 말해 주인공 각자가 아닌 다른 타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비중이 매우 높은 드라마이다.
예를들어 SBS '순수의 시대'에서는 주요 인물들의 삶의 반경이란 결국 등장인물들, 그리고 거기에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몇몇의 조연 뿐이었다. 그들은 말그대로 '회사원 A'나 '가족 B'로 불려도 상관없는 캐릭터들인 것이다. 태석(고수)의 회사동료나 동화(박정철)의 부모에게 있어 각자의 스토리가 있을리는 없고, 태석과 그의 아버지 사이에서도 각자의 스토리는 있어도 서로간의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멋대로해라'에서 복수와 전경은 상대방뿐만아니라 각자가 몸담고있는 여러 세계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어나간다. 그들은 각자 스턴트맨과 인디밴드의 멤버로 살아가고, 동시에 한 가족의 성원으로서 살아간다. 복수는 전경과 사랑도 해야하지만 스턴트를 하는 곳에서는 자신에게 뇌수술을 권하는 레지던트 출신의 의사, 그리고 자신을 받아준 스턴트 사장(정두홍)과의 실랑이도 벌여야하며, 아버지(신구)와 어머니(윤여정)을 오가며 착한 아들 노릇도 한다. 전경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인디밴드의 여러 가지 문제들, 심지어는 무대에 제대로 서지 못하는 새로운 보컬들을 다독이거나 앨범 취입의 문제도 신경써야 하고, 집에서는 아버지와 싸워야하고 어머니와는 '놀아줘야'하며, 올케의 투정도 들어줘야 한다. 그들은 단지 드라마속 설정상의 직장동료나 가족이 아니라 함께 여러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민들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며, 그래서 '네멋대로해라'의 세계는 그 범위가 매우 넓어지고, 동시에 각 인물들은 매우 일상적이며 다면적인 모습을 갖게 된다. 그들은 사랑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과 자신의 일들에 대해서 일희일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이것은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설정을 벗어나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설정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몇몇 설정에 의해 성격을 만들 필요없이 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각자의 캐릭터를 전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라이프스타일'과 성격, 혹은 그 사람의 품성을 분리시킬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인디밴드의 멤버에 술담배를 자연스럽게하고 동진(이동건)에게 남자와도 잤다고 말할 수 있는 전경은 기존의 드라마대로라면 우울하고 반항적이며 다른사람들이 돌봐줘야할 인물에 매우 직설적이고 성적으로 개방적이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남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인물이고, 동진의 대쉬에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으면서도 "우리 사귀는건가요?"라는 식으로 약간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며, 복수와 사귀면서도 미래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그러면서도 복수와의 만남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기존의 드라마라면 모순될수도 있는 캐릭터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일상적인 모습들을 통해 각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각각의 인물들이 그런 행동들에 대한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해주기 때문이다. 일상성을 내세우는 대신 강한 스토리와 몇몇 주요 인물들간의 관계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드라마들이라면 여자가 술담배를 한다는 것자체로 그 여성의 캐릭터를 설명하려 하겠지만, 이 작품에서 전경이 피우는 담배는 전경이 겪는 다양한 일상속의 한부분일 뿐이며, 그것이 전경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경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한가지 요소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사람성격이 어떻건간에, 정말 괴로운 일이 있다면 그렇게 걸어다니면서 소주팩을 마실 수도 있는 것이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걸 다 뒤로하고 과감하게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두사람이다
이 드라마에서 독특한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그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을 한 '개인'의 설정으로 두지않고 그것을 그 사람이 속한 세계에 있는 다양한 인물들간의 대화와 행동속에서 자연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을 통해 이뤄나간다는 점인 것이다. 이는 전경뿐만 아니라 복수도 마찬가지다. 그가 소매치기이면서도 그의 소매치기 짓이 마치 '범죄'라기보다는 그의 직업에 가까워 보이고, 그가 전경을 만나기전에도 이미 밝고 착한 성격이라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공감시킬 수 있는 것은 단지 설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다양한 일상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들이 그가 '착한 소매치기'라는 어딘가 어긋나보이는 캐릭터를 충실하게 구축해주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복수와 전경의 만남은 단지 두사람의 만남이라기보다는 두세계의 만남에 가깝다. 그들은 각각 경제적으로 가장 빈곤하고 가장 부유한 계층, 그리고 가족의 형태가 깨어져있는 집안과 그렇지 않은 집안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대조적인 환경속에서도 근본적으로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능력없고 미래도 불안정한 상태이고, 스턴트맨과 인디밴드 멤버라는 특별한 일에 매달리며, 이들모두 이복형제가 있다. 또한 복수의 어머니는 복수의 아버지와 이혼해서 나가있는 상태이고, 전경의 어머니는 따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전경의 아버지와 부부생활을 하고 있고, 복수의 이부형제는 남동생인반면 전경의 이부형제는 남자오빠이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대조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고, 그런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 그리고 두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들을 통해 상대방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네멋대로해라'속 사람들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마초적이고 위압적인 모습으로만 보였던 전경의 아버지나 그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전강같은 인물들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돈만 아는 여자일 것 같았던 복수의 어머니가 어느틈엔가 복수나 전경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하나의 표현방법일뿐 자신들역시 희노애락을 가지고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 과정, 전형적이거나 별나기만 할줄 알았던 사람들의 밑바탕에 있는 그 '인간적'인 모습들이 이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에 의해 표현되면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전체가 매우 잔잔한 일상들, 극단적인 사건보다는 대사 하나하나와 여러 소품들, 그리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 그 사람들의 캐릭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독특한 드라마로 완성되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듯 싶으면서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용해된다.
복수의 뇌종양을 알리는 의사출신 스턴트맨은 뇌종양을 말하면서 미소를 짓고, 미래의 동생은 한참 오빠뻘인 복수에게 마구 반말을 하는데다가 기분나쁘면 숟가락을 마구 물어뜯을 정도로 독특한 일면이 있지만, 그들은 회가 진행될수록 복수의 병을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그의 뒤를 돌봐주고, 미래를 위해 복수에게 미래에게 돌아오라고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는 사람이 된다. 각각의 모든 캐릭터는 각자의 사연과 희노애락이 있고, 그 모습들이 이 세계를 모두 경험하는 복수와 전경의 행동반경안에서 조금씩 쌓여나가면서 하나의 '사람'으로 다가설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드라마들이 주연과 조연을 나누고, 그 조연들을 분위기전환의 '도구'로 삼았다면, 이 드라마는 모든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하나의 일관된 분위기를 형성하는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이 비일상을 만나는 순간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의 일상성이나 거의 모든 인물에 걸쳐 존재하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그렇게 세밀하고 탄탄하게 만들어낸 세계위에서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환타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결코 삶의 현실성이나 일상성에 대해 찬미하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그런 삶의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제공하려하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복잡하고 고단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라고 이야기하는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네멋대로해라'에서 복수와 전경은 그들을 둘러싼 환경뿐만아니라 또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죽음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가장 일상적인 일이면서도 가장 비일상적인 것같은 이 죽음을, 전경은 밴드를 함께했던 친구를 통해, 복수는 바로 자신의 뇌종양선고를 통해 죽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는 미래가 없어보일뿐만 아니라 그들은 늘 괴로운 가족사에 직면해야한다. 그런데 그순간 죽음을 직면하면서 그들은 서로를 만나게 되고, 그때부터 그 죽음속에서 삶의 희망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복수는 어째서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내기는커녕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려 하는가, 또 전경은 어째서 자신의 동료를 간접적으로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복수를 좋아하게 되는가. 그것은 그들이 거기서 자신의 불안하고 꿈없는 현실에 대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복수는 자신의 잘못된 인생을 스턴트와 전경에 대한 사과와 사랑으로 조금이라도 고쳐나가고 싶어하고, 전경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도 자기 편을 들어줄 수 있는 복수에게서 반복되는 삶의 해결책을 찾는다. 현실은 더할 수 없이 복잡하고 암담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아나가는 순간, 그들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착실하게 쌓인 일상이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 일상을 통해 만들어낸 '납득할 수 있는' 환타지인 것이다. 각박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느낄수는 있는 그 구원의 빛을 보았을 때, 그것은 어떤 드라마틱한 갈등을 담은 환타지보다도 더 사람에게 위안과 감동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솔직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것은 인물들간의 갈등관계나 어떤 특정사건의 내용이 아니라 그 인물들과 사건속에서 살아나가는 등장인물들의 의지와 그들의 마음에 대한 그들자신의 솔직함이다. 이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살아가겠다는 의지, 그리고 그 의지속에 담겨있는 자기마음의 솔직함 하나를 믿고 살아나간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복수와 전경은 서로 사랑한다해도 복수로인해 전경의 친구가 죽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 주위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서로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되면서 서로 괴로워했어야 한다. 아니면 복수는 뇌종양때문에라도 전경을 멀리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전경은 복수를 좋아하고, 복수는 뇌종양에도 불구하고 미래대신 전경을 선택한다.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감정의 흐름이다. 만나고 싶으면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만나야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어떤 상황이 되든 해야한다. 중요한건 어떤 도덕이나 자신의 현재위치, 혹은 교과서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전경은 동진에게 자신의 복수에 대한 감정이 영원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은 보고싶다고, 옛사랑은 2주가 지나자 잊혀졌지만 복수는 3주동안 보지 못했는데도 너무 보고싶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현재 감정에 충실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벌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솔직함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 솔직함에 충실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비전형적인 캐릭터가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복수의 어머니나 전경의 아버지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자식을 아끼고, 또 자신의 아내를 끔찍히 여기는 것만큼은 진실이다. 그들은 그것을 스스로 속이기보다는 자신의 캐릭터안에서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서 이 드라마가 기존의 트랜디 드라마들이 가진 전형성을 깨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복수와 전경이 우연스럽게 만난다해도 그것이 그다지 억지스럽지않게 느껴진다면, 혹은 오히려 더 자주 만나길 빌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두사람이 '같은 세계'에 살고 있고, 이 세계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우연히 만난다는 그 사건자체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그 마음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보고싶어하는 솔직한 마음이 그들을 만나게하고, 그들이 떨어져있는 곳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솔직함이 일상과 만나면서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방법을 갖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솔직함이란 자기 감정대로 표현하는 솔직함이자, 그 감정을 보다 세밀하게 표현하는 솔직함이기도 하다. 과연 일상속에서 늘 서로 좋아하고 사랑한는 말만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의 감정에는 목숨을 다 주어도 아깝지않은 사랑이 있을수도 있고, 그저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랑도 있다. 그것을 그저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뭉뚱거리는 것은 오히려 현실적이지 못하다. 현실속에서 과연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오직 사랑이라는 말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늘 그 순간에 느껴지는 솔직한 마음을 느껴지는 만큼 일상의 대화와 행동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보다 정직하게, 그리고 보다 솔직하게 전달한다. 자신의 아버지에 맞서 자신을 변호해준 복수에게 고마움을 느낀 전경의 마음은 그렇다고 복수에게 직접적으로 그 고마움이나 그리움을 표현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혼자 방에서 포도씨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는 있다. 또 전경이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동시에 소매치기에 보잘것없는 복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좋아해도 되나요?"라고 물을수는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솔직한만큼 거칠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솔직하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도 솔직하기 때문에 더욱더 섬세하게, 그리고 일상의 대화와 물건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딱 자기가 하고 싶은말, 하고 싶은 행동이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약속장소로 나오지않은 복수 때문에 복수가 준 파이프를 버렸다가 다시 주우면서 담배를 다시 피워야겠다고 얘기하는 전경의 말과 행동에서 표현되는 전경의 그당시 마음을 이것외에 그순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고복수 나쁜자식? 아니면 저주할거야? 그건 전경의 입장에서는 솔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처럼 거칠고 폭력적인 표현, 사람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는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의 일상성이 캐릭터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근거가 된다면, 이 솔직함은 그런 다면적이고 예측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는 기본전제이다. 평소에는 얌전한 전강의 아내는 미래와 대면하면서 갑자기 욕을 하고, 반대로 복수를 거의 지배하듯 다뤘던 미래는 복수가 자신을 떠나려하는 순간 복수에게 자신이 어떻게든 전경과 닮으면 안 떠나겠냐고 이야기한다. 얼핏보면 각자의 캐릭터와 모순되어 있는 듯, 혹은 예측불허인듯한 모습으로 생각될수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작품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그 바탕에 각자의 마음에대한 솔직함이 있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나는 나"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자신의 표현방식대로 보다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말에 복수가 대답한대로 누군가를 따라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없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네멋대로해라'속의 세계에서 각자가 각자의 개성을 갖게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삶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솔직함 때문이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 감정에 대한 섬세한 표현때문인 것이다. "보고 싶어 죽는줄 알았네"같은 드라마에서 '가장 직설적인' 감정표현을 하는 전경의 말이나, 복수에 대해 "내 자식이지만 고와"라고 말하는 복수 어머니의 말이 모두 '혼잣말'인 것은 그들 감정의 솔직함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에게 그 감정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할 필요가 없는, 혼자일뿐인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좋은사람은 외롭지않다
또한 이것은 동시에 이 드라마의 세계가 '나'라는 존재가 있기 위해서는 '타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모든 인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혼자'가 되는 것이다. 복수가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생에대한 미련뿐만 아니라 혼자될 부모가 걱정되서이고, 전경이 동료멤버의 죽음에서 가장 안타까워한 것은 그녀의 죽음으로인해 평생을 혼자살아야하는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다. 또 전경의 어머니와 올케는 전경이 없으면 자신은 혼자일 수 밖에 없다며 전경에게 매달리고, 미래의 동생은 복수에게 복수가 없다면 미래는 외로워진다며 그에게 돌아올 것을 사정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괜찮지만, 자신이 혼자되는 것만은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솔직한 것 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극 초반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왔던 전경의 아버지나 복수의 어머니정도를 제외하면, 아니 그들도 점점 그들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이 드라마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캐릭터안에서 최대한 서로를 배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경의 아버지는 자신의 방식대로 돈을 주고 어머니에 대한 당부를 잊지않으며 전경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스턴트회사의 사장은 복수를 '전과자'로 말하지만 그를 받아주고 하나의 스턴트맨으로 인정하면서 그와 꼬붕이의 출연을 배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미래는 전경과 복수에게 애증이 겹친 복잡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그들에게 약간의 욕을한다해도 전경이 복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욕하거나, 복수를 '바람핀 놈'으로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서로의 감정의 솔직함을 인정하고, 그것이 설혹 마음에들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이 드라마를 상징하는 두 주인공 복수와 전경의 모습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에는 솔직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남에게 말할때만큼은 상대방을 최대한 배려하려한다. 그들은 서로 좋아해서 만나기까지하지만 미래가 오면 정말 무슨 죄나 지은 듯 도망치고, 그들은 미래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어차피 사귀기로 한거 뻔뻔하게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남의 마음을 상처받게 하는 것이 최대의 '악행'이 되는 이 드라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해야하는 것이다. 심지어 전경은 자신과 가장 대립관계에 있었던 아버지에게마저도 정말 '귀여운' 방법으로 반항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런 그들의 마음은 서로에게 전달되어 점점더 각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로 만들어나간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을 헐뜯고 할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함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의 동료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을 '전과자'라고 이야기하는 형사가 등장하는 순간 전경의 태도가 돌변하며 전경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상대방의 신체적 약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형사가 솔직하기는 하되 상대방의 배려라는 이 세계의 원칙을 깬, 전경의 표현 그대로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멋대로해라'중 지금까지 방영된 장면들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복수가 뇌종양선고를 받은 것이나 전강의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수가 미래에게 "너가 싫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그 말을 하는 복수의 모습은 전경과 사귀기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이고, 동시에 미래의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모습이기도 했다. 솔직함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네멋대로해라'의 세계관을 그대로 어긴 것이다. 그리고 그순간 이 드라마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현실이 되어버리면서 갑자기 '잔인'해지는 드라마가 된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숱하게 나올 수도 있는 그말이, 이 드라마에서는 드라마의 세계관, 혹은 분위기를 깨자마자 가장 충격적인 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네 멋'이라는 결코 하고 싶은대로 무작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대로, 마음이 시키는대로하되 결코 타인의 존재를 잊지말고, 그들을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멋'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순식간에 외로운 사람들이 되어버릴테니까.
눈물가득한 세상에서 희망을 얘기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환타지이면서도 그 방향이 여타 드라마와는 매우 다른 드라마가 된다. 이 드라마속의 인물들은 분명히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인물들이다. 아무리 현실이라 해도 이들처럼 살아갈수는 없다. 매우 자기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표현에 있어 섬세하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까지 아끼지않는 이 드라마속 인물들의 삶은 하루에도 몇번씩 고민과 짜증이 동반되는 삶을 살아야하는 실제 사람들은 도달할 수 없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이것은 직간접적으로 표현된다. 무언가 조금씩은 이상하게 보이는 캐릭터들처럼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 같은 캐릭터들도 그렇고, 복수가 물을 버리는 장면에서 카메라 화면을 젖게 하는 씬도 마찬가지다. 이 씬을 통해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 잘 만들어진 욕실에서가 아니라 집 앞마당에 앉아 물을 버리는 사람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현실과 경계에 서있는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준다(그리고 이것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기도한 영화 '네멋대로해라'를 만든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가 영화에서 영화의 가짜 현실을 뚫는 방법으로 사용한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이후 영화는 '새로운' 영화가 되었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환타지적이고, 드라마에서도 환타지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환타지로 무엇을 보여주려 하느냐는 것이다. 기존의 드라마들이 환타지를 보여줌으로서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했고, 그렇기 때문에 '솔직함'보다는 최대한 일상적이지 않은 강렬한 대사들과 캐릭터로 드라마를 이끌어나간반면, 이 드라마는 일상을 통해 환타지를 만들어내고, 그 환타지를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갈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속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착하고 솔직하며, 상대방을 배려할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아름답고 꿈같은, 그러나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세계의 창조는 '네멋대로해라'의 수많은 매력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자, 한국 드라마가 겪는 리얼리즘과 환타지사이의 괴리를 자기만의 세계관으로 극복해나간 새로운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그래서 눈물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는 웃음은 그 어떤 격정적인 말들과 극적인 스토리보다 감동적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트랜디' 드라마의 정의를 다시 그 원래의 의미로 되돌리는 것이기도 하다. 트랜디 드라마란 원래 일상에서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스토리나 강렬한 캐릭터를 멋있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트랜드, 좀더 좁게 말하면 그 트랜드를 이끌어가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감성과 라이프 스타일을 재빠르게 잡아내서 그 당시의 정서를 보여주며 호응을 얻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요즘의 트랜디 드라마는 정서나 스토리라인은 큰 변화가 없고, 대신 '명랑소녀 성공기'나 '로망스'처럼 일정하게 짜여진 틀 안에서 캐릭터를 바꾸는 것정도로 발전을 해왔으며, '순수의 시대'처럼 배우들만 젊은 배우들일뿐 스토리자체는 매우 통속적인(그러나 매끈하게 잘 다듬은)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정말로 요즘의 트랜드, 혹은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는 새로운 정서를 내세운다. 그것은 착하고 소심한 사람이 오히려 더 '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착하고, 그렇기 때문에 각박한 현실에 있어서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전경과 복수의 살아가는 방식을 닳고닳은 언론인인 동진이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리고 동시에 그가 소개시켜준 음반사 인물들이 전경과 대화가 되지 않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착하고 소심해서 남에게 심한 말도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보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 말 한마디한마디에도 고민한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런 캐릭터들은 사건의 진행을 막고, 점점 이야기를 답답하게 이끌어나가는 캐릭터가 된다. 그러다가 '나쁜사람'에게 상처받고, 상처받아도 말도 못하다가 결국엔 그게 한꺼번에 터지면서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게 기존의 드라마였다.
반면 이 드라마는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그러나 직설적인 표현대신 끝까지 일상성에 근거를 둔 알 듯 모를듯한 간접적인 대사들로 마음을 표현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그 섬세한 감정들을 더 쿨하고 멋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헤어졌던 전경과 복수가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말들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이 '네멋대로해라'의 세계에 빠져든 사람은 그 말들 사이에서 오가는 그들의 '솔직하고 정확한' 마음을 알 수 있고, 그 대사를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속에서 어떤 사랑고백보다도 짜릿한 로맨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저 보고싶었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서로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러나 정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그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쿨하다고 믿었던 그 모든 직설화법보다도 훨씬 더 쿨하다.
착한 것이 쿨할 수 있다
'네멋대로해라'는 기존의 쿨한 것, 트랜디한것에 드라마를 맞춘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 이것이야말로 요즘 세대의 진정 쿨하고 트랜디한 정서라고 말하는 드라마이다. 세상에는 여전히 모든 쿨한 것을 '내맘이야'라는 하나의 말로 뭉뚱그려서 거침없이 사는 사람도 있지만, 똑같지는 않아도 이렇게 '소심하고 착하며 섬세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에서는 '순수의 시대'와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해도 이미 온갖 인터넷 게시판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지금까지 묻혀있던 어떤 사람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집어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음악으로 치면 눈물을 있는대로 짜내는 신파적인 발라드 사이에서 어느날 갑자기 토이같은 음악이 인기를 끈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또한 '네멋대로해라'는 개념뿐만이 아니라 그 내용물에 있어서도 기존 드라마를 넘어서는 빼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네멋대로해라'는 자신이 말하고자하는바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일상을 바탕으로하기에 그것은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일상속의 표현으로 묘사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대사들에서 미처 다하지 못하는 등장인물들간의 감정들은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매우 절제된 상태에서 나타난다. 포도씨로도 사람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 유명한 장면부터 복수가 미래와 전경을 두고 갈등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교차편집등은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세련되고 절제된, 영화를 연상시키는 영상들이었고, 그렇게 절제된 영상들은 그 영상들속에서 '심사숙고' 끝에 나오는 대사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그리고 대본에 있어서도 이 드라마는 그 유명한 대사들뿐만 아니라 몇몇의 캐릭터에게 이 드라마의 내용을 부분부분 함축시키는 상징성을 부여하는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옆에 누군가가 없으면 쉽게 넘어지는 꼬붕이의 캐릭터나,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활달하다가도 무대에만서면 노래를 부르지못하는 밴드의 보컬리스트는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너무나 착하고 동시에 소심해서 이 '세계'를 벗어난 타인앞에서는 잘 나서지 못하는 '네멋대로해라'속 대부분의 인물들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마치 복수가 기르는 물고기처럼 혼자서는 살기 힘들고 뭔가 하나씩은 부족한듯한 사람들, 그러나 서로 도와가며 공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창조적이고 완결된 멋진 세계와 그 세계관을, 이 드라마의 대본은 으시대지 않고 그 드라마속 인물처럼 차분하고 절제된,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 감정선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기의 완성도
물론 이런 드라마의 완성도는 단지 대본과 연출의 완성도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의 최종적인 힘은 결국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에서 나온다. 곧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삶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의 복잡한 심리를 어눌하고 느린 대사톤을 유지하면서도 말그대로 '복잡다단'하게 표현하는 양동근의 연기는 그의 '구리구리'했던 캐릭터속에 가지고 있었던 가진것도, 볼것도 없는 청년의 모습을 일정부분 유지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지금 당장 찾아온 행복사이에서 복잡다단한 감정표현을 자신만의 캐릭터안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고, 이나영역시 더 이상 'CF모델'로 불릴 이유가 없을 정도로 일상의 연기를 잘 소화하고 있다(술마시고 아버지에게 주정부렸을때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오히려 주연배우들의 연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주변에 있는, 이 세계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다. 조경환, 신구, 윤여정같은 연기의 달인들의 기막힌 연기은 어느정도 예상된 것이지만, 스턴트 회사의 사장으로 '네멋대로해라'속 '착한사람'의 모습을 한층 더 풍부하게 보여주는 정두홍이나 극중초반 지명도에 있어 너무 밀리지않았나 싶었던 이동건과 이세창의 연기역시 인상적이다. 특히 이동건이나 이세창의 캐스팅은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스타 연기자들을 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만약 이 배역에 애초에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타를 캐스팅했다면 이 역할들은 그 설득력을 잃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애초에 말투나 성격에 있어서 '착하게 보이는' 사람과 '나쁘게 보이는' 사람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재수없고 무식해보이는 사람들마저도 '구제'하며, 그들도 사실은 착한사람들이라는, 다만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니 말이다.
Best in 2002 ?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네멋대로해라'는 올해 나온 드라마중 현시점에서 가장 '소중한'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완성도가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하나가 스스로 세계와 세계관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서 그것으로 시청자들에게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며, 동시에 그 장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연출과 대본, 그리고 연기까지 모두 수준급이니 그런 평가를 받아도 좋지 않을까. '네멋대로해라'는 드라마속에서 새로운 세계, 그것도 착한 사람들이 타인과 공존하는 희망가득한 세계를 절망과 불안의 세계속에 담아내고, 그런 아름다운 삶의 당위성을 이야기함으로서 한국의 트랜디 드라마가 진정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신의 마음가는대로 해라. 그게 '네 멋'이다. 하지만 그 '네 멋'은 타인과의 사려깊은 공존으로서 완성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삶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