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는 1989년 유성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다. 그때까지 투포환을 하며 다져진 기초체력 덕분에 박세리는 골프를 배운 지 1년도 채 안 되어 싱글골퍼가 되었다. 박세리는 공주 금성여고 3학년 때인 1995년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출전하는 오픈대회를 4개나 석권했다.
그리고 곧 그녀는 프로로 데뷔했다. 박세리는 동일레나운레이디스클래식골프대회에서 18세 10개월 26일의 최연소 기록으로 프로 데뷔 신고식을 치렀고, 연달아 필라오픈골프선수권대회와 SBS프로골프최강전마저 석권해 국내 골프 사상 첫 3주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박세리는 1998년에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LPGA) 투어에 참가했다. 그녀는 첫 해에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후 박세리는 2007년까지 LPGA 투어에서 20회 이상을 우승하는 활약을 펼쳤다.
2003년에는 베어 트로피, 2006년에는 헤더 파 어워드를 수상했다. 또한 2007년 6월에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같은 해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하였다.. 다음백과사전
<박세리가 25년의 길고 긴 골프 대장정을 사실상 마감했다.
제 71회 US 여자오픈을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LPGA투어 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던 박세리는 7월 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틴 코드베일GC에서 시작된 US 여자오픈에 USGA(미국골프협회) 초청으로 참가해 컷 탈락, LPGA투어 선수로서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공식 은퇴식은 아니었지만 2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퍼팅을 마치고 홀 아웃 하는 박세리를 USGA(미국골프협회)와 LPGA 관계자들이 도열해 포옹해주고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한국의 후배 선수들은 물론 각국 선수들이 눈물의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박세리(39)에게 골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얼핏 물으나마나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박세리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일반 골프팬들이 생각하는 범주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 외에 그로부터 솔직한 속 얘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지만 그동안 박세리가 이룬 업적과 이에 따른 환희와 감동, 이를 위해 그가 쏟은 열정어린 노력,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갈등과 후회 등이 촘촘한 그물처럼 얽혀 있을 것이다.
14세 때 아버지의 인도로 골프를 시작해 지금까지 걸어온 그의 골프여정은 바로 한국 여자골프와 궤를 같이한다. 1997년 Q스쿨을 거쳐 LPGA투어에 발을 들여놓은 박세리가 쌓아올린 금자탑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첫해 메이저 2승을 포함해 4승을 올린 것을 비롯, LPGA 통산 25승(메이저 5승)에 동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그의 업적은 아무리 뛰어난 후배라 해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세리의 진정한 위대함은 이처럼 화려한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한국국적 또는 해외교포를 불문하고 태극낭자들이 세계 여자골프의 지배세력으로 급부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박세리의 LPGA도전에 자극받은 또래들의 잇단 미국 진출, 박세리의 극적인 우승 장면을 지켜보고 프로골퍼의 꿈을 키운 세리키즈의 등장, 이 세리키즈의 성공에 용기를 얻은 세리키즈의 키즈 등이 나타나 한국 여자골프의 도도한 흐름을 형성한 것이다.
한국에 뿌리를 둔 다국적 태극낭자들의 맹활약은 LPGA투어 선수들에게도 자극을 주고, 아시아나 유럽의 골프 변방국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주어 LPGA투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박세리가 겁 없이 LPGA에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다면 한국은 골프에 관한 한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회 때마다 리더보드 톱10의 절반 이상을 태극낭자들이 차지하는 현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 여자골프는 박세리를 빼곤 설명할 수 없다. 박세리는 한국 여자골프 비상의 촉발자이자 원동력 그 자체다. >다음 블로그 golpodyssey, 골프탐험가 님의 글 중에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우리 국민들이 IMF의 위기에 빠졌을 때, 우리에게 가장 큰 위안을 준 스포츠 영웅이 박세리와 박찬호였을 겁니다. 그들이 타국에서 겪은 일들은 제가 잘 알지 못하지만 무척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또 위기를 극복하는 자세는 당시 실의에 빠졌던 우리 국민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세리 선수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로 함께 환호했던 적이 그대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국가대표 감독으로 브라질의 올림픽에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끝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니, 박세리의 앞날에 늘 좋은 일과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