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금관가야문화 답사기
설레는 가슴 안고 경기도 하남에서 출발해 버스로 5시간 걸쳐 김해금관가야 古都에 도착했다.
나는 1500년 전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기대에 상기된 얼굴로 꿈결같이 흘러간 미지의 나라들의 역사를 짧게 훑어본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그늘에 가려 존재조차 희미했던 고대의 나라 12가야국 중 김해가야국은 낙동강 하류에 발달한
농업과 바다를 접한 남쪽의 편리한 바닷길로 인해 낙랑과 왜 등 여러 나라의 교역 중심지가 되었다. 어로인해 경제,
문화가 발전해 제2대 거등왕부터 10대 구형왕까지 532년간 눈부신 문화를 꽃피운 왕국이다.
주차장에서 선사시대의 고상가옥 3채를 본다. 지붕이 갈대인데 50년 간단다. 근처에 기마상을 본다.
바람처럼 옮겨 다니던 북방민족의 혼이 느껴진다.
점심 식사 후 김수로왕의 탄생설이 있는 구지봉을 오르는데 산길 한쪽 흙과 함께 희끗한 것들을 본다.
옛날에 근처가 바닷가라 당시의 사람들의 쓰레기더미란다.
자세히 보니 조개껍질 도자기, 토기 동물 뼈들 골각제품 등 모두 깨진 것들이다.
이곳에서 일본등 여러 민족들의 물건들도 나왔다고 한다.
나는 옛 분의 손때가 묻은 조개껍질을 하나 주워 만지며 감회에 젖어본다.
구지봉 정상은 원으로 평평하다.
수로왕의 탄생설이 살아있는 곳으로 ‘대가락국태조탄강지’ 라는 비도 있고 ‘가락국천제단’도 있다.
또한 고인돌 위 표면에는 한석봉의 ‘龜旨峰石:이라는 글자가 명필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뻗어나간 획마다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타조 알만한 돌 조각 6개가 있는데
이 알들 중 첫 번째 깨어 나온 사람이 수로왕이다.
나는 한쪽에 우뚝 서있는 구지석을 본다. 꼭 남자의 물건 같다.
돌 주위에는 하늘에서 무한정 쏟아지는 서광의 빛으로 대지는 밝고 따뜻했으며 향취 또한 그윽하다.
나는 이 굳건한 구지석을 보며 궂지 하늘에서 내려 준 알이 아니라도 정기로 가득 찬 자연으로 인해 한 나라의 왕을
탄생시키고도 남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의 명을 받아 9명의 추장들이 춤을 추듯 발을 구르고 땅을 두드리며
구지가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의 신성함을 느껴 구지석에 몸을 기대본다.
긴 시간 갈피 속 곳곳을 들쳐 내며 전설 신화들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전해주듯 바람이 귓전에서 맴돈다.
나는 설화가 서려있는 황세바위와 여의 각을 본다. 황세총각과 여의 여인의 사랑이야기는 진부하지만 그리 싫지는 않다.
지금 이곳에는 모든 것이 설화고 전설이다.
땅도 하늘도 숲의 나무도, 나 또한 수천 년 전 멈춰진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
숲 한쪽이 뻥 뚫려 김해시가 한 눈에 보인다. 예전엔 바다란다. 아마도 옛사람들은 이곳에서 일몰로 인해 붉은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드나드는 배를 보며 낭만적인 삶을 즐겼을 것이다.
또한 눈부시게 빛나는 에메랄드빛 바다에 반짝이는 물 씨알들, 윤슬을 볼 때마다 황세와 여의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해송의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바닷가를 산책할 때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쫀듯하니 달달할까. 너무 아름다운
사랑이기에 신이 시샘해 비극으로 끝난 젊은 청춘을 생각하며 나는 나뭇잎들이 아닌 바닷물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며 “桑田碧海” 라고 중얼거렸다.
왕궁 발굴 터에서 조심스레 다루는 유물들과 무덤 현장을 본다.
수로왕능이다. 정문인 숭인문의 단청에서 물고기를 본다.
여러 전각들을 지나 신도 끝에서 초록빛 봉분이 곱다. 그런데 왕의 유골은 없단다. 숭선전에서 천신이 맺어 주어 인연이
된 왕과 왕비 모습이 온화하다. 이 안에도 박물관이 있다.
수로왕비능이다. 아잔타에서 와 16세에 가락국의 왕비가 된 분의 능이다.
능은 간결하고 전각은 단아하다. 한쪽에 파사석탑이 있다. 왕비가 인도에서 올 때 바다의 거친 파도를 진정시켰다고 온다.
하늘의 영을 받든다고는 하지만 어린 여인이 험난한 여정을 거쳐 멀고 먼 타국을 찾아오니 이런 영물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 이 왕비가 가져왔다는 장군 차도 마셔보고 싶다.
금관가야 박물관이다. 나는 실지로 금과 철 시대의 눈부신 문화를 본다.
화려한 금관. 세밀하게 조각된 금장식. 많은 자기들, 수많은 생활용품 등등을,
그 중에도 몸통 그대로 만든 철갑옷이 눈에 확 띈다.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다. 철기 문화의 꽃이다.
말 철갑옷도 보이는데 사람이나 말이나 저 무거운 철갑옷을 입고 어찌 싸웠을까?’
또한 많은 장신구 중 목걸이가 크리스탈 같아 눈이 부시다.
여기에서도 폐총의 단면을 보는데 그대로 역사의 기록이다. 불에 탄 쌀도 나와 논농사의 흔적도 보여준다.
특히 유튜브에서 흉노족과 가야의 똑같은 편두유골을 보았는데 여기에서 또 가야인의 편두유골을 본다.
이 예쁘장한 두게 골로 환생시킨 여인과 남자의 모습이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같은 정겨움을 느낀다.
여기는 대성고분 박물관이다. 이안에서 제일 반가운 것이 우리나라의 최초의 주술 시 구지가다.
고대문학의 진수를 이곳에서 보다니...
또한 나는 여러 형태의 무덤과 그 안에서 나온 생활용품들 그리고 아주 높은 온도에서 구울 수 있는 도자기 터,
무역을 했던 나무로 만든 배도 보았고 순장의 장례문화를 재현한 것도 보았다. 나는 많은 유골과 무덤을 보는데
주위가 어두워 으스스한 기분에 이 유골들이 꿈에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우리는 대성고분군 구릉의 곁을 지난다. 옛날의 공동묘지란다.
이곳에서 금관가야 왕급 무덤과 왕후 묘 등 길이가 8m 이상인 겨대한 묘를 발굴 했다고 한다.
역시 북방 민족, 낙랑 등의 흐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온 부장품들로 대성박물관을 꽉 채웠으며 또한 김해가 금관가야의 옛 古都라는 사실과 국가가 성장된
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공동묘지는 넘어가는 해로 밝고 따뜻해 보인다.
그래서인가 유난히 햇살 꽂히는 곳마다 무덤 속 주인공들이 하나씩 둘씩 일어나 우리들과 같이 걷는 환상이 든다.
푸른 하늘 아래 시 공간을 넘어 산자 죽은 자 숨결을 같이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와아! 숙소다.” 오늘 하루여정이 끝나자 우린 방 배정 표를 받고 서로들 하루의 감격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문화원 식구들과 같이 여행을 해 공유된 감정은 그대로 감동이다. 저녁에는 가락국에 대해서 김해문화원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내용은 엣 나라들의 형성된 시기, 경제 문화 외국과의 활발한 교역 등 강의는 열정적이다.
우리들은 내일 새로운 곳의 탐험이 있기에 진지하게 들었다.
그런데 강의 중 이광수라는 학자가 왕비는 인도 여인이 아니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난 정신이 번쩍 든다. 하지만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의 껍질은 벗겨지게 마련이지만 나는 먼 곳 아지랑이를 보듯
꿈결에 젖듯 오랜 세월 속에 묻힌 왕국에 대한 아련한 향수로 호기심은 여전하다.
신어산 은하사다. 왕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지은 절이다.
절 아래 있는 돌다리에 음각된 물고기가 있다. 대웅전 단청애도 물고기. 하여간 가락국의 왕과 왕비와 한 쌍의 雙漁문양은
매우 불가분한 관계가 있는 것은 틀림이 없나보다.
언어학자인 한 분은 가야는 옛 드라비다어로 물고기, 물고기는 가야라고 한다.
난 요즘 인터넷에서 지금도 인도의 드라비다족은 한국말로 동일한 언어를 쓴다고 하는 글을 읽었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신비감이 든다.
산의 품에 안긴 절은 한 폭의 꽃 같다.
더욱이 대웅전은 목단꽃처럼 화사하다. 다른 절과 달리 산신각이 대웅전과 나란히 놓였다.
특히 범종루는 대성스님의 장인정신이 서린 곳으로 많은 용들 엄청나게 큰 목어 그리고 삼귀두가 특이해서 눈길을 끈다.
내려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의 아우라인 산들이 보라빛으로 눈이 부시다.
이것으로 1박 2일 여행은 끝났다.
나는 여태껏 본 유적지, 유물들은 장엄하게 불타오르는 노을
속에 떨어진 눈물 젖은 꽃송이 송이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망국의 한으로 쓰인 서정적 별리 시 한편을 읽은 듯한 감정으로 만장같이 서있는 푸르디푸른 나무의 나뭇잎들을 보고
인사를 했다. 안녕! ~
정말 김해시는 대단하다.
한밤중에 숙소를 찾아 와 강의하신 교수님, 우리를 마중 나온 김해문화원장님. 유적지에서 일하는 분들 그리고 해설사 등
김해 시민들이 총 동원해서 잃어버린 왕국의 흔적을 찾는 일에 얼마나 열심인가를 보여준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즐거우면서도 아쉬운 여행에 나는 뭔가 찜찜한 생각으로 있는데 역시 하남문화원장님의 한 말씀,
옛날 한성백제의 古都가 하남으로 추측되는 유물과 유적이 즐비하건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있어도 되느냐는
한탄 어린 목소리가 귀에 쨍하다.
우리의 소중한 보물이 남의 주머니에 있는데 찾을 생각도 안하다니 부끄럽다.
이에 하남의 각 기관의 장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
하남 시민들 모두 나서 백제의 옛 고도를 찾는 일에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미사리강 오랫만에 들어 와 수필 회원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건강 하시기를 바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석촌님
김해를 갔다온 후기인데 이 졸필 읽어주심만으로도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는 분이시네요.
우리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나를 안다는 것과 상통한다고 할까요.
가야국의 답사를 통한 세심한 님의 필치가
돋보이십니다.
오랫만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해 가야국에 대해 평소 신비를 느꼈던 봐 이번에 다녀와 졸필이나마 남기고자 글을 썻습니다
시원찮은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미사리강 이라는 닉이 특이하다 했는데 하남시에서 사시는 군요.
아주옛적 결혼전 이니까 35년도 더 옛날에 그곳에 산업시찰단으로
가본적이 있읍니다.
바쁜 일정과 오랜세월속에 아득한 아쉬움을 이 방문기 로서
많은 궁금증이 풀렸읍니다.
귀국하게 되면 꼭 다시 찿아보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하남시도 하남시 사람은 옛날 백제의 古都 하남위례성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쉽게 인정 받기가 어여운 것 같아요
언제 한번 들리시기를 바람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답사를 건성으로 하시는 분도 많던데
미사리강님은 영혼으로 다니신 걸 알겠습니다.
제가 가보지 못한 곳을
세세히 안내해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영혼으로 다녀왔다는 말씀 이 한마디가 너를 싱그럽게 살게 하네요
이 귀한 댓글 소중허게
가슴에 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