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소아응급실 찾는 유랑민
중앙일보
입력 2022.09.29 01:12 업데이트 2022.09.29 01:39
최병호 경북대 의대교수·전국대학어린이병원협의회장
코로나 후 소아 전공의 지원 급감
개인 아동병원 등 야간진료 축소
아이들 위한 필수 의료 유지 어려워
정부, 관련 의료진 확보 지원해야
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 소아청소년과 1차 의료를 담당하던 개원가에 찬바람이 불면서 폐업과 의사 감원이 속출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도 급감했다. 개원 아동병원 등에서 야간 진료를 축소하면서 소아 환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현상이 심해졌다.
통상 대학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적어도 매일 밤 2~3명씩 근무해 왔다. 응급실, 중환자실과 입원환자를 돌보는 일을 맡았다. 주 80시간까지만 근무하게 만든 전공의특별법이 생긴 이후 근무시간은 3분의2로 줄었는데, 지금은 전공의 인원까지 절반으로 줄었다. 이로 인해 교수진의 추가 당직과 탈진, 2년차 전공의 사직, 젊은 전문의의 이직으로 이어졌고, 결국 전국적으로 소아응급실 운영이 축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심각한 것은 내년에는 소아응급실뿐만 아니라 소아중환자실의 운영까지 포기하는 병원이 속출하게 될 위험이 크다. 그 다음은 고위험산모센터와 준중증 소아입원 병상의 축소로 확산된다는 것이 현장의 우려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 부족의 원인은 의료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문의의 80%가 1, 2차 병원에서 일반의 역할도 하면서 일하는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전문의의 80%가 종합병원에서 근무한다. 종합병원에서 필수 의료분야의 전문의를 추가로 대거 고용하면 다른 인력과 시설, 장비도 같이 확충을 해야 한다. 저수가 체제에서는 병원들이 이런 확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전체 병실의 대부분이 중환자실과 희귀질환 병동으로 운영되는 대학어린이병원은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의대 졸업생보다 전공의 모집 정원이 더 많으니 필수 의료과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3D로 낙인 찍혀 지원이 끊어지게 된다. 의대 졸업생 3000여명 중 소명 의식에 불타올라 소아청소년과를 전공 희망하였던 젊은 의사가 500명이 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50명 수준으로 줄었다. 소아청소년과, 산과, 소아외과, 흉부외과 전공의를 전공하도록 의대 입학 때부터 또는 의대 졸업 때 강제하지 않는 이상 필수 의료의 인력 위기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특정 전공을 강제하기 어렵다면,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몸 상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늘어나도록 정책 지원을 하는 것이 국가 차원에서 할 일이다.
당장 단기 대책으로는 현재 배출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중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한시적으로 권역 어린이병원에 파견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차선책은 현재 추진 중인 공공임상 교수제도를 권역 국립대 어린이병원에 우선 배정하는 것이다. 우선 급한 불을 꺼야 중장기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다.
공공의료수가도 추진된다고 하지만, 중기 대책에 해당한다. 어린이병원의 유지를 전액 국비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을 하는 나라를 벤치마킹하여 권역 대학어린이병원을 살려야 한다. 늘 반복되어 온 대책 중 의료전달체계 확립은 최종 단계인 권역의 소아 응급실, 중환자실 기능이 마비가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호흡곤란이나 경련환자, 미숙아의 서울 대형병원 이송 과정에 많은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코로나가 진정이 되면서 1, 2차급 아동병원에서 다시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구하고 있다. 전문의가 취직할 곳이 많아지는데, 굳이 4D로 소문난 소아중환자의학, 신생아학이나 소아응급실을 지원하려고도, 더 근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소아청소년과를 하려는 의대생도 전공의가 아직 있는 병원의 소아청소년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지방 권역의 정말 아픈 어린이는 앞으로 누가 살리나? 필수 의료 살리기 대책이 수년 후 꼭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현재 의대생에게 ‘우량주는 저평가 되었을 때가 투자 적기’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다.
모든 계획은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디테일에 충실하여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때를 놓치지 않게 실행을 해야 한다. 중장기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2~3년은 버텨야 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다. 당장은 우리가 해야 하고, 우리 밖에 할 수 없는 일은 어떻게든 해서 붕괴를 막아보겠다. 전문의로만 운영이 되는 시스템이 될 때 비로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이 안정적으로 회복된다는 희망을 품고….
지방에서 발생하는 초응급 환자와 장기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 그리고 경제적 약자의 경우 권역 거점 대학어린이병원의 도움이 절실하다. 고위험 임신의 비중이 전체의 30%지만 급증하는 극소저체중(1500g 미만) 미숙아의 생존율은 90% 에 달한다. 2~3년의 항암치료가 필요한 소아백혈병의 완치율도 90%를 상회한다. 이런 시스템을 지탱하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소아 의료는 복지가 아니다. 인권을 넘어 생명권에 해당한다. 사람부터 살고 집의 불을 꺼야 할 시점이다. 어린이 의료 심폐소생술(CPR) 상황이다. 코드 블루!
최병호 경북대 의대교수·전국대학어린이병원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