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1.7.25.) 말씀/히브리서 3:13
오늘을 살라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여러분,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 아시나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 이 말이 나옵니다. 영국의 보수 입시 명문고 웰튼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아이비리그로 진학하기 위해 마치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양 책과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교장은 졸업생의 75% 이상이 명문대에 진학했음을 자랑하며 전통, 명예, 규율, 우수라는 학교의 4대 교훈을 지킬 것을 외칩니다. 그의 좌우명은 원칙에 입각해 헌신적으로 교육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존 영어 선생의 퇴직으로 이곳 출신 키팅이라는 선생이 부임하여 수업을 하는데 처음부터 파격적인 교수법을 펼칩니다. 우선 그는 자신을 선생이 아닌 ‘오, 캡틴 나의 캡틴’으로 불러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에번스 박사가 쓴 도식적인 교과서의 머리말을 찢어 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이라는 라틴어를 강조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이지.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목적은 사회, 문학, 낭만, 사랑인 거야. 이러한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카르페디암‘ 곧 오늘을 잡아야 한단다.” 영어로는 Seize the day. 본래 이 말을 한 사람은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입니다. 시저의 뒤를 이어 로마제국의 황제가된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팟스로마나(로마의 평화)를 가하게되었을 때에 그간 고통을 겪은 로마 시민들이 이제는 마음 편히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라는 의미로 이 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 미래 내일이 아니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세상 형식과 제도, 규범을 쫓아 사는데서 돌아서라. 먼 미래만 준비하며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우리는 실제로 주변에서 평생을 삶의 목적과 먼 법률, 의학. 경제, 천문, 수리를 공부하며 성공적인 인생을 이루었지만 정작 삶은 제대로 살지 못하고 어느새 병들고, 늙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기고,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은 많이 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삶은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키팅 선생은 자신이 그런 인생을 살아보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새 교육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짧은 인생을 제대로 살려면 우리는 시간의 안배를 잘 해야 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 우리의 삶은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오늘 현재 입니다.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오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순간의 시간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입니다. 오직 현재의 시간을 인식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과거도 치유할 수 있고, 아름다운 미래도 꽃피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 일을 미루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설령 먼 훗날 성공을 한다고 해도 되돌아보면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시편 39:6절은 이렇게 말 합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미래만을 위해 살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재물도, 시간도 쌓아놓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도 지금, 베푸는 것도 지금, 하고 싶은 일 하는 것도 지금, 행복하게 사는 것도 지금, 아내와 데이틑 하는 것도 지금, 자녀들과 소풍하는 것도 지금, 이웃 사랑도 지금, 생명의 복음을 나누는 것도 지금, 좋은 일 하는 것도 지금입니다. 우아하게 사는 것도 지금입니다. 실제 가용한 시간은 지금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꿈도 미래는 가상이고, 내일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막상 머리로는 알아도 카르피디엠하는데 서투릅니다. 왜 그렇지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선물이라는 개념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간을 과거로 자꾸만 넘겨 버립니다. 우리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영어 ‘present’는 ‘현재’와 ‘선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가 선물이면 선물은 지금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 행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물 포장도 뜯어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부의 행복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렇게 말 합니다. 전도서 9:9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고린도 후서 6:2절은 또 이렇게 말 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받는 것도 지금, 구원도 지금입니다. 히브리서 3: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피차 권면도 오늘입니다. 야고보서 4:13-14도 보십시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어떤 것도 내일은 없습니다. 오늘을 충실히 살라고 합니다.
이렇게 오늘 현재를 충실히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경직된 전통, 구조, 틀을 과감히 깨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관념과 전통, 율법적 사고방식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바래새인들이 율법과 장로의 우전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의 몸을 입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등 파격적인 행동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싯기시며 우리를 섬기시고, 죄인처럼 죽으심으로 율법과 죄와 전통에 갇혀 살아가던 우리를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이 작품에서도 키팅 선생님의 행동은 아주 파격적 이었습니다. 그동안 영국의 보수 명문고 웰튼 아카데미의 전통은 아무도 깰 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오직 아이비리그 진학을 위해서 학교의 방침과 학부형들의 바람에 부합하도록 오직 공부에만 매달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키팅 선생을 만나서 의식의 전환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반이 된 닐(로버트 숀 레오나드), 토드(에단 호크), 녹스(조쉬 찰스), 찰리, 캐머런 등은 키팅 선생이 재학 시절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시작 모임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반발하며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세계를 추구했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들도 밤에 몰래 나가 인디언 동굴에 모여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갑니다. 키팅의 영향으로 공부가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친구들은 각자의 일탈을 시도합니다. 녹스는 선배인 쳇이 사귀는 다른 학교 여학생 크리스 때문에 상사병을 앓고, 닐은 의사가 되라는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아버지에게 반발해 평소 꿈꾸었던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극단에 입단합니다. 타고난 실력을 인정받은 닐은 ‘한여름 밤의 꿈’의 주인공에 캐스팅돼 열심히 연습한 끝에 드디어 공연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은 물론 아버지까지 초대합니다. 녹스는 쳇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크리스와 함께 연극을 관람합니다. 연극이 끝난 후 모든 사람들이 닐에게 열광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만큼은 그를 강제로 집에 끌고 옵니다. 그리고 절망한 한밤에 닐은 제 머리에 권총을 쏘아 자살을 합니다. 개봉 당시 관객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은 걸작 ‘죽은 시인의 사회’(피터 위어 감독, 1989)가 오늘에도 감동을 주는 것은 여전히 세상은 자본주의로 인한 출세주의, 금전만능주의가 더욱더 심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사람들 스펙 만능주의 과 기존의 악습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해설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봐도 키팅은 진정한 자유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입니다. 자기애의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운명애의 니체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무조건적이거나 무분별한 반항은 지양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게 방종의 위험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키팅 선생이 가르치는 교육의 핵심은 획일적인 것도 아니고, 방종도 아니고, 기존의 삶의 일탈도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자기가 주체가 되어 독특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에 나오는 키팅의 대사들 그 자체가 하나 하나가 어록이자 철학입니다.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라, 언어를 음미하는 법을 배워라. 언어와 사상이 세상을 움직인다. 미와 낭만과 사랑은 삶의 이유이다. 너의 인생은 계속되는 극 속의 시가 된다.” 왜 언어를, 시를 배워야 하는지 적확하게 집어 낸 명제들입니다. 우연히 키팅의 교수법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긴 한 동료 교수는 “현실을 직시하라.”라고 충고하지만 키팅은 개의치 않고 “난 자유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응수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언어가 발전한 이유는 여자를 유혹하려다 보니.”라고 해석해 준 뒤 교탁 위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모두 책 상위에 올라가라고 합니다. 이 장면이 압권입니다. 이제까지 한번도 공부하는 신성한 책상 위이 올라간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아는 사람? 질문 합니다.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꼭 그렇게만 생각하고 그렇게만 살아야 하는 과거와 다른 각도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다른 세상을 살기를 원한다면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합니다. “독서할 땐 작가 생각뿐만 아니라 내 생각도 중요하다.”, “사고의 전환으로 새것을 개척하라.”, “인생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한다.”, “소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각자의 걸음걸이를 찾아서, 각자의 방향을 찾아 걸어라. 억지로 꾸밀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당당히 세상에 맞서라.” 깊이 생각해야할 말들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획일적인 틀에 갇힌 신앙이 당장에는 안전한 것 같지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근본 정신은 자유입니다. 결코 전통이나 틀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자유가 먼저였습니다. “임의로”라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이 자유가 없다면 생명나무와 그 많은 먹기 좋고 보기 좋은 아름다운 과실과 좋은 풍경들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나 거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방종할 수 없는 하나의 질서가 법으로 주어졌습니다. 질서는 틀이 아닙니다. 자유가 자유 되기 위해 지켜주는 법입니다. 그 법을 어기고 인간은 죄르 ㄹ짓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났지만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18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자유가 없는 구원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5:13절은 자유에 질서를 이렇게 말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 자유로 사랑의 종이 되라고 합니다. 그게 진종한 자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 전통에 도전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수많은 반대와 저항이 따르게 됩니다.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 질서가 사랑입니다. 문둥병자, 혈루증 앓는 여인, 자신의 삶을 찾고 자유를 획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눈치도 율법도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믿음으로 도전해서 획득했습니다. 어렵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어렵다고 포기하면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키팅선생님 시도는 파격적이면서도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지만 많은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학생은 자살을 하였고, 퇴학의 위기를 맞았고, 키팅 선생은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육이 헛되지 않아서 마지막 순간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책상에 위에 올라가 선생을 배웅합니다.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감동의 장면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에도 이런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 합니다. 무서운 전통, 구약의 율법이 있고, 전해 내려오는 장로의 유전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것을 따릅니다. 매일 손을 씻고 짐에 들어오면 물을 뿌리고, 죄인들과 밥을 먹지 말고, 주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하고, 샤워도 말고, 버스도 타지 말고, 물건도 사지 말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값고, 해마다 세 번식 절기를 지키고 짐슴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그 외에 많은 절기들...안식일을 안 지키면 죽이고, 부모를 거역하면 죽이고, 간음해도 죽이고... 거짓말하지말고, 도적질 하지 말고,,, 이런 율법들을 문자적으로 지키며 산다면 우리는 그 안에 갇히게 됩니다. 자유 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율법이 필요한 것은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로 은혜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이지 우리를 판단하고 정죄하며 무균실에 가두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틀 속에서 신앙은 경직되고, 자유를 잃게 됩니다. 참 신앙은 복음 안에서 자유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면서 주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은사를 발휘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의 핵심적 질서는 단 하나 사랑입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모든 계명을 이루며 자유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20년 전부터 개혁을 하게 되었는데...가장 큰 은혜는 바로 자유입니다. 잘 한 것이 없고 일한 것이 없어도 자유할 수 있다는 것, 다시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독특한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내 은사를 찾아 개발하며 살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같으면 어떻게 목자가 색소폰을 불겠습니까? 과거 같았으면 어떻게 인문 고전 소설 철학 책을 읽고 니체를 배우겠습니까? 그러나 자유속에서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날마다 오늘을 체선을 다해 살며 사랑하며 배우라고 강권합니다. 날씨도 무덥지만 새벽 5시부터 영어 성경을 암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 합니다. 성경공부, 독서모임, 주일 예배준비, 틈나는 대로 독서 글쓰기, 색소폰 연주 그리고 받은 은혜를 우주적으로 나누워주다 보면 주일이 금방 돌아옵니다. 시간이 가도 행복합니다. 큰 것을 바라는 것을 내려놓고 작은 것을 붙들면 자유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자유입니다.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즘 재범 집사님은 코로나 시대 에이트 씽크를 읽으며 인공 지능시대를 사는 법을 매우고 있습니다. 김재중 집사님은 오십부터 우아하게 살아야한다는 한손엔 성경, 한손에인문고전 책을 읽으며 우아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홍집사님도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실제 삶에 적용하며 살아갑니다. 명남, 정미, 고현옥, 경숙 자매님도 한주 배운 말씀들 묵상하며 스스로 삶속에서 적용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들을 보면 아름답습니다. 더 나은 미래가 펼쳐져 보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자유를 주신 인생인데 오늘을 감사하며 우아하고 아름답게 영정적으로 살아야합니다. 이 한주간도 오늘이라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며 즐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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