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이다운 아이였던 적이 없는 나는 런던의 거대한 로열 앨버트 홀에 들어선다. 수천 명은 족이 된다. 살아 숨 쉬는 육체를 이끌고 이곳으로 모요든 사람들. 음악을 통해서 거룩하고 신성한 숨결을 듣고, 느끼고, 호흡하기 위해서. 그것에 시종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 숨결, 하모니의 숨결은 나의 영원한 열망이다.
청중들에게 인사한다. 박수 소리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기침을 한다. 피아노는 잠자코 나를 기다린다. 의자에 앉고, 음악은 시작된다. 모든 것이 펼쳐진다. 음악은 그들이며, 나 자신이며, 당신이며, 침묵을 갈구하는 우리이다.
(26-27)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해서 아버지는 통 말씀을 안 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음성에서 징용자의 절규를 듣는다. 아버지의 목청 속에는 강제로 빼앗긴 모국어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에는 일본인들의 구타가, 몸속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실험쥐 신세가 된, 마치도 없이 생체이식을 당한 한국인들의 몸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도저히 먹여 살릴 수 없었던 집안의 무게가, 뱃속에는 장남의, 한 남자의, 한 아이의 분노가 한 짐이었다.
(34-35)
아무튼 내가 전적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유일한 공간은 피아노 앞에서였다. 영혼이 느끼는 행복감은 한참 후에나 찾아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직 피아노를 일종의 의무로 받아들였다. 내면적인 명령. 나의 임무. 아무도 나에게 신동을 만들기 위한 교육법이라든지 아주 세세한 전문적 방식에 따라 손가락, 손목, 팔 놀리는 법, 자세를 유지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아직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 작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무도 나에게 신동들이 강요받는 몸짓을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그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내 몸은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간혹 내가 사람들에게서 고양이처럼 연주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36)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형편없는 수준의 피아노 앞에 앉게 되면 그날은 연주회를 망쳐버리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피아노를 받아들인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악기쯤은 잊게 된다. 나는 악기가 아니라 음악과 사랑하는 관계이므로, 중요한 것은 표현할 수 없는 것조차 표현하려는 욕망이다.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나만의 독특하고 개인적이며 직관적인 욕망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침묵이다. 피아노는 그저 그곳으로 데려가주는 사공일 뿐이다.
(63)
드디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내가 음표들을 통해서 암울한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은 축복이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격랑은 내가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음악이 나를 잡아당기고 이끌었다. 내가 거기에 기대서 내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완전히 낯선 이 세계에서 음악만큼은 나만의 동굴, 나의 피난처, 내가 몸을 웅크리고 안길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도 친숙한 존재였다.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곳이 어디건, 나는 내 집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90-91)
독창적인 해석이란 없다. 뚜렷하게 유일무이한 진정성 있는 해석이 있을 뿐이다. 비극적인 음악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극적으로 연주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차피 그 음악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연주하는 사람이 음악과 하나가 된다면, 연주자가 감히 그 정도까지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면 결국 그 자신은 숨결과 하나가 되며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그 나가 사라지게 될 테니까. 음악과 한 몸이 되는 것. 음악을 연주하고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음악이 우리의 영혼을 아예 관통하는 것. 마침내 존재하기 위해서 사라지기.
(92)
템포란 무엇인가? 음악에서 템포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저 작곡가가 실마리를 주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 한 인간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어떠한 말을 속삭일 때 누가 그 어떠한 속도로 말을 하는지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표현이 먼저이다. 열광하면 그것이 속도를 결정한다. 음악은 템포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는다. 음악은 템포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음악이 템포를 창조하는 것이다.
(109)
어떤 작품을 연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작품과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듯한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느라 밥 먹는 일마저 잊어버리는 것이며, 손가락이 몹시 아프고, 밤에도 연습을 하기 위해서 문득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나의 몸 안에서 음표들이 펄떡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 열광이 나의 몸을 휘감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을 전적으로 작품에 내어주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지혜가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오직 열망만을 믿음과 토대로 삼아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138)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육체는 하나의 옷에 불과하며,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그것을 저세상에 가져갈 수 있는가? 나에게는 오히려 영원히 지속되는, 저세상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함께하는 나의 영원한 본질을 풍성하게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롭고 온당한 것이었다. 내면의 본질적인 아름다움, 보이지 않는 섬세한 아름다움의 영원한 재산. 나는 그 재산을 끊임없이 늘리고 싶었다. 더불어 지금 열여섯 살의 내가 접한 불교의 신선한 가르침과 매일매일의 경험에서 얻는 깨달음은 조금씩 내 안에 새로운 자산이 되어갔고 탐험의 공간을 만들었다.
(140-141)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께서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머와 간명함으로 나에게 한마디 해주셨다.
“부처가 되기보다 부처럼 행동하라. 부처행을 하는 자가 부처님이니 깨달음을 찾으려고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기 말고 지금 즉시 각자 자리에서 부처행을 하라. 부처행이란 나 아닌 것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걸 깨달아 모든 생명이 행복하도록 도우면 부처행이다”
그렇다. “절대적인 완전함”을 계속 찾으며 헤맬 것이 아니라 지금 즉시 여기에서 그 “절대적인 완전함”을 삶과 음악으로서 표현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 절대적인 완전함, 즉 정신의 본질, 온전하고 완전한 참나는 영원한 영원부터 언제나 내 안에 있었고 영원히 있을 진정한 “나”이므로, 그것은 표면적인 “자아”, 혹은 껍질에 불과한 “나”가 아닌 나의 진정한 본질이므로.
(159)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혼동이 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은 그분만의 특유의 명쾌함으로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셨다.
“우리가 위대한 한 작곡가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음악은 깨달은 자의 음악이므로 우리 또한 그 작곡가의 진정한 본질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며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도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소위 말하는 ‘하나가 된 의식’과 연결되기 때문이죠. 온 세계를 놓고 볼 때,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으나, 참자아, 즉 정신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하나이며 그것이 바로 우주의 의식입니다. 그때는 연주자와 작곡가 각각의 개성이 공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상호의존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둘은 하나가 되니까요.”
(175)
음악은 바람의 소리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모두 음악의 원천이다. 음악은 안양의 다리 밑에도, 어린 나의 두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던 나른한 물풀들의 움직임에도 이미 있었다. 음악은 자연이다. 또한 자연의 메아리다. 음악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인 흐름의 완벽함을 듣게 해준다. 반복되는 프레이징으로 모래사장을 향해 밀려와서 부서지는 파도. 하지만 밀려올 때마다 각각 늘 유일하며 개별적인 파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새의 노래.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와 봄날의 이슬비. 내면의 숨결에 몰아치는 열대 계절풍, 영혼의 루바토, 쿵쿵 뛰는 심장, 점점 더 빨리 뛰었다가, 겁을 먹기도 하며, 순간 평온을 되찾는 우리의 심장. 감정이 고조되면서 빨갛게 달아오르는 두 볼. 축축하게 젖은 손. 살아 있는 육체!
(177)
음악에는 끝이 없다. 음악은 작곡가 개인의 스타일이나 개성을 초월한다. 그리고 연주자는 연주를 통해서 자신만의 감수성과 개별성을 더함으로써 창조 작업을 이어간다. 즉 연주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낯선 것,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일시적 불안감과 맞서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거장의 발걸음이 아니겠는가.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은 실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다른 한 번의 경험을 쌓았을 뿐이고 한 번 더 반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오로지 반복이 부족했음을 발견한 위대한 순간이다. 언제나 다시 하면 더 나아지는 법, 포기하지 않는데 어떻게 실패가 존재한단 말인가.”
(183-184)
유명한 작곡가들의 이름을 단 이 콩쿠르들은 모두 그들의 이름을 내세워서 그들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데 고작 몇 명에게 상을 주고 그 나머지 몇 백 명들의 마음은 무너뜨리고 상심하게 했다. 정작 그 창조자들은 이런 비즈니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정말 그들의 이름이 경쟁을 앞세워 음악도들을 모으는 비즈니스에 쓰이는 것을 그들은 원할까? 그들의 독립적인 정신이 그것을 허락했을까? 의문이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벨기에 왕가에서 개설했다는, 음악에 열중하는 데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삶의 조건을 제시하는 그 기관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하자 나는 나의 인생의 마지막 시험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겨우 스물 살밖에 안 되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휴식을 필요로 했다. 아니, 내 안에 있는 그 무언가는 이제 보살핌을 필요로 했다.
(198-199)
내 나이 이제 스물한 살.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퀸 엘리자베스 뮤직채플에서 편안히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받으며 이 무대, 저 오케스트라와 연주해달라는 요청을 따르면서 사는 새로 얻게 된 안락한 삶. 아니면 음악의 이름으로 영위하게 될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삶”, 직접 맞서고 스스로 찾아나가야 하는 삶, 그러나 어떤 종류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삶. 나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독립적인 삶. 폭풍의 역경이 몰아치고 가뭄이 와도 감수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삶. 내가 열두 살 때부터 휴식도 안정도 없이 살아온 삶. 그리고 그 삶은 또다시 나를 요구하고 부르고 있었다. 음악을 위하여. 나는 어느 누구도 아닌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이니까. 내가 외로울 때 나를 지켜주고 살펴준 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이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었으니까. 내가 추위에 떨 때 음악이 나를 품에 안아주었으니까. 두려움에 떨 때도. 음악이 나의 잡을 기다려주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으로, 프랑스로, 벨기에로, 유럽으로 나를 이끌어주었고 나의 꿈을 이루어주었으니까. 음악이 나의 엄마가 되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음악에게 빚을 졌다. 존재할 수 있는 이 영광을 삶이 우리에게 준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 살면서 그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하듯이, 나는 음악에 보답해야 했다. 더 이상 피아노를 통해서 엄마를 구할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에, 그 음악에게 나 자신을 송두리째 바칠 것이다. 결심이 섰다. 이곳을 떠나리라.
(217)
서른 개의 소나타는 이를 테면 각각이 하나의 소설이다. 극한으로 치닫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인생이 가지는 정수를 기념비적인 작품의 형태로 드러내 보이니까. 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의 전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이었다. 그 서른 개의 소나타를 나는 흔히들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같이 연대순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묶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야 총 99개의 악장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명쾌하게 이해되는 음악적 설계도를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224)
나는 마음 깊이 하모니를 믿는다. 아니, 더 나아가 이 세상에는 하모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 하모니는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고, 무너질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근원이라고도 하고 하나님, 신, 우주적 의식, 창조주, 알라, 혹은 부처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것을 하모니라고 부른다.
(234)
프랑스에서 연주할 때면 운다. 아주 많이 운다. 친구들이 청중들 속에 앉아 있는데 난 친구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같이 함께 연주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운다. 드디어 전적으로 나의 거처와 강렬하게, 그리고 진정하게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안전과 사랑이 있는 곳, 용서와 평화가 있는 곳이다. 침묵의 거처이기도 하다. 그곳을 내 거처로 삼을수록 더욱 음악은 나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