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게이요?”
영문도 모른 채 로스앤젤레스 공항 출입관리국에 넘겨진 내게 날아온 첫 질문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공항을 빠져나가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비자에 기재된 내용대로라면 나는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F’가 ‘M’으로 잘못 기재되어 있었던 것. 잘못했다간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채 한국으로 추방당할 판이었다.
“미국엔 무슨 일로 왔소?”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MDRT (100만 불 원탁회의)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왔습니다.”
“MDRT가 뭐요?”
나는 고객을 대하듯 최대한 깍듯하고 정중한 태도로 MDRT에 대해 설명했다.
“100만 불 원탁회의의 약자로 연봉 1억 원 이상 받는 전 세계 FC(재무상담사) 중 보험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겸비한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는 회의입니다.”
나는 당당하려 애썼고, 무슨 대단한 신분증인 양 MDRT 로고가 선명한 ING생명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 때문인지 관리국 직원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들은 “오해해서 미안하다”면서 정중하게 공항 로비까지 안내해 주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FC가 우리보다 훨씬 전문직종으로 인정받고 있고, 인텔리 계층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2002년 5월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낼 필요성이 있을 때마다 이 경험담을 풀어 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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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 조각가 출신의 보험FC 이수정 씨. |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교 3학년까지 내 희망은 화가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서울대 미술대학에 진학해 조각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내가 주도한 그룹전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문예회관에서 주관하는 〈촉망받는 작가전〉에 초청되기도 했다. 한 남자의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도 빈틈없이 살았다.
그런 내가 FC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신앙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교우 때문이었다. FC로 활동하고 있는 그 교우는 나를 고객으로 여러 가지 상품에 가입시켰는데,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쓸데없이 너무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개의 보험을 해약하러 보험사에 갔다가 직원의 권유로 얼떨결에 FC 교육을 받게 됐다. 그것이 내 삶의 새 장을 연 키가 되었다.
열심히 사회를 공부하고 오라는 하나님의 계시였을까. 일단 마음을 먹고 나니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아는 분의 소개로 운명처럼 ING 생명과 끈이 닿았고, 서류 전형을 거쳐 2002년 8월 ING생명에 FC로 입사했다.
나는 업무 수칙 제1조로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은 찾아다니지 않기로 결심했다. 친겴光눗?지인(知人)들은 일찌감치 상담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명함 한 장 들고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도전 의식으로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리라 다짐했다.
나는 상담 타깃으로 의사를 선택했다. 서울은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의사 전담 선배 FC들과 심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충청 지역을 공략하기로 했다. 지점장은 의사들 모임 책자를 한 권 건네주며 무작위로 한 사람을 지명한 후 그분과의 전화 상담을 통해 약속 시간을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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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정 씨는 현재 시니어 라이온 회원이며 연봉 1억 원 이상의 FC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MDRT(100만 불 원탁회의) 멤버다. |
며칠 후 나는 첫 계약의 꿈을 안고 충남 신탄진에 있는 병원으로 내려갔고, 미숙하나마 원장과 첫 상담을 했으나 계약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그 원장의 추천으로 다른 병원 원장과 두 번째 상담을 할 수 있었으니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두 번째 상담을 마친 후 나는 그 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원장님께서 계약하시면 제가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용기가 될 것입니다. FC로서, 첫발을 뗀 대전 지역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 주세요.”
나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내보인 탓일까. 원장은 그 자리에서 한 건을 계약했다. 내게는 첫 고객이어서인지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다.
그 후의 시장 개척은 비교적 수월했다. 만남 자체가 행운이나 다름없는 그 원장의 소개로 대전에 계신 많은 의사 분들을 알게 됐고, 심지어 서울에 있는 동기생 및 선후배까지 소개받았다. 무조건 병원에 찾아가 성사시킨 계약도 여러 건 있었다.
운이 좋아서인지 나는 아직까지 실패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덕분에 입사 6개월 만에 MDRT 회원이 됐고, 1년 만에 ING생명 소속 FC 중 상위 5%에게만 부여하는 ‘제너럴 라이온’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만 3년째인 지난해에는 상위 1%에게만 주는 ‘시니어 라이온’자격까지 얻었다. 당시 나의 연봉은 3억 원대를 넘어섰다.
올해 들어 나는 사업가 층까지 영역을 넓히기 위해 비즈니스 리더들의 세계를 공부 중이다. 소그룹 재테크 강의를 통해 자산관리 프로그램도 도입했고, 모임과 단체를 통해 인맥 네트워크 만들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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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G생명 명예직인 시니어 라이온 회원 패. ING FC 중 상위 1%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
저금리 기조와 고령 사회라는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저축 개념이 투자 개념으로 바뀌면서 FC의 영역도 전문화되고 있다. FC 업무는 이제 과거처럼 창구에 앉아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발로 뛰면서 고객을 발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영역도 부동산, 증권 등 다양한 채널로 확대해야 한다. 그 다양성이야말로 ‘나’라는 신용과 경쟁력을 파는 데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며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여러 가지 점에서 미술 행위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