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사 제2호점
-김원경-
홍릉수목원 가는 길목에는 만능사 2호점이 있지요 그곳은 못 고
치는 게 없어요 어긋난 열쇠, 끊어진 가죽벨트, 닳은 구두 굽, 싸구
려부터 명품까지 모두 다 취급해요 심지어는 나쁜 습성들도 고쳐 주
는데, 고칠 수 없는 것도 이곳에 오면 고칠 수 있다나 뭐라나 혹시
예고편이 나오고 본편은 나오지 않는 드라마를 당신은 본 적이 있나
요
한때 비포장도로의 바람으로 살던 장씨가 딱 맞는 아버지의 신
발을 신은 이야기예요 아버지의 신발을 신지 않으려고 단 한번도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은 그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순간, 아버지
가 되는 이야기예요
아버지가 되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지요 신발이 맞지 않아도
괜찬아요 만능사가 있으니까요 발을 자르거나 늘려서 맞춰준다지
요 거리 가로수는 다리가 잘릴까 봐 잎을 돌돌 말아 이른 동면에
들어갔어요 정착한다는 것은 바람의 멱살을 잡아다가 옷걸이에 걸
어두는 일인가 봐요
포개진 자화상*이 두 겹으로 분열되는 밤, 만능사 주인은 고치다
만 미스 김의 하이힐을 매만져요 양 뒤축이 바깥으로 비스듬히 닳아
있는 하이힐을 보며 이 닳아 빠진 살들아, 아, 아, 하며 구두뒤축에
깊고 단단하게 박힌 금속의 심지를 뽑아내곤 새것으로 갈아 끼워요
망치질이 어긋날 때마다 금속이 밀향고래처럼 신음소리를 내요 만
능사 주인은 만능해서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애인이 되기도 해요 하
지만 정작 자신의 변장이 서투르다는 것은 잘 몰라요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이중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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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나라 추천시
[5] 2006년 중앙신인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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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04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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