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대회 직후 평강왕은 온달의 성명을 듣고서는 깜짝 놀라면서 이상하게 여겼다. 아마도 전통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였던 국왕이 알만한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달이 평민이나 그보다 낮은 신분이었을 리는 없다. 만일 그러하였다면 북주와의 전쟁에서 선봉장이 될 수도 없었고, 나중에 국왕의 사위로서 대형(大兄, 7등)의 지위에 오를 수도 없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귀족이 아니면 관리나 군대의 지휘관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온달은 그 당시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을 정도의 최고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대형의 지위에까지 오를 정도의 귀족 출신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고의 명문 귀족 가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온달은 자신들보다 정치·사회·경제적으로 격이 떨어지는 존재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입장에서는 수렵대회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급기야는 공주와 혼인까지 하였던 이단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떠한 사회나 집단에서 이단자를 표현할 때에는 외모나 가정환경 따위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비정상적으로 모습으로 묘사한다. 간신이나 역적, 강도나 사기꾼 따위를 연상해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간사하거나 흉악하고도 음흉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런 까닭으로 온달 역시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멍청한 외모를 가진 가난한 바보로 묘사되었으리라 여겨진다.